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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습니다"⋯'청년 이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석 달간 "오늘은 경로당으로 출근하겠습니다!"라고 외치던 '청년 이장'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사무실로, 취재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잠깐 기자라는 직업은 내려놓고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의 청년 이장으로 지내면서 행복한 일도, 슬픈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해서 다행입니다. 다른 것보다 기성 언론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를 주워 담고 있는 요즘 시대에 지역 신문이 할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이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책을 끌어내고 고발하는 기사·기획 모두 좋지만 월요일 아침마다 신문을 봤을 때 조금은 가볍게, 기분 좋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획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매일 말하는 '지역소멸' 하면, 마트가 멀어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없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등 이러한 이유만 전달하는 건 최대한 피하려고 했습니다. 전북을 비롯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을 저희가 석 달 동안 해결하는 건 무리라고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죠. 차라리 우리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지역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그 지역이 살고 싶은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것보다 체험 프로그램에 집중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함께했던 석 달을 돌아보면 일주일에 화·수요일 이틀씩 상주하면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부터 사람과 소통하는 일까지 교훈을 얻은 게 많은 듯하네요. 이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도 얻었습니다. 그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주민들과 함께했던 일이 다 스쳐 지나갑니다. 기획에 도움 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하지만 화정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사랑으로 맞이해 주고 항상 좋은 말씀만 해 주셨거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끝으로 저희의 기획이 일반적인 기사의 틀과 달라 낯설게 느꼈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처음엔 낯설었거든요.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펼쳐질 전북일보의 또 다른 도전들도 너그럽게 봐주길 바랍니다. '청년 이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 기획
  • 박현우외(1)
  • 2025.04.12 07:58

농촌마을에 던지는 마지막 질문⋯미래에 어떻게 될까요?

3개월 동안 지역 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 <청년 이장이 떴다!> 를 진행하면서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외부 사람은 지역소멸을 볼 때 언젠간 일어날 일, 당연한 일인데 내부 사람은 어떨까요. 정작 가장 먼저 소멸할 수밖에 없는 농촌마을에서 생각하는 지역소멸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화정마을 연령대를 보면 60대 초중반부터 90대 초중반까지 있죠. 30년 후면 모두 떠나게 된다는 말이죠. 이 농촌마을에서 생각하는 지역소멸은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화정마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기 골목길 끝에서부터 보행 보조기를 밀고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달달달', 박복순(88) 어머니 소리였네요. 멀리서 보이는 어머니의 실루엣을 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흐릿하지만 방긋 웃는 얼굴이 기분 좋게 만듭니다. "어머니, 잠깐 아지트에서 쉬다 가셔요!"라는 말에 보행 보조기 주차까지 완료했습니다. 박복순 어머니는 70여 년간 화정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시집오고부터 계속 이 마을에 살았던 것이죠. 우리의 궁금증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시원한 비타민 음료를 건네면서 살포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청년 이장' 취재진이 "어머니, 옛날 화정마을은 어땠어요?"라고 묻자 "마을이 되게 작았는디, 엄청 커졌어. 근디도 사람은 계속 줄더라고?"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식들이 어릴 적에는 마을이 북적일 정도로 사람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마을 옆에 있었던 초등학교는 한 반에 70∼80명이었다고 하시는 것 보면 말 다했죠. 가장 궁금했던 화정마을의 미래에 대해 물었습니다. 오랫동안 화정마을에 살면서 남편·자식·이웃들과의 추억이 너무나도 많아졌던 터라 질문만 하는데도 아쉬움이 가득해 보이셨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입니다. 박복순 어머니는 "학교 졸업하니까 다 밖으로 나가지, 안 그려? 서울에 사는 자식들도 내려온다고는 혀. 근데 그게 쉬워? 밥벌이가 있어야 살지, 어쩌겄어. 거의 여기서 평생을 살았으니께 없어진다고 하면 안타까울 것 같어. 안 그려?"라고 하셨습니다. 왜 화정마을에 사람들이 안 들어오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이어 "화정마을이 살기가 얼마나 좋은디. 집 뒤에 있는 산에서는 맑은 물이 졸졸 내려오고 공기도 좀 좋아? 마을 주민들끼리 단합도 잘 되고 나 나물 캐고 싶으면 나물도 캐고. 얼마나 좋은 마을이여"라며 자랑하셨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어!" 마을 산책하던 중 저기 멀리서 파를 뽑고 계신 신옥리(83) 어머니와 우리의 '영화 언니' 이혜례(62) 씨가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강아지 곰순이를 산책시키고 있네요. 마을 초입까지 걸어온 취재진들에게 힘들지 않냐며 호통부터 치십니다. 날이 좋아서 산책한 것뿐인데 이것도 힘들까 걱정되시나 봅니다. 같이 쭈그려 앉아 파를 다듬으면서 은근슬쩍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정말 만약에 이 마을이 사라진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다들 더 연세가 드시면 사람이 없어서 마을이 사라지진 않으려나요?" 화정마을에 살다가 잠시 서울에서 지내고 다시 내려온 신옥리 어머니는 "절대 마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냥 없어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을 봐, 누가 와서라도 살지 않겄어? 집이 비었다 하면 멀리서 또 오잖아. 안 올 줄 알았어. 근디 사람들이 오더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후딱 사라지지는 않아. 100년 동안은 안 없어져. 여기 추억이 다 있는데 어쪄, 안타깝지"라고 부연 설명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이혜례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씨도 "동네는 그냥, 사람이 없다고,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지. 세상에 남은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팔 수도 있잖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신기하게 모두가 똑같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본 지역 소멸과 화정마을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석 달간 시골 마을서 지내보니⋯차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4.12 07:58

석 달간 농촌마을서 지내보니⋯이곳에도 사람이 삽니다

청년 이장으로 화정마을의 주민이 된 지 벌써 석 달이 되었습니다. 농촌 마을 특유의 정 덕분인지, '청년 이장' 취재진의 오랜 치근덕(?)거림 덕분인지 석 달 만에 ‘화정마을 사람’ 소리를 듣습니다. 그 증거로 화정마을 사람만 갈 수 있는 야유회도 초대받았답니다. 처음 화정마을을 만났을 때 주민 대부분은 전기 장판 위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마을 회관에서 화투를 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 동네 분위기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 건 취재진의 설득과 노력 끝에 청년 이장 아지트에 모이고 난 이후입니다. 다 함께 모여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등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었지요. 그동안 그린 그림은 하얀양옥집에 전시되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점점 활기가 돌아오는 화정마을 사람들의 변화가 생생합니다. “늙으면 죽은 목숨이지” 그렇게 말하던 어르신의 입에서 “희망을 되찾았지”라는 말이 나왔을 때 취재진은 작은 변화지만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지역 소멸 위기 극복’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취재진이 농촌 마을 활력에 힘 쓴 이유입니다. 지역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그 지역이 살고 싶은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사할 때 보통 한 가지 이유만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기 좋은 조건’이 골고루 갖춰져 있어야 살고 싶은 동네가 되지요. 통계청의 ‘살고 싶은 우리 동네’ 서비스도 자연, 안전, 문화복지, 교육, 생활편의교통 등의 지표로 각 지역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도심 대부분은 중에서 상 등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화정마을을 포함한 농촌 마을은 그중 단 하나의 지표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화정마을에는 도심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식료품점도, 영화관도, 옷 가게도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읍내마저도 걸어서 1시간 이상 걸리죠. 하루에 운행되는 버스는 6대뿐. 배차 간격도 짧으면 1시간, 길면 4시간 걸립니다. 주민들 대다수는 버스 시간표를 집에 써 붙여 놓을 정도입니다. “젊으면 걷지, 뭐” 그 말도 화정마을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화정마을을 비롯한 농촌마을 대부분은 도로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소규모 마을이 개발되면서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을 위한 인도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화정마을로 출근하며 취재진은 매일 도로 갓길을 걷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중엔 노인도 어린아이도 있었습니다. 차가 없으면 문화 생활은커녕 생존조차 위협받는 셈입니다. 취재진은 농촌 마을에서 생활하며 지역이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에 세 달은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체감한 점은 있습니다. 도시에선 너무나 당연해서 잊고 지내던 병원, 식료품점, 인도 등 모든 편의시설 하나하나가 지역 끝자락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서로를 챙기며 질 좋은 삶을 살아가려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 안에서 ‘살아 있는 마을’을 봤습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화정마을을 비롯한 지역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꽃을 가꾸는 화정마을 사람들 사이로 또 다른 ‘청년 이장’들이 화정마을의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채워가기를 바랍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 기획
  • 문채연
  • 2025.04.12 07:57

