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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군산 신흥동 절골길

절골은 우리나라의 옛 지명으로 절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절과 마을을 의미하는 골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합성어다. 신흥동의 절골이라는 지명은 과거 토속신앙의 작은 암자들이 월명산 일대에 많아 절골이라고 부른데에서 유래했다.△시간의 흔적과 공간의 경험오래된 지역을 허물어 내는 정부의 개발정책과 이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 처절하게 붕괴되는 삶의 터전, 이러한 사태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신흥동 절골길은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제강점기 장미동월명동신흥동에는 부유한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주로 평지에 살았으며, 정작 조선인들은 산동네로 쫓겨올라가 산비탈에 무허가로 판잣집이나 천막집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이들은 주로 바다(내항)의 부두노동자였기 때문에 바다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주변 지역에 달동네가 형성됐다.이렇듯 신흥동 절골길은 군산의 역사와 오랫동안 군산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향기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적 이야기로 확장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은 지역교류프로그램으로 도시주의展을 진행했다. 도시주의프로그램은 군산의 독특한 도시구조를 예술적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예술가들은 작업과정에서 도시 공동체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의 과거와 오늘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연계돼 있는 다양한 힘의 구조도 들춰봤다.도시주의프로젝트에는 김상덕 김영경 이정화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오래된 주거공간에 축적된 시간의 궤적과 일상의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작가들은 텃밭 안녕, 신흥동 The Meeting을 주제로 시간의 흔적과 공간의 경험을 추적해 또 다른 세계를 열어보인 것이다.△무궁무진한 콘텐츠의 공간지역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신흥동 골목골목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김상덕 작가는 군산은 까도까도 새로운 것이 나오는 양파 같은 곳이다. 군산은 정착해서 살고 싶은 곳이다. 군산은 흥미롭다. 보물찾기를 주제로 작업하면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가 봤던 곳만 줄기차기 다녔다. 개구리가 작은 우물 안에서 세상을 다 보았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흥동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조금만 깊숙하게 들어가면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된다. 단정하게 빗질되어 있는 길을 걷다보면 내가 어느 시대에 와있는지 아리송하기도 하고, 너무도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면 여기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한다.고 밝혔다.김영경 작가는 군산은 참으로 특별하다. 10년 이상 전국을 떠도는 작업을 계획했는데 군산도 작업해야할 도시 중 하나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전 미리 알아보기 위해 며칠 머무르기도 했다. 장기간 머물면서 작업을 진행하면 밀도 있는 작업이 나온다. 체류하는 도시에 대해 진정으로 느끼고 관찰할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다. 군산은 저에게 감사하면서 사는 삶에 대해 알게 해준 도시다. 더불어 소통의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바꿔준 도시이기도 하다. 군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월명산이 있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집, 그리고 작업해야할 대상이 끊임없이 포착되고 있는데 어찌 군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며 군산에서의 작업에 감사해했다.이정화 작가는 군산은 저 만을 위해 하늘에서 딱 세팅된 레고 마을 같다. 무궁무진한 자언을 가진 마을과 안정적인 작업 환경이 맞춤 형태로 준비돼 있어서 누군가가 던져 주신 것 같다. 레고를 보면 없을 것 같은데 이것저것 다 있다. 요리조리 끼워 맞추면 척척 필요한게 생기고. 이 작가는 군산이 동화속 마을 같다고 했다.△일상을 기록하는 거리문화박물관현재 주말이면 신흥동 절골길 주변 골목골목에는 수백 명의 관광객과 시민들이 다녀간다. 신흥동 일본식가옥을 중심으로 초원사진관까지, 좁고 좁은 골목길부터 넓고 넓은 골목길까지 사람들은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흥동 절골길 주변 골목에는 당대의 문화가 이야기로 녹아있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남다른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버려지고 사멸하는 물건들 혹은 사라지는 이야기들, 이러한 소소한 것들로 가득한 우리만의 거리 박물관으로 변신에 변신을 반복한다.신흥동 절골길 주변 골목은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군산시민의 일상생활 주변에 숨어있는 동시대의 문화자원을 발굴해서 가치를 부여하고, 공유하도록 하는 모습까지 함께하고 있다. 