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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위한 너무나 평범한 제안

▲ 고성희 전북대 간호대학장
죽음학을 말하는 타나토로지는 죽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타나토스에 어원을 두고 있다. 타나토스는 프로이트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신의 이름을 빌어 죽음본능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을 에로스,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라 칭하며 인간 자아는 이 두 본능의 투쟁을 적극 조정할 수 있는 주체로 개념화하였다. 따라서 에로스가 자기 유지 또는 보존의 본능이라면 타나토스는 자기 해체, 파괴의 본능이다. 자기 파괴적 본능의 충실한 실천이 ‘자살’일 것이다.

 

자살을 방지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크리스천으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자아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신앙의 여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자아가 잘 성장하도록 옛 자아를 죽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옛 자아 죽이기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기인데, 나르시시즘의 주체는 하나님이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생의 초반 인간의 생존에는 나르시시즘이 필수적이나, 성인이 된 후에도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 파괴적이 된다. 나르시시즘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진정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한 사람 안에 공존하듯이, 구원 받아 거듭나고도 옛 자아와 새 자아는 공존하며, 어떤 자아가 지배하는 삶을 살지는 각 개인의 영적 성장과 영성에 달려 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5)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이렇게 푼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 즉 나르시스트는 자기생명을 죽일 것이고, 나르시시즘을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생 안에 들어가 그것을 보전할 것이라고. 나는 새 자아로 강력하게 살 것을 결단하였다.

 

또한 자살에는 적극적인 자살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형태의 자살이 있다. 예로 병이 있음에도 적절한 치료 받기를 거부하거나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경우, 곡기를 끊거나 삶의 욕구 상실로 인한 각종 위험행동 등 수동적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행위들이 여기에 속한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한 문화를 평가하는 척도는 그 사회 내 가장 무력한 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살을 생각하며 적극적이든 수동적이든 실행에 옮자 하는 자들이 무력한 자의 한 예라면, 자살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는 자살 증가의 요인이 된다. 자살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는 쇄신돼야 할 것이다.

 

인간수명 백 세를 넘는 지금 이제는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자살은 분명 웰다잉의 형태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 사랑은 물론 이웃 사랑을 통하여(막 12:29-31)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문화 창출을 선도하는 노력을 기울어야겠다. 나는 ‘자살’ 의지를 ‘살자’로 바꾸는 반전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늘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웰다잉 운동을 펼치자고 너무나 평범한,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제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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