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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전 '산불 악몽'이 다시⋯시골마을은 두려움에 떤다

전국산불 소식에 화정마을 어르신들 "그날 잊을 수 없어"과거 산불 떠올려
"대피소도 천리길"⋯재난에 취약한 고령자, 불나도 거동 불편 도망도 못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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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마을 최은주(77) 어르신이 마을 후미에 위치한 화재막이를 설명하고 있다. 김지원 기자.

 

건조한 봄, 전국에 번진 대형 산불 소식에 화정마을 어르신들의 마음도 타들어 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스한 햇살 아래 평화로웠지만 어느새 분위기는 조용히 가라앉았습니다. 혹여나 불이 날까 마당에 나와 마른 가지 줍기에 바쁩니다.

"사람들이 그만 다쳐야 하는디, 큰일이네. 옛날에는 '여시불'이라고 혔어. 그 불이 진짜 무섭지, 무서와. 이렇게 큰 불이 나니까 무서와."

오율례(74) 어르신은 봄철 산불을 '여시불'이라고 부른다며 가장 무서운 불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르신이 이야기한 여시불은 옛 어른들이 원인도 모르게 갑자기 번지는 불을 여우에 홀린 것처럼 감쪽같다는 의미를 담아 부르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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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당산제를 지내온 화재막이. 화정마을 사람들은 액막이 역할을 하는 돌에 당산제를 지내며 재난이 피해가기를 기원했다. 김지원 기자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화정마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불이 가장 큰 재난입니다. 농사가 일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이 마을에 불이 나면 삶도 무너집니다. 화정마을 주민들은 매년 마을 초입과 끝에 화재막이를 두고 당산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불이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죠. 그래도 여시불 같은 봄철 산불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수십 년 전 화정마을에도 산불이 났습니다. 전국 곳곳 동시다발적 산불이 더욱더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이칠월(87) 어르신은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그 뒷산에 불이 났었어. 순식간에 바람이 확 불어 재끼니께 화기가 순식간에 덮쳐서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당게. 그때는 젊으니께 도망이라도 쳤지, 지금이었으면⋯."

불은 산 아래에 있는 집 한 채를 삼키고 나서야 멈췄습니다. 다행히 마을 옆에 있던 수로 덕분에 더 번지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너무 무서워 집 담벼락을 부수면서까지 소방도로를 만들었습니다. 화정마을 길은 오솔길 하나뿐이었거든요.

소방도로까지 만들었지만 무서운 것은 여전합니다. 마을에 불이 번졌을 때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거동이 불편해 빠르게 대피할 수도, 귀가 멀어 불났다는 소식을 듣는 것도 어려운 거죠.

"인쟈 불나믄 어쭈겄어. 어디 가도 못 혀. 걸어갈 수가 없당게. 천천히 걷는 것도 힘든디 어떻게 뛰겄어. 걸어가다가 잘못될 수밖에 없지."

보행기가 없으면 걷기 힘든 이장순(90) 어르신의 말입니다. 어르신들은 "어차피 도망가지 못하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에 비교적 젊은 60∼70대 주민들이 어르신들께 대피 요령을 알려 드리기도 합니다. 재난안전문자와 마을 방송도 때마다 울려 퍼집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해 문자를 확인하기도, 귀가 어두워 방송 내용도 듣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대형 산불 소식이 이어지는 것을 들은 어르신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남 일 같지 않고 언제 어디서 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마을 분위기는 여전히 소란스럽습니다. 매일 모여 수다를 떨던 어르신들이지만 지금은 불안감이 커지면서 허공만 보거나 산불 이야기뿐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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