수십년전 '산불 악몽'이 다시⋯시골마을은 두려움에 떤다

건조한 봄, 전국에 번진 대형 산불 소식에 화정마을 어르신들의 마음도 타들어 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스한 햇살 아래 평화로웠지만 어느새 분위기는 조용히 가라앉았습니다. 혹여나 불이 날까 마당에 나와 마른 가지 줍기에 바쁩니다. "사람들이 그만 다쳐야 하는디, 큰일이네. 옛날에는 '여시불'이라고 혔어. 그 불이 진짜 무섭지, 무서와. 이렇게 큰 불이 나니까 무서와." 오율례(74) 어르신은 봄철 산불을 '여시불'이라고 부른다며 가장 무서운 불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르신이 이야기한 여시불은 옛 어른들이 원인도 모르게 갑자기 번지는 불을 여우에 홀린 것처럼 감쪽같다는 의미를 담아 부르던 말입니다.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화정마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불이 가장 큰 재난입니다. 농사가 일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이 마을에 불이 나면 삶도 무너집니다. 화정마을 주민들은 매년 마을 초입과 끝에 화재막이를 두고 당산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불이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죠. 그래도 여시불 같은 봄철 산불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수십 년 전 화정마을에도 산불이 났습니다. 전국 곳곳 동시다발적 산불이 더욱더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이칠월(87) 어르신은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그 뒷산에 불이 났었어. 순식간에 바람이 확 불어 재끼니께 화기가 순식간에 덮쳐서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당게. 그때는 젊으니께 도망이라도 쳤지, 지금이었으면⋯." 불은 산 아래에 있는 집 한 채를 삼키고 나서야 멈췄습니다. 다행히 마을 옆에 있던 수로 덕분에 더 번지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너무 무서워 집 담벼락을 부수면서까지 소방도로를 만들었습니다. 화정마을 길은 오솔길 하나뿐이었거든요. 소방도로까지 만들었지만 무서운 것은 여전합니다. 마을에 불이 번졌을 때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거동이 불편해 빠르게 대피할 수도, 귀가 멀어 불났다는 소식을 듣는 것도 어려운 거죠. "인쟈 불나믄 어쭈겄어. 어디 가도 못 혀. 걸어갈 수가 없당게. 천천히 걷는 것도 힘든디 어떻게 뛰겄어. 걸어가다가 잘못될 수밖에 없지." 보행기가 없으면 걷기 힘든 이장순(90) 어르신의 말입니다. 어르신들은 "어차피 도망가지 못하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에 비교적 젊은 60∼70대 주민들이 어르신들께 대피 요령을 알려 드리기도 합니다. 재난안전문자와 마을 방송도 때마다 울려 퍼집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해 문자를 확인하기도, 귀가 어두워 방송 내용도 듣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대형 산불 소식이 이어지는 것을 들은 어르신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남 일 같지 않고 언제 어디서 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마을 분위기는 여전히 소란스럽습니다. 매일 모여 수다를 떨던 어르신들이지만 지금은 불안감이 커지면서 허공만 보거나 산불 이야기뿐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 기획
  • 문채연
  • 2025.03.30 08:18

꽃바람 '살랑' 봄바람 '솔솔'⋯화정마을에 봄이 찾아왔다

봄이 왔나 봅니다. 4월 4일 김제 꽃빛드리·고창 벚꽃 축제, 5일 옥정호 벚꽃 축제⋯. 여기저기 봄 축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거든요. '청년 이장' 취재진들이 두 달째 지내고 있는 화정마을에도 봄이 왔습니다. 당장 한 달 전만 해도 아무 냄새도, 소리도 안 들리던 시골 마을이었지만 이제 거름 냄새, 관리기·경운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최고 기온이 18도에 달하는 21일, 미세먼지가 꼈는지 앞이 뿌옇긴 하지만 날이 어찌나 좋은지 그냥 걷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괜히 이것저것 챙겨 소풍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화정마을은 이름에도 '꽃'이 들어갑니다. 주위에 꽃이 많이 피어 화정마을의 '화'를 꽃 화(花)에서 따왔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다들 마당에는 꽃을 심어 놨습니다. 모두 연로하신 탓에 관리가 힘들어 넓은 마당에 비해 정원이 소박하지만 잡초 하나 없이 단정한 모습이었죠. 마을회관 앞을 지나던 중 조재신(87) 어머니 집 대문 틈 사이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이네요. 그 앞에 어머니가 서 계십니다. '청년 이장'이 가장 궁금했던 나무의 정체를 물어봅시다. "어머니, 이 나무는 뭐여요?" "이거 앵두나무여! 5월 되면 이거 솔찬히 달려. 먹으러 와!" 앵두나무였습니다. 빨갛고 작은 열매, 그 앵두 맞아요. 벌써 심은 지도 10년이 된 나무라고 하네요. 5월이 되면 주렁주렁 열린다는 앵두나무는 열심히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이 왔다는 거죠. 다시 산책을 시작해 봅니다. 마을 곳곳 오와 열을 맞춘 파, 마늘이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고 호랑나비도 바람 따라 날아다닙니다. 알록달록한 색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네요. 카메라를 들자마자 날아가 버린 나비, 이 정도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찍으려고만 하면 바로 날아가 버리네요.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습니다. △부녀회장님 취미는 '화단 가꾸기'? 화정마을의 평화로움에 반해갈 때쯤 마당에서 화단을 가꾸는 부녀회장님, 이복순(73) 어머니를 마주쳤습니다. 잡초를 뽑고 계시네요. 어머니, 뭐 하셔요? "아유, 뭐 하긴 봄 왔으니까 풀 뽑지!" 사실 어머니의 봄철 취미는 '화단 가꾸기'입니다. 꽃이 피기 전 잡초를 모두 박멸하기로 결심하신 듯합니다. 일단 '청년 이장'도 호미를 들었습니다. 어색하지만 한참 땅을 파헤치다 보니 어머니가 잘 가꿔 놓은 화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아직 꽃망울이 터지진 않았지만 저마다 뿌리께 뿌려진 촉촉한 비료를 보니 이건 무조건 예쁘게 잘 필 것 같습니다. 팔·다리부터 허리까지, 성한 데가 없어 화단 가꾸는 것도 잠깐입니다. 마을회관에 갈 준비하고 나온 어머니의 옷에도 봄이 왔네요. 바지에는 귀여운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고 조끼에는 빨갛고 노란 꽃이 피었습니다. 안에 휘황찬란한 꽃이 핀 티셔츠까지 완벽합니다. △매년 식구 먹여 살린 '냉이' 저기 멀리 보행 보조기 위에 냉이를 캐기 위해 칼·바구니를 싣고 가는 박복순(88) 어머니와 마주쳤습니다. 걷기는 힘들어도 봄 냉이는 캐야 한다는 어머니입니다. 마을 곳곳에 냉이가 한가득 올라왔기 때문에 집에만 앉아 있을 순 없습니다. 박 어머니는 매년 봄이 되면 냉이를 캐서 가족들의 밥을 해 먹였습니다. 이제는 모두 타지로 떠나면서 아들 한 명과 함께 살지만 지금도 버릇처럼 냉이를 캡니다.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청년 이장이 하나 캘 때 이미 어머니의 손과 바구니에는 냉이가 한가득입니다. 심지어 다 똑같이 생긴 냉이인 듯하지만 어머니는 먹을 수 있는 냉이, 먹을 수 없는 냉이를 척척 구별합니다. 무려 80년 넘게 냉이를 캤기 때문이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아지트에 쉬고 있으니 손님이 찾아옵니다. 벌써 '청년 이장'이 냉이를 캤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나 봅니다. 손님은 신옥리(82) 어머니와 우리의 '영화 언니' 마을 주민 이혜례 씨입니다. 두 분도 봄이 되면 '냉이'를 꼭 캤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배추가 흔하지 않아서 김장하는 양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금은 배추를 '포기'로 셀 수 있지만 그때는 속이 차지 않아 김장이라고 하기도 어려웠거든요. 심지어 식구가 많다 보니 김치를 담가도 금방 똑 떨어집니다. 그래서 된장에 무쳐 먹으려고 봄만 되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냉이를 비롯해 쑥, 머위 등 나물을 캐러 다녔다고 합니다. 냉이 캐는 마을 주민마다 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냉이를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난다고. 지금은 식재료가 없어 굶는 시절이 아니지만 화정마을 어르신들은 항상 그랬듯 오늘도 옆구리에 바구니 끼고 냉이 캐러 갑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 기획
  • 박현우외(1)
  • 2025.03.22 12:50