예술작품만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긴 추억이 골목골목에 소장되고, 보존된다는 뜻이다.지나간 것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기억은 신흥동 절골길 주변 골목처럼 공간에 남겨지기도 하고, 골목 한 귀퉁이에 붙어 있던 당대의 영화 포스터 속에 남겨지기도 한다. 때로는 그때를 함께했던 그 연인이 지금껏 이어져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의 주름진 얼굴 속에 남겨진다. 그 남겨진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일.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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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6 23:02

[문화&공감] 고창 상하면 장호어촌체험마을

뭍은, 하루에 두 번, 제 몸 가까이 바다를 품었다 내어놓는다. 한 달에 두 번, 달이 살이 오르면 오를수록, 달이 몸을 부리면 부릴수록 바다는 뭍 깊숙이 스몄다가는 뭍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달아난다. 그리고 드러나는 저 광활한 공간! 갯벌이다. 뭍도 아니고 물도 아닌, 혹은 뭍이기도 물이기도 한 겹쳐 있는 공간, 갯벌이다. 고창은 바다의 고장이다. 리아스식 서해바다의 특징 그대로 갯벌이 제 생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갯벌의 축복이 깃는 고장이다. 덕분에 람사르 습지 인증은 물론,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인증 받았다. 이 갯벌이 그 핵심지역 가운데 하나다. 자연과 인간이 그토록 오래 소중하게 지켜온 약속의 현장. 그 갯벌에 기대어 새롭게 공동체 활력을 찾아가는 장호 갯벌체험공동체를 찾았다.△체험형 공동체로 기지개 켜는 장호마을= 얼마나 미끄러운지 조금이라도 손에서 힘을 빼면 빠져나갈 것 같아요.커다란 임시 조형물에 가두어 놓은 개펄에서 고창 풍천장어를 찾아내고선 땀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고창군 심원면 일대에서 열린 고창 갯벌축제 2016의 한 장면이다. 축제는 갯벌의 생태문화체험, 음식문화체험, 수산물공예체험 등으로 휴가철 전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고창갯벌은 여의도 140배 가까운 새만금 갯벌이 사라진 뒤, 전라북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고창을 이루는 14개 읍면 가운데, 부안면, 심원면, 해리면, 상하면이 바다와 접해 면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다양한 갯벌생태와 만날 수 있다.선사시대부터 그 갯벌을 터전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바다 가까이 자리잡은 고인돌로, 소금 굽는 자염 벌막으로 남아, 고창갯벌의 유구한 이야기를 비치고 있다. 고창의 바다와 갯벌이 그동안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의 손에서 생산과 가공을 통해 소비되었다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소비형태가 진화하고 있다. 갯벌체험이다. 체험을 파는 갯벌은 심원면 하전리부터 심원면 만돌리, 해리면 동호리, 상하면 장호리까지 네 곳이다. 하전과 만돌이 일찍 체험형으로 활성화가 시작되었다면, 장호는 이제 마을공동체가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하며 체험형 공간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반듯한 해안선 가진 장호 갯벌= 장호의 갯벌은 앞선 하전, 만돌과는 판이한 형태와 생태를 가진 곳이다. 고창의 명물, 명사십리(明沙十里)가 해안사구와 더불어 4km가량 펼쳐져 있는 곳, 육지 가까이 모래갯벌이 단단해 걸어도 뛰어도 말을 달려도 거뜬하다(그래서 장호마을에는 승마장이 있다). 우리나라 서해의 지도 가운데 유일하게 일직선으로 반듯한 해안선을 가진 곳, 바로 장호 갯벌이다.장호마을은 총 139가구에 290명이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60대 이상이 주민의 대부분인 초고령 마을이다. 갯살림 말고도 논농사며 고추, 땅콩, 복분자 농사를 짓는 대표적인 반농반어(半農半漁) 공동체이다. 갯살림의 대표적인 것이 청정갯벌에서 길어 올리는 노랑조개와 맛조개, 동죽, 백합 같은 조개류다. 특히나 해방조개, 개량조개라고도 불리는 노랑조개는 맛이 일품이다. 잘 다듬어 칼국수며, 부침개에 넣어 먹으면, 노랑조개칼국수, 노랑조개부침개로 특미를 보탠다.△장호마을 표생원 이야기의 힘= 장호마을에 소금장수 표생원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에는 바다일도 하고 소금장수도 하며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던 효자 표생원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금 팔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나운 맹수를 만나게 된다. 온 힘을 다해 도망을 치다 마을 어귀에 이르러 결국 기력이 다해 쓰러지고 만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맹수들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는데, 기세등등하던 맹수들이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마을을 지키던 당산 수호신이 효자 표 생원을 구해준 것이라 전하는 이야기다. 그 뒤로 정월보름이면 마을사람들은 함께 정성과 품을 보태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마을을 이루고, 마을은 이야기를 낳는다. 마을을 하나의 협력하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도 이렇게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장호마을을 어촌체험공동체로 이끄는 중심에 장호어촌계(계장 표재옥)가 있다. 1970년경 시작된 어촌계는 상근 사무국장 한사람(표안종)을 포함해 모두 43명의 계원이 힘을 보태 운영하고 있다.