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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방장산 용추계곡 촌로작가 김연수] 승천하는 용을 바라보던 그 농부, 쟁기 대신 붓을 들고…

칠순 넘어 불붙은 예술혼 "어느날 갑자기 그리기 시작했죠" / '농부 예술전시관'짓고 활동 "인생 마지막까지 기회 기다려"

▲ '농부 예술전시관' 입구

전라북도 고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에 걸쳐 있는 높이 704m의 방장산은 부안의 변산, 정읍의 두승산과 함께 전북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리운다. 노령산맥의 한 줄기로, 고창 쪽에서 보자면 고창읍 월곡리에서 신림면 신평리로 이어지는 서향 산자락을 형성하고 있다. 삼신산이라 함은 신선들이 사는 곳이니 곧 신령의 기운이 흐르는 산일테다.

 

신평리로 향하는 용추계곡은 용추폭포 아래 용소(龍沼)의 한 전설을 품고 있다. 천둥번개 치던 날 승천하던 용이 어느 여인의 눈에 띄자 부정탄 탓으로 용소에 떨어져 지네로 변해 방장산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 촌로작가 김연수씨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그 전설을 닮았을까

 

그 전설을 닮았을까. 아니면 그 지네가 오랜 세월을 거쳐 다시 용으로 화했을까. 신림면에 인접한 흥덕면 한림동에 살던 79세의 김연수(김영중) 할아버지는 천둥번개 치던 날 용추계곡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고 한다. 그이는 지금 구룡목(九龍目)이라 불리우는 신평리의 용추계곡 산자락에 집 한 채를 지어놓고 홀로 살고 있다.

 

평생 농사만 짓다 나이 60이 넘어가면서 홀연히 여기로 들어 왔는데 승천하는 용을 보고 나니(?) 어떤 기운이 그이를 불러들인 모양이다. 승천하는 용을 흥덕에 사는 여러 명과 함께 보았다며 증인들을 내세워 용추계곡 전설에 기댄 판타지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듯 하다.

 

그 이야기엔 마냥 허풍이나 허세, 망상 또는 신비주의 류로 채색되는 허구로 들리지 않는 그이의 생애사적 신심이 깃들어 있어 보인다. 그의 신심은 그이가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직접 창작하고 있는 그림들과 그리고 그의 설명에 묻어 있다. 그곳을, 그이는 ‘농부예술미술관’이라 이름붙였다.

 

△ 칠순 나이에 불쑥 그리기 시작

 

여기에 김연수 할아버지의 작품활동을 소개하려는 까닭은 소박하다. 환갑도 훌쩍 넘긴 연로한 나이에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그 어느날 갑자기란, 평생 농사일에만 바지런하던, 붓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는 민초적 삶의 굴레를 훨훨 벗어던지고, 어떤 신령스런 영감의 모티브였을까, 하여튼 서당개 3년이라는 곁눈질 기회조차 없이, 난생처음 홀로 불쑥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구룡목에 들어와서 처음 한 5년 동안은 자고 먹고 자고 먹고만 했어요. 아주 꿀잠을 잤어요. 그러다 갑자기 돌탑을 쌓기 시작했고, 또 그러다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 경험도 전혀 없던 나였는데, 신기들린 듯 막 그려지는 거예요.”

 

사오월이면 극심해지는 방장산의 용추계곡 돌풍은 매섭다. 태풍은 차라리 약소하다. 돌풍이 몰아치면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만 있는단다. 그 돌풍의 기세로 어떤 신기가 김연수 할아버지에게 빙의한 것일까.

△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

 

그러나 그이는 누구나 그림을 그리려 하면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시골의 촌부들은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거나 연필을 잡고 글을 써보게 하면 대개 두려워 도망간다. 평생을 두고 그래본 적이 전혀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서 언감생심이라 생각들 할 터, 안타깝게도 그러한 두려움이 육신을 파고드는지, 그이들의 손놀림은 연로한 손떨림으로 미끌어지고 그이들의 감수성 기억은 쇠잔해질대로 쇠잔해져온지라 그 누가 나서겠는가.