"여그 버스가 없어요"⋯화정마을 '발'이 된 사연은

"에고, 내 정신 좀 봐! 약을 놓고 와 부렸네. 버스도 없을 텐디." 어느 날 우연히 화정마을 경로당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덕순(80)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읍내에 있는 병원에서 지어온 약을 식당에 놓고 왔다는 말씀이었죠. 찾아와야 하는 건 알지만 버스는 없고 택시비만 1만 4000원 들어가는 탓에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금방이라도 택시를 부를 것 같았죠. "아휴, 어깨 아퍼 저녁에 잠도 못 잤네." 화정마을 초입에서부터 보행 보조기를 끌고 오는 이장순(90) 할머니가 보입니다. 오늘따라 몸이 불편해 보이네요. 장순 할머니는 '청년 이장' 취재진과 이야기하던 중 아파서 잠을 못 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조기 없이는 거동이 힘들어 버스 타기 어려운 데다 아플 때마다 택시를 타기에는 비용이 부담이죠. "진짜 선상님이 나 데려다 주려고? 진짜 부탁해도 될랑가?" 다른 날 이칠월(87) 할머니 댁에서 놀던 중 매일 게이트볼장에 가는 경구(87) 할아버지가 집에 계셔야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유는 차가 없어서였죠. 그동안 게이트볼장까지 차 있는 다른 할아버지와 이동했지만 농사 준비 때문에 못 간다는 말을 들었죠. 어쩔 수 없이 유일한 낙인 게이트볼도 포기했습니다. 경구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이 작은 차를 가지고 쌩쌩 달려 읍내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 화정마을 어르신들이 돈이 없어서 택시를 못 부르는 게 아닙니다. 돈이 아까워서, 버스가 없어서. 버스로 왕복 3000원이면 충분한데 택시비는 4배가 많은 1만 2000원에서 약 5배가 많은 1만 4000원이 들면 고민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사는 데에 왜 버스가 없냐고요? 있어요. 도보 5분 거리의 마을 정류장에 오는 버스는 하루 6대뿐. 이마저도 절반이 이른 새벽이거나 늦은 저녁에 다니는 버스입니다. 심지어 옆에 있는 봉동만 갈 수 있을 뿐 고산으로는 갈 수도 없습니다. 고산을 가려면 1.3km, 도보 20분 거리 정류장으로 가야 합니다. 아니면 방법은 버스 환승뿐이죠. 취재진이 화정마을의 발이 된 이유입니다. 다들 미안해하셨지만 취재진 입장에서는 이게 더 마음 편한 일이었습니다. 자가용으로는 겨우 5분밖에 걸리지 않거든요. 저희가 오기 전에는 더 어려움이 많았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파도, 읍내에 나가야 해도 참았던 이유가 다 있었던 겁니다. 말로만 설명하면 '교통 사막'을 겪는 시골 마을을 이해하기는 어렵죠. 취재진들이 화정마을에서 버스를 타 보는 체험기부터 완주군의 교통편 문제까지 모두 짚어 봤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3.15 09:31

버스 오를 때마다 '악 소리'⋯ 어르신 몸 체험해보니

Interactive content by Flourish Interactive content by Flourish 지난 1월 말 '청년 이장' 취재진과 처음 만난 화정마을 주민이 툭 던진 말이 있습니다. "면허 있어? 시골짝에서 살고 싶으믄 차부터 사야 혀." 그때는 속도 없이 웃어넘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화정마을에는 그 흔한 마트, 구멍가게도 없어 읍내에 나가야만 합니다. 문제는 그나마 가까운 봉동읍으로 가려 해도 버스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운행되는 버스는 6대뿐. 배차 간격은 짧으면 1시간, 길면 4시간에 달합니다. 주변에 버스가 많이 다니는 정류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정마을에서 성인 기준 도보 20분 걸리는 거리에 있죠. 보행기에 의지하는 어르신에겐 버거운 거리입니다. 택시를 타면 되지 않냐고요? 화정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봉동읍에 가려면 왕복 1만 2000원을 내야 합니다. 이것도 운이 좋았을 때입니다. 시골 벽지에 있어 택시가 안 잡히면 1만 4000원까지 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은 아플 때도 참는 게 일쑤입니다. 병원이 있는 읍내로 향하는 택시비가 부담스럽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보행 보조기가 필수인 탓에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버스는 1500원만 내믄 타. 근디 내가 다리가 아퍼, 마음대로 버스를 못 탕게 택시로만 가야 허는데 비싸잖여. 아파도 두 번 갈 거 고냥 한 번에 갈라고 참지." 손가락부터 무릎, 어깨까지 성한 곳이 없는 이장순(90) 어르신은 계단을 올라가는 큰 버스를 타지 못해 택시를 주로 이용합니다. 문제는 돈, 병원비보다 택시비가 더 나가는 탓에 아파도 참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화정마을을 비롯한 시골마을은 다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읍내에 나갈 일은 많아도 버스가 없어서, 택시비가 비싸서, 거동이 불편해서 한 번 나가려면 혼자만의 싸움 끝에 외출하는 것이죠. 교통이 불편한 건 여러 보도를 통해 접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 이장이 도전했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사회서비스원 전북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노인 체험 보조 기구를 대여해 준다는 말에 문의했습니다. 허리를 빳빳하게 고정하는 허리 보조기, 온몸을 무겁게 만드는 모래 주머니, 손과 다리 움직임을 제약시키는 관절제한보조기구까지. 모든 기구를 착용해 봤습니다. 온몸이 마비된 듯합니다. 무게 중심을 잡으려면 허리를 숙여야 했고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었죠. 그냥 길을 걷기도 힘들었죠. 양손과 발목에 찬 모래 주머니 때문에 숨까지 가빠졌습니다. 마치 땅이 온몸을 끌어당기는 듯했죠.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하던 행동이었지만 노인의 몸으로는 하나하나 계산해야만 가능했습니다. 버스가 왔습니다. 막상 버스 앞에 서자 계단이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장순 어르신 말대로 버스 위로 다리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땅과 버스 높이는 고작 30cm 남짓한 계단, 노인의 다리는 그 높이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질렀죠. 버스에서 내리는 것도 똑같았습니다. 왕복 10분이면 이동하는 거리를 노인의 몸으로 한 시간이나 걸려 다녀왔습니다.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을에서 박복순(88)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여기는 버스가 와도 못 탄다니께. 버스도 몇 대 없고 나갈라면 시간 맞춰야 하니께 여간 힘든 게 아녀! 그냥 비싸도 택시 타지 어쩌겄어. 한 번 나가는 게 일이여. 다른 데는 마을 버스도 있고 500원 택시도 있담서." 복순 어르신이 말하는 버스는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공영제 마을버스 '부름부릉'입니다. 이는 교통 취약 지역과 읍면을 연결하는 마을버스로 현재 이서·소양·구이·상관·삼례 등 5개 읍면서 운행 중입니다. 화정마을이 있는 고산면은 아직 운행되지 않고 있죠. "인쟈 버스 안 탄 지가 벌써 10년이 됐네? 타고 싶어도 못 타능 게 슬프지." 복순 어르신의 바람은 언젠가 혼자 힘으로 버스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 읍내로 향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불편을 온몸으로 경험한 우리는 그 작은 소망이 이뤄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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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연
  • 2025.03.15 09:31

