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에서 수렴청정으로 대리정치를 해온 왕실의 여인은 의외로 많다. 기록으로 보자면 수렴청정이 시작된 것은 일곱 살 어린 나이로 즉위한 고구려 6대왕 태조왕, 그의 어머니가 대리정치로 나섰을 때다. 신라시대에는 진흥왕과 혜공왕이 수렴청정을 겪었고, 고려시대에는 헌종과 충목왕, 충정왕, 우왕 등이 수렴청정을 거쳤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렴청정이 더 많이 이루어졌다.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는 아들 예종과 조카인 성종 등 2대를 걸쳐 수렴청정 했으며 명종과 선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이 어머니나 할머니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한 시대를 지나오면서 거의 모든 왕들이 수렴청정을 받아야 했던 것은 그만큼 조정의 문란과 부정부패, 매관매직 등 정쟁에 휩쓸려 국가가 안정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수렴청정은 어린 왕을 대신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대리정치였지만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컸다. 문정왕후는 그중에서도 가장 부정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의붓아들을 죽이고 당시 국시였던 숭유억불정책을 무시하고 불교를 장려했으며 성리학의 기본이념을 개의치 않고 강력한 독재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때문에 조선시대 남성 지배층의 가장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 문정왕후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지적 능력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남존여비 인식이 견고했던 시대에 남성 관료들을 쥐락펴락하면서 한 나라의 국정을 이끌었던 탁월한 전략가이자 정치가로서의 그의 존재를 주목하기 때문이다.
‘현대판 수렴청정’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 옛 시대 수렴청정을 했던 왕후들의 능력을 들여다보게 된다. 대부분 정쟁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지만 어찌됐든 개인적으로는 지적 능력과 탁월한 정치력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수렴청정’도 그만한 자격이 있었어야 했다는 증거다. 그래서다. 오늘의 우리 상황을 들여다보니 더 수치스럽다. 우리 국민은 대체 ‘어떤 사람’에게 휘둘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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