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08:55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린 화이민의 '쌀'

대만 남동부 타이둥현의 ‘츠상’은 쌀 산지로 이름이 높다. 주민은 원주민인 아미족이 대부분인데, 아름다운 자연과 청정한 환경 속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대만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쌀을 생산해낸다. 그래서 대만사람들은 그 쌀에 ‘황제의 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황제미를 생산하는 ‘츠상’의 이야기를 춤으로 형상화한 안무가가 있다. 대만 출신 안무가 린 화이민이다. 그는 1973년 현대무용단 ‘클라우드 게이트’를 창단했다. 중국어권 최초의 현대무용단이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한문 이름 ‘운문(雲門)’은 ‘중국 최고이자 인류 최초의 춤’으로 소개된 중국고전에서 따왔다.

 

아시아 정체성을 전통과 현대무용의 조화로 구현해내는 그의 춤은 90년대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유럽 최대 규모의 현대무용축제인 리옹댄스비엔날레에서 아시아 무용단으로는 처음으로 개막 공연을 장식해 관심을 모았다. 그때 발표한 작품 <방랑자의 노래> 는 3.5톤에 이르는 볍씨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 장관으로 축제 내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최고 안무가상’을 수상하면서 피나 바우쉬, 지리 킬리안, 머스 커닝햄 등 20세기의 위대한 안무가 반열에 올랐다.

 

다시 주목받고 있는 대작이 있다. 무용단 창단 40주년을 맞아 제작했다는 <쌀(rice)> 이다.

 

작품을 제작한 배경이 흥미롭다. 산과 강, 들판과 하늘이 아름다운 츠상에 대지를 가로 지르는 고압전신주 건설계획이 알려졌다. 농민들이 나섰다. 머리띠를 매고 논에 들어가 투쟁하면서 고압전신주 건설을 백지화시켰다. 린 화이민은 그들, 땅의 역사를 지켜낸 농민들의 숭고한 정신과 투쟁 의미를 기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무용수들과 함께 츠상을 찾아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영감을 얻었다. 본격적인 작품발표에 나서기 전, 츠상 농민들을 위해 시연회를 열었다. 무대는 츠상의 논 한가운데 설치됐다. 상상해보건대, 농민들에게 바치는 춤의 헌사는 그 자체로 경이로웠을 것이다.

 

지난 9월 초 그의 무용단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빈 들판, 흙과 고인 물, 자라난 푸른 벼의 물결, 햇빛을 받아 여문 알곡의 황금빛 풍경을 옮겨온 특별한 무대와 스물 세 명 무용수들의 몸짓으로 엮어내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 기다림의 언어. 주류를 좆는 대신 동양의 전통과 문화를 자신의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세계에 관객들은 환호하고 경의를 보냈다. 일상적 삶과 따로 가지 않는 예술의 힘이 이어낸 무게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