이름만 빛난 완주 '부름부릉'⋯교통불편 호소 여전

교통 취약 지역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운영하는 완주 공영버스 '부름부릉 버스'가 정작 시골 마을에는 들어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주시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지형을 가진 완주군은 그간 시내에서 읍내를 거쳐 외곽까지 오가는 시내버스가 운영됐다. 농어촌 인구가 감소하고 운송 수입금 재정 상황이 악화하면서 운행 대수가 줄어들어 주민들의 불편이 커졌다. 이에 완주군은 지난 2021년부터 전주시와 시내버스 지간선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마을버스 완전 공영제'를 도입했다. 완전 공영제는 시내에서 읍면을 오가는 버스를 제외한 나머지 노선은 줄이고 군 외곽으로 향하는 지선버스를 운영하는 제도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부름부릉 버스다. 줄어든 인구 수에 맞춰 기존 시내버스보다 크기가 작은 마을버스를 투입해 교통 취약 지역의 이동 편의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마련했다. 완주군은 주요 읍면에서 마을로 가는 지선버스를 직접 운영해 기존 전주시 시내버스 운수 업체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절감하고 원가가 낮은 마을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버스 요금도 기존 1500원에서 500원으로 낮췄다. 전국에서 인정받아 농림축산식품부의 2023년 농촌형 교통모델 사업 우수 지자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교통 불편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완주군청 군민 참여 게시판에는 부름부릉 관련 민원이 제기됐다. 글 작성자는 "인구가 많은 지역은 수시로 운행하고 인구가 적은 아예 운행을 안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며 "지역 어르신들은 읍내를 가려고 하면 승강장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버스 노선이나 시간대 증대는 해 줘야 한다. 교통 취약 지역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인구 수에 따라) 차별하지 말고 제대로 운행해 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부름부릉 버스는 현재 전주시를 둘러싸고 있는 이서·삼례·소양·구이·상관을 중심으로 총 31대 운행되고 있다. 전주시에서 멀리 떨어진 고산 북부 등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외 버스 벽지노선 및 대중교통 미운행 지역 등 교통 취약 지역에서 운영하는 '행복콜버스'도 상관·이서·소양·구이·동상에서만 운영 중이다. 시내버스 승강장과의 거리가 500m 이상이면서 대중교통이 운행되지 않는 산간·오지·벽지마을을 다니는 농촌형 택시인 '으뜸택시'는 삼례·봉동·용진·고산·비봉·운주·화산·경천 등 8개 읍면 38개 마을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완주군청 관계자는 "마을버스 한 대 운영에 약 1억 5000만 원이 소요된다. 버스 한 대당 실질적인 탑승자의 수는 적어 예산이 한정돼 지금 모든 수요를 받아들여 증차하기는 힘든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4월에는 봉동·용진 방면으로 부름부릉 버스 7대를 증차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고산 북부 지역 노선을 정비할 계획이다"며 "전화 요청 시 마을 정류장으로 향하는 행복콜버스 제도와 벽지 마을에 전담 택시 1대를 배정해 주민이 요청한 시간대에 운행하는 으뜸택시 제도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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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연
  • 2025.03.15 09:30

'붓 한번 안 잡았던' 시골 할매들 작가로 데뷔하다

전북일보가 장기 프로젝트 <청년 이장이 떴다>를 진행 중인 화정마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균 나이 81세에 달하는 우리 할머니들이 작가로 데뷔했거든요. 1명도 아니고 무려 12명에 달하는 작가님이 나왔다니, 이거 마을 입구에 플래카드라도 내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달여 전 흥미로운 제안이 오갔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그림 공부하는 할머니들의 작품을 옛 도지사 관사인 '하얀 양옥집'에서 전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이죠. 무려 2025년 하얀 양옥집 첫 번째 기획 전시에 할머니들의 그림을 걸고 싶다는 말에 '청년 이장' 취재진은 고민도 없이 "네!"를 외쳤습니다. 그렇게 화정마을 할머니들이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데뷔작은 오는 11일부터 4월 27일까지 전시됩니다. 전문 예술인 박상규·이동근·이종만·조현동·최분아 등 5명 작가의 작품과 함께 걸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 기대되네요.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조금은 투박하지만 할머니들의 행복이 담긴 꽃 그림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지난 5일 김삼열·이일순 부부 작가의 도움을 받아 꼬박 반나절 동안 완성한 작품입니다. 새싹과 꽃망울이 앞다퉈 피어날 봄을 담은 작품들이기도 하죠. 할머니들이 그린 꽃에는 행복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담겨 있습니다. 우리 할매들의 데뷔작, 기대해도 좋습니다. 기대 이상, 상상 이상의 작품이 나왔거든요. 할머니들이 그린 꽃과 꽃에 담긴 사연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여러분께만 특별히 공개하겠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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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5.03.08 08:12

