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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전하는 문학과 삶

새해를 문학의 힘으로 밝혀준 이들이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 가족의 한 사람으로, 주변의 이웃으로 함께 해왔던 이들의 오랜 노력이 빛을 본 것이다. 기쁘고 감사하다는 인사에도, 겸손한 자세로 더욱 정진하겠다는 다짐에도 다 담지 못한 속내가 있을 터. 이에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전하는 문학과 삶 이야기에 귀기울여봤다. △소설 오은숙 씨 나를 찾아 헤맸던 시간들 머릿속에 스쳐 소설 오은숙 씨 오은숙(46) 씨에게 소설은 위로였다. 학창시절부터 문학작품을 읽을 때면 구원 받는 느낌도 들었다. 어른이 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이 받은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자기를 구원하면 남 또한 자연히 구원된다고 했던 스승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젊은 날에는 시나리오와 단막극을 쓰며 문학적인 표현에 맛을 들였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문장을 읽는 맛 외에도 행간에게 느껴지는 이미지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삶을 관통하거나 비켜가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은 분명했다. 일터에서 여느 때처럼 일을 하던 중 당선소식을 들었어요. 전화를 끊고 지인에게 알리는 데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이십대부터 나를 찾아 헤맸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가더라고요.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언행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시던 아버지, 집안에 경사가 났다며 크게 기뻐하시던 어머니. 스스로도 무덤덤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이 교차했다. 오은숙 씨는 그간 사회에서 다양한 일에 몸담았다. 조무사 자격증이 있었지만 공장을 전전했고, 짧게나마 무역회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영어 학습지 교사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던 중 글 쓰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신춘문예에 처음 도전한 것은 32살 때였다. 신경증에 걸린 부인과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작가로서 서툰 것 투성이였기에 가슴이 뛰고 조바심이 났다. 어느 해엔가는 매년 원고를 부치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돼 일부러 다른 동네의 우체국으로 옮겨 간 적도 있어요. 우체국 앞에서 고칠 문장이 떠올라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죠. 눈비가 오던 날엔 글자가 번질까 원고를 품에 꼭 안고 간 일도 생각나네요. 이번 당선작 납탄의 무게는 부모와 자식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가족사를 담은 장편과 노부부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쓸 생각이라고도 했다. △수필 김애자 씨 삭히고 숙성시킨 과정이 참 길었어요 수필 김애자 씨. 대학 전임강사로 퇴직 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김애자(68) 씨는 바쁜 생활 속에 접어두었던 글쓰기로 인생의 방향키를 잡았다. 전공은 피아노다. 서예와 회화 등 미술 분야에도 발을 들였다. 동양의학과 침술도 배웠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크다. 현재 머물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최근 2년 동안에는 매일 1~2권의 책을 읽고 일주일에 한 편씩 수필을 써냈다. 마음에 담길만한 글을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다짐이었다.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후회와 미련을 두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게 3년째 접어드는 해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큰 열매를 수확했다는 김애자 씨. 어느덧 60대 후반의 나이다, 주변에서는 가장 어려운 것을 이뤄냈다며 분에 넘치는 환호와 칭찬을 보내왔지만 스스로는 당선이 늘 남의 일이라 여겼기에 크게 실감나지 않았다. 10여 년간 수필을 써왔음에도 자신의 글이 초라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58세에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논문 쓸 때처럼 일 년만 후회 없는 열정을 쏟아보기로 한 결정이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필 망월굿은 여러 해 전 정월대보름날, 여행지에서 우연히 보았던 달집 태우기에서 영감을 빌려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진처럼 생생한 이미지로 남았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절실해졌다. 농사일 바쁜 집에 시집 와서 쉴 틈 없이 농사와 가사일에 몰두했던 어머니다. 요새는 달을 바라볼때 마다 그때 그 시절 어머니의 인생을 떠올리느라 밤이 깊어간다. 글의 소재를 품고 화소를 모으며 뼈대를 세우기까지 수년이 걸렸어요. 한 숨에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품고 키워 내놓기까지 삭히고 숙성시킨 과정이 참 길었거든요. 김애자 씨는 이제 더 이상 웅크리지 않겠다는 씩씩한 다짐을 밝혔다. 늘 자신없어하고 스스로를 낮추던 습관을 버리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자신만의 글을 써나가겠다는 것. 수필에서 받은 인정을 디딤돌 삼아 시, 소설 등 다른 장르로도 영역을 넓히며 기본을 갖추는 문인이 되겠다는 포부다. △동화 차승호 씨 쓸모없어 보이지만 쓸모가 있는 것들 있죠 동화 차승호 씨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를 앞두고 차승호(56) 씨는 휴대전화만 보며 지역번호 063으로 시작하는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해였던가. 국민학교 다닐 적 글을 잘 쓴다며 칭찬해주셨던 문예반 선생님이 신춘문예에 당선돼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 가졌던 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20년 넘게 시를 썼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달전 쯤부터는 삶의 유한성 앞에 절망하던 나날을 보낸 끝에 동화와 동시에 눈을 뜨게 됐다. 문학은 삶을 돌아보게 하고, 고난을 견디게 하고, 계속해서 살아가게 합니다. 스쳐보면 쓸모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쓸모가 있는 것들이 있죠. 저에게는 동화와 동시가 그렇습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쓴 건 20대부터다. 한동안 신춘문예 열병도 앓았지만 한두 번 최종심에 오르는 데 그쳤다. 한계를 느낀 차승호 씨는 신춘문예에 대한 열망을 접어두고 시를 쓰며 나이를 먹어갔다. 이번 도전은 네 번째였다. 동화와 동시를 써냈는데 동화 우주인 할아버지가 반가운 소식을 불러다줬다. 동화 우주인 할아버지는 3년간 요양원에서 지냈던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있다. 아버지에게 닥쳐온 죽음이 스타게이트 처럼 우주로 나가는 통과의례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고. 직장인으로서 도시생활에 익숙하다는 차승호 씨는 글쓰기가 축복처럼 느껴졌다며 글 쓰는 시간은 삶을 견인하는 한편 지난한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인 송현섭 시인의 동시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한다. 차승호 씨는 이번 결과를 출발점으로 삼고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각오다. 신춘문예 새내기는 오늘도 열심히 연필을 깎고 있다. 한편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은 지난 7일 당선 취소됐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20.01.09 17: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와 ‘감성 충전’

새해의 여운과 함께 하루의 시작과 끝을 여는 요즈음, 제대로 된 감성 충전을 위한 이야기 책을 소개한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시인들이 새 책 소식을 들고 온 것. 김유석 시인의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와 김형미 시인의 그림소설 <불청객>을 만나보자. 외로운 인생 살이 자아 찾기에 지쳐 헛헛한 속을 달래고픈 이들에게 든든한 동행인이 되어 줄 것이다. 붉은 표지가 인상적인 두 권의 책은 떠오르는 새해처럼 따뜻한 기운마저 더해준다. △김유석 시인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 맨발로 무논에 들면 물렁하고 존존하고 은연한 힘이 몸에 낀다. 그렇게 살을 섞는 감정이거나 한 발을 빼면 바닥이 쑤욱 들려 나오는 그런 느낌을 나는, 적는다. 김유석 시인은 새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도서출판 상상인)를 펴내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시집에는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생명에 대한 언급이 두드러진다. 다소 불안정하면서도 꿋꿋이 생명성을 이어나가는 존재들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소, 민달팽이, 고라니, 개구리 따위가 그렇다. 체험적인 농촌의 소재를 적극 불러들여 독자들을 생명의 한복판으로 소환한다. 어느 백치가 울음을 적고 있다 / 다 버리지 못한 울음은 꾹 꾹 눌러서 / 다음 생으로 유폐시켜야 한다 (김유석의 시 미필적 감정2 중) 해설을 쓴 문신 시인은 김유석은 울음의 수사학으로 이번 시집을 구상한 듯싶다며 울음보다 위대한 경고는 없으며 울음은 존재의 경고이자 삶의 위기라고 설명했다. 김유석의 시에 대해서는 삶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따라오는 통념을 비껴가게 한다며 김유석 시인에게 삶은 살아가는 일보다는 기억하는 일에 가깝다고 봤다. 기억이 사후의 일이고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의 기억은 선천적인 운명의 지배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김유석 시인은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서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서울신문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도 시와 동시 작품이 당선됐다. 그간 시집 <상처에 대하여>, <놀이의 방식>을 펴냈다. △김형미 시인 그림소설 <불청객> 김형미 시인은 그림소설 <불청객>(푸른사상)을 통해 진정한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이 이야기에는 너무도 많이 떠돌았던 나가 등장한다.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 내 안을, 집 밖을 나가 무던히도 떠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비어있던 집에 주인 대신 웅크리고 앉아있는 불청객 그를 만나게 된다. 아무리 내보내려 해도 나가지 않는 불청객.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해 진정한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나선다. 조금은 다르고 낯선 세계를 발견하려는 나에게 우주를 깨우는 우렁찬 닭 울음소리가 들릴 수 있을까. 김형미 시인은 이 이야기를 쓰며 우리가 너무 많이 떠도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떠돌게 하는 것이며 진정한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은 어디인가라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그 고민을 나눠보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무한히 평안하고, 무한히 살가운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글을 쓰고 싶었다며 이 이야기는 내 안을, 집 밖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라고 전했다. 김형미 시인은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진주신문 가을문예에서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2003년에는 문학사상의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오동꽃 피기 전>,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를 비롯해 다수의 그림에세이집, 풍수에세이집, 동화책을 썼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20.01.08 18:17

