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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준호 작가 - 김동기 '지정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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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교보문고 홈페이지

고3 때, 모의고사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1885년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했다. 지도에서 거문도의 위치를 찾아라. 이 사건은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두고 벌인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이었다. 

2021년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마무리했다. 1989년 2월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소련이 10개월 전에 조인된 제네바 조약에 따라 완전히 철군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지출한 막대한 전비는 소비에트연방을 해체하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서구열강이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려는 다툼은 19세기 초로 거슬러간다. 당시 인도를 식민지로 둔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완충지대로 설정하고 있었다. 두 나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영국의 시파워(해양강국)와 러시아의 랜드파워(대륙강국)가 첨예하게 대립한 것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한반도의 분단을 지정학적으로 설명한 대목들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태평양전쟁이 끝났다. 그렇다면 패전국인 일본이 아니라 왜 한반도가 분단되었을까?

흔히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일본이 항복한 결정적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미국은 45년 3월 10일, 단일 폭격사상 최대의 사상자를 기록한 도쿄대공습을 단행한다. 이후에도 일본의 대도시들에 대대적인 폭격을 퍼붓는다. 소이탄의 살상력과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폭격 전후의 도쿄 시가지 사진을 비교하면 피해 규모가 원자폭탄 못지않음을 알 수 있다.

소련은 일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8월 9일 0시를 기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공교롭게도 미국은 같은 날 오전 11시,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그리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은 1945년 초, 병력 체계를 변경해 8월 18일 당시 북쪽에 11만 7천 명, 남쪽에 23만 명의 일본군을 배치했다. 소련의 한반도 진입을 용이하게 하려는 조치로, 미소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게 하고 일본은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술책이었다. 8월 15일은 일본의 종전기념일이다. 자신들의 구상대로 판이 짜졌으므로 패전이 아니라 ‘종전’이고, ‘기념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한국전쟁 또한 뤼순한과 다롄항을 상실한 소련이 김일성의 요구대로 남침을 승인한 결과였다. 남침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스탈린이 1950년 1월 말, 중국의 요구로 태평양으로 통하는 부동항들을 잃자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저자는 휴전선을 랜드파워와 시파워가 충돌하여 생긴 결과물이라고 정의한다. 한국이 랜드파워와 시파워를 견제하고 통제할 역량이 없었기에 분단되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은 여전히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게임 속에서 결정되고 있다. 한반도가 처한 상황에 걸맞은 속담이 떠오른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너무 식상한가. 이건 어떤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해답은 이렇다. 한국은 강대국들과 동적이고 다층적인 지정학적 관계를 맺는 한편, 그들의 관계를 살피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논리와 전략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정학적 지능과 전략, 그리고 지정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준호 작가

이준호 작가는

소설과 동화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할아버지의 뒤주>, <그해 여름, 닷새>, <커렉터>, <탁류의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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