 

삶의 가치를 농삿일에서만 찾도록 길들여 온 촌부들의 자기윤리는 한편으로는 존경받아 마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할 정도로 애잔하기조차 하다. 그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김연수 할아버지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듯, 촌부들일지언정 얼마든지 있을법했던 예술적 표현행위들의 감수성은 한국 현대사가 강요한 노동중독의 질곡과 함께 억압되고 소외된, 그리하여 잃어버린 삶의 그루터기로 쪼그라들었으리라.

 

쇠잔해졌음에도 뒤늦게 자기발견을 했고 안타깝게도 그러자마자 타계한 이웃지역 부안면 구현마을의 고 이현기 씨가 남긴 시 한편에서도 그이들의 뒤늦은 멋진 신세계를 느껴볼 수 있다. “시간 따라 나도 따라 여기 같이 왔구나 / 어느덧 팔십고개 내 몸도 굽어지고 /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

 

△ 촌로의 독특한 미적 아우라 풍겨

 

인물, 꽃, 달마 따위들을 그려 온 김연수 할아버지 아니 이 촌로작가의 작품세계는 전문작가들의 미술세계와 다른 차원에서 촌로라는 생애사적 관점으로 접근할 때 이렇게 그렸구나, 라는 것만으로도 감탄할만 하다.

 

연마된 화법이 아니니 당연히 세련된 형상화의 구도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어쩌면 어린 아이들의 그림티가 묻어나기도 하는 삐죽빼죽 그림들이지만, ‘농부예술’이라는 전시공간의 숱한 작품들에서는 촌로의 독특한 미적 아우라가 풍겨진다. 그이는 스스로가 새로운 화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승천하는 용을 봤다느니 하는 맥락의 표현일까, 그이의 작품 중에는 한자 용(龍) 자를 형상화한 그림들이 눈에 띤다. 그이가 터득했다고 하는 화법이 여기에 있다.

 

“여러 화백들을 만나봤어요. 그분들에게 용(龍) 자의 그림 문양이 섬세한 결들로 그려진 것을 설명하면 붓을 여러 개 겹쳐서 사용한 거 아니냐고 의심들 하던데, 나는 분명히 붓 하나로 한번에 내친거거든요. 덧칠하지 않았어요. 6-7분 걸려요. 한 몇 년은 그런 기세가 치솟았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런 화법이 잘 안돼요. 초기의 좋은 그림들은 다 남들 줬어요.”

 

△ 방장산 용추계곡은 신령스러운 꿈의 모티브

 

주변의 어떤 이는 그이를 기인이라 한다. 그러나 기인이라기보다 속세의 꿈들과 함께 사는 범인일 성싶다.

 

어릴 적 절 생활을 잠깐 했고 청년시절 농사를 지으면서 노름에 빠져 빚쟁이가 되기도 했으나 고향을 뜨지 않고 굳센 마음으로 농사일을 열심히 하여 빚 청산을 다하고 평범한 농부로 살아왔다.

 

자신의 작품들을 기성세계로부터 평가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어서인지 유명세를 타는 숱한 명사들을 만나러 다니고 자신의 작품들을 보여주며 인증사진들을 찍었다. 그러나 먹혀들지 않은 듯 하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보다는 누구나 그릴 수 있는 표준적인 그림을 더 자랑스러워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문화코드를 통해 스스로를 인증하려는 모습일까.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그렸던 여성 알몸그림은 남사스러운 말들이 있자 아예 꺼내놓지도 않는다.

 

쇠잔해지고 손 떨리는 육신으로 세상과 말 건네는 판타지적 서사의 주인공 혹은 촌로작가 김연수 할아버지, 에게 방장산 용추계곡은 촌로에게 다르게 사는 기운으로 꿈을 실어준 신령스러운 모티브인 셈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니 기회를 기다리며 삽니다.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자연의 순리대로 이루어지니까요.”

 

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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