신정일과 함께 하는 ‘한국의 사찰 답사기’

삶이란 잠시 이 세상에 들른 것이오, 죽음이란 잠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생에서 우리가 남길 것이 그 무엇이 있을까? 가끔씩 새벽녘이면 내 기억의 저편에서 육중하면서도 나지막하게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신정일과 함께 떠나는 한국의 사찰 인문기행이 책으로 나왔다.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푸른영토)를 읽다보면 문화유산의 보고라 불리는 한국의 사찰을 둘러보며 우리 강산의 고지넉한 아름다움도 느껴볼 수 있다. 한국의 사찰에는 불교의 자산뿐 아니라 천오백여 년 세월에 걸쳐 쌓여온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 담겨 있다. 깊은 산속에 들어앉은 이곳에서는 흙, 돌, 나무 등 자연의 모든 것이 근심을 털어내라 손짓한다. 화암사, 태안사, 청량사, 관룡사, 용문사, 상원사, 사나사, 미황사, 청량사, 장곡사, 삼화사, 청평사, 천관사, 운주사, 남장사, 북장사, 수종사, 고달사, 신륵사, 동학사, 갑사, 봉서사, 송광사, 위봉사, 회암사, 무위사, 도갑사, 청룡사, 석남사 등 전국 방방곡곡의 사찰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오랜 시간과 수고를 들여 한국의 사찰을 직접 방문하며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와 전설을 비롯한 각종 문화유산을 정리해 놓은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주에서 지내는 신정일 씨는 전주 인근에 있는 완주 송광사에도 다녀왔다. 신 씨는 완주 송광사를 도시 근교에 있으면서 금산사나 선운사 또는 내소사와 실상사에 가려 그윽히 숨어있는 절이라고 소개했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 씨는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20.01.08 16:34

강길선 전북대 교수, 첫 수필집 ‘해월리의 별과 꿈’

늘 바쁜 사람 강길선 전북대 공과대학 나노공학과 교수가 첫 수필집 <해월리의 별과 꿈>(소리내)을 펴냈다. 젊은이들의 고뇌와 공감하며 논문 발표, 특허 출원, 학회 활동 등 공대 대학교수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강 교수. 그가 지난 5년여 동안 지역 일간지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수필집에는 전원생활에서 만나는 자연의 멋과 교육연구 현장에서 느끼는범사의 감사함이 잔잔하게 담겼다. 완주 소양면 해월리에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고 있다는 강 교수는 이곳에서 자라나는 꽃나무풀,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새벌 등 자연에서 느끼는 범사를 무념(無念)하고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압축초성장의 경제발전과 함께 나타나는 사회병리학적인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청춘들과 함께 찾고 있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강길선 교수는 인하대에서 고분자공학을 배웠으며,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생체의공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화학연구원을 거쳐 1998년부터 전북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고분자학회 호남지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세계조직공학재생의학회 아시아태평양 지부장 등을 지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20.01.08 16:3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동화작가 - 이순미 작가 ‘왁자지껄 바나나 패밀리’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본가에서 분가한 우리 가족은 부엌 하나에 방이 달랑 두 칸인 집으로 이사를 갔다. 두 칸 중 한 칸은 누우면 머리와 발이 벽에 닿을 정도로 작은 쪽방이었는데 짐 풀기 무섭게 언니가 차지했다. 침 발라 놓았냐며 따져 물었지만 내 편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같이 밥을 먹고 놀다가도 언니는 시간이 되면 자기 방이라 불리는 곳으로 쏙 들어갔다.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언니만의 방. 지금도 그 방으로 들어가는 언니를 떠올리면 가슴에서 찌르르 귀뚜라미가 운다. 이순미 작가의 <왁자지껄 바나나 패밀리>(살림어린이). 이 동화 속 주인공도 혼자만의 방은 꿈도 꿀 수 없다. 집이 비좁은 탓도 있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는 무려 9명이라는 가족 구성원 때문이다. 이 가족의 일상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세숫대야보다 큰 냄비에 끓인 된장국은 몇 번 떴다 하면 바닥을 드러내고 수북이 쌓였던 반찬은 젓가락질 대전이 끝난 뒤면 공룡 혓바닥이 핥고 지난 간 듯 깨끗하다. 다행히 누구하나 투정부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약용은 7명 형제 중 가운데 끼인 넷째다. 낀 아이답게 약용은 있는 듯 없는 듯 순하고 성실하다. 약용은 단 한 번도 식구가 많은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친구 동하가 요즘 세상에 식구 많은 건 이상한 거다라는 말하기 전까지. 그 후로 약용은 식구가 많은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일까? 약용은 가족 얘기만 나오면 움츠러든다. 그러던 중 누나 핸드폰을 부수었다는 오해를 받고 약용은 혼자만의 방을 만들어 자유를 만끽한다. 과연 약용의 자유는 오래 유지 될 수 있을까? 가족을 부끄러워하면 꼬리표가 되지만 자랑스러워하면 이름표가 된다. 가족을 부끄러워하는 약용에게 영어 선생님의 충고는 가히 머리에 쏙 들어찬다. 가족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해서 정석도 없고 해답도 없다. 그러나 한창 민감할 나이의 아이들에게 어떤 가족을 두었냐는 삶의 중요한 척도일 수 있다.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동화 속 에이미 선생님, 약용이 아빠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기죽어서는 안 된다고 실패와 성장을 지켜봐주는 가족이 있어서 너는 행복한 아이라고 자분자분 말을 걸어보자. 가족을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말할 이름표가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처럼 오늘 우리 가족의 이름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둘이 사는 해님 달님 가족, 두 가족이 합쳐진 비빔밥 가족, 식구가 많은 왁자지껄 바나나 패밀리 가족. 이름표를 붙이며 가족과 눈을 맞춰 보자.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낯부끄러운 말이 방언처럼 터져 나와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른다. * 김근혜 동화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선물로 등단했다. 현재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서논술 지도를 하며 글을 쓰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0.01.08 16:15

인생길 삼독과 팔고, 시조에 품어

메마른 땅 거친 산을 땀방울로 일군 자리 / 삽날 끝에 묻은 꿈이 용케도 돋았구려 / 여름내 쓰다듬는 정을 한 바구니 담으리 - 시조 땀방울에 젖은 보람 전문. 민전 정교관 선생이 시조집 <땀방울에 젖은 보람>(도서출판 동경)을 펴냈다. 표제시 땀방울에 젖은 보람은 시조시인이 된 경제학도, 정교관 선생의 <시조생활> 제108호 등단작. 늦둥이로 등단하여 어설픈 말 조각들을 주워 모아 설익은 시조집을 엮어보려 하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정교관 선생은 왜 시조를 짓는가 스스로 묻는다. 그러면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 휴머니티, 시대정신을 연소시켜 영원을 탐구자 함이었다고 답한다. 세계전통시인협회 유성규 회장은 정교관 선생의 작품은 철학성이나 예술성이 두드러져 모두들 놀라게 했다며 그를 한국의 자랑이라고 추켜세웠다. 시집은 제1부 산촌생활, 고향생각, 제2부 4계절 생각, 제3부 농촌사랑, 나라사랑, 제4부 시문회수업, 제5부 동시조, 제6부 여백 단상, 제7부 시문회 자료 작품, 제8부 덧붙임 등 총 8부 204쪽으로 구성됐다. 문학평론가 김봉군 시조시인은 시조집 평설 노작의 보람과 초월의 시학을 통해 민전 정교관 선생은 인생길의 삼독(三毒)과 팔고(八苦)를 극복초월하기 위해 바위와 소나무 표상의 강건성에 의지한다며 그의 시조에 일관되어 흐르는 에너지는 긍정적 세관과 낙관적 비전이며, 허다한 인생고, 시대고를 초극하게 하는 것은 시인의 결곡한 신앙이다고 평했다. 정교관 선생은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원장, 한중 경제무역 촉진협회 고문, 중국 계속교육 연합대학원 객좌교수를 지냈다. 현재 전국새마을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새마을 운동의 서천>, <새마을 교육행정의 특성과 운영원리>, <여래미리 높은 재>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9.12.31 19:2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소설가 - 이광재 ‘나라 없는 나라’

