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2-07 03:17 (Sat)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사람들 chevron_right 일과 사람

[일과 사람] 연휴 잊고 구슬땀 흘리는 전주 풍남중 씨름부 선수들

민족의 명절인 설을 앞두고 모두가 명절 분위기에 젖어있는 순간에도 명절과는 무관하게 훈련에 열중인 민속경기 씨름 선수들. 전주 풍남중 씨름부(감독 전영배) 9명의 선수들은 11일에도 전주 신흥고 씨름훈련장에서 샅바를 질끈 매고 모래판에서 뒹굴며 막바지 훈련을 했다. 오는 3월부터 열리는 각종 전국 씨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안다리, 호미걸이, 배지기, 뒤집기 등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전영배 감독은 "지난해 말부터 동계훈련에 돌입했다. 1년 농사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며 "힘만 세다고 해서 상대방 선수를 넘어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샅바를 잡는 손의 위치부터 시작해 갖가지 씨름 기술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선수들의 일과는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 오전에는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아령 들기 등 체력을 보강하고 오후에는 실전을 대비해 기술위주의 훈련이 진행된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진행되는 스파르타식 훈련이지만 아이들은 "힘든 것은 따로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훈련을 잘해도 정작 체중조절에 실패하면 그간의 고된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는 것."체중이 불어 다이어트를 할 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아요. 훈련량을 2배로 늘리고 식이요법을 하지만, 그래도 살이 빠지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요.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을 때 정말 끔찍해요."명절에나 맛볼 수 있는 음식들도 체중조절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초등학교 4학년 때 모래판에 입문한 주장 김민혁(3학년)은 "모래를 밟는 느낌도 좋고 기술을 걸어 상대방을 이겼을 땐 기분이 짜릿하다"며 "강호동처럼 모래판 최강자로 우뚝 서 '천하장사 만만세' 노래에 맞춰 가마를 타고 씨름판을 돌고 싶다"고 말했다.지난해 소년체전 90kg 이상 무제한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건 서남근(3학년)도 "주특기인 '배지기' 기술이 잘 통해 우승할 수 있었다"며 "중도포기란 없다. 이만기 선배처럼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이름 석 자를 모래판에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전 감독은 "일부 사람들은 씨름에 대해'과격하고 힘만 쓰는 무식한 운동'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머리와 세밀한 기술이 필요한 운동"이라며 "민속운동인 씨름이 발전할 수 있도록 편견을 버리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20여년의 역사를 가진 풍남중 씨름부는 소년체전을 비롯해 각종 전국대회에서 매년 우승을 차지할 만큼 씨름의 명문 팀이다.

  • 사회일반
  • 신동석
  • 2010.02.12 23:02

[사람] 홍춘수 한지장 기능보유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닥나무 껍질처럼 거칠어진 손. 어려서부터 해온 일이라 다른 일은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전통한지를 지켜가는 자부심이 있다.11일 전라북도지정 무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기능보유자로 승격된 홍춘수씨(68·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닥나무 껍질에서 한 장의 한지를 만들어 내기까지 백번의 손길이 필요해 '백지'라고도 불리는 전통한지를 그는 아버지 고 홍순성씨의 뒤를 이어 45년째 전통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완주에서 태어난 홍씨는 열두살 때 처음 종이 뜨는 일을 접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전주시 서서학동의 종이 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 일은 생업이 됐고, 이제는 큰사위 노정훈씨가 홍씨 뒤를 이으면서 가업이 됐다.홍씨가 처음 전통한지를 만들 때만 해도 일상 생활에서 한지가 널리 쓰일 때였다. 홍씨는 1963년 임실군 청웅면에 청웅한지를 설립, 본격적으로 한지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색깔과 두께, 질감을 각기 달리한 맞춤형 한지를 만들어 팔았으며, 반응도 좋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장은 활기를 띠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기계로 만든 한지가 등장하고 중국산·일본산 종이가 들어오면서 전통한지 산업이 쇄락하기 시작했다.하지만, 한지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가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공 재료나 화학 약품을 섞어 사용하거나 기계를 대지 않았다. 오히려 천연 재료를 활용해 한지를 다양화하는 데 몰두했다. 황토를 반죽에 섞어 만든 벽지용 '황토지'와 단풍잎이나 김을 무늬로 끼워넣은 '단풍지'나 '김종이' 등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1998년에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및 노동부 기능전승자에 선정됐으며, 2006년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가 됐다.문화재청은 "홍춘수씨는 특히 전통한지 제조 기술을 전승, 우수한 종이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돼 한지장 기능 보유자로 인정하게 됐다"며 "한지장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이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랜 기간 전승활동에 전념해 온 전승자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은 물론, 전승환경에도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10.02.12 23:02

