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앞둔 마을에서 본 지역소멸은⋯"마을? 절대 쉽게 안 사라져"
"사람 없다고 소멸되지는 않아⋯이사 온 사람들 마을 들어와 살 듯"
3개월 동안 지역 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 <청년 이장이 떴다!> 를 진행하면서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외부 사람은 지역소멸을 볼 때 언젠간 일어날 일, 당연한 일인데 내부 사람은 어떨까요. 정작 가장 먼저 소멸할 수밖에 없는 농촌마을에서 생각하는 지역소멸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화정마을 연령대를 보면 60대 초중반부터 90대 초중반까지 있죠. 30년 후면 모두 떠나게 된다는 말이죠. 이 농촌마을에서 생각하는 지역소멸은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화정마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기 골목길 끝에서부터 보행 보조기를 밀고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달달달', 박복순(88) 어머니 소리였네요. 멀리서 보이는 어머니의 실루엣을 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흐릿하지만 방긋 웃는 얼굴이 기분 좋게 만듭니다. "어머니, 잠깐 아지트에서 쉬다 가셔요!"라는 말에 보행 보조기 주차까지 완료했습니다.
박복순 어머니는 70여 년간 화정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시집오고부터 계속 이 마을에 살았던 것이죠. 우리의 궁금증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시원한 비타민 음료를 건네면서 살포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청년 이장' 취재진이 "어머니, 옛날 화정마을은 어땠어요?"라고 묻자 "마을이 되게 작았는디, 엄청 커졌어. 근디도 사람은 계속 줄더라고?"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식들이 어릴 적에는 마을이 북적일 정도로 사람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마을 옆에 있었던 초등학교는 한 반에 70∼80명이었다고 하시는 것 보면 말 다했죠.
가장 궁금했던 화정마을의 미래에 대해 물었습니다. 오랫동안 화정마을에 살면서 남편·자식·이웃들과의 추억이 너무나도 많아졌던 터라 질문만 하는데도 아쉬움이 가득해 보이셨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입니다.
박복순 어머니는 "학교 졸업하니까 다 밖으로 나가지, 안 그려? 서울에 사는 자식들도 내려온다고는 혀. 근데 그게 쉬워? 밥벌이가 있어야 살지, 어쩌겄어. 거의 여기서 평생을 살았으니께 없어진다고 하면 안타까울 것 같어. 안 그려?"라고 하셨습니다. 왜 화정마을에 사람들이 안 들어오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이어 "화정마을이 살기가 얼마나 좋은디. 집 뒤에 있는 산에서는 맑은 물이 졸졸 내려오고 공기도 좀 좋아? 마을 주민들끼리 단합도 잘 되고 나 나물 캐고 싶으면 나물도 캐고. 얼마나 좋은 마을이여"라며 자랑하셨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어!"
마을 산책하던 중 저기 멀리서 파를 뽑고 계신 신옥리(83) 어머니와 우리의 '영화 언니' 이혜례(62) 씨가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강아지 곰순이를 산책시키고 있네요. 마을 초입까지 걸어온 취재진들에게 힘들지 않냐며 호통부터 치십니다. 날이 좋아서 산책한 것뿐인데 이것도 힘들까 걱정되시나 봅니다. 같이 쭈그려 앉아 파를 다듬으면서 은근슬쩍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정말 만약에 이 마을이 사라진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다들 더 연세가 드시면 사람이 없어서 마을이 사라지진 않으려나요?"
화정마을에 살다가 잠시 서울에서 지내고 다시 내려온 신옥리 어머니는 "절대 마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냥 없어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을 봐, 누가 와서라도 살지 않겄어? 집이 비었다 하면 멀리서 또 오잖아. 안 올 줄 알았어. 근디 사람들이 오더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후딱 사라지지는 않아. 100년 동안은 안 없어져. 여기 추억이 다 있는데 어쪄, 안타깝지"라고 부연 설명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이혜례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씨도 "동네는 그냥, 사람이 없다고,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지. 세상에 남은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팔 수도 있잖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신기하게 모두가 똑같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본 지역 소멸과 화정마을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석 달간 시골 마을서 지내보니⋯차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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