사람은 무엇을 위해 싸우며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자, 그 방법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 이광재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를 추천한다. 수확을 얻으려는 자 논을 갈 듯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자 저들은 묵은 세계에 날을 박아 숨을 끊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1894년 5월 11일 황토현 전승일로부터 125년이 지난 2019년에 이르러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지정되었다. 2020년은 동학농민혁명 126년이 되는 해이고,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이 된다. 고부민란으로부터 1년여에 걸쳐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의 동학농민군은 뒤에 항일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그 맥락은 31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역사적 사료가 되는 개인의 시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다시 겸허해지는 시간의 경계를 건넌다.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는 현란할 만큼 매력적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인물의 힘과 문체가 그것이다. 첫째로, 시대의 상징을 관통하는 힘을 이해하는 것이 소설의 출발이다, 또한 가장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다가서는 것이 제목이다. 이광재 작가는 전봉준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의 세상은 이 세상 너머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이란 저 너머에 있을 어떤 것이고 유토피아 또는 꿈같은 것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탈하는 장면에서, 싸움을 멈추라는 어명을 두고 병사 하나가 일어나 들고 있던 소총을 바닥에 내리쳐 두 쪽을 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나라 없는 나라》195쪽) 둘째로, 이광재 작가는 인물의 중심에 전봉준을 두고, 동학농민과 함께 현실적으로 연대했던 대원군이 어떻게 됐나를 세웠다. 변화하는 백성 상으로는 을개로서 대변하게 하고, 당시 조선 젊은 지식인이 어떤 생각을 하며 정치사에서 어떤 역할을 차지했는지를 다뤘다. 세상의 중심을 향해 육박하는 큰 힘이 백성임을 깨닫고 두려움을 느끼는 대원군을 향해 전봉준은 반도 없고 상도 없이 두루 공평한 세상은 모두가 주인인 까닭에 망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에게 소중하여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강병한 나라 아니옵니까?라며 거리낌이 없다. 전봉준과 대원군, 대접주와 두령들, 을개와 갑례, 이철래와 호정, 장팔이와 손네. 단지 이름만 나오는 것까지 포함해서 육십여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세대가 다른 사랑법도 애절하다. 인물의 형상화를 통해 소설 역시 우리 삶의 터이며 작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직립이 가능해지는 세계라는 가능성을 배운다. 글쓰기의 실제가 시대와 삶의 모법 답안은 아니라 해도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담기 때문에 《나라 없는 나라》가 주는 열망은 뫼비우스 띠가 되어 독자에게 돌아온다. 독서의 시작과 끝이 독자인 것처럼. 셋째로, 작가의 문체다. 일상적이지 않은 의고체의 낯섦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잠시 책을 덮게 했지만, 바로 책장을 열고 각각의 문장을 더듬게 했다. 이광재 작가는 서술어조차 긴장을 놓지 않는, 작가적 책임감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단편에서 느낄 수 있는 문장의 맛을 장편에 표현해냈다. 또 그는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나라 없는 나라》 이후 전혀 다른 문체인 《수요일에 하자》로 승부를 걸었다. 이광재 작가의 다른 글도 추천한다. 우리는 어둠을 원하지 않는다. 평화롭고 따뜻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서울로 압송되어 함거에 실렸던 전봉준의 사진 한 장, 그 눈빛의 날카로움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꿈꾸기 때문이다. 농묵 같던 어둠이 묽어지자 창호지도 날카로운 빛을 잃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을 기억한다. *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정숙인 소설가는 역사를 마주보는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백팩과 빛의 증거와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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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9:22

사랑과 그리움, 사유 시로 풀어내다

정읍 출신인 황정현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첫 입맞춤으로 시작하기>(도서출판 북매니저)로 사랑과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걸작을 향한 발버둥과 밤샘을 건너가는 고투에도 능력 밖의 거룩한 시를 꾸미려 했기에 거의 미완의 졸작이라고 소감을 쓴 황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을 내는 만큼 안이한 시적 감상을 조금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이번 시집에는 수필 같은 사유 시와 시의 운율을 닮은 수필을 나란히 차려놓았다. 문학의 깊은 사유나 철학이 아니라 감정의 본능적 묘사가 운문으로 튀어나오면 시가 된다는 믿음에서다. 그러한 시의 상차림에는 지각과 경험의 음식이 담겨 있다. 내 첫 입맞춤이라는 단상을 시작으로 △사랑이 싹트다 △사랑이 자라다 △사랑이 익어가다 △사랑이 그리움 되다 등 4가지 주제로 사랑에 대한 생각을 나눠 엮었다. 황정현 시인은 정읍 신태인 출신으로 익산 남성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와 원광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계간 <시선>과 <에세이 문학>을 통해 시와 수필 문학계에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두리문학, 영호남수필, 큰샘수필 회원으로 있으며 전북문예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계절의 연가>와 수필집 <시간의 바람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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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경
  • 2019.12.31 16:29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차승호 "동화,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는 세계"

차승호 동화와 동시를 쓰고부터 매년 연말이 조마조마하다가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연필을 더 깎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2월 중순이 넘도록 통보가 없어서 신춘문예하고는 인연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말은 우울하게 보내지 말라는 듯 위로의 전화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화와 동시를 쓸 때면 늘 마콘도가 생각납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공간이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이 갖는 의의보다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콘도에 더 매료되었습니다. 마콘도에서는 흙을 먹을 수도 있고,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닐 수도 있고, 연금술로 금을 만들 수도 있는 동화적인 공간입니다. 마녀처럼 오두막에서 수십 년을 지낼 수도 있고, 나무에 묶였지만 나무의 일부가 되어 살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마법의 공간인 셈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연필을 깎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콘도와 같은 나만의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보이는 시골집의 밤처럼 말이지요. 오랜 시간 시를 쓰다가 몇 해 전부터 동화와 동시를 쓰고 있습니다. 결과를 빨리 보고 싶은 조바심이 생기지만 문학에는 왕도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우직하게 걸어가겠습니다. 천 리를 보고자 누각의 한 층을 더 오르는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기회를 준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차승호 작가는 충남 당진 출생으로 지난 2004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얼굴 문장>, <난장>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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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우주인 할아버지 - 차승호

