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행사의 축인 벽골제는 삼국사기 330년에 시축되어 1415년 중수가 된 아주 유서 깊은 농경문화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제방 길이가 3.3km이고, 현 새만금 방조제 길이도 33km다. 시축된 해도 33 숫자요, 제방길이도 33, 새만금 방조제 길이도 33 숫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벽골제와 새만금 방조제 33 숫자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역사적 의미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란 주장도 한다.
어쨌든 벽골제는 도작문화 발상지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더불어 새만금 땜의 의미는 바다가 육지가 된, 그야말로 망망한 바다를 막아 황금의 땅으로 일구어낸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과도 같은 거대한 역사이다. 이것은 전라북도의 자랑스러운 영광과 명예로움이 한 세기의 위대한 역사로 승화되어 전라북도를 전라복도(福道)로 만들어 가는 우리 도민의 승리라 아니 할 수 없다. 설화에 나오는 단야 낭자의 비련과 청용 백호 쌍용의 싸움으로 얻어진 벽골제에서 흐르는 물은 김제 평야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했고, 박토의 천수답을 옥토옥답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그로인해 농민들은 풍년가로 농사를 지어 넉넉하고 풍요로운 쌀 생산지로 만들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란 말처럼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서와 같이 죽산면 내촌, 외리 마을 사람들은 일제의 식량 약탈에 견디다 못해, 먹고 살기 위해 머나먼 만주 땅으로 이주해야 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벽골제는 지평선 축제 행사 못지않은 큰 의미가 있기도 하다.
사실 벽골제의 혜택은 어느 지역보다 죽산 지역에서는 더없이 크다고 본다. 오직 농자천하지대본의 생애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땅의 자양분으로, 내 목숨을 이어주는 생명수로 여겼으리라. 선배이신 정희운 지평선축제 제전위원장, 출향인사인 지산 김수철 회장님 등은 축제가 태동될 때부터 애쓰신 충정이 있어 후배 초등 동창들이 감사하는 마음에서 대축제 마당 현장을 찾아보기로 다짐 했다. 고향을 떠난 출향인들의 마음을 끌어들인 ‘지평선 사랑방’이란 행사 프로그램이 동기가 되었다.
고향은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이웃, 동무들의 희로애락이 베인 곳이다. 더군다나 꾀복장구 동창들의 이름을 불러 대던 함성이 구석구석 숨어 있을 학교 운동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런 곳에서 얼씨구 절씨구 춤판도 한번 벌여봄 직하지 않은가. 사랑방 같은 마을 회관이나 경로당에서 하룻밤 같이 지내면서 옛 추억을 되새기며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또 살아온 고달픈 인생역정의 애환도 토해가며, 지평선 축제가 자랑하는 막걸리 한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면 이 또한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백발이 성성한 ‘7학년 학생’들이 벽골제 랜드마크인 쌍용탑에서 모이기로 했다. 축제마당에서 즐거운 소풍놀이 하며 구경하고, 먹고, 마시기도 하며 유유자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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