"우리 그림 어뗘?"⋯'평균 나이 80대' 할매들 작품 첫 공개

화정마을에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평균 나이 80대의 멋쟁이 할머니들이 그림 작가로 데뷔했거든요. 먹고살기 바빠 누리지 못했던 기쁨을 이제라도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할머니 작가님들의 말씀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 수업이 진행된 지난 5일 화정마을 '청년 이장' 아지트. 손가락이 아파서, 손이 떨려서, 어깨가 아파서, 그림이랑은 인연이 없어서⋯.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못 혀!"라고 외치던 할머니들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막상 해 보니 그림의 즐거움에 푹 빠진 듯합니다. 그림 그리기부터 인터뷰까지 꼬박 반나절이 걸렸지만 지친 내색도 없네요. '청년 이장' 취재진이 화정마을 할매들의 데뷔작을 단독 공개합니다. (이름 가나다 순.) 김정자(86) 작가 "선상님들이 시키는 대로 그렸는디 안 예쁜 것 같어. 그냥 그렸어. 뭔 꽃인지도 모를 거여. 해당화라고 그렸는디 해당화 같지도 않혀. 해당화는 그냥 예쁘잖어. 노래도 있고 얼마나 좋은 꽃이여? 잘 못 그렸는디 그려도 제목은 '해당화'로 할라고. 꽃도 있고 새도 있고 어뗘? 그림 보면 그냥 행복혀." 박복순(88) 작가 "이 나이 먹어 갖고 대우를 받아요. 화정마을이 호강한다니까? 꽃 그린다는 건 상상도 못 혔지, 얼마나 좋은지 몰러. 우리 집에 달래꽃이 있어. 시방 이게 가을까지 피어. 고거시 그렇게 예쁘다고. 그거 그린 거여. 그게 참 예쁘더라고. 밑에 작은 꽃은 우리 아들들이여. 이 아들도 잘허고 저 아들도 잘허고, 그래서 우리 아들들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렸네." 신옥리(82) 작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림 그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나는 이거시 무궁화꽃이라고 그렸는디 안 같고 매화 같으네. 집에 무궁화 나무가 있어, 그놈 생각하면서 그렸지. 옛날에 살던 사람이 키웠던 것 같어. 지금은 내가 키우지, 뭐. 아래에 꽃밭도 만들고. 기냥 이렇게 그리면 멋있을까 해서 그려 봤네." 오율례(74) 작가 "처음에 그리라고 혔을 때는 양 엄두도 안 났는디 허니까 또 되네? 나는 인자 어려서부터 백합을 좋아혔어. 해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반복혀. 그래서 백합을 그렸는디, 그리고 본게 백합이 아니네? 이걸 그리니까 꼭 소녀 때로 돌아간 기분이여. 기분이 요상하단 말이지. 우리 집에 백합은 벌써 싹이 올라왔다고." 이덕순(80) 작가 "좋았응게 그리지 어쩌겄어. 옛날에 회관에서 그림 배울 때는 다 그림을 그려서 주드만. 그래서 그냥 색칠만 혔어. 그런디 여기는 하얀 종이만 준 게 기억이 안 나. 아고, 한참을 머뭇거렸다니께? 어떤 것 그려야 할지 오래 생각혔네. 생각도 없이 그냥 매화꽃이라고 그렸어. 딸 따라서 매화축제에 가 봤는데 요래 생겼더만?" 이복순(73) 작가 "시방 집에 철쭉이 네 그루가 있고 흑장미, 매화까지 있어. 그래서 내가 그대로 그린 거여. 아고, 살구나무도 있는디 그건 안 그렸네. 젊을 때는 화단도 많이 만들었는디 지금은 나이 들어서 힘들어. 그래도 가꾸기는 혀. 보면 얼마나 기분 좋아. 화단 보면서 나도 장미처럼 항상 남을 웃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겄다 생각혀." 이장순(90) 작가 "나 헐 줄도 모르고 팔뚝이 아파서 힘들었네. 선상님이랑 같이 그림 그리니께 재미있었지, 뭐. 손 떨리는 거 잡아주느라 선상님이 욕봤제. 해바라기 그려 봤어. 그냥 젊었을 적 산악회 다니면서 본 것 그렸당게. 이 나이에 이런 거 하라고 하니께 얼마나 재밌어. 안 그려? 그냥 몰러, 나는 너무 재미있었어. 항상 감사허지." 이칠월(87) 작가 "내가 그린 것은 장미여요. 다른 꽃은 많이 그렸다는디 장미는 안 그렸담서? 그래서 그렸지. 장미는 언제 봐도 색깔이 참 예뻐. 넝쿨도 예쁘고 흑장미도 예쁘고. 그냥 한 폭의 그림 같잖어? 집에 철쭉도 있고 동백도 큰 놈 있어. 피면 얼마나 예쁜데. 그런데 나이가 먹응게 그래 꽃이 좋아도 다 못 키우겄더라고." 조복현(80) 작가 "내가 원래 꽃을 좋아혀. 근데 그림을 못 그려. 다른 건 몰라도 꽃은 엄청 좋아하거등? 꽃은 다 예쁘고 좋잖어. 다 좋아해서 고민하다가 쉽게 그리려고 튤립을 선택혔어. 그랬는디 다 그리고 보니께 별로 안 예쁘네? 내 생각으로는 나도 어릴 때는 참 잘 그렸는디 지금 보니 못 허네, 고냥 그런 생각이 들어." 조재신(87) 작가 "고냥 해당화 그려 봤어. 자식들 생각허면 살아야겄고 아픈 거 생각하면 죽으면 끝 아닌가 생각하고 살았는디 그림 그리면서 잃었던 희망 찾았어. 마음으론 다 하고 싶은데 몸이 아파 못 하니께 우울증이 오는 것 같더라고. 나도 60대 되고 취미활동 좀 하나 했더니 다쳐서 지팡이랑 23년을 같이 지냈어. 그렇게 아흔이 다 됐네?" 최은주(77) 작가 "이거시 무궁화라고 그렸는디 그냥 엉터리 박사여. 옛날 무궁화는 전통이 있는디 내가 그린 것은 신식 무궁화여. 잘 그리진 못 했어도 완성을 시켜 놓으니께 참 흐뭇허네? 평소에 꽃을 엄청나게 좋아혀요. 그렁게 꽃이 집에 겁나게 많았는디 허리가 아파서 다 없앴어. 꽃 키우긴 힘들어도 보면 예쁘고 얼마나 좋아?" 최장금(78) 작가 "우리 집 마당에 수선화가 그렇게 많어. 가운데 큰 꽃은 엄마, 아빠. 아들 둘은 아래 꽃, 딸 셋은 윗 꽃. 그냥 그렇게 그렸어. 꽃을 보니께 생각 나네. 아저씨가 일찍 하늘나라로 갔어. 벌써 가신 지 30년이 넘었잖어. 우리 아들은 다리를 많이 다쳐서 6년을 아무것도 못허고 있네. 그러니께 내가 마음 고생이 많지. 그냥 그렇게 살어요." 정리=디지털뉴스부 박현우·문채연 기자 사진=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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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외(1)
  • 2025.03.08 08:12

[청년 이장이 떴다] 젓가락도 내려놓고⋯'올림픽' 후보지 선정에 환호

2월의 마지막 날 일일 농부를 위해 푸짐한 밥상을 차려 주신 최은주(79) 할머니 댁. 오후 6시쯤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을 알고 있었던 본보 식구들은 한창 밥을 먹다가 휴대폰부터 꺼내 들었습니다. 2036 하계 올림픽 유치 국내 후보지 선정 모습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기 위해서죠. 숨죽인 채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의 목소리에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화정마을이 조용한 것도 처음입니다. 유 회장이 A4용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금방이라도 발표할 줄 알았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면서 다들 목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그때 유 회장의 발표가 시작됐습니다. "1위는 49표를 득표한 전북특별자치도이며⋯." 잠깐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마저 내려놓고 같이 만세를 외쳤습니다. 놀라움 반 기쁨 반이었습니다. 투표 결과 유효 투표 수 61표(무효 1표) 중 전북이 49표를 획득했다는 소식에 더 놀랐죠.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손뼉을 쳤습니다. 이중 가장 크게 행복해 했던 것은 최 할머니였습니다. "전북이 됐다고? 아휴, 잘했네!" 최 할머니는 "내가 2036년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잘됐어! 잘됐네!"라며 좋아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당연히 건강하셔야지!"라고 말하는 청년 일일 농부들에도 "내가 10년 뒤면 아흔이어요. 살면 좋고 그렇지, 뭐. 그래도 참 잘됐네. 축하하네, 전북특별자치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정마을에서도 함께 '올림픽' 국내 후보지 선정에 환호하며 기뻐했습니다. 또 이렇게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하게 됐습니다. 꼭 10년 뒤 최 할머니와 같이 하계 올림픽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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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5.03.02 17:33

[청년 이장이 떴다] '농사 경험 無' 청년 10명이 시골 마을에 모인 사연은?