△다양한 갯벌체험 프로그램= 장호 갯벌체험공동체는 2012년부터 체험공간을 정비하고, 저 너른 갯벌을 가꿔 천천히 갯벌체험을 시작했다. 지천인 조개잡이 체험부터 바닷가에 100여 미터 긴 그물을 치고 양쪽으로 잡아당겨 물고기를 잡는 후릿그물 체험, 바다에 말목을 막고 그물로 고기를 잡는 어망체험, 새우잡이 체험, 사구의 동식물에 얽힌 이야기를 장호 사람들의 입말로 공부하는 갯벌생태체험교육을 비롯해, 철마다 다른 조개칼국수 만들기, 조개껍질 꾸미기, 해변승마 체험까지 다양한 체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너른 명사십리 백사장에서는 갯벌축구, 배구, 족구 같은 갯벌스포츠가 체험객들 발자국을 보태고 있다.갯벌을 바탕에 둔 체험이라 철따라, 날씨 따라, 물 때 따라 제약이 많다. 후발주자인 탓에 인지도를 쉽게 끌어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고민하는 것이 장호와 가까운 체험공동체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가까운 상하농원(매일유업 상하농장에서 운영한다)을 비롯해 염전, 농사, 음식체험 공동체들과 함께다. 도로가 닦여 숨을 죽이고 있는 사구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방안도 찾는 중이다.농사부터 바다, 갯벌, 사구까지 장호가 가진 생태자원을 연결하고, 그 자원을 잘 가꾸어온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겠지요?표재옥 어촌계장이 꿈꾸는 새로운 길에, 농업과 어업, 뭍과 물이 서로를 지탱하며 일구어온 장대한 역사의 흐름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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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9 23:02

[문화&공감] 전주에 둥지 튼 허인석 만화가

만화를 하루 종일 읽는 게 꿈 인적도 있었다. 어른들이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었다. 만화 속에는 상상하는 만큼의 자유로운 세상들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화는 고귀한 회화와 보잘 것 없는 낙서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하며,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 속의 상징들과 매일매일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표현 사이에서 둘 사이의 경계의 탈출을 꿈꾼다. 만화책에서 웹툰 까지 만화는 우리의 일상에 그 어떤 회화보다 깊게 들어왔다. 일상의 삶 그리고 꿈꾸는 삶, 어떤 게 진짜 우리의 삶일까. 뜨거운 여름날 전주 구도심의 만화가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 차이나거리 중국화교소학교 사거리에 작년(2015년)에 들어선 갈라파고스를 탈출한 푸른발 얼가니새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잡화를 팔던 가게였던 이 공간은 작년 허인석(39)작가가 들어오면서 활력 있는 차이나 거리로 변화시켜가며 일상의 시원한 탈출을 꿈꾸고 있다.△차이나거리 한켠에 들어선 공간허 작가는 주변의 젊고 독특한 식당, 공방, 소품가게들과 함께 정기적 프리마켓인 비단길시장을 함께 만들어갔고, 올해는 차이나거리의 진미반점 사장님 도움을 받아 중국화교소학교에서 비단길 시장을 열고 있다. 보따리단, 아워라이프, 푸른발 얼가니새가 기획운영단이며, 12팀 정도의 프리 마켓팀이 참여하고 있다.일상의 모든 것이 흐르는 거리와 상상속의 만화세상이 만나 사람들이 꿈꾸는 모든 것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허 작가. 전주 구도심에서 태평양 갈라파고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상. 고단한 일상과 사람들의 삶이 때론 바보 같지만, 바닷 속 사냥만큼은 담대하게 해내는 멋진 새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어 한다. 푸른발 얼가니새는 동태평양 갈라파고스에서 사는 푸른발이 신비한 가다랭이잡이과의 새로, 스페인 속어인 bobo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뒤뚱뒤뚱 걷다가 그냥 잡혀버리고 마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에서 붙여졌다고 한다.△지역 이야기담는 작가로 유명허 작가는 이야기지도의 작가로 이미 유명하다. 2010년 전주한옥마을 이야기지도를 시작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마을, 동네, 공간들의 모습을 지금까지 계속 표현해 왔다. 전주막걸리지도 일러스트, 슬로시티 전주 한옥마을 느린 우체통 디자인, 전주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전주 생태동물원 일러스트, 전주 청정노송마을지도 일러스트 등 그녀의 그림은 누구보다 보기 쉽게, 하지만,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지듯 과하지 않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전주 뿐만이 아니다. 월악산 국립공원 골뫼골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김제시 벽골제 관광안내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공주산성시장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고산 미소시장, 군산대학교 박물관 기념품제작에 이어 최근 고창 하전갯벌체험마을지도에 들어가는 일러스트까지 그녀의 그림을 찾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씩 둘씩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다.