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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 어뗘?"⋯'평균 나이 80대' 할매들 작품 첫 공개

인생의 황혼기 그림에 눈 뜬 할매들, 그림 작가로 거듭나다
"꽃, 고거시 그렇게 예쁘당게"⋯ '꽃' 주제로 실력 발휘

화정마을에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평균 나이 80대의 멋쟁이 할머니들이 그림 작가로 데뷔했거든요. 먹고살기 바빠 누리지 못했던 기쁨을 이제라도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할머니 작가님들의 말씀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 수업이 진행된 지난 5일 화정마을 '청년 이장' 아지트.

손가락이 아파서, 손이 떨려서, 어깨가 아파서, 그림이랑은 인연이 없어서⋯.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못 혀!"라고 외치던 할머니들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막상 해 보니 그림의 즐거움에 푹 빠진 듯합니다. 그림 그리기부터 인터뷰까지 꼬박 반나절이 걸렸지만 지친 내색도 없네요.

'청년 이장' 취재진이 화정마을 할매들의 데뷔작을 단독 공개합니다. (이름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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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김정자(86) 작가

"선상님들이 시키는 대로 그렸는디 안 예쁜 것 같어. 그냥 그렸어. 뭔 꽃인지도 모를 거여. 해당화라고 그렸는디 해당화 같지도 않혀. 해당화는 그냥 예쁘잖어. 노래도 있고 얼마나 좋은 꽃이여? 잘 못 그렸는디 그려도 제목은 '해당화'로 할라고. 꽃도 있고 새도 있고 어뗘? 그림 보면 그냥 행복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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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순.

박복순(88) 작가 

"이 나이 먹어 갖고 대우를 받아요. 화정마을이 호강한다니까? 꽃 그린다는 건 상상도 못 혔지, 얼마나 좋은지 몰러. 우리 집에 달래꽃이 있어. 시방 이게 가을까지 피어. 고거시 그렇게 예쁘다고. 그거 그린 거여. 그게 참 예쁘더라고. 밑에 작은 꽃은 우리 아들들이여. 이 아들도 잘허고 저 아들도 잘허고, 그래서 우리 아들들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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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리.

신옥리(82) 작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림 그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나는 이거시 무궁화꽃이라고 그렸는디 안 같고 매화 같으네. 집에 무궁화 나무가 있어, 그놈 생각하면서 그렸지. 옛날에 살던 사람이 키웠던 것 같어. 지금은 내가 키우지, 뭐. 아래에 꽃밭도 만들고. 기냥 이렇게 그리면 멋있을까 해서 그려 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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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율례.

오율례(74) 작가

"처음에 그리라고 혔을 때는 양 엄두도 안 났는디 허니까 또 되네? 나는 인자 어려서부터 백합을 좋아혔어. 해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반복혀. 그래서 백합을 그렸는디, 그리고 본게 백합이 아니네? 이걸 그리니까 꼭 소녀 때로 돌아간 기분이여. 기분이 요상하단 말이지. 우리 집에 백합은 벌써 싹이 올라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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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순.

이덕순(80) 작가

"좋았응게 그리지 어쩌겄어. 옛날에 회관에서 그림 배울 때는 다 그림을 그려서 주드만. 그래서 그냥 색칠만 혔어. 그런디 여기는 하얀 종이만 준 게 기억이 안 나. 아고, 한참을 머뭇거렸다니께? 어떤 것 그려야 할지 오래 생각혔네. 생각도 없이 그냥 매화꽃이라고 그렸어. 딸 따라서 매화축제에 가 봤는데 요래 생겼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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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순.

이복순(73) 작가

"시방 집에 철쭉이 네 그루가 있고 흑장미, 매화까지 있어. 그래서 내가 그대로 그린 거여. 아고, 살구나무도 있는디 그건 안 그렸네. 젊을 때는 화단도 많이 만들었는디 지금은 나이 들어서 힘들어. 그래도 가꾸기는 혀. 보면 얼마나 기분 좋아. 화단 보면서 나도 장미처럼 항상 남을 웃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겄다 생각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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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순.

이장순(90) 작가

"나 헐 줄도 모르고 팔뚝이 아파서 힘들었네. 선상님이랑 같이 그림 그리니께 재미있었지, 뭐. 손 떨리는 거 잡아주느라 선상님이 욕봤제. 해바라기 그려 봤어. 그냥 젊었을 적 산악회 다니면서 본 것 그렸당게. 이 나이에 이런 거 하라고 하니께 얼마나 재밌어. 안 그려? 그냥 몰러, 나는 너무 재미있었어. 항상 감사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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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칠월.

이칠월(87) 작가

"내가 그린 것은 장미여요. 다른 꽃은 많이 그렸다는디 장미는 안 그렸담서? 그래서 그렸지. 장미는 언제 봐도 색깔이 참 예뻐. 넝쿨도 예쁘고 흑장미도 예쁘고. 그냥 한 폭의 그림 같잖어? 집에 철쭉도 있고 동백도 큰 놈 있어. 피면 얼마나 예쁜데. 그런데 나이가 먹응게 그래 꽃이 좋아도 다 못 키우겄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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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현.

조복현(80) 작가

"내가 원래 꽃을 좋아혀. 근데 그림을 못 그려. 다른 건 몰라도 꽃은 엄청 좋아하거등? 꽃은 다 예쁘고 좋잖어. 다 좋아해서 고민하다가 쉽게 그리려고 튤립을 선택혔어. 그랬는디 다 그리고 보니께 별로 안 예쁘네? 내 생각으로는 나도 어릴 때는 참 잘 그렸는디 지금 보니 못 허네, 고냥 그런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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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신.

조재신(87) 작가

"고냥 해당화 그려 봤어. 자식들 생각허면 살아야겄고 아픈 거 생각하면 죽으면 끝 아닌가 생각하고 살았는디 그림 그리면서 잃었던 희망 찾았어. 마음으론 다 하고 싶은데 몸이 아파 못 하니께 우울증이 오는 것 같더라고. 나도 60대 되고 취미활동 좀 하나 했더니 다쳐서 지팡이랑 23년을 같이 지냈어. 그렇게 아흔이 다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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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주.

최은주(77) 작가

"이거시 무궁화라고 그렸는디 그냥 엉터리 박사여. 옛날 무궁화는 전통이 있는디 내가 그린 것은 신식 무궁화여. 잘 그리진 못 했어도 완성을 시켜 놓으니께 참 흐뭇허네? 평소에 꽃을 엄청나게 좋아혀요. 그렁게 꽃이 집에 겁나게 많았는디 허리가 아파서 다 없앴어. 꽃 키우긴 힘들어도 보면 예쁘고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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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금.

최장금(78) 작가

"우리 집 마당에 수선화가 그렇게 많어. 가운데 큰 꽃은 엄마, 아빠. 아들 둘은 아래 꽃, 딸 셋은 윗 꽃. 그냥 그렇게 그렸어. 꽃을 보니께 생각 나네. 아저씨가 일찍 하늘나라로 갔어. 벌써 가신 지 30년이 넘었잖어. 우리 아들은 다리를 많이 다쳐서 6년을 아무것도 못허고 있네. 그러니께 내가 마음 고생이 많지. 그냥 그렇게 살어요."

 

정리=디지털뉴스부 박현우·문채연 기자

사진=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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