[일과 사람] 전북대 환경공학과 김종관씨

"살기 좋은 전라북도 그리고 새만금을 온 세계에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새만금 환경지킴이' 발대식에서 대표로 나선 전북대학교 환경공학과 4학년 김종광씨(26)는 지난 1월 환경부 홈페이지에서 '새만금 환경지킴이'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전공과 관련된 정보뿐만 아니라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환경부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다 우연히 공고를 보고 의욕이 생겼다는 것이다."사실 처음엔 '새만금 환경지킴이'가 어떤 활동을 하는 지 몰랐어요. 막연히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새만금의 환경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저 스스로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해보고 싶은 것도, 할 것도 많다는 김씨. 이번 환경지킴이 활동으로 우리 지역의 환경에 대해 더 가깝고 깊이 있게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김씨는 환경지킴이 활동이 전북에 살면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새만금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경지킴이를 하면서 현장을 접하게 되면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스스로도 반성하게 될 것 같다는 김씨는 앞으로 주어진 임무에 적잖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세계로 도약하는 전라북도가 되는데 일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만큼 제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환경지킴이로서 현장 감시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도 적극적으로 할 계획입니다."그동안 오랜 시간 환경에 대한 논란으로 빚어진 새만금에 대한 도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점이 아쉽다는 김씨는 환경지킴이 활동을 통해 안에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다짐을 전했다.김씨는 지난해 환경부에서 주관한 '대국민 환경 분야 넛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환경 정책에 대한 관찰력과 창의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환경학도인 그는 공모전뿐만 아니라 전공과 관련된 많은 경험을 쌓아 취업할 계획도 전했다."요즘 환경 분야가 가장 큰 이슈잖아요. 특히 저탄소 녹색 성장을 이끌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아직은 교외 활동과 학교 공부를 병행하느라 힘들 때도 있지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자신이 있습니다."전북에 맑은 물의 희망을 전하고, 자연과 더불어 발전하는 새만금, 전북을 만드는 것.밝은 웃음과 야무진 꿈을 가진 김씨와 '새만금 환경지킴이'의 바람이다.

  • 환경
  • 백세리
  • 2010.02.11 23:02

[사람] 정인옥 대표, 소충사선문화제전위 후원회장에 추대

"고향사랑의 뜻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아울러 지역문화 개발과 임실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습니다"9일 소충사선문화제전위 정기 이사회에서 후원회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된 정인옥(67·태광전자정밀산업 대표) 회장의 다짐이다.21세에 군 입대를 위해 고향인 성수면 왕방마을을 떠난 정회장은 부산에서 카츄사로 입대, 제대 후 73년에는 주변의 도움을 얻어 대원전자정밀을 창업한 자수성가형 기업인.또 76년에는 서울 공성전자공업을 인수해 지금의 태광전자정밀산업으로 발전시켰고 70여종의 계측기를 생산, 현재 전 세계에 수출하는 중견기업이다.그는"언론을 통해 부정적인 임실의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아팠다"며 "이제라도 고향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가졌다"고 설명했다.2008년 전북과 전남·광주 등 출향인 80만명이 거주하는 부산에서 재부산호남향우회 회장직을 맡은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고향에 눈길을 돌렸다.지난해 이석용 의병장의 소충제례 행사를 지켜본 그는"나라를 위해 순국한 고향 선배의 위업에 감동을 받았다"며 후원회장직을 맡기로 결심했다는 것."임실은 발전할 수 있는 자원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주민의 성품이 좋은 것 같다"며"나머지 인생은 고향 발전을 위한 봉사에 전념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문화일반
  • 박정우
  • 2010.02.10 23:02

[일과 사람] 퇴직 공무원 출신 모임 '보람회'