"이거 맞아?" 오늘 하루 가장 많이 하고, 많이 들은 말입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 자주 쓰는 말이죠. 평소 불평불만 없이 일만 하던 우리가 왜 이러한 말을 썼냐고요? 힘들어서요. 너무 힘들어서요. 3주 전 신옥리(83)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가 마을 고충(?)을 하나 들었습니다. 봄 되기 전에 농사 준비하려면 비료 포대를 다 날라야 하는데 몸이 예전같지 않아 고민이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래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청년 이장' 취재진은 "그러면 저희 회사 청년들 초대해서 한 번 같이 나를까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약속이 성사되고 2월의 마지막 날 화정마을에 전북일보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청년 이장' 디지털미디어국 디지털뉴스부 박현우·문채연 기자, 영상제작부 김지원·조현욱 기자부터 편집국 문화교육체육부 전현아 기자, 제2사회부 남원 주재 최동재 기자, 심지어 경영기획국 이상규 사원까지 본보 청년 7명이 화정마을에 모였습니다.(사실대로 말하면 '청년 이장'들의 강요로⋯.) 도착하자마자 면 장갑부터 끼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완전무장(?)을 하고 도착한 신옥리 할머니 밭. '일일 청년 농군' 7명의 입이 모두 떡 벌어졌습니다. 한쪽에 덮혀 있는 천막을 걷어내자 무려 60포대에 달하는 비료 포대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농사 경험 0회, 無지만 일단 20kg에 달하는 포대를 손으로 들었습니다. 후배들이 힘들어 보였는지 영상제작부 선배님들마저 카메라를 내려놓고 장갑을 꼈습니다. "이건 진짜 안 돼." 이렇게 단호한 모습은 처음입니다. 그래도 첫 집이라 그런지 힘들지만 다들 으샤으샤 하면서 해냈습니다. 한쪽은 수레에 싣고 한쪽은 경사진 흙길 위로 포대를 올리고 말 안 하고 여차저차 분업도 됐습니다. 찬 바람이 부는데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아니라 여름 한낮 때처럼 땀이 주르륵 흐릅니다. 참고로 지금은 여름이 아닙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시골 어르신들도 하는데 그리 힘들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때를 후회했습니다. 일단 지친 몸을 이끌고 두 번째 집인 최은주(79) 할머니 댁으로 향했습니다. "우린 20포대여!"라는 말을 들은 청년 7명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네요. 웃음은 1분도 안 갔습니다. 저기 마을 길 건너까지 걸어가야 밭이 나온다네요. (하하하) 하지만 우리는 7명입니다. 못 할 일은 없습니다. 땀이 식기도 전에 20포대를 싣고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울고 싶었습니다.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여기저기서 땀냄새가 폴폴 나네요. 이건 진짜 힘들다는 증거입니다. 더 멀리 가야 합니다. 이번에는 오율례(76) 할머니입니다. 목적지까지 무려 도보 5분이 넘습니다. 우리가 믿을 건 '외발수레'뿐. 이마저도 처음 운전해 보는 터라 비틀비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옆으로 쓰러진 수레도 적지 않습니다. 청년 7명이 모였는데도 고요합니다. "나 진짜 못하겠어. 이거 아니야." "한 집만 하면 돼요! 서두르자고요." 큰일났습니다. 아직도 끝이 안 났거든요. 김정자(87) 할머니 밭이 마지막인데 이게 왠걸 이번 비료 포대는 물을 한껏 머금었습니다. 물을 먹기 전 20kg였을 테지만 지금은 40kg입니다.(아마 체감상 40kg는 되는 듯했습니다.) 다들 걸음도 느릿느릿, 쉬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다들 힘들었는지 짜증도 늘어났죠. "누가 비료 포대를 가까운 데서부터 내려 놓은 거야." 지친 탓에 멀리까지 비료 포대를 가지고 갈 힘이 없는지 다들 바로 코앞 거리부터 비료 포대를 채우기 시작했죠. 그래도 누구 할 것 없이 하얀색이었던 목장갑은 어느덧 검은색이 됐고 깨끗했던 옷은 여기저기 흙이 묻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오후 내내 함께 땀 흘리며 무려 110포대를 나른 오늘, 웃음도 사라진 채 말 없이 일만 했지만 모두 이 말만은 똑같이 했죠. "우리가 너무 쉽게 봤어. 너무 힘들다. 이걸 그동안 할머니 혼자서, 아니면 할머니·할아버지 두 분이서 했다는 거야? 진짜 대단하시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 오늘 농번기를 앞둔 시골 마을에서 제대로 농사의 고단함 배우고 느끼고 반성하고 퇴근합니다. 함께해서 즐거웠지만 힘들었고 힘들었고 힘들었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3.02 12:53

[청년 이장이 떴다] "고생했응게 많이 먹어"⋯따뜻한 '저녁 한 상'

긴 겨울이 지나고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이 내리쬡니다. 그 아래에서 본보 청년들이 구슬땀을 흘립니다. 한참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넘어갈 시간.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어디선가 최은주(79)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고, 고생들 많다니께! 밥은 먹고 혀야지!" 최 할머니가 마당 한쪽에서 사용감이 느껴지는 바비큐 그릴을 꺼내 옵니다. 자식들이 집에 찾아올 때 쓰던 물건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위해 꺼냈습니다. 손에는 큼지막한 삼겹살 덩이도 들려 있습니다. 직접 재배한 싱싱한 상추도 큼직한 채반에 한 가득. 거기에 신옥리(83) 할머니의 명이나물과 고추 장아찌, 매콤한 고추와 마늘까지. 금세 저녁 한 상이 뚝딱 차려졌습니다. ”얼른 와! 고기 탄다. 먹고 혀! 고생했응께 많이 먹어야 혀."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지고도 한참을 안 오는 청년들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뒷정리에 매진하다 헐레벌떡 달려간 최 할머니의 집 앞 마당은 앉을 자리도 없었죠. 고기 그릇이 바닥 나기가 무섭게 끊임없이 채워집니다. 너무 많이 먹었다는 말도 소용없습니다. ”어르신, 저희 많이 먹었어요! 이제 그만 굽고 같이 드셔요.” 그만 굽고 드시라는 말에 어르신은 손사래를 칩니다. 꼭 고생한 저희에게 직접 구운 고기를 먹여야겠다는 겁니다. ”안 다쳤어? 많이 힘들지?“ 함께 고기를 굽기 위해 그릴 곁에 함께 선 청년 이장을 향해 신 할머니가 말합니다.(사실 신 할머니도 치킨을 준비했다가 너무 많은 고기 양에 급하게 주문을 취소했답니다. 다음에 사 주기로 약속했죠.) 맛있는 고기 냄새가 마을에 퍼진 듯 주변에서 운동하던 마을 주민들까지 모였습니다. 이장순 할머니부터 청년 이장들도 '영화 언니'라고 부르는 동네 주민 이혜례 씨까지 다 모였죠. 그리고 귀여운 시골 똥강아지도 왔습니다. 명절에나 다 모일 것 같은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왁자지껄 하하호호 한바탕 놀았습니다. 뒷정리까지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간다는 청년들의 말에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워!"라는 말을 반복하셨죠. 사실 오늘 고생한 사람은 저희만이 아닙니다. 화정마을 어르신들도 마음고생이 컸답니다. ‘젊은 청년들을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다치면 안될 텐데.‘ 걱정이 함께 걷는 걸음에서, 함께 수레를 잡아 주던 주름진 손에서, 한숨처럼 흘러나온 말들에서 묻어났습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배가 불렀지만 내어주신 음식을 남김없이 비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어르신!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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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2 12:53

