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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고창 부안면 구현마을 사람들

2013년 귀촌 젊은이들 제안, 자치조직 결성 / 한글·글쓰기 교육·벽화그리기 등 사업 진행 / 기획·연출·출연 주민 참여, 영화 제작도 도전

▲ 1963년에 찍은 모내기작업반 사진을 그린 벽화.

농촌 마을의 전통적 공동체성은 수십년 동안 급격히 해체되어 왔다. 공동체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주민들의 삶은 개별화된 방식으로 파편화되고 마을은 텅 비었으며 활력이 없다. 가장 큰 위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젊은 층이 있다 하더라도 삶의 관계는 마을을 떠나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고창 부안면의 구현마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마을이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늙어가던 마을이 젊어지며 생기가 돌고 있다. 연로한 나이의 토박이 이만재 씨는 이 감회를 이렇게 적었다.

 

“구현 마을 경사냈네 마을를 들어서는 순간 회관 앞에 벽화꽃이 소리 없이 웃고 있다 이 벽화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뜻이 담아 있는 벽화꽃이라 생각한다 떨리은 솜시로 한나한나 정성을 담아 그려본 벽화일 것이다.”

 

구현마을은 현재 25가구에 독거노인 10명을 포함해 4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귀촌한 젊은 주민의 제안으로 2013년 구현골문화자치회라는 주민자치조직을 결성하였다. 우선적으로 문화사업을 선택했다. 해체된 마을공동체를 재생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문화경험과 마음의 소통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정서적 연대, 신뢰, 협동을 다지는 관계망의 재형성을 목표로 했다.

 

△문화사업 통해 이야기 마을로

▲ 구현골문화자치회가 운영위원회를 열고 있는 모습.

구현골문화자치회가 몇 년 동안 문화사업을 진행해오다보니 구현마을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마을이 되었다. 첫 개시로, 2013년에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글쓰는 마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한글을 모르는 촌로들을 위한 한글반과 한글을 아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글쓰기반이었다. 평생 연필 한번 잡아본 적 없는 황순여 할머니는 노트에 이름 석자를 써놓고선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름 석자는 할머니의 생애사가 담겨 있었을 터다. 손이 떨리고 눈이 가물가물하며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투덜거리면서도 어르신들은 기꺼이 참여하여 탈문맹과 인문학적 문화 경험의 시간을 즐겼다.

 

그이들은 숨겨져 있던 문학적 감성을 드러내고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마을, 가족, 숨겨둔 청춘의 사랑, 농사 이야기 들을 짤막하나마 글로 표현하고 발표하며 서로 공감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정녕 평생 이런 적이 있었던가. 그 성과들은 연말 마을축제 때 발표하고 전시되었으며, <글쓰는 마을 구현골 이야기> 라는 마을지로 탄생하였다. KBS1의 <6시 내고향>에도 방송되니 마을 사람들을은 더 없이 좋아했다.

 

알고 보니 촌로들은 이미 시인이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현기 할아버지는 아주 멋진 시를 자필로 남겼다. “시간 따라 나도 따라/ 여기 같이 왔구나/ 어느덧 팔십고개/ 내 몸도 굽어지고/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 박점수 아주머니는 “청개구리 운다/ 길 떠난 엄마 생각/ 비는 또 얼마나 올까” 라며 하이쿠 시를 썼고, 문순례 아주머니는 “엇그제 뽕나무 입이 태어나더니/….” 라며 농사 관찰시를 썼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들은, 어쩌면 ‘잎’을 ‘입’으로 쓰고 싶은 그이의 삶의 말법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무의식적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글쓰기와 이야기의 독특한 경험들은 마을 주민들의 전혀 새로운 삶의 세계였다.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나서다

▲ 마을 사계절 이야기가 담긴 벽화.

두 번째로, 구현마을 사람들은 2015년에는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마을 안길의 문화적 공간조성 즉 황토담장 및 벽화 조성을 통해 마을 이야기들을 탄생시켰다. 마을에 잔존해 있는 흙담 이미지를 살려 낡고 허름한 브로크 담장들을 황토로 덧칠함으로써 흙냄새 나는 정겨운 담장으로 조성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공간들에는 마을 이야기가 배어 있는 벽화들을 배치했다. ‘우리 마을 경사냈네’, ‘글쓰는 마을’, ‘흙담 이야기’, ‘모내기작업반의 기억’, ‘어르신들의 그림 이야기’, ‘구현마을의 사계절’, ‘시인과 아이들’ 등이 그 구역별 주제다. ‘모내기작업반의 기억’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50여년 전인 1963년의 낡은 사진 한 장, 구현마을 모내기작업반 사진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 사는 김연기 씨의 큰형님 김안기 씨가 소장하고 있는 걸 찾아냈다. 박방영 화백이 그 사진을 벽화로 그대로 옮겼다. 당시 모내기반은 20∼30대의 남녀 젊은 사람들로 45명에 이르렀다. 모내기반은 간척지 등 부안면 일대의 논들을 도맡아 모내기를 했다. 거머리가 달라붙지 못하도록 사람들은 무릎 아래로 거머리 차대기를 찼다. 점심은 후다닥 집으로 달려가 먹기도 했고, 국수나 튀밥이 때꺼리였다. 마을에 울려 퍼지는 호각소리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이들은 하루를 준비하며 그렇게 40여 일을 모내기하러 다녔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청년들은 지금은 여든 전후의 나이가 되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벽화를 보며 당시의 기억들을 더듬어낸다.”

 

△올해는 주민들이 영화 만들어

▲ 농사짓는 현장에서 영화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구현골문화자치회(대표 김연기)는 올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세 번째 마을 이야기로, 작은영화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 마을 안길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할 때 기획-설계-시공 과정 모두를 업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주민들의 참여방식으로 진행했듯이, 주민들이 시놉시스를 함께 구성하고 출연배우로 직접 참여하는 영화의 탄생 작업이다. 다큐가 아닌 극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까닭은 시놉시스라는 상상의 공동체에서 가상적 관계를 맺어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현실일테다. “어떻게 히야 혀?”, 촌로의 낯선 질문으로 영화 교육은 뜨거운 여름을 달구고 있으나 잘 만들어질 지 아직은 미지수다.

 

마을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50, 60대의 두 가구가 귀촌하면서였다.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작은 노력, 그 초점은 무엇보다도 주민들 마음의 세계의 변화에 두었다.

 

담장이 집주인의 사적 소유물에서 황토담장과 벽화로 조성되면서 마을 모두의 것으로 변화하듯이, 사적화된 마을공간 및 개별화된 삶을 공공화하고 공통감각으로 공감하게 하려는 소통과 관계로서 시도된 문화적 경험들은 어느새 이야기 만들기 시리즈로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그 이야기들이 담아내는 문화공동체, 오늘도 구현마을 사람들의 작은 꿈이 움직이고 있다.

▲ 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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