어른용은 어디 있지? 아빠는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쇼핑 사이트를 뒤지고 있어요. 우주복을 사기 위해서지요. 할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서 우주복을 사오라는 전화가 왔거든요. 우주복은 위아래가 붙어 있고 밑이 트인 옷이에요. 아기들이 주로 입는 옷이지요. 밑이 똑딱단추로 되어 있어서 기저귀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셔요. 벌써 일 년이 다돼가요. 지난겨울 마당을 치우다 쓰러지셨거든요. 그 뒤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요. 오른손이 떨려서 밥을 먹는 것도 힘들지요. 어른들은 중풍이 와서 그렇대요. 아빠, 이번에도 할아버지랑 짜장면 먹나? 그럼,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얼마나 좋아하신다고.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좋아하셔요. 이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아서 거의 씹지 않고 삼켜요. 그래도 짜장면을 드실 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얼굴이 환해져요. 턱받이와 얼굴에 짜장 범벅이 되어도 합죽하게 웃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아빠도 나도 짜장면을 좋아해요. 아빠, 손 짜장면이 뭐야? 손 짜장면? 면발을 기계로 뽑지 않고 손으로 뽑아서 만드는 짜장면이지.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거든. 할아버지하고 단골로 가는 요양원 앞 만리장성은 손 짜장면집이에요. 만리장성 주인아저씨는 러닝셔츠 차림에 하얀 위생 모자를 쓰고 있어요. 짜장면을 주문하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좌우로 머리를 흔들고 밀가루 묻은 손으로 짝짝 박수를 두 번 쳐요. 면발을 뽑기 위한 준비운동인가 봐요. 그러고는 밀가루 반죽을 늘이기 시작해요. 고무줄처럼 늘인 밀가루 반죽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작업대에 쿵쿵 내리쳐요. 마른 밀가루도 팍팍 뿌려요. 늘인 밀가루 반죽을 반으로 접고 또 작업대에 쿵쿵 내리쳐요. 밀가루 반죽을 늘이고 접다보면 신기하게도 어느새 가느다란 면발이 돼요. 한 번 접을 때마다 면발이 곱빼기로 불어나거든요. 쿵쿵, 쿵쿵, 쿵쿵. 21=2, 22=4, 24=8. 면발 내리치는 소리에 맞춰 나도 모르게 구구단을 외우기도 해요. 쿵쿵, 쿵쿵. 면발 불어나는 신호예요. 짜장면이 곧 나올 것 같아요. 찾았다. 대구에 있는 공장에서 만드나 보네. 어른용 우주복을 찾았나 봐요. 그럼 할아버지가 우주인이 되는 거야? 우주인이 되려면 머플러도 있어야 되는데. 머플러? 어린 왕자는 긴 머플러를 하고 있잖아. 어린 왕자가 머플러를 하고 있다고? 어린 왕자는 B612호 소행성을 떠나 지구별에 왔거든요. 그러니까 우주인이 틀림없지요. 아빠, 어린 왕자 안 봤어? 항상 머플러를 하고 있다고. 글쎄, 할아버지는 어린 왕자도 아닌데 머플러가 필요한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평소에 할아버지 생각을 많이 해요. 요양원으로 모신 것에 대하여 늘 마음 아파해요. 어떤 때는 밥 먹다 말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봐요.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거라고 짐작해요. 아빠, 밥! 요양보호사 아저씨는 가끔 할아버지가 아빠를 찾을 때가 있다고 해요.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는 얘기예요. 농사일을 하는 아빠는 생각만큼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해요. 앞으로 좀 더 자주 와야겠네요. 말끝을 흐리며 아빠는 멋쩍게 웃어넘기지만 두 눈이 금세 붉어져요. 그럴 때면 나는 얼른 이불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 발을 주물러드리며 아빠에게 말을 걸어요. 아빠, 할아버지 발 정말 크다. 그치! 지난 할아버지 생신 때였어요. 생신은 집에서 보내야 된다며 할아버지를 모셔왔어요. 할아버지도 기분이 좋은지 주름살투성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어요. 할아버지가 웃을 때마다 주름살도 따라 웃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기름진 음식을 드셔서 그랬는지 할아버지는 여러 번 설사를 하셨어요. 아빠는 밤새 기저귀를 갈고 물휴지로 할아버지를 닦았어요. 아빠, 출발 안 해? . 다음날 아빠는 자동차 시동을 켜놓고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았어요. 부릉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차 안 가득 떠다녔지요, 운전대에 손을 얹은 채 아빠는 말없이 앞만 바라봤어요. 아빠는 할아버지를 다시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어요. 아빠, 울어? 울긴 이 녀석아! 깊은 한숨과 함께 차가 출발하자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았어요. 뼈만 남은 할아버지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어요. 손가락이 몰려서 조금 아팠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어요. 요양원까지 가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내 손은 따뜻하게 아팠지요. 할아버지, 짜장면 먹으러 가야지? 우주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듬성듬성 남은 이로 벙긋벙긋 웃어요.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우주복을 입고 나니 할아버지는 영락없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인 같아요. 와, 할아버지 짱! 할아버지, 광선검은 어디 있어? 내가 엄지를 치켜들자 할아버지가 뭐라고 뭐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 뭐라고? 웅얼웅얼, 웅얼웅얼! 할아버지는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해요. 할아버지 말을 해석하려면 할아버지 입모양을 살펴야 돼요. 어떤 때는 바짝 귀를 대고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어요. 이 빠진 우주인 말이라서 어려운가 봐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우주인도 아니면서 아빠는 할아버지 말을 용케 알아들어요.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맞장구도 쳐요. 그류그류, 그렇구먼유. 아빠는 할아버지를 만나면 그동안 동네에서 일어난 일들을 시시콜콜 얘기해요. 내 친구 현주네 검정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는 얘기까지 해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그렇다니께유, 글쎄! 어떤 때 보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말을 하고 아빠는 아빠 말을 하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하고 얘기할 때면 아빠는 항상 사투리를 쓰는데 한 번도 시골을 떠난 적이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그런가 봐요. 그게 우스워서 깔깔거리며 웃은 적도 있어요. 아빠는 어떻게 할아버지 말을 잘 알아들어? 할아버지 얼굴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다 나타나거든. 어, 정말? 어른들은 얼굴만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다 안다는 게 정말인가 봐요. 너희들 얼굴에 다 나와 있으니까 핑계 대지 마라! 선생님도 숙제를 해오지 않은 친구들을 꾸중하실 때면 꼭 얼굴에 다 나와 있다고 하시거든요. 와, 아빠! 선생님 해도 되겠네! 휠체어에 옮겨 타고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드시러 가요.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울 때마다 요양보호사 아저씨랑 아빠는 땀을 뻘뻘 흘려요.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 몸이 굳어가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할아버지와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건 즐거워요. 여느 때처럼 면발 뽑는 모습을 구경하며 모람모람 주방에서 넘어오는 짜장 냄새에 군침을 삼켜요. 주방에서 넘어오는 짜장 냄새는 언제나 군침을 퍼 올리는 마중물이에요. 할아버지는 꿀꺽, 아빠는 꿀컥, 나는 꼴깍. 그러고는 할아버지 한 그릇. 아빠 한 그릇, 나도 한 그릇 짜장면을 먹어요. 맛있어요. 할아버지, 또 올게. 요양원에 할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헤어질 때면 짜장면 사드리러 또 오겠다고 약속을 해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도 찍고 손바닥을 펼쳐 복사도 해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아침저녁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조심조심했지만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요양원에서 한밤중에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열이 심하게 올라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다는 전화예요. 하루에 두 번 면회가 되는 중환자실이래요. 아무래도 연세가 많으셔서. 의사 선생님이 심각하게 말했어요. 중환자실 면회를 다니면서 짜장면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요.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드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니 못 드셨기 때문이에요. 간호사 선생님이 미음만 겨우 드신다고 걱정했어요. 미음도 몇 숟가락 안 드세요.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 하셨어요. 우주인 말도 하지 않고 벙긋벙긋 웃지도 않았어요. 정신이 들면 입으로만 힘없이 웃었어요. 폐렴이 문제야. 환절기를 잘 넘겨야 할 텐데. 아빠는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할아버지가 훌쩍 우주여행을 떠나시는 건 아닐까?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는 요구르트 한 병도 다 못 드셨어요. 몸은 점점 새우처럼 둥글어졌어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것 같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자주 깊은 잠에 빠졌어요. 몇 번 잠자는 모습만 보다가 왔어요. 어디서 전화만 와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할아버지 안부를 묻는 동네 어른들께 아빠는 또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할아버지! . 아버지, 저희 왔는데 눈 좀 떠 보세요! . 날이 밝았어요. 바람도 불지 않고 햇볕이 따뜻해요. 어제저녁엔 비가 조금 내렸거든요. 아빠는 날씨가 나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하늘은 맑고 투명해요. 우주정거장으로 가는 길.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란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요. 할아버지가 우주여행을 떠나시는 날이에요. 나는 할아버지 사진을 넣은 커다란 액자를 들었어요. 액자 속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셔요. 직장 때문에 자주 내려오지 못했던 엄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요. 고모도 고모부도 슬퍼해요. 할아버지는 누에고치 같은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나무 캡슐에 들어가 계셔요. 우주여행용 캡슐 속에 잠들어 계셔요. 할아버지는 잠자는 우주여행을 선택하셨거든요. 나이가 많아서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더 늙어버리면 안되기 때문이에요. 어느 때고 할아버지별에 도착하면 깨어나실 거예요. 할아버지도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몇 번씩 옮기며 노을을 바라볼지도 모르지요. 노을을 바라보며 내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할아버지별에도 짜장면집이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지구별에 다시 올 때까지 만리장성 짜장면집이 장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날 할아버지하고 아빠하고 나는 또 손 짜장면을 먹으러 갈 테니까요. /차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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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우주여행으로 생 마친다는 전개 참신

