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8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청년 이장' 취재진이 화정마을 할아버지들과 나들이(?)를 가는 날이기 때문이죠. 평소 오후 2시만 되면 삼삼오오 경로당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할머니들과 달리 할아버지들은 경로당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할배들은 365일 게이트볼을 칩니다. 점심 먹고 오후 1시가 되면 이경구(87)·윤병일(83) 할아버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장청송(80) 할아버지 집 앞에 모입니다. 세 분 모두 멋들어진 모자에 장갑을 꼼꼼히 챙기고는 청송 할아버지의 트럭에 올라탑니다. 목적지는 고산체육공원 게이트볼장.
이날 취재진이 찾아간 게이트볼장의 첫인상은 '훈훈함'이었습니다. 실내 게이트볼장 곳곳에 설치된 난방기가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며 어르신들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 줍니다. 작은 움직임에도 다치기 쉬운 어르신들을 위해 겨울이면 후덥지근하게, 여름이면 시원하게 유지되는 곳입니다.
"이(여기)는 누구여?"
저기 멀리 몸을 풀고 있는 고산게이트볼협회장 이승규(78·덕암마을) 할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그때 경구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 청년이장이여!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지!"라고 환하게 웃으며 한 마디 던집니다.
처음엔 취재진을 낯설어하던 할아버지들도 '청년 이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뿐 아니라 할아버지들에게도 인정받은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진짜 고산면, 그것도 화정마을 사람이 다 된 듯하네요.
 
   "어이! 이제 시작하게! 일로 오쇼!"
순식간에 게이트볼장이 떠들썩해졌습니다. 다른 마을 사람도 하나둘 얼굴을 드러내더니 어느덧 10명이 모였습니다. 게이트볼을 한 팀당 5명, 총 10명의 사람이 모여야만 할 수 있는 협동 운동입니다. 우리 삼총사 할아버지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게이트볼장에는 총 5개 마을이 함께합니다. 화정마을을 비롯해 덕암·교전·심풍·부동마을까지 모이죠. 사는 마을은 다 다르지만 대부분 '고산 토박이'인 터라 서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게이트볼장은 '고산면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뭣이 그렇게 재밌으셔요?"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경구 할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365일 친다고! 겨울엔 따숩고 여름엔 시원하니 을매나 좋아!"라고 대답합니다. 이승규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 나오면 사람 만나고 같이 노니까 좋지. 집에서 뭐 하겄어?"라며 한 마디 덧붙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일하는 게 전부였던 할아버지들은 취미가 뭔지도 모르게 바삐 살다 이제서야 비로소 취미를 찾았습니다.
"옛날엔 취미가 어딨어? 먹고 살기도 바뻤지. 우리가 배곯지 않고 살게 된 지 얼마 안 됐어.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누가 이렇게 따순 밥 먹고 좋은 옷 입었겄어. 일만 허고 살았지."
할아버지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십니다. 트럭을 타고 게이트볼장을 가야 하기 때문이죠. 덕분에(?) 고산 게이트볼장은 연중무휴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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