작은 그림 한 장 그리며 살아가는 만화가가 이렇듯 거리의 이야기를 그리게 되고, 또한 단순한 거리, 마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기까지에는 한때 6년간(2008년~2013년) 근무했던 한옥생활체험관에서의 생활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예약운영팀을 맡으며, 매일매일 숙박객들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한옥마을을 찾는 이유, 한옥마을에서 느끼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직접 느꼈고, 변화의 한복판에서 공간의 변화와 사람들의 움직임들을 읽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은 현재의 푸른발 얼가니새를 구도심에 만들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마음에 남는 관광상품 만드는 것 꿈그녀는 공주대학교 만화예술과를 졸업하고, 집근처인 금산사 입구에서 혼자 부채에 동승을 그려주는 노상작가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 속에서 숨 쉬는 작가가 되기를 원하던 그녀는 그때부터 사람들의 일상과 행복이 담겨지는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다. 그녀가 또한 즐겨 그렸던 그림은 야생화나 들꽃들이다. 여리면서도 존재만으로 모든 생명의 이유를 느끼게 하는 들꽃은 그녀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녀에게 한옥마을은 고즈넉한 마음의 거리이다. 상업적이고 욕망에 불타는 거리가 아닌 경기전 은행잎 한 잎 떨어질 때 누군가에게 그림을 건네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진정 행복한 마음의 거리로 한옥마을이 새겨지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정말 좋은, 마음에 남는 관광 상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차이나거리 비단길시장의 기획 운영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워라이프(Our Life)와 함께 푸른발 얼가니새는 동문거리의 감성 소품샵 거기가게를 열어 매장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거기가게는 동문거리의 편집샵 건물인 바람골목의 4층에 위치하고 있다.한옥마을과 차이나거리, 그리고 많은 청년들과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동문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허 작가는 오늘도 작은 자전거에 작은 선글라스를 끼고 그림을 찾아 거리를 다닌다. 푸른발 얼가니새는 디저트 까페도 겸비한, 배도 든든한 따뜻한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새 변신도 준비하고 있다. 구도심의 새로운 장소와 삶을 만들어내고 있는 허 작가의 일상탈출은 사람들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며, 전주 구도심의 젊은 힘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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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2 23:02

[문화&공감] 고창 부안면 구현마을 사람들

농촌 마을의 전통적 공동체성은 수십년 동안 급격히 해체되어 왔다. 공동체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주민들의 삶은 개별화된 방식으로 파편화되고 마을은 텅 비었으며 활력이 없다. 가장 큰 위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젊은 층이 있다 하더라도 삶의 관계는 마을을 떠나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고창 부안면의 구현마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마을이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늙어가던 마을이 젊어지며 생기가 돌고 있다. 연로한 나이의 토박이 이만재 씨는 이 감회를 이렇게 적었다.구현 마을 경사냈네 마을를 들어서는 순간 회관 앞에 벽화꽃이 소리 없이 웃고 있다 이 벽화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뜻이 담아 있는 벽화꽃이라 생각한다 떨리은 솜시로 한나한나 정성을 담아 그려본 벽화일 것이다.구현마을은 현재 25가구에 독거노인 10명을 포함해 4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귀촌한 젊은 주민의 제안으로 2013년 구현골문화자치회라는 주민자치조직을 결성하였다. 우선적으로 문화사업을 선택했다. 해체된 마을공동체를 재생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문화경험과 마음의 소통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정서적 연대, 신뢰, 협동을 다지는 관계망의 재형성을 목표로 했다.△문화사업 통해 이야기 마을로구현골문화자치회가 몇 년 동안 문화사업을 진행해오다보니 구현마을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마을이 되었다. 첫 개시로, 2013년에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글쓰는 마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한글을 모르는 촌로들을 위한 한글반과 한글을 아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글쓰기반이었다. 평생 연필 한번 잡아본 적 없는 황순여 할머니는 노트에 이름 석자를 써놓고선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름 석자는 할머니의 생애사가 담겨 있었을 터다. 손이 떨리고 눈이 가물가물하며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투덜거리면서도 어르신들은 기꺼이 참여하여 탈문맹과 인문학적 문화 경험의 시간을 즐겼다.그이들은 숨겨져 있던 문학적 감성을 드러내고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마을, 가족, 숨겨둔 청춘의 사랑, 농사 이야기 들을 짤막하나마 글로 표현하고 발표하며 서로 공감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정녕 평생 이런 적이 있었던가. 