/안도 시인아동문학가 올해 신춘문예에서 동화는 106명이 117편을 응모했다. 이를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출신 김근혜, 이경옥, 장은영 동화작가들의 예심을 거쳐 9편이 본심에 올려졌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올해 응모 동화들을 보면 대부분 애완동물, 치매 및 노인문제, 다문화 등의 소재가 많았다. 이 외에도 가족 간의 사랑, 현실비판, 자연보호, 이웃돕기 등의 주제에다가 아이들의 마음세계를 양념처럼 담은 작품들이었다. 동화의 본질은 어린이를 위해 쓴 문학의 한 갈래로써 동심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따라서 동화를 창작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대상이 어린이임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올해 신춘문예에서는 성인들의 이야기지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본선에 올라온 9편중에서 깜장묵 베프, 홀씨요정 들레, 뻥튀밥 귓밥, 우주인 할아버지 4편을 최종심에 올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깜장묵 베프는 다문화 가정이야기인데 제목부터 아무리 통용되고 있는 외래어라고 하지만 베스트 프렌드도 모자라 베프라는 줄임말이 동화에서까지 난무하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홀씨요정 들레는 고향집에 민들레를 남겨놓고 향수를 느끼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제목 홀씨는 식물이 암컷과 수컷의 교배 없이 이루어지는 생식을 위하여 형성하는 세포로 민들레는 홀씨가 없어 잘못된 표현이다. 이 두 작품은 내용에서도 일상의 이야기를 너무 작위적으로 꾸며서 신선감이 떨어진다. 뻥튀밥 귓밥은 허풍이나 거짓말 따위의 속어인 뻥을 소재로 나쁜 소리를 많이 들으면 왕귓밥이 생긴다는 내용의 신선한 전개를 했는데 산만한 구성과 과다한 주제의식이 노출되었다. 반면 우주인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손쉽게 갈기 위해 입은 옷을 우주복으로 명명하고 일상을 우주와 결부시켜 마지막에는 우주여행으로 생을 마친다는 전개가 참신해서 당선작으로 뽑았다. 그러나 동화적 감각은 좋지만 이상과 현실의 관계 설정이 모호해서 주제가 빈약했다. 앞으로 신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미래세계에 대한 비전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어넣어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어린이 세계를 주제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의 삶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끌어들이면 좋은 동화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안도 시인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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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오은숙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은 진실을 마주하고픈 호기심"

오은숙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당선 소감을 쓰는 일이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시인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할까. 아니면 BTS의 노래를 검색해서 그것으로 채울까.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만을 나열하고 끝낼까. 생각만 오갈 뿐 적당한 것이 없다. 귀한 지면을 낭비하는 꼴이다. 어떻게든 내 안에 있는 것을 써야 한다. 소설이나 다를 게 없다. 그렇게 끙끙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순간이지만 오래도록 살아 있는 느낌. 느낌 안에 숨어 있는 감정. 이런 것이 내게는 소설적 진실이다. 진실을 마주하고픈 호기심. 호기심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다. 소설적 진실에 대한 천착. 천착으로 끝나지 않는 소통. 현재로선 그것이 소설에 대한 나의 비전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소감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해 난감하다. 이럴 땐 기분 전환하듯 문단이라도 바꿔야 한다. 어둑한 밤이다. 지나온 삶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잘 가라고. 다시는 비틀거리지 말고 기웃거리지 말고 어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라고. 글을 쓸 때마다 찾아오는 절망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말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쓰라고. 미래의 삶 또한 같은 말을 하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좋다. 기꺼이 가겠다. 나는 애써 두려움을 떨쳐낸다. 어머니, 아버지와 삼 형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가족으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당신들의 안녕을 빕니다. 소설을 쓰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신 윤후명 선생님과 동서문학 멘토링의 연으로 만나게 된 이태형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다연 선생님과 현숙, 현진 언니 당신들이 주신 사랑 고마워요. 항상 기억 할게요. 효진, 희단, 서진과 등단을 제 일처럼 기뻐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끝으로, 세상에 눈을 뜨게 한 K와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오은숙 작가는 현재 요양 병원 근무하고 있으며 서울을 오가며 창작 수업을 들었다. 앞으로도 일하며 글쓰는 단순한 삶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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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납탄의 무게 - 오은숙