지역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퇴직공무원들의 모임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지난 2000년 3월 14일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퇴직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직된 보람회(회장 강성원·전 도지사).전직 도지사와 시장, 군수를 비롯한 직급별 공무원 20명이 참여해 구성됐지만 이후 취지에 동감한 현역 직장인들도 참여해 현재 유효회원은 50명을 넘겼다.회원 황병근씨(77.전 전북도립국악원장)는 "더 늙으면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정성이모이면 큰 사랑이 되고,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랑을 실천하면 보람도 훨씬 크게 돌아오거든요"라며 모임의 의미를 전했다.9일 정오, 전주시 풍남동 한국집에서 보람회원 20여명은 10주년을 자축하는 조촐한 모임을 열고 정성껏 모은 성금을 사랑의열매에 전달했다. 이날 축하모임에는 그간 보람회의 도움을 받은 이들도 참석해 그간 품어 온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회원들은 매월 2만원의 회비를 냈고 이렇게 모인 돈은 고스란히 불우이웃 돕기에 쓰였다. 정기 모임도 술자리 대신 오전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며 진행한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더 많은 이웃을 돕기 위해서다.10년간 120차례에 걸친 정기 모임으로 모은 회비 8298만원은 모두 이웃에게 돌아갔다.보람회에게 받은 도움을 잊지 못해 이날 자리에 참석한 오모씨(55·전주시 중화산동)는 "어려운 형편에 폐결핵에 걸려 건강을 잃고 고생이 많았는데 보람회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데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고모씨(56·전주시 동완산동)는 "고혈압에 합병증이 닥쳐 일곱살 난 손자를 돌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보람회 덕분에 병이 나아 손자를 잘 돌볼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초창기 퇴직자들로만 구성된 탓에 회원들은 대부분 70세를 훌쩍 넘긴 원로들이다. 최근 40대의 막내 회원이 가입하면서 80세의 최고령 회원까지 연령폭도 넓어졌다. 도움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나이나 직업이 구분선이 될 수는 없다고 회원들은 말한다.강성원(78) 회장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며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고, 내 의지로 움직일 힘이 있을 때 누구든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뜻'이었다"고 모임의 의미를 설명했다.

  • 사회일반
  • 백세리
  • 2010.02.10 23:02

[일과 사람] 택시운전하며 노숙자 장례 치러주는 김종림씨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사랑실은 교통봉사대 남원지부 회장이었던 김종림(52·남원시 동충동)씨는 회원들과 함께 '사랑의 장례 치르기'를 해왔다. 사랑실은 교통봉사대는 1997년 심장병 어린이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해 시작된 모임으로 서울을 비롯해 41개 지역을 엮는 사랑의 네트워크. 회원들은 자신의 차에 사랑의 껌통을 설치하고, 1일 찻집, 심장병 어린이 돕기 등을 통해 수술비를 모으고, 연고가 없는 이들을 위한 장례식까지 치러왔다."가족, 친척이 없다면, 누가 이들을 챙겨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시설에 연락해 연고가 없는 분이 돌아가시면, 연결해달라고 부탁했죠. 제대로 된 수의를 입혀드리고, 상주가 돼서 제사를 지내며 빈소를 마련하고 운구하는 일까지 동참하게 됐어요."김씨는 그들이 싸늘한 냉동고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며 적은 돈이라도 모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서 못다한 효도를 한다는 마음으로 장례를 치렀다는 것이다.이어 그는 지난해 독거노인으로 돌아가신 70대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며 자신이 한 봉사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연고가 없는 이들의 장례를 네 번이나 치러준 상태.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던가. 그의 아내 김희자(52)씨도 장애인 복지단체, 노인회관, 요양병원 등을 돌며 무료 미용봉사를 하는 '사랑의 가위손'이다. 그는 이런 봉사에 불평불만 없이 뜻을 함께 해주는 아내가 늘 고맙다고 말했다.대학생이 된 아이들에게도 사랑 나눔은 늘 강조된다. '손해보는 걸 아까워하지 마라!', '남을 배려하고, 착하게 살아라!' 그는 아이들에게 큰 재산은 물려줄 순 없지만, 값지고 고귀한 선행을 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그에게 고민이 있다면, 사랑실은 교통봉사대 회원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것이다. 택시 경기가 안 좋은 탓에 이직자가 늘어 20여 명 만 남은 상태. 갈수록 마음이 각박해져가는 증거가 아니겠냐고 했다."주변에서는 나를 마음 좋은 부자로 여기는 것 같지만, 돈이 많아 나서는 일은 아닙니다. 내세울 것은 별로 없지만, 내가 사는 보람을 느끼는 유일한 일이 남을 돕는 일이예요. 이렇게 사는 걸 숙명으로 여기고,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이와 같은 선행으로 그는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2001)', '대한 적십자 총재 표창(2009)'을 받은 바 있다. /나숙희 여성객원기자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2.09 23:02
사람들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