그 성과들은 연말 마을축제 때 발표하고 전시되었으며, <글쓰는 마을 구현골 이야기>라는 마을지로 탄생하였다. KBS1의 <6시 내고향>에도 방송되니 마을 사람들을은 더 없이 좋아했다.알고 보니 촌로들은 이미 시인이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현기 할아버지는 아주 멋진 시를 자필로 남겼다. 시간 따라 나도 따라/ 여기 같이 왔구나/ 어느덧 팔십고개/ 내 몸도 굽어지고/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 박점수 아주머니는 청개구리 운다/ 길 떠난 엄마 생각/ 비는 또 얼마나 올까 라며 하이쿠 시를 썼고, 문순례 아주머니는 엇그제 뽕나무 입이 태어나더니/. 라며 농사 관찰시를 썼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들은, 어쩌면 잎을 입으로 쓰고 싶은 그이의 삶의 말법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무의식적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글쓰기와 이야기의 독특한 경험들은 마을 주민들의 전혀 새로운 삶의 세계였다.△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나서다두 번째로, 구현마을 사람들은 2015년에는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마을 안길의 문화적 공간조성 즉 황토담장 및 벽화 조성을 통해 마을 이야기들을 탄생시켰다. 마을에 잔존해 있는 흙담 이미지를 살려 낡고 허름한 브로크 담장들을 황토로 덧칠함으로써 흙냄새 나는 정겨운 담장으로 조성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공간들에는 마을 이야기가 배어 있는 벽화들을 배치했다. 우리 마을 경사냈네, 글쓰는 마을, 흙담 이야기, 모내기작업반의 기억, 어르신들의 그림 이야기, 구현마을의 사계절, 시인과 아이들 등이 그 구역별 주제다. 모내기작업반의 기억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50여년 전인 1963년의 낡은 사진 한 장, 구현마을 모내기작업반 사진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 사는 김연기 씨의 큰형님 김안기 씨가 소장하고 있는 걸 찾아냈다. 박방영 화백이 그 사진을 벽화로 그대로 옮겼다. 당시 모내기반은 2030대의 남녀 젊은 사람들로 45명에 이르렀다. 모내기반은 간척지 등 부안면 일대의 논들을 도맡아 모내기를 했다. 거머리가 달라붙지 못하도록 사람들은 무릎 아래로 거머리 차대기를 찼다. 점심은 후다닥 집으로 달려가 먹기도 했고, 국수나 튀밥이 때꺼리였다. 마을에 울려 퍼지는 호각소리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이들은 하루를 준비하며 그렇게 40여 일을 모내기하러 다녔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청년들은 지금은 여든 전후의 나이가 되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벽화를 보며 당시의 기억들을 더듬어낸다.△올해는 주민들이 영화 만들어구현골문화자치회(대표 김연기)는 올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세 번째 마을 이야기로, 작은영화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 마을 안길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할 때 기획-설계-시공 과정 모두를 업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주민들의 참여방식으로 진행했듯이, 주민들이 시놉시스를 함께 구성하고 출연배우로 직접 참여하는 영화의 탄생 작업이다. 다큐가 아닌 극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까닭은 시놉시스라는 상상의 공동체에서 가상적 관계를 맺어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현실일테다. 어떻게 히야 혀?, 촌로의 낯선 질문으로 영화 교육은 뜨거운 여름을 달구고 있으나 잘 만들어질 지 아직은 미지수다.마을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50, 60대의 두 가구가 귀촌하면서였다.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작은 노력, 그 초점은 무엇보다도 주민들 마음의 세계의 변화에 두었다.담장이 집주인의 사적 소유물에서 황토담장과 벽화로 조성되면서 마을 모두의 것으로 변화하듯이, 사적화된 마을공간 및 개별화된 삶을 공공화하고 공통감각으로 공감하게 하려는 소통과 관계로서 시도된 문화적 경험들은 어느새 이야기 만들기 시리즈로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그 이야기들이 담아내는 문화공동체, 오늘도 구현마을 사람들의 작은 꿈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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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6 23:02

[문화&공감] 전라삼현육각보존회 전태준 회장

전주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랑거리가 많다. 특히 국악의 본고장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청하 전태준(74세) 명인도 전주의 자랑으로 꼽힌다.선생은 지난 2011년 전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라삼현육각(三絃六角)보존회(제46호) 회장을 맡아 전라삼현육각 계승과 발전에 힘쓰고 있다.선생은 풍남초등학교 밴드부에서 피리를 불면서 악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전주동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신입생 환영식에서 연주를 한 전주농고 농촌예술반(종합예술단) 삼현육각 대금소리에 매료됐다. 전주농고 농촌예술반은 정형인이기주 선생이 지도교사로 있었는데, 전국을 돌며 공연할 정도로 실력이 빼어났다. 