안전수칙과 총기 사용법을 들은 후였다. 장전된 총을 들고 있던 나는 박의 옆 라인에 자리를 잡았다. 십 미터 사격이라 그런지 표적지와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청원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을 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계속 지켜보겠다는 듯 서 있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왼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납탄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사격이 끝나면 총기도 수거해야 한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말했다. 알겠으니 자리 좀 비켜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가 스타디움식 의자가 수백 개 놓여 있는 관중석 뒤로 갔다. 그가 통로 쪽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린 나는 들고 있던 총과 총알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총 길이는 생각보다 길었고 총알은 장난감 총에나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짝이 맞지 않는 볼트와 너트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들이 들고 다니던 총이 아니었다. 권총이 아닌 것 같아. 혼잣말이었는데 목소리가 컸는지 박이 듣고 말했다. 공기 권총이라 일반 권총보다 길어서 그럴 거라고. 권총의 종류가 많다는 것인지, 일반 권총과 공기 권총만 있다는 것인지 그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쏴. 그녀가 툭하고 뱉은 후 옆으로 선 채 총을 들어올렸다. 그래, 그냥 쏘면 되지. 나는 총을 든 손 위로 시선을 옮겨 팔꿈치 안쪽을 보았다. 네 개의 붉고 작은 결절은 한 시간 전보다 더 부어올랐다. 엄마에게 물린 자국이 두드러기처럼 부어서 가라앉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매를 맞거나 꼬집혀도 피부 재생이 빨랐는데 나이가 들면 체질도 변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엄마를 자개농 안에 넣기도 했잖아. 그때도 그냥 하면 되는 거였어. 삼 년 전, 나는 장편 영화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가까스로 얻은 기회였으나 제작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가 수정되기를 원했다. 수없이 고친 시나리오에 트집을 잡으며 시간을 축내던 나이 어린 제작자의 마음을 나는 돌리지 못했다. 결국, 장면 하나 하나에 제 입김을 넣으려던 제작자에게 맞서고 말았다. 그는 설정만 좋고 아무 것도 없는 시나리오에 투자할 사람이 자기 말고 누가 있는 줄 아느냐고 했다. 너 말고도 그런 식으로 뜯어고칠 사람은 많아, 하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뭐, 너? 이게 아주 이성을 잃었구나. 마흔 넘어 영화 한다고 징징대는 것이 불쌍해서 봐줬더니. 제작자는 나를 몰아붙였고 나도 지려 하지 않았다. 막말이 오갔고 찍기로 한 영화는 엎어졌다. 그즈음, 집 주인이 월세 보증금을 올리는 바람에 방을 빼야 했는데 더 싼 월세 방을 찾아 서울 변두리를 전전하다 영화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 정상에 오르기는커녕, 산 아래서 등산로 입구만 찾아 헤매다 힘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이불에 생리혈을 묻혔을 때나 도시락 통을 꺼내 놓지 않은 다음날, 씻지 않은 도시락 통에 담긴 미끈거리던 밥알을 씹었던 때가. 그럴 때 엄마는 내가 두 아들보다 게으르고 못돼서 평생 고생할 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고 생각하며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둠을 뚫고 달리던 기차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내 주제에 감독은 무슨, 하며 자조 섞인 웃음을 웃었다. 박은 졸업 한 뒤 바로 방송국에 취직했다. 그녀를 통해 들은 바로 그녀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그녀를 지지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졌으며 야무진 그녀는 원하는 것을 놓치거나 실패해 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언제나 그녀를 믿어주었던 그녀 엄마 덕분이리라. 누구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걸맞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 나는 박을 알게 된 후로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취업한 그녀가 첫 월급을 탄 날이었다. 이차도 내가 살게. 한정식 집을 나오며 그녀가 말했다. 다섯 명의 밥값을 치른 후였다. 마흔 전에 집 살 거라며, 무리하지 마. 누군가 말했고 친구 중 한 명이 회비를 걷자고 거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 모임이라 서로의 사정을 뻔히 알아서 생각해주던 말이었다. 그녀는 첫 월급이라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이런 식으로 살면 집은커녕 생활비도 힘들겠다. 방송국을 아무나 들어가나, 저도 기분 내고 싶겠지. 평생 가도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마흔 전에 집을 산다고. 그러니까, 철이 없는 거지. 저마다 한 마디씩 뱉은 후 잔을 들었다. 나는 노가리를 뜯으며 생각했다. 그녀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화장실로 간 뒤에 나누던 대화여서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노가리만 뜯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함께 잔을 들어올리자는 시늉을 했다. 박은 내가 월세방에 살면서 영화 현장을 전전할 때 국내는 물론 세계의 정치, 경제 뉴스를 파더니 주식을 시작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았지만 투자를 하려고 그녀처럼 국내외 정치, 경제를 공부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손해를 몇 번 본 후, 당시 작은 아파트 한 채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벌었다. 아파트 값이 모아지자 과감히 주식에서 손을 뗐다. 동기들은 평생 운을 다 쓴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한 종목의 주식을 사고파는데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대가(代價)로 여겼다. 박을 보면서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영화에 쏟아붓겠다고 마음먹었다. 착실히 돈 모아서 시집가라던 엄마 말은 귓등으로 날려버렸다. 박은 삼십 대 중반에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역시, 난 년이야. 집들이에 초대된 동기들은 말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에서 한 번도 눈을 돌린 적이 없었다. 야무진 그녀라면 제작자와 마찰을 빚기 전에 다른 대안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향으로 내려오던 날 용산역까지 배웅 나온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선택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선택했으니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나도 그러길 바랐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뒤뚱거리며 걷는 엄마 손을 잡고 근처 공원에 다녀온 날이었다. 밤근무를 나가기 전 한 시간 정도 자려고 알람을 맞출 때 박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항상 똑같지, 하고 답했다. 사이를 두고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짧게 들이마신 뒤 내뱉은 긴 숨이었다. 그녀는 아파트를 팔고 작은 빌라로 이사할 생각이라며 똑같은 방식으로 숨을 쉬었다. 왜, 하고 묻던 내 목소리가 그녀의 한숨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정적이 흐른 뒤 그녀가 대뜸 말했다. 땅으로 꺼지고 싶어.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어. 나는 또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일이야 항상 있지. 그녀가 더는 묻지 말라는 듯 자신이 뱉은 말을 눙쳤다. 그러더니, 그녀가 아니면 추석이나 설날도 그렇지만 어버이날조차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를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재혼도 하지 않은 채 자신만 바라보고 산 엄마가 짐으로 느껴진다고. 너만 바라보고 너만 믿어주기 바빴던 엄만데, 왜.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삼켰다. 몇 주 전, 그녀의 전화를 다시 받았을 때 그녀는 내가 일하는 요양 병원으로 엄마를 옮기고 싶다고 했다. 그녀 엄마는 오 년 전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요양원 생활을 하다가 몇 달 지나지 않아 서울 근교에 있는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 엄마는 특이하게 정수기 물 대신 특정 상표의 생수를 마셨다. 요양원에서 오백 밀리미터 생수 한 병을 하루에 다 마시도록 했는데 요양 병원에서도 같은 상표의 물만 고집했다. 그 물을 마시면 기운이 난다고 했기에 그녀는 매번 생수를 사가지고 엄마를 만나러 가거나 생수를 주문해 택배로 보냈다. 생수와 간식만 해결되면 내가 일하는 병원에 엄마를 맡기고 일 년 정도 인도로 나가 있고 싶다고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 사직서를. 그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버티라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면 다시 돌아와서 무얼 하겠냐며 다그쳤다. , 생수와 간식을 부탁하면 안 될까. 카드 주고 갈게. 그녀 집에 얹혀살았던 적이 있던 내게 그녀가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었다. 더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알겠다고 말함으로써 그녀가 선택한 것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녀는 확답이라도 받고 싶은 듯 몇 번이나 생수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어깨라도 토닥여주고 싶었던 나는 걱정 말고 준비나 잘 하라고 했다. 이삿날을 알려주면 오프를 받아 올라가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세계는 명확해지고 삶은 어떤 식으로든 뚜렷해질 것이라고 믿었던 오래 전 생각은 틀렸다고. 주식을 해서 돈을 벌었어도 그때뿐이었고 영화 감독을 꿈꾸며 청춘을 보냈어도 남은 것은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늙은 엄마가 전부인 우리는 마흔 여섯의 나이에 흔들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두 시간 전, 박을 만나 그녀 엄마 입원 수속을 도왔다. 병원에 미리 말해둔 터라 수속은 금방 끝났지만 그녀는 엄마가 점심을 먹는 것까지 보고 가자고 했다. 어서 올라가서 짐 싸야지. 먼 길 떠나는 사람이 왜 이렇게 굼떠. 그녀 엄마가 병실 안에서 서성이던 박을 부르더니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이거 갖고 어서 올라가. 빨리 가야, 빨리 오지. 박의 엄마는 박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그런 뒤 박을 밀어내던 낯빛이 차가웠다. 쌀쌀맞다기보다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듯 올찬 표정이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해내려고 잠시 떠나는 것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그러니 성공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병원을 나온 후 박은 서너 시간 여유가 생겼다며 임실에 있는 종합 사격장에 가자고 했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고 기본 열 발만 쏘고 오자고 해서 나도 그러자고 했다. 사격장으로 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창밖 풍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도심을 빠져 나온 지 한참이 지났을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엄마를 자개농에 가뒀어. 운전을 하고 있던 박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나도 그래. 추임새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네 엄마는 우리 병원에 있잖아. 내 목소리가 퉁명스러운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 자개는 아니구나. 박은 여전히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말을 하고 나서야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그녀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책감이라도 떨쳐내려고 그녀에게 엄마를 자개농에 가뒀다고 말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어쩌면 그녀도 그녀만의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내게는 말하지 못한 그녀만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는 시골 길을 지나 산 중턱으로 오르자 사격장 건물이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 막혔다. 자개농 안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니 급하게 나오면서도 안방에 있는 에어컨을 켜고 나온 것은 다행이었다. 입구를 달리한 건물 세 동 앞에서 박이 주춤거렸다.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반 년 전까지 그녀의 연인이었던 남자는 은퇴한 사격 선수였다. 나는 그녀가 그와 함께 이곳에 왔던 기억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와 함께 사격장을 찾았던 그녀가 나를 만나고 갔었는데 그때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었다. 저 바윗돌을 지났는데. 박은 손가락으로 중앙에 세워져 있는 바윗돌을 가리켰다. 바윗돌에는 사격인의 요람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이 연습을 하거나 대회를 치르려고 많이 찾는다고 그녀가 말했다. 장난감 총조차 잡아본 적 없었던 나는 그렇게 그녀를 따라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탁, 소리가 났다. 총을 쏜 것은 박이었다. 공중으로 날아간 탄알이 정확하게 표적지 중앙을 뚫었으리라. 기대감을 안고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모니터를 보았다. 6점이었다. 사격을 해본 사람치고는 좋은 점수가 아니었다. 첫발이라 긴장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표적지가 있는 곳으로 총을 겨눴다. 총 머리 부분에 패인 홈은 가늠자, 총구 쪽에 볼록 솟은 곳은 가늠쇠였다. 달리 말해, 가늠자와 가늠쇠는 음과 양이었다. 0.5밀리미터가 될까 싶은 음과 양이 평행을 이룰 때 방아쇠를 당기라고 청원 경찰은 말했다. 수평을 이룬 음과 양은 미세한 떨림에도 쉽게 틀어졌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고 최대한 손 떨림을 없앴다. 십 미터 밖 검은 동그라미를 향해 총구를 맞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탁, 소리가 난 후 내 앞에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여러 개의 검은 동그라미 중 하나에 구멍이 뚫렸다. 9점이었다. 처음인데 잘 하네. 박의 칭찬을 듣고도 나는 무덤덤했다. 처음인데 잘 하네. 오래 전에 그 말을 들었다면 엄마를 자개농에 가두지 않았을까. 열다섯 살 때였다. 하루는 엄마가 고등어 두 마리를 던져주며 말했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찌개를 끓여 놓으라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명태나 고등어로 찌개를 끓인 적은 있었지만 엄마가 깨끗하게 손질한 것에 칼집을 넣어 끓인 것이 전부였다. 엄마는 배를 가르고 핏물을 뺀 뒤 토막 쳐서 김치와 물을 넣으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바쁘면 고등어 손질을 내게 맡기고 나가버렸을까.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용기를 냈다. 도톰하고 하얀 고등어 배 위에 칼을 댔다. 솜씨가 없어서인지 칼이 무뎌서인지 쓱싹대길 반복했다. 피가 섞인 내장이 칼끝을 비집고 나올 때 엄마가 돌아왔다. 처음인데, 잘하네.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배 갈라서 핏물 씻어내고 토막 치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엄마가 뱉은 말은 송곳이 되어 내 가슴을 후볐다. 엄마는 딸인 내가 그 정도는 도와야 한다며 악다구니를 더 퍼붓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 엄마가 자개농을 배달시켰다. 가구점 직원이 자개농을 안방에 들여놓을 때 나는 끓고 있던 고등어찌개 간을 맞추고 있었다. 석자 반 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요. 들뜬 목소리가 안방 너머에서 들렸다. 엄마가 가구점 직원에게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농을 왜, 어울리지 않게 우리집에 놓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고등어찌개를 끓여놓으라고 해놓고 자개농을 사러 갔다는 사실이 얄궂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자개농에 내가 밀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나는 곱씹었다. 처음인데 잘 한다는 칭찬 한마디 없이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던 엄마의 악다구니를. 탄알을 넣고 방아쇠 왼쪽으로 길쭉하게 휘어진 쇠막대기를 앞으로 꺾었다. 딸각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방아쇠를 건드리면 탄알이 나갈 수도 있다고 했기에 총을 든 손을 조심스럽게 쭉 폈다. 총을 쏘는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했지만 매번 다른 느낌이었다. 숙련자들도 그렇다고 박은 말했다. 매번 같은 일상이지만 정확히는 다른 날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처음에 9점을 쏜 것과 다르게 내 점수는 내리 평균점을 밑돌았다. 박은 6점을 쏜 후로 갈수록 점수가 올라 방금 전에는 10점 만점을 받았다. 우리는 탄알 두 발을 각각 남겨 놓은 상태였다. 남은 두 발 중 한 발이라도 표적지 중앙에 구멍을 뚫었으면 하고 바랐다. 