[청년 이장이 떴다] "못해요!"→"재미있네!"⋯화정마을 그림 교실에서 생긴 일

"선상님, 다른 그림 안 보면 못 허요! 머리가 안 돌아간다니께. 허연 종이에 뭐슬 그리라고." "어머니, 저 한 번 따라해 보시게요. 네모 먼저 그려 볼까요? 저는 지붕을 이렇게 그릴 거예요." 지난 19일 화정마을 '청년 이장' 아지트에서 특별한 그림 수업이 열렸습니다. 전주에서 이일순(서학동사진미술관 대표)·김삼열 선생님이 온다는 소식에 할머니들은 일찍이 채비를 마치고 모였습니다. 앉을 자리 없어 따닥따닥 붙어 앉았지만 얼굴은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네요. 그렇게 앉은 책상 위에는 달랑 하얀 캔버스와 4B 연필뿐. 그림 주제는 '집'입니다. 내가 살았던 집, 살고 있는 집, 살고 싶은 집, 다 좋습니다. 그림을 그려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할머니들 눈에는 물음표가 가득합니다. 최은주(80) 할머니는 "선상님, 이거 본뜨는 거 아닌가? 나 이러믄 못 허는디. 갑자기 '집'이라고 하니께 생각 나는 게 없네, 우짠대"라며 당황해 했습니다. 다른 할머니들도 "이렇게 하믄 어떻게 혀", "금방 나왔는디 우리 집이 우째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나" 서로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일순 선생님도 덩달아 당황했습니다. '청년 이장' 취재진으로부터 할머니들이 지난해 그림 수업을 받았다고 들었지만 다들 밑그림을 원하셨기 때문이죠. 알고 보니 이전에는 본뜨듯이 아래에 그림을 대고 스케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의 힘으로 했던 건 물감 칠하기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일단 캔버스를 들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네모부터 천천히 그려 보자는 선생님 말에 할머니들도 하나둘 손에 연필을 들고 따라 그려 봅니다. 닭부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고양이도 하나씩 넣어 캔버스를 가득 채웠습니다. 이전에 '그림' 수업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안 하겠다고 하셨던 강정애(79) 할머니까지 푹 빠졌습니다.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보이면서 집도 그리고 마당에 있는 양은솥, 닭도 그려 봅니다. 괜히 쑥스러운지 더 크게 소리 내 웃으시면서 꼼꼼히 색칠해 봅니다. 하얀 캔버스가 순식간에 알록달록 색깔 옷을 입었네요. 처음에 어떻게 그릴지 몰라 헤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작업에 열중해 봅니다. 생각보다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이는 할머니들에 작가님들도 깜짝 놀랍니다. 모두 캔버스를 들고 여기저기 돌려 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했나 같이 작품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앉아 있었던 것도 벌써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모두 지친 내색 없이 작품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작가처럼 완벽한 그림은 아니지만 어르신들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은 장관을 이룹니다. 오늘도 '청년 이장' 아지트에서의 수업은 성공입니다. 두 세 시간 내내 실컷 웃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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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2 08:57

[청년 이장이 떴다]"유쾌한 어르신들 모습에 위로 받아"⋯작가까지 떴다

'청년 이장' 취재진에게 새로운 의뢰가 접수됐습니다. 이번에는 그림입니다. 곧바로 취재진은 작가 섭외에 나섰습니다. 고민 끝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서학동사진미술관 이일순(52) 대표님을 섭외하기로 했습니다. 겨우 전화 한 통으로 프로젝트 설명 후 재능 기부를 조심스레 요청했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기자님 좋은 일 하시는구나!"라며 응해줬습니다. 이 대표는 남편인 김삼열(56) 작가와 함께 화정마을을 찾아 하얀 캔버스 위에 알록달록 색을 입혀 주셨습니다. 처음에 "부끄러워!", "그림은 안 혀, 못 그려!" 하던 어르신들은 뚝딱 작품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화정마을 어르신들과 서너 시간을 호흡한 이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흔쾌히 재능 기부에 응해 주신 이유가 있나요? "먼저 신문사에서 시도하는 이색 취재 현장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갔습니다. 막연하게 농촌 인구가 줄어든다며 걱정하던 시대를 지나 나라 전체가 인구 소멸 등의 문제를 안고 살고 있잖아요. 어르신들이 모여 마을을 지키고 있는 현실을 신문사가 관심을 갖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반가웠습니다. 젊은 기자들의 활약도 궁금해 흔쾌한 마음에 응했습니다." 직접 시골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보니 어떠셨나요? "미술 작업이 처음인 분들도 계셨을 텐데 유쾌한 어르신들의 호응에 감사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현재 부모님들이 편찮으셔서 요양원, 요양병원에 계셔요. 그래서 오랜만에 어머님들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위로를 얻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90세가 되신 어르신들도 함께 그리고 소통하며 서로를 챙기시는 모습 속에서 마을 공동체의 역할과 좋은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청년 이장' 프로젝트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사회에 꼭 필요한 연결고리로서 전북일보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고 성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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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2 08:56

[청년 이장이 떴다]"게이트볼 한판 허야지!"⋯화정마을 할배들의 '특별한 나들이'

오늘(18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청년 이장' 취재진이 화정마을 할아버지들과 나들이(?)를 가는 날이기 때문이죠. 평소 오후 2시만 되면 삼삼오오 경로당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할머니들과 달리 할아버지들은 경로당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할배들은 365일 게이트볼을 칩니다. 점심 먹고 오후 1시가 되면 이경구(87)·윤병일(83) 할아버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장청송(80) 할아버지 집 앞에 모입니다. 세 분 모두 멋들어진 모자에 장갑을 꼼꼼히 챙기고는 청송 할아버지의 트럭에 올라탑니다. 목적지는 고산체육공원 게이트볼장. 이날 취재진이 찾아간 게이트볼장의 첫인상은 '훈훈함'이었습니다. 실내 게이트볼장 곳곳에 설치된 난방기가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며 어르신들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 줍니다. 작은 움직임에도 다치기 쉬운 어르신들을 위해 겨울이면 후덥지근하게, 여름이면 시원하게 유지되는 곳입니다. "이(여기)는 누구여?" 저기 멀리 몸을 풀고 있는 고산게이트볼협회장 이승규(78·덕암마을) 할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그때 경구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 청년이장이여!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지!"라고 환하게 웃으며 한 마디 던집니다. 처음엔 취재진을 낯설어하던 할아버지들도 '청년 이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뿐 아니라 할아버지들에게도 인정받은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진짜 고산면, 그것도 화정마을 사람이 다 된 듯하네요. "어이! 이제 시작하게! 일로 오쇼!" 순식간에 게이트볼장이 떠들썩해졌습니다. 다른 마을 사람도 하나둘 얼굴을 드러내더니 어느덧 10명이 모였습니다. 게이트볼을 한 팀당 5명, 총 10명의 사람이 모여야만 할 수 있는 협동 운동입니다. 우리 삼총사 할아버지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게이트볼장에는 총 5개 마을이 함께합니다. 화정마을을 비롯해 덕암·교전·심풍·부동마을까지 모이죠. 사는 마을은 다 다르지만 대부분 '고산 토박이'인 터라 서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게이트볼장은 '고산면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뭣이 그렇게 재밌으셔요?"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경구 할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365일 친다고! 겨울엔 따숩고 여름엔 시원하니 을매나 좋아!"라고 대답합니다. 이승규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 나오면 사람 만나고 같이 노니까 좋지. 집에서 뭐 하겄어?"라며 한 마디 덧붙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일하는 게 전부였던 할아버지들은 취미가 뭔지도 모르게 바삐 살다 이제서야 비로소 취미를 찾았습니다. "옛날엔 취미가 어딨어? 먹고 살기도 바뻤지. 우리가 배곯지 않고 살게 된 지 얼마 안 됐어.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누가 이렇게 따순 밥 먹고 좋은 옷 입었겄어. 일만 허고 살았지." 할아버지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십니다. 트럭을 타고 게이트볼장을 가야 하기 때문이죠. 덕분에(?) 고산 게이트볼장은 연중무휴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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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2 08:56

[청년 이장이 떴다] 씻고, 무치고, 끓이고⋯수십 인분 정월대보름 밥상은?

