자살을 방지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크리스천으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자아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신앙의 여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자아가 잘 성장하도록 옛 자아를 죽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옛 자아 죽이기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기인데, 나르시시즘의 주체는 하나님이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생의 초반 인간의 생존에는 나르시시즘이 필수적이나, 성인이 된 후에도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 파괴적이 된다. 나르시시즘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진정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한 사람 안에 공존하듯이, 구원 받아 거듭나고도 옛 자아와 새 자아는 공존하며, 어떤 자아가 지배하는 삶을 살지는 각 개인의 영적 성장과 영성에 달려 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5)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이렇게 푼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 즉 나르시스트는 자기생명을 죽일 것이고, 나르시시즘을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생 안에 들어가 그것을 보전할 것이라고. 나는 새 자아로 강력하게 살 것을 결단하였다.
또한 자살에는 적극적인 자살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형태의 자살이 있다. 예로 병이 있음에도 적절한 치료 받기를 거부하거나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경우, 곡기를 끊거나 삶의 욕구 상실로 인한 각종 위험행동 등 수동적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행위들이 여기에 속한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한 문화를 평가하는 척도는 그 사회 내 가장 무력한 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살을 생각하며 적극적이든 수동적이든 실행에 옮자 하는 자들이 무력한 자의 한 예라면, 자살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는 자살 증가의 요인이 된다. 자살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는 쇄신돼야 할 것이다.
인간수명 백 세를 넘는 지금 이제는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자살은 분명 웰다잉의 형태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 사랑은 물론 이웃 사랑을 통하여(막 12:29-31)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문화 창출을 선도하는 노력을 기울어야겠다. 나는 ‘자살’ 의지를 ‘살자’로 바꾸는 반전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늘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웰다잉 운동을 펼치자고 너무나 평범한,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제안을 해본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