박을 따라 하느라 한 손으로 총을 쏜 탓에 아까부터 심하게 손이 떨렸다. 가늠자와 가늠쇠는 평행을 이루지 못하고 들쑥날쑥 요동을 쳤다. 테이블에 총을 내려놓고 오른 손을 탈탈 털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삼각근을 주물렀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근육은 알이 배긴 듯 뭉쳐 있었다. 총 무게가 1.5킬로그램이래. 박이 납탄을 집으며 말했다. 무겁다는 것인지 가볍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총을 들고 있는 동안 내 손은 심하게 떨렸지만 박은 알지 못했다. 무게가 1.5킬로그램이라는 말만 하고 자신의 총을 들어올렸다. 나도 그녀같이 한 손으로 총을 들며 웅얼거렸다. 너는 무겁지 않은 거구나. 탁, 소리가 났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녀의 모니터에 10이라는 숫자가 더해졌다. 처음에 나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든 후 방아쇠를 당겼다. 자세에서 초보자 티가 나는 것 같아 박을 따라 옆으로 서서 한 손으로 총을 쏜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별 것도 아닌 것을 따라 하느라 애먹은 것은 아닌가. 멋쩍은 마음에 총을 들고 있던 손으로 화장기 없는 볼을 문질렀다. 볼에 닿은 손가락이 이상하게 꿉꿉했다. 엄마의 굽은 등허리 감촉이 손가락 끝에 엉겨 있는 듯했다. 어제 저녁, 나는 욕조 안에 앉아 있던 엄마 등을 밀었다. 일하면서 살림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엄마를 씻기지 않아 밀어도 밀어도 때가 나왔다. 그럴수록 나는 더 세게 밀었다. 너무 세게 밀어 붉게 변한 살을 보자 아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는 오히려 시원하다고 했다. 영화 한 편 볼 여유 없이 집과 병원을 오가며 엄마를 돌봤어도 엄마 살에서 떨어져 나온 때가 몽글몽글 손에 잡혔다. 제 엄마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내가 박의 엄마에게 간식과 생수를 사다주며 얼굴을 비추겠다고 했다. 허세였나, 오지랖이었나. 쓴웃음이 나왔다. 어딘가로 떠나고픈 마음은 없었지만 인도로 떠나는 박이 부러워졌다. 엄마의 아픈 손과 아픈 손이 닿지 않는 몸에서 떨어져 나온 때가 욕조 안을 둥둥 떠다녔다. 무엇인가 되겠다며 버둥거렸던 지난 시간이 스쳤다. 고생만 하다가 떨어져 나왔구나, 둥둥 떠 있는 때 같아. 불쑥 떠오른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미련스러웠다. 머리를 가로 저었다. 엄마 등을 위아래로 밀었다. 손가락에 마치는 등뼈 열두 개가 빨래판 물결인 양 울퉁불퉁했다. 더욱 세게 밀었다. 그 옛날 엄마가 해주던 목물처럼 까슬하고 아프게. 때를 미는 일이 힘에 부쳤다. 허리를 펴고 이마에 흐르던 땀을 훔쳤다. 안 아파? 엄마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응, 시원해. 엄마는 둥둥 떠 있는 때를 손으로 퍼서 욕조 밖으로 걷어냈다. 감각이 무뎌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시원하다는 말이지. 나는 살갗이 붉어진 엄마 등을 보았다. 응. 들려오던 목소리가 태연했다. 왠지 억울했다. 응, 이라는 대답이 고등어 배를 갈라 찌개를 끓여 놓으라고 하고서는 자개농을 사왔던 날 내게 했던 말로 들렸다.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침이 되어 상을 일찍 물렀다. 박을 만나려면 삼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아빠는 매 끼니 뒤에 달달한 믹스 커피를 두 잔 타서 엄마와 함께 마셨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작년 이후로 그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커피 두 잔이 담겨 있는 쟁반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식초 탄 물에 마른 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푸르딩딩한 구름과 희뿌연 달 아래로 두 마리 학이 부리를 맞대고 서 있는 자개농 문을 닦았다. 아무리 닦아도 코팅 된 자개는 제 빛을 내지 않았지만 엄마는 수시로 걸레질을 했다. 오래된 기억이라고 해서 다 지워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지워진 듯 사라진 듯 기억에도 없다가 어느 날 불쑥 드러났다. 엄마 등을 밀었던 전날과 마찬가지로 자개농을 들여놓던 날이 떠올랐다. 그러지 말고 그 속으로 들어가 살지 그래. 나는 깨끗해졌지, 하고 묻던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그게 무슨 말본새냐며 한 마디 할 법도 했지만 엄마는 조용했다. 말없이 자개농을 닦았다. 삼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자개농에 밀렸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자개농만 닦고 있던 엄마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작은 방으로 가서 책상 밑에 있던 박스를 뒤적였다. 장편 영화를 준비할 때 썼던 소품이 들어 있는 박스였다. 박스 속에서 노란색 끈 하나를 꺼냈다. 일 미터 가량 되는 긴 끈을 양쪽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첫 출근하면서 한 번 신은 싸구려 인조 가죽 구두를 일 년이 지나 신발장에서 꺼냈을 때 삭아서 문드러진 걸 보고 황당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물건에도 기운이라는 것이 있어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빨리 헤진다며 제 물건 하나 간수하지 못한다고 나를 나무랐었다. 나는 긴 끈을 대충 뭉쳐 안방으로 갔다. 자개농 앞에 있던 엄마가 방으로 들어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 엄마가 외마디를 질렀다. 한쪽 문이 열려 있는 자개농 바닥에 앉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개농 속으로 들어가라고! 나는 두 다리를 방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버둥거리던 엄마의 다리를 들었다. 그러자 엄마가 마구잡이로 발길질을 했다.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아프지 않았다. 내 겨드랑이 안쪽 살을 꼬집어 비틀었다. 순간, 섬뜩한 기운이 들었다. 얼얼한 통증이 머리까지 올라왔다. 엄마 살은 삶은 호박처럼 물컹거려도 자개농 문짝처럼 단단해. 봐봐. 자개농에 부딪혀도 아무렇지 않지. 이봐, 크기만 했지 아귀힘조차 없는 내 손을. 나는 지금 엄마를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자개농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또 꼬집으려고 하지. 몇 개 밖에 없는 이로 어딜 물려고 하는 거야. 그래, 물고 싶으면 물어. 여길 봐. 엄마 이가 내 팔에 깊게 박혔다 사라졌어. 난 피하지 않았다고. 이봐, 깊게 박혔던 이가 자국을 남겼지만 피가 나거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진 않았어. 누군가 울음소리를 듣고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엄마 옆엔 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옷장 안으로 들어가세요. 엄마를 가까스로 자개농 안에 넣고 자개농 손잡이 양쪽에 끈을 묶어 야무진 매듭을 지었다. 일인용 침대와 탁자, 의자를 자개농 앞에 일렬로 늘어뜨렸다. 매듭이 풀려도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자개농 문 밖에 있던 틈을 없앴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부터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내 행동은 치밀했다. 울음소리와 함께 쿵, 쿵, 쿵 소리가 들렸다. 나는 쉬지 않고 주먹으로 옷장 문을 두드리던 엄마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탁, 소리가 난 뒤였다. 처음 9점을 쏘았던 자세로 방아쇠를 당긴 뒤라서 어떤 점수가 나올지 궁금했다. 모니터를 확인했다. 표적지에 그려진 원 안에도 밖에도 총알이 뚫고 나간 자리가 없었다. 총알은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어안이 벙벙했다. 안전사고를 우려해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했던 청원 경찰이 생각났다. 스타디움식 의자에 앉아 있던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까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표적지를 다시 보았다. 아홉 발을 쏘았으나 탄알 구멍은 여덟 개뿐이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탄알 흔적으로 방금 전, 나는 총을 쏘았지만 총을 쏘지 않은 듯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오늘 아침을 거슬러 어제 저녁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총을 테이블에 내려놓다가 팔꿈치 안쪽을 보았다. 엄마에게 물려 부어올랐던 곳이 가라앉았다. 박이 볼까 싶어 가리기도 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붉은 결절이 사라졌다. 박은 이번에도 만점이었다. 왜 그렇게 잘 쏴? 나도 알려줘. 탄알 구멍이 가운데에 몰려 있는 박의 표적지를 보며 말했다. 탄알 한 개만 남겨 놓은 상태라 잘하고 싶었다. 9점은 바라지도 않았다. 지금 상황이라면 5점 이상만 나와도 족했다. 옆으로 쏴, 자세로 서 있던 그녀가 들고 있던 총을 내렸다. 으응, 죽이고 싶은 걸 떠올렸어. 왜, 있잖아. 머릿속에서 맴맴거려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게 되는 것. 죽이고 싶은 게 그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을 죽이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 있는 엄마를 죽이고 싶은 것인지, 아파트를 팔고 빌라로 이사하게 만든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의지가 되어주는 친구지만 박과 나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애써 캐묻지 못하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탄알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오가는 납탄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있는 작은 것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1.5킬로그램의 공기 권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게였다. 실제보다 너무 커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이었다. 오래 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납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머리를 굴리자 아슴푸레 돋아나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단편 영화를 찍고 있었으니 십 년은 족히 넘었다.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집에 내려왔다 올라가면 왕복 차비를 써야 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고향집을 찾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돈도 없으면서 왜 자꾸 내려오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늦은 나이에 향수병에라도 걸린 듯 그렇게라도 집에 다녀와야 한 달을 견딜 수 있었다. 하루는 집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뇌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뇌경색이 원인이라며 퇴원 전에 한 번 다녀가라고 했다. 나는 그 달에 다녀왔으니 다음 달에 가겠다고 했다. 다음 달 초가 되어 고향에 내려갔다. 엄마가 퇴원하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촬영과 아르바이트 일정이 빠듯해서 내려온 지 만 하루가 안 되어 일찍 집을 나섰다. 새벽 기차를 탈 것이라고 말해둔 터라 간다는 말도 않고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서리가 내린 새벽은 어두웠다.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녹슨 대문을 밀고 나오는데 대문 밖에 엄마가 서 있었다. 자다 일어나 바로 나왔는지 위아래 내복만 걸친 채였다. 잠 안자고 왜 나와 있어. 나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너 가는 것 보려고 나왔지. 키 작은 엄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알아서 갈 건데 나왔느냐며 추운데 어서 들어가라고 엄마를 재촉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팬티 고무줄 끈이 보이는 내복 안에 손을 넣으며 내 쪽으로 바투 다가섰다. 흰 머리카락이 내 턱을 쓸어서 엄마 키가 이렇게 작았나, 생각할 때 엄마가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편마비가 생겨 어정쩡하게 구부러진 손으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가 손 안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감으로 알았다. 됐어, 괜찮아. 그렇게 말한 뒤 모래를 씹어 먹을 정도로 고생해야 한다며,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에게 지폐를 돌려주려 했으나 엄마는 차비라도 하라며 받지 않았다. 고생이 많지, 우리 딸. 이전까지 들어보지 못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가슴에 박혔다. 무겁고 무거운. 한 없이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 엄마가 먼저 내게 등을 보였으면, 하고 바랐다. 엄마는 내가 가는 것을 보겠다며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대문 안으로 밀고 등을 돌렸다. 힘들면 내려와. 등 뒤에서 들리는 낮고 어눌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괜스레 서러웠다. 쓸쓸한 여운으로 남은 목소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걸었다. 깜깜한 새벽 도로를 걸으며 손 안에 있는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느꼈다. 몇 장일까. 걸음을 멈췄다. 한 번,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을 더해 접은 곳을 펼쳤다. 쫙 펴진 지폐는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그 돈을 평생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월급날을 앞두고 돈이 떨어졌을 때 집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나는 그 돈으로 칠 천 얼마 하는 무궁화 표를 샀다. 이후로 지금껏 그날 일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 탄알을 넣은 후 총을 들었다. 1.5킬로그램짜리 총은 버둥거리던 엄마를 자개농 안에 넣을 때처럼 무거웠다. 탄알 하나의 무게와 오래전 종이 지폐 무게까지 덤으로 올려져 있어 그럴지도 몰랐다. 떨리는 손을 한 손으로 받쳤다. 맴맴거려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게 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이 내게는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떨어. 그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진작 마지막 탄알까지 10점을 맞췄고 내가 총을 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딴 생각하지 마. 박이 말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것만 권총은 아니라며 그냥 쏘든지 아니면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녀 말 대로면 나는 여태껏 권총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권총은 아니지.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늠자와 가늠쇠가 가까스로 수평을 이루자 방아쇠를 당겼다. /오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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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고달픈 삶, 폐쇄 모티브로 그린 독특한 구성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7편이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작품은 기성 작가들의 작품과 다른, 새로운 소재와 구성으로 주제를 심화해야 한다. 응모작품 대부분 이러한 요구를 잘 만족시키며 일정 수준에 이르렀으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조금씩 흠결을 지니고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서사를 이끄는 구성은 완벽한데 주제를 심화시키지 못했거나 결말에서 집중력이 흩어지는 작품이 의외로 많았다.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치밀하고 완벽한 서사구조가 완성되어야 훌륭한 소설이 된다. 그런 가운데 심사위원의 시선을 끈 작품은 납탄의 무게 불편한 편의점 10cm다. 심사위원들이 다시 이 세 작품을 정독한 결과 불편한 편의점은 오늘날 갈등구조를 일으키는 사회현상을 편의점이란 공간으로 이동시켜 아르바이트 청년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으나 결말 처리가 미숙한 점이 아쉬웠고, 10cm는 의료현장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서사구조가 시선을 끌었으나 주제를 심화시키지 못한 점이 흠결로 남았다. 납탄의 무게는 처음부터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작품이다. 사격장을 배경으로 불편한 가족 관계와 고달픈 삶을 폐쇄 모티브로 그린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 나와 친구 박을 대칭 관계에 두고 엄마를 공통분모로 등장시켜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이를 10m 사대(射臺)를 배경으로 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표적지를 고달픈 삶의 현장과 오버랩(overlap)한 구성이 매우 신선하다. 친구 박과 달리 나에게만 무거운 납탄은 바로 그녀의 삶의 무게다. 서사를 전개하는 소설 미학 또한 나무랄 데 없다. 특히 마지막 한 발을 쏜 뒤, 점수 확인을 생략한 채 작품을 마무리한 결말 또한 산뜻한 여운을 남긴다. 작가로서 독립하기에 충분한 요건을 잘 갖춘 작품이다. 당선한 분에게 축하를, 응모한 모든 분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호운 소설가, 우한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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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김애자 "대충이란 것에는 좋은 열매 열리지 않는다는 것 알아"