선생이 입학할 당시에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공연까지 다녀올 정도였다. 선생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농촌예술반과 함께 공연을 다닐정도로 연주에 푹 빠졌었다.△ 당대 최고 국악인 스승으로 모셔선생은 과수원을 하던 부모님 덕에 대금단소 명인 전추산(본명:홍년) 선생을 독선생으로 집에 모셔 학습했으며, 신쾌동 명인 등이 함께 하던 전주풍류방을 다니면서 향제풍류를 익혔다.학교선후배 인연으로 최낙선 명인에게 대금을 더 배웠으며, 전주에서 활동하던 김동준 명고에게 판소리 지도도 받았다. 이러한 공부를 바탕으로 나름의 대금산조 한바탕을 구성하게 됐고, 명무로 꼽히던 최선금파 선생의 무용반주도 맡았다. 시나위와 합주, 독주 등 활동의 폭도 넓혔다.전주농고에서 만난 정형인 명인은 선생의 예술길을 더욱 풍성하게 안내했다. 정형인 선생은 전통민속음악의 대가인 정자선 명인의 자제인데, 무용과 해금 대금 피리 등에 두루 능했고, 학생 지도도 열정적이었다. 또한 박귀희, 김소희 명창 등이 서울로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텄으며, 최승희 무용가가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분이었다.여성국극단의 임춘앵 명인도 각별한 스승이다. 군대 제대 후 만난 명인을 선생은 평생 이모님으로 모셨는데, 서울무대에 진출하는 통로가 됐다. 시대를 풍미했던 국극단체인 진경단체, 햇님달님 단체 등과의 활동을 통해 음악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되었고, 대금 명인인 김동진 선생과 이생강 선생을 사사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다양한 인연과 꾸준한 공부로 1973년경 내로라하는 예술인만이 활동 할 수 있다던 삼청각예술단 초대단장을 맡아 민속음악계의 명인들과 함께 활동했으며, 1977년에 이생강 명인과 공동단장을 맡았다.△전라삼현육각 재현위해 귀향선생은 재주가 많았다. 짬짬이 서화에도 관심을 가져 1980년에는 한국서화대상전에서 특선을 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선생이 다시 전주로 내려온 것은 1983년 문화재관리국의 전라삼현육각 재현요청때문이었다. 이듬해 6월 전라삼현육각 재현발표회가 열렸다.전주에서 청하 민속악 연구원을 만들어 대금을 지도하는 등 국악보급에 앞장섰다. 1986년 전북도립국악원에 시간강사로 들어갔다가 2001년까지 도립국악원 교수로 활동했다.도립국악원 근무 인연으로 맺어진 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원들은 전부 삼현육각 이수자다. 조용안(장구)단장과 김인두(좌고) 지도위원, 이항윤(대금) 수석단원, 조용오(대금) 부수석단원, 박지중(피리) 상임단원, 조송대(피리) 상임단원, 이재관(피리) 상임단원, 고은현(해금) 상임단원 등이다.△궁중민간에서 연주된 대표음악거슬러 올라가보면 전주에는 전라감영이 있어 의식행사가 많았던 탓에 삼현육각이 자주 연주되었다.삼현육각은 피리2(목피리곁피리), 대금1, 해금1, 장구1, 북1 등으로 구성된 연주를 말한다. 고려시대 이후 삼현육각 편성에 의한 음악은 궁중 연례악에서 주로 사용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역 관아에도 이러한 편성의 연주단이 구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민간에서도 연주됐다. 김홍도의 무악도(舞樂圖)를 보면 알 수 있다.삼현육각편성이 민간화 되면서 인형극과 탈춤가면극 등의 민속놀이 때에도 삼현육각은 필수적이고, 무당의 굿판에 연행되는 무당춤이나 무가의 반주에서도 삼현육각이 기본이다. 삼현육각은 양주별산대놀이와 봉산탈춤, 은률탈춤 등의 반주용으로도 쓰인다.전라삼현육각은 농삼현육각과 민삼현육각이 있었다. 농삼현은 관아의 삼현육각으로 음계가 우조에 가깝고 주로 관아 행사와 무용반주에 사용되었으며, 민삼현은 민간의 삼현육각으로 계면조에 가깝고 주로 민간의 잔치행사에 사용됐다. 농삼현과 민삼현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시김새가 조금 다르다. 전주 삼현은 대금 피리 해금 장고 북이 있고, 무악에서는 단저(단소)도 곁들일 수 있다. 대금은 삼현대금을 쓰고, 피리는 대피리를 쓴다.과거 행사에서 어떤 음악이 연주되었는지는 구체적인 자료가 전해지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을 1989년 6월 전북도립국악단 창단연주회에서 민(民)삼현육각이 연주됐고, 1997년 10월 전주시립국악단 창단연주회에서 농(弄)삼현육각이 복원됐다.△ 전주지역 농삼현만 명맥 유지삼현육각은 각 지방마다 연주됐을텐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곳은 드물다. 해주 삼현육각은 봉산탈춤 및 강령탈춤 반주에, 경기도 광주 삼현육각은 송파산대놀이 반주에 일부 쓰이지만 이들 삼현육각도 거상악과 행악에 쓰는 일이 없어 전승이 끊어질 처지에 있다.서울삼현은 승무 공연으로 악사들이 항상 따르게 되었고, 영남지방에도 고장마다 삼현육각이 있었으나 통영의 북춤과 검무만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승보존되고 있다.전남 고흥과 영광 삼현육각은 이미 전승이 끊어졌고, 전주의 전라삼현육각도 민간에서 하던 민삼현은 사라지고 공연용으로 하는 농삼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선생은 전라삼현육각을 발전시키는 것이 꿈이다. 전라삼현육각보존회가 있지만 이수전수체계가 허술해 아쉽다고 했다. 전통국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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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9 23:02

[문화&공감] 군산 '기와커뮤니케이션'

