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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청와대 귀환과 독단 정치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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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에서 다시 청와대로 돌아간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겠다’며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지 3년 7개월 만이다. 대통령 권력의 심장부가 또다시 이동하면서, 청와대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정치적 무게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청와대가 자리한 곳은 본래 경복궁의 북쪽 후원, 왕실의 휴식 공간이었다. 그러나 1939년 일본은 이곳에 조선총독 관저를 세워 왕조의 상징적 공간을 식민 통치 최고 권력의 핵심 기지로 바꾸어 버렸다. 청와대가 줄곧 ‘식민 통치의 잔재를 온전히 청산하지 못한 공간’으로 지칭되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이곳을 ‘경무대’라 이름 짓고 대통령 관저 겸 집무 공간으로 사용했다. ‘경무대’가 ‘청와대’라는 새 이름을 얻은 것은 1960년 12월 30일, 4·19 혁명 이후 취임한 윤보선 대통령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 흔적과 부정부패 이미지를 지우겠다는 정치적 의미를 담아 개칭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청와대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박정희 시대에는 개인 권력과 국가 권력이 거의 동일시된 권위주의 통치의 상징이 되었고,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기에는 군부 권력의 심장부로 기능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적 합법 권력의 상징이자 민주 정부의 성취가 축적된 공간이 되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시민에게 개방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청와대에 머무르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용산 이전을 강행했다. ‘소통 강화’와 ‘권력과의 거리 좁히기’가 명분이었지만, 용산 시대는 혼란과 균열만을 남겼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겠다는 약속은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고, 졸속 이전으로 인한 안보 공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행정 효율성은 저하됐고 조직은 분산됐으며 국민의 비용 부담은 커졌다. 이제는 이중 이전이라는 또 하나의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지금의 청와대 건물은 1991년, 식민지 잔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시대정신에도 외교 관례에도 맞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새로 신축된 공간이다. 식민 지배의 그림자를 덜어내고 민주국가의 상징으로 다시 세운 건물이자, 대통령 권력의 제도적 기반이 담긴 장소인 셈이다.

청와대가 다시 ‘대통령의 집무실’로 돌아온다. 3년 7개월, 결코 길지 않았지만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궤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정치개혁은 공간 이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정치적 책임은 결과가 아니라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다시 청와대로 돌아온 지금, 한국 정치의 민낯이 더욱 뚜렷해졌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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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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