김애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고단한 즐거움입니다. 뼈대를 세우고 옷을 입혀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려면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몇 달을 전전긍긍하며 앓기도 했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기가 죽었습니다. 타고난 글재주도 없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밀어 넣고 어정거리며 빠져나갈 틈만 엿보았습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그럴듯한 열매 하나 맺지 못했어요. 캄캄한 벽에 부딪혀 좌절할 때마다 그만하자고 중얼거리지만 자꾸 뒤돌아보느라 결단하지도 못했습니다. 십여 년의 미련을 접기보다 한해만 더 해보자고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묵정밭을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작정하고, 때마다 거름을 주며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이란 낭보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세상에 대충이란 것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와 땀을 쏟은 만큼의 결실이 신의 조화고 섭리였습니다. 몇 번씩 주저앉아도 늘 묵묵히 지켜봐 주던 가족이 울이 돼 주었기에 튼실한 열매를 얻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함께 격려하며 서로의 허물을 감싸고, 때로는 쓴소리 아픈 소리로 날카롭게 평해준 포곡수필의 글동무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게으름 부릴 때마다 열정을 쏟지 않는다고 죽비를 내리치듯 꾸지람하다가도, 의기소침해 있으면 어느새 위로와 격려로 다독여 주시던 스승님께 이 영광을 올리고 싶습니다. 쳐진 어깨를 다시 추스를 수 있도록 제 글에 눈 맞춤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선으로 선해 용기와 격려를 주신 뜻이 헛되지 않도록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봅니다. 장미꽃이 아닌 잡초라도 나름의 존재가치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으니, 더디고 힘들지만 한 걸음씩 저만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애자 작가는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구 계명대, 경북 경운대 교수를 지냈다.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부문 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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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3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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