군산시 상나운길 3길 방향으로 걷다보면 명화학교가 나오고 그 뒤로 빈 의자가 놓여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도시에서는 빈 벤치 하나 찾기가 어려워졌다. 길을 가던 누구든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의자. 바로 근처에 있는 기와커뮤니케이션도 그런 곳이다. 의자와 예술적 감성을 마련해두고, 놓치고 살기 십상인 상생의 소통을 찾게 하는 공간이다.거리에 빈 의자 하나 놓인 걸 보기 힘든 도시. 사람들은 움직여야 하고 어딘가에 앉아 쉬기 위해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기와커뮤니케이션은 이런 도시에서 좀 별난 곳이다.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과 길 고양이에게 자리를 내 주는 곳이랄까. 건물 1층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공간은 문화카페 요다지. 예술인파견지원사업(예술인의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필요로 하는 예술인을 연결해 주는 사업) 파견예술인 공간 소우주로 구성돼 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문화공간 같지만 파견예술가와 함께 디자인사업 및 문화교육을 함께하는 상생의 감성 찾기 공간이다.△예술 안은 기업, 기업 안은 예술이처럼 기와커뮤니케이션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소 딱딱한 사고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예술인이 개입하면 생각이 유연해진다며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통해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사회 공헌의 새로움을 함께하고 있다.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기업 속에 예술의 혼과 창의력을 심어놓아 기업의 문화예술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는 현 정부가 강조해 온 창가문답(창조경제의 가시화는 문화에 해답이 있다)의 구체적인 결실이 기업과 예술인의 만남에서 맺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문화관광체육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올해 3년째를 맞이한다. 특히 올해는 산업의 문화화를 기치로 1000명의 예술인들이 약 300개의 기업으로 찾아가 창조와 혁신의 과제를 예술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통해 엮어진 기업과 예술인들은 조직문화 개선, 복리후생, 교육훈련, 제품 기획, 홍보 마케팅, 사회 공헌 등 6개로 분류된 유형에 따라 활동 계획을 수립하고 8개월간의 예술적 협업에 돌입한다.기와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임지산 운영자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세 가지를 기본 철학으로 심는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협업의 다양성, 그리고 생태적 가치의 더 큰 세상이다. 이들의 다양한 활동은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되지 않고 뚜렷한 의도가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이는 끌어안고 끌어안기를 반복하는, 즉 함께 나아가기 위해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맥락이다.△예술을 껴안아 소통으로 모으다파견예술인 김상덕(회화), 안명호(설치), 오종원(설치), 조인한(영화)작가는 기와커뮤니케이션에서 11월까지 아름다운 포옹을 함께한다.김상덕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음. 예술가는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서 작업을 해요. 그러나 그 행위 안에는 사회적 역할을 수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작업이 보통은 작업실 내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전시회가 아니면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요. 파견지원사업은 이러한 부분에서 예술인과 기업, 기관을 연결시켜주어서 그러한 활동들을 펼쳐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뭐,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의 가장 큰 목적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였지요. 한달에 120만원을 준대요. 그에 따른 과정과 결과물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요. 그래도 다른 일에 비해서 작가적 입장을 가져가면서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고 대등한 관계로 있을 수 있다는게 좋아요.안명호 작가는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하고 있는 예술활동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잖아요. 예술인 파견은 거기에 가까운 형태의 일자리라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주로 교육활동으로 돈을 벌었는데, 저한테는 누구를 가르친다는게 잘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원하는 형태의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정도의 일자리를 자기가 하는 예술활동과 관련해서 얻기가 쉽지 않으니까요.오종원 작가도 비슷한 입장이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뚜렷한 수입이 생긴다는 게 무척 큰 동기겠지요. 또 뭐라 할까, 아직 더 늦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도 하였고 잠시라도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는 그런 만족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경험적인 부분에서는, 사실 국내 분위기도 그렇고 하나의 회사나 집단에 들어가면 쉽게 옮기거나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 파견 사업은 잠시긴 하지만 이런저런 기업과 일들을 경험하고 관찰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어요.