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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한효수 양지중 교감, 전북대서 박사학위

"늦게나마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칠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그동안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가족에게 감사합니다."22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2009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학교 문화공간 개선사업 참여 경험이 학생들의 정의적 영역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으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주 양지중학교 한효주 교감(56).학위수여식장에서 만난 한 교감의 얼굴에는 지난 1997년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교육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포기해야 했던 박사학위의 꿈을 이뤄냈다는 희열과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대학 졸업 당시 공무원이시던 아버지가 퇴직하면서 집안이 어려워졌어요. 지도교수님 등이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라고 권유하셨지만, 집안의 큰딸로서 동생들 앞날을 생각하니, 제 욕심만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어요."대학원 진학 꿈을 접은 한 교감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교육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이후 30여 년 동안 교육자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4명의 동생이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신적·물질적으로 도왔다.그러면서도 박사학위 취득에 대한 꿈을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다. 이런 한 교감이 젊은 시절 꿈에 다시금 도전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교감으로 승진하면서부터다."승진을 하면서 전문직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더 많은 분야에 대해 알아야 전북교육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원에 다니게 됐습니다."한 교감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 학교생활과 공부, 가정일을 병행하며 젊은시절의 꿈과 능력을 갖춘 전문직 관리자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이제 전문직 관리자가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연구, 개발해 전북교육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이날 한 교감의 박사학위 취득으로, 한 교감의 집안에는 앞서 의학·경제학·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 3명의 남동생을 포함해 5남매 중 4남매가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경사를 맞게 됐다.

  • 사회일반
  • 박영민
  • 2010.02.23 23:02

[일과 사람] 전주덕진자활 희망돌봄사업에 참여한 김미애씨

"한부모가정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지만 실상은 제가 더 많이 배우고 깨달아 가고 있죠. 일을 하고나서 삶에 대한 긴장감이나 재미 역시 커져 올해 한해가 무척 기대 되요."15년차 전업주부이자 중2, 초4학년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김미애씨(39·전주시 인후동)에게 올해는 의미가 큰 해다. 결혼 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일과 아이들 뒷바라지로 보내다 지난해 말, 전주덕진자활센터에서 진행하는 미래희망돌봄사업에 지원했다. 미래희망돌봄사업은 취약계층 아동에게 돌봄과 교육 등 보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여성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KT&G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중앙자활센터와 협약을 체결하고 진행하는 사업이다.지원서에 김씨는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썼다. 아파트 후미진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보면 기어이 찾아가 훈계를 하는 '정의파 아줌마'인데다 사회복지에도 평소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녀들이 커감에 따라 교육비와 생활비 등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했다. 가정을 돌보느라 잠시 접어뒀던 꿈을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펼치는 것이며, 이 꿈의 실현이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아이들과 가깝게는 김씨 가정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김씨는 현재 다문화가정과 한부모가정 자녀 등 초등 3학년과 5학년 아이를 돌보고 있다. 일주일에 5일, 하루 6시간씩 이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을 돌봐주면서 김씨는 자기 자녀들에게 더 충실하게 됐다고 한다."이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돼요. 아이들의 심리도 이해하게 돼 더 좋은 엄마가 되게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도 들어요."김씨는 오는 3월부터는 방과후 지도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교육과정에도 들어간다. 오전에 교육받고, 오후에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더 바쁘게 살아가야 하겠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가 훨씬 크다.김씨는 "일이든, 아이를 돌보는 것이든 간에 뜻은 있었는데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올해는 사이버대학에서 유아교육도 배우며 보람찬 한해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 사회일반
  • 임상훈
  • 2010.02.18 23:02

[일과 사람] 이리향제중풍류 보유 '가야금 명인' 잠들다

"땅 속에 들어갈 때까지 가야금을 잡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던 청파(淸坡) 강낙승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83-나호 이리향제줄풍류 보유자인 강낙승 선생이 지난 13일 오후 7시께 별세했다. 향년 94세.1916년 무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전통가락에 관심이 많아 농악굿이 열릴 때면 그 소리만 듣고서도 장단을 멋들어지게 쳐대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일제시대 경찰에 입문한 선생이 전통음악과 정식으로 연을 맺게 된 것은 1938년 고제시조와 북, 가야금을 배우면서부터. 1946년에는 고창군 흥덕면 진양수 선생으로부터 향제 줄풍류 가야금의 전 바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스승이 익산으로 이사를 하자 그 역시 익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까지 향제 줄풍류를 전수받았다.선생이 마흔이 되던 해인 1956년에는 직장을 이리시청으로 옮겨 아예 익산에 정착했다. 그 과정에서 거문고와 양금, 단소 등 국악의 여러 분야를 배우며 선생은 다양한 기능과 실력을 쌓았다.전통노래인 정가(正歌)에도 관심이 많아 정경태 선생으로부터 시조와 가사, 가곡을 배웠다. 1968년에는 이리정악원을 창립했으며, 1973년에는 남창가곡 26곡을, 1975년에는 가사 12곡을 독창발표했다.선생은 1985년 가야금을 세부예능으로 이리향제줄풍류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리향제줄풍류는 옛 이리인 익산 지역에서 전승되는 음악으로 가야금과 거문고, 양금, 단소, 해금, 대금, 피리, 장구 등 8가지 악기로 8∼15개의 곡이 연이어 짜여 있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는 기악곡을 연주한다.전주전통문화센터의 초대를 받았던 2008년 '명인의 밤' 무대는 모두에게 감동을 줬던 선생의 대표적인 공연. 아흔이 넘은 나이에 제자들과 한 무대에 오른 선생은 "이제 나이를 너무 먹어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공연 같아 오늘 공연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워낙 고령이었던 선생은 귀가 어두웠다. 그러나 베토벤도 청력을 잃었었다며, 연주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청장년층이 대부분인 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에서는 음악적 지주이자 정신적 지주였다.선생은 1976년 전라북도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전북도립국악원 교수와 1997년 한국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 회장을 역임했다.발인은 15일이었으며, 장지는 익산 팔봉공원 묘지다. 유족으로는 4남 2녀가 있다.

  • 사회일반
  • 도휘정
  • 2010.02.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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