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花)'에서 따온 마을이름, 집집마다 봄소식 알리는 화사한 꽃망울 '톡톡'
잡초 뽑고 화단 가꾸고 냉이 캐고⋯"바쁘다 바빠!" 새봄 맞이 분주한 나날
봄이 왔나 봅니다. 4월 4일 김제 꽃빛드리·고창 벚꽃 축제, 5일 옥정호 벚꽃 축제⋯. 여기저기 봄 축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거든요. '청년 이장' 취재진들이 두 달째 지내고 있는 화정마을에도 봄이 왔습니다. 당장 한 달 전만 해도 아무 냄새도, 소리도 안 들리던 시골 마을이었지만 이제 거름 냄새, 관리기·경운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최고 기온이 18도에 달하는 21일, 미세먼지가 꼈는지 앞이 뿌옇긴 하지만 날이 어찌나 좋은지 그냥 걷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괜히 이것저것 챙겨 소풍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화정마을은 이름에도 '꽃'이 들어갑니다. 주위에 꽃이 많이 피어 화정마을의 '화'를 꽃 화(花)에서 따왔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다들 마당에는 꽃을 심어 놨습니다. 모두 연로하신 탓에 관리가 힘들어 넓은 마당에 비해 정원이 소박하지만 잡초 하나 없이 단정한 모습이었죠.
마을회관 앞을 지나던 중 조재신(87) 어머니 집 대문 틈 사이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이네요. 그 앞에 어머니가 서 계십니다. '청년 이장'이 가장 궁금했던 나무의 정체를 물어봅시다.
"어머니, 이 나무는 뭐여요?"
"이거 앵두나무여! 5월 되면 이거 솔찬히 달려. 먹으러 와!"
앵두나무였습니다. 빨갛고 작은 열매, 그 앵두 맞아요. 벌써 심은 지도 10년이 된 나무라고 하네요. 5월이 되면 주렁주렁 열린다는 앵두나무는 열심히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이 왔다는 거죠.
다시 산책을 시작해 봅니다. 마을 곳곳 오와 열을 맞춘 파, 마늘이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고 호랑나비도 바람 따라 날아다닙니다. 알록달록한 색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네요. 카메라를 들자마자 날아가 버린 나비, 이 정도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찍으려고만 하면 바로 날아가 버리네요.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습니다.
△부녀회장님 취미는 '화단 가꾸기'?
화정마을의 평화로움에 반해갈 때쯤 마당에서 화단을 가꾸는 부녀회장님, 이복순(73) 어머니를 마주쳤습니다. 잡초를 뽑고 계시네요. 어머니, 뭐 하셔요? "아유, 뭐 하긴 봄 왔으니까 풀 뽑지!" 사실 어머니의 봄철 취미는 '화단 가꾸기'입니다. 꽃이 피기 전 잡초를 모두 박멸하기로 결심하신 듯합니다.
일단 '청년 이장'도 호미를 들었습니다. 어색하지만 한참 땅을 파헤치다 보니 어머니가 잘 가꿔 놓은 화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아직 꽃망울이 터지진 않았지만 저마다 뿌리께 뿌려진 촉촉한 비료를 보니 이건 무조건 예쁘게 잘 필 것 같습니다.
팔·다리부터 허리까지, 성한 데가 없어 화단 가꾸는 것도 잠깐입니다. 마을회관에 갈 준비하고 나온 어머니의 옷에도 봄이 왔네요. 바지에는 귀여운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고 조끼에는 빨갛고 노란 꽃이 피었습니다. 안에 휘황찬란한 꽃이 핀 티셔츠까지 완벽합니다.
△매년 식구 먹여 살린 '냉이'
저기 멀리 보행 보조기 위에 냉이를 캐기 위해 칼·바구니를 싣고 가는 박복순(88) 어머니와 마주쳤습니다. 걷기는 힘들어도 봄 냉이는 캐야 한다는 어머니입니다. 마을 곳곳에 냉이가 한가득 올라왔기 때문에 집에만 앉아 있을 순 없습니다.
박 어머니는 매년 봄이 되면 냉이를 캐서 가족들의 밥을 해 먹였습니다. 이제는 모두 타지로 떠나면서 아들 한 명과 함께 살지만 지금도 버릇처럼 냉이를 캡니다.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청년 이장이 하나 캘 때 이미 어머니의 손과 바구니에는 냉이가 한가득입니다. 심지어 다 똑같이 생긴 냉이인 듯하지만 어머니는 먹을 수 있는 냉이, 먹을 수 없는 냉이를 척척 구별합니다. 무려 80년 넘게 냉이를 캤기 때문이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아지트에 쉬고 있으니 손님이 찾아옵니다. 벌써 '청년 이장'이 냉이를 캤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나 봅니다. 손님은 신옥리(82) 어머니와 우리의 '영화 언니' 마을 주민 이혜례 씨입니다.
두 분도 봄이 되면 '냉이'를 꼭 캤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배추가 흔하지 않아서 김장하는 양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금은 배추를 '포기'로 셀 수 있지만 그때는 속이 차지 않아 김장이라고 하기도 어려웠거든요. 심지어 식구가 많다 보니 김치를 담가도 금방 똑 떨어집니다. 그래서 된장에 무쳐 먹으려고 봄만 되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냉이를 비롯해 쑥, 머위 등 나물을 캐러 다녔다고 합니다.
냉이 캐는 마을 주민마다 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냉이를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난다고. 지금은 식재료가 없어 굶는 시절이 아니지만 화정마을 어르신들은 항상 그랬듯 오늘도 옆구리에 바구니 끼고 냉이 캐러 갑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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