평소 화정마을 경로당의 인사는 "성님, 어서 오셔요!"로 통합니다. 하지만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을 맞이한 12일 인사는 다릅니다. 오늘의 인사는 "성님, 내 더위 사세요!"로 통일됐네요. 정월대보름에는 '더위팔기'를 합니다. 새벽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이 대답하면 "내 더쉬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소리치는 방식이죠. 보통 해 뜨기 전에 하는 아침 인사지만 오후 2시가 돼야 만나는 화정마을 어르신들은 늦게나마 더위팔기를 해 봅니다. 정월대보름인 지난 12일 화정경로당에서 부녀회장이 나물을 씻는 등 바삐 움직이고 있다. 김지원 기자 아참, 오늘은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날입니다. 이장님이 영양 가득한 찰밥을 준비하고 부녀회장님이 9색 나물·고등어찌개·두부조림 등을 준비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탓에 저녁밥을 조금 일찍 먹고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 부녀회장님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마을 주민 수십 명의 반찬을 만들어야 하니 정신없는 게 당연합니다. 차가운 물에 나물을 깨끗이 씻고, 고등어찌개 간 맞추고,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는 두부조림 뒤집어 주고, 다시 나물 무치고⋯. 정말 쉴 새 없이 움직여 마을 주민 수십 명이 먹을 밥·반찬이 모두 완성됐습니다. 완성되기가 무섭게 곧바로 수십 명의 밥·반찬 덜기가 시작됐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 상 가득 정월대보름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여차저차 준비를 마치고 '청년 이장' 취재진들도 자리 잡고 앉아 봅니다.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으니 진짜 가족이 된 듯합니다. 함께 모여 밥 먹고, 먹고 또 한 그릇 더 먹고,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우다 헤어졌습니다. 우리는 오늘 또 공동체를 배웠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함께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됐죠.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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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5 18:29

[청년 이장이 떴다] "필라테스가 뭐라고?"⋯시골마을 겨울잠 깨운 운동 교실

여느 농촌이 그렇듯 농번기가 오기 전까지는 한가로이 흘러갑니다. 화정마을 역시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죠. 아침에는 따듯한 집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오후 2시가 되면 경로당으로 모입니다. 오늘(11일)은 화정마을에 반가운 손님이 왔습니다. 바로 인기 방송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유명세를 떨친 '청년 농부' 차정환(28) 씨와 필라테스 강사 백진선(39) 씨입니다. 둘은 지난 2023년부터 김제 어르신들께 필라테스를 알려 주는 '재능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김제에서 완주 화정마을까지 왕복 1시간 40분이 걸리지만 '청년 이장' 취재진의 부탁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오늘은 필라? 필라 뭐라고? 그거 한담서, 그래서 빨리 왔지!" 오율례(76) 할머니가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다. 맨 앞자리를 찜한 율례 할머니 뒤로 어르신들이 하나 둘 모입니다. 그렇게 모인 인원은 총 11명,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입니다. "어머님들, 필라테스라는 운동을 해 볼 거예요. 필라 아니고 필라테쑤 아니고 필라테스예요." 유쾌한 정환 선생님 말씀에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금방 웃음꽃이 핍니다.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리고 손끝을 쭉쭉 늘려 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움직임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진선 선생님도 어르신들 사이사이를 다니며 자세를 바로잡아 줍니다. 뻣뻣하게 굳은 어르신들의 몸은 작은 동작 하나에도 다칠 수 있어 특별히 더 신경 쓰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니께 엉덩이가 두근두근하는디? 아유, 선상님! 이게 맞는 거여요?" 최은주(80) 할머니가 빨개진 얼굴로 묻습니다. 경로당에 한바탕 웃음이 번집니다. 정환 선생님도 제대로 운동하고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굳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지 여기저기서 곡소리(?)와 비슷한 감탄이 터져 나옵니다. "아고야! 나 죽네, 나 죽어. 어구 시원혀."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정환·진선 선생님이 돌아갈 시간이 됐습니다. 다들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평소 어르신들밖에 없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이 오면 항상 헤어짐이 아쉽습니다. 어르신들은 두 선생님이 선물해 주고 가신 필라테스 공을 한참 만지작거리며 배운 동작을 다시 해 봅니다. 어쩌면 남은 겨울 동안은 화투패 대신 공을 들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읍내만 나가도 필라테스·헬스 등을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읍내에 나가는 것도 일인 시골 마을은 간단한 체조 하나 배우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오늘 열린 운동 교실이 화정마을 어르신들에게 작은 활력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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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5 07:44

[청년 이장이 떴다] "더 많은 마을에서 봉사하고 파"⋯'청년 농부'도 힘 보탰다

'청년 이장' 취재진에게 접수된 수많은 의뢰 중 하나는 '운동'이었습니다. 실제로 운동과 관련해 재능 기부를 하는 청년을 떠올리던 중 문득 텔레비전 속에서 본 차정환 씨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어 '청년 이장이 떴다' 기획 프로젝트를 소개한 후 조심스레 재능 기부를 부탁했습니다. 아무 대가 없는 부탁이었지만 고민도 없이 "좋다"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화정마을 어르신들과 차 씨의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일과 중 가장 재미있는 시간은 '화투'뿐이었던 어르신들은 차 씨와 어느 때보다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고요한 화정마을에 긍정의 힘을 불어넣은 '긍정 농부' 차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김제에서 마을 어르신들께 필라테스를 알려 드린다고요? "2023년 12월부터 봉사를 시작했으니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원래는 저희 할머니 운동 시키는 게 목적이었어요. 사실 운동이라는 건 혼자 하면 재미가 없죠. 마을 어르신들이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봉사까지, 힘들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겁습니다. 따뜻한 분위기가 되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 만난 어르신들도 오래 본 사람처럼 대해 주시거든요. 이런 게 평소 살아가는 데 좋은 영향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농번기에도 빠지지 않고 봉사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럼요. 앞으로는 더 많은 마을에서 봉사하고 싶어요. 운동하고 싶은 어르신들이 되게 많거든요. 대신 그러려면 선생님들이 더 필요하겠죠. 그래서 저와 뜻이 맞는 선생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함께 하고 싶은 선생님들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화정마을 어르신들께 한 마디 해 주신다면요? "연세가 많으신 편이더라고요. 그래도 굉장히 유쾌한 모습을 보여 주시고 힘차게 함께 운동해 주셔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멀리서 온 외지인인데 정말 자식·손주처럼 친절히 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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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연
  • 2025.02.15 07:40

[청년 이장이 떴다] "죽기 전에 꼭"⋯75년 만에 날아온 '편지 한 장'

지난주 조재신(89) 할머니가 화정마을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 이장' 취재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시방, 누가 우리 집으로 편지를 보냈어. 이장님들이 내 주소를 알려 준 겨?"라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취재진은 "할머니 개인 정보인데 누구한테 알려 드려, 큰일 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편지를 확인하러 함께 할머니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할머니는 일기장 깊숙이 넣어 놓은 편지 봉투를 꺼내셨습니다. 색이 다 바랜 우표가 붙은 봉투 속에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눌러쓴 글씨가 빼곡히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고산면 화정리 조재신 할머님께. 나는 비봉면 죽산마을에 살다가 전주로 이사 간 조재영입니다. 오늘 아침 전북일보 신문을 보고 본 서신을 드립니다." 누가 봐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쓴 편지 같았습니다. 조 할머니는 "처음에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당게. 근데 시방, 나랑 같이 국민학교 다닌 양반이더라니께. 신문 보고 편지 썼디야. 우리 집도 모를 텐디 어떻게 알고 보냈는지 모르겄어"라고 말했습니다. "75년 전 비봉국민학교 제17회 졸업생이시면 반갑게 인사 올립니다. 졸업한 지 75년이 되었지요. 졸업 사진 보고 얼굴도 기억했습니다. 조 여사님 건강하시고 잘 계셔요!" 알고 보니 두 분은 열다섯 살 때 같은 반이었던 겁니다.(옛날에는 국민학교를 18살에 졸업하는 일도 있었죠.) 먹고 사느라 바빠 친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지냈는데 본보 신문(1월 20일·2월 3일 자 각 2면)을 보고 75년 만에 연락한 것입니다. 할머니도 편지를 읽고 너무나 반가워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한참을 통화하다가 약속했죠. 죽기 전에 꼭 만나자고요. 이후 취재진은 사무실로 돌아와 편지를 몇 번이고 읽어봤습니다. 75년 만에 닿은 연락이라⋯. 편지의 내막이 궁금해 바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동창들이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친구를 보니까 반갑더라니까. 아버지·어머니 산소 갈 때 아들들이랑 가기로 했어요"라며 만남을 기약하셨습니다. 꼭 두 분이 만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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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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