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한 다양한 사람들 모여 즐거운 시도 / '토요문화학교' 마련 아이들과 집짓기 등 활동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농·귀촌이라 하면 자식들을 다 키우고 은퇴시기를 맞이한 50~60대 부모세대들이 제2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시골로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요즘은 저성장 시대에 높은 취업난과, 청년층의 생태적 가치와 마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청년들의 귀농·귀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40대 많은 젊은 부부들 또한, 아이들이 경쟁과 치열함에 싸워야하는 도시가 아닌 여유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키우기 위해 귀촌을 선택하고 있다. 이제 귀농·귀촌은 단순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 안에서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현상이 되었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삶을 꿈꾸다
다양한 이유로, 시골로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 마을에서 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마을을 구성했던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모습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특히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귀농·귀촌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는 완주의 귀농·귀촌인들의 모습은 조금 더 특별한 듯하다.
시골로 들어오기 전까지 살아왔던 삶의 형태가 있으니, 서로 즐겨하는 것과 잘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다.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니, 한데 섞이지 못하고 부유 하고 있을 것만 같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그들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작당모의를 재미나게 하고 있었다. ‘서쪽숲 협동조합’도 그 작당모의 가운데 생겨나게 된 모습이다.
완주 고산 일대로 귀농·귀촌하여 살아가는 사람 12명이 ‘서쪽숲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건축을 하는 사람, 벼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공연·기획을 하는 사람 등 모인 사람들 각각 개인이 갖고 있는 관심사와 재능이 모두 다르다.
처음에는 ‘서쪽숲에 나무집’이라는 동네 목수팀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회사를 만들자고 시작했던 일이 서쪽숲 협동조합의 시발점이 되었다. 각자의 모습과 존재 이유는 달랐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 한 가지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모일 수 있는 힘이 있었고, 그 모이는 힘으로 다양한 재미있는 작당들을 시도할 수 있는 듯 했다.
△아이들의 삶을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다
구름 덕분에 하늘이 평소보다 낮게 깔린 아침이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큰 나무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제법 진지하게 아이들은 나무를 다듬는다.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주최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인 ‘play house : 짓고 그리고 머물다(이하 플레이하우스)’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플레이 하우스는 아이들의 삶을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며 시작한 서쪽숲 협동조합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도 중 하나다.
“도시에는 아스팔트밖에 없잖아요. 길가에 핀 풀꽃 한포기 조차 보기 힘든 곳이 도시예요. 우리 아이를 그런 환경 속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 귀촌을 결심했어요. 협동조합에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있었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아이들 교육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플레이하우스 기획자인 서쪽숲 협동조합 박현정 이사는 자연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어 완주로 귀촌을 했고,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 지역사람들과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해왔다고 한다.
동네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 공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틈이 보인다. 그 빈틈은 다른 곳이 아닌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터, 즉 지역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조합원) 중에는 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채워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끝에 지역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을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협동조합 내에서 이 일에 관심 있던 세 사람이 기획단을 꾸려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프로그램인 플레이 하우스를 시작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비빌 언덕이 만들어지기를
“우리가 여관에서 삶을 살지는 않잖아요.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은 아닌 거죠. 집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공간인거예요. 플레이 하우스는 집(아지트)을 짓는 기능을 단순히 배우는 활동이 아니예요. 건축은 내가 움직이는 동선, 바람이 통하는 길, 해가 뜨는 방향 등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하는 총체적 예술인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이렇게 지어진 아지트는 아이들이 힘들 때, 비벼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될 수도 있고요.”
부모세대가 좋은 뜻을 가지고 귀농·귀촌을 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자기 주체성과 자기 존재 의미 없이 지역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아이들 스스로에게도 농촌지역이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인식될 수 있어야 지역(농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아지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집을 만드는 과정과 기술, 그리고 완성하게 될 아지트. 그 모든 것이 어쩌면 아이들이 지역에서 성장하며 마음 놓고 비빌 수 있는 비빌 언덕의 자원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들이 아지트를 만드는 공터가 관 소속의 공유지로, 작업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용 여부 및 아지트를 완성했을 때의 존속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이 그저 나몰라라 하는 행태가 아닌, 함께 이 일을 해결해 보자며 결의를 다졌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완주군이 관례라는 이유로 원칙대로 이 일을 해결하기보다 다양한 꿈을 지역민들과 그리고 그곳을 비빌 언덕 삼아 살아가게 될 아이들과 함께 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안적 삶이란,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
“벼농사 지으니 쌀 있고, 밭농사 지으니 김치도 있어요. 적어도 이곳에서 굶어죽진 않아요.”
박현정 이사가 마지막에 웃으며 건낸 말 한마디가 폐부 깊숙한 곳을 뜨끈하게 만든다. 퍽퍽한 삶에 기대 쉴 곳이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땅이라는 근본 위에 터를 잡은 사람들에게는 현대사회 속에 없는 함께 사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는 듯 하다.
저성장시대에 더 이상 발전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속도를 내기위해 패달을 밟아도 헛바퀴만 돈다. 저성장에 제일 크게 타격을 받은 세대는 당연 청년들이다. 청년들 학력은 높고, 스펙은 좋다. 그렇다 한들,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에서 헛바퀴를 돌리자고 청년들을 채용하지는 않는다.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을 지금의 청년들은 농촌에서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 곧 청년이 될 아이를 키우는 부모세대들이 돈이 아니어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비빌언덕을 함께 만들기 위해 귀촌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든다.
지역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삼촌 이모들을 만나게 해주고, 함께 작당할 거리들을 만들어 주는 것. 어쩌면 지금의 저성장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수학문제집 하나 더 사주고, 학원 한 곳 더 보내는 것보다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문성희 문화파출소 덕진 문화보안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