조인한 작가는 처음에 이 사업에 대한 소식을 듣고 지원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제적 지원은 언제나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존의 작품 혹은 전시 지원 사업의 경우 지원금의 활용 범위가 어느 정도 제한적인데 반해 참여예술인 사업의 경우 일반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창작비에서 부터 실재 생활비까지 지원금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작가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기업과 일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부담과 걱정을 느꼈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업에 지원할 당시 어떤 종류의 기업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어떤 방식으로 기업과 예술인들 사이에서의 매칭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작정 단순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일하게 될 기업에 대한 걱정이 제일 컸다고 볼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생길수도 있다는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진행하게 될 사업의 종류에 따라 어떤 무형적인 결과물 역시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2년째 기와커뮤니케이션 방향이 꾸준히 유지되며 느슨하지만 단단한관계를 운영진 내부에서 그리고 참여자들과 유지해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거창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통과 상생을 찾는 건 답을 구하지 못할 일일지 모르지만 이곳 이 공간은 꾸준히 서식지를 만들고 누군가 잃어버린 상생을 찾도록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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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2 23:02

[문화&공감] 라면음악회

라면 한 그릇의 사랑. 작은 것 같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소외된 이웃들이 많다. 제도권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되고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라면 입장료 받는 음악회지난 2일 익산예술의 전당에서 의미 있는 음악회가 열렸다.라면드림오케스트라 입장료는 라면 5봉지를 받는 이색 음악회다. 연주자들은 공연비를 받지 않는다. 2006년부터 올해 11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재능 기부 음악회다. 올해 20회를 맞는 라면음악회는 20회답게 매머드급으로 진행됐다. 오케스트라 단원 103명, 협연 연주자 4명, 합창단 50여명 등 16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음악으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연주곡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 The Syncopated Clock Sleigh Ride Blue Tango Pink, Plank, Plunk! Serenata 등의 수준 높은 곡을 연주했다. 협연으로는 바리톤 김대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의 아리아 ,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피아니스트 황은아, 조영웅의 협연 Libertango , 소프라노 소혜정 바리톤 김대수의 The Lords Prayer를 전주남성합창단과 갈릴리교회 찬양단과 함께 연주해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외에도 엎드림 앙상블, 우쿠렐레 연주 맘마미아 등이 참여했다.익산예술의 전당이 개관한 이래 가장 많은 연주자(오케스트라 단원 103명, 합창 50여명, 협연 연주자 4명)가 무대에 서다보니 전당측도 초비상이었다고 한다.△ 11년째 이어지는 재능기부라면음악회는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기획자인 송흥준씨(갈릴리교회 목사)는 우연히 만난 조손가정의 사연을 듣고 마음을 움직였다. 어느 겨울날 손자와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찾았는데, 그분의 소원이 뜨거운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는 것이라고 하셔서 충격을 받았어요. 몇 백원 하는 라면 한 봉이 소원이시라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라면드림오케스트라의 모든 연주자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 순수 재능 기부 프로젝트 사업이다.해마다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모집하는데, 올해는 1월에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선발하였고, 2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연습 시간을 지키며 라면음악회를 준비하였다.11년째 지휘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 무지카 카메라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일규 지휘자가 2006년부터 지휘봉을 잡고 있다. 나이도 성별도 실력도 각기 다른 단원들이 모이다보니 감동적인 사연을 가진 사람, 인생 역전이 된 사람 등 사연도 각각이다.△ 다양한 사연 안고 참여바이올리니스트 김진솔(29)씨 지난해 골수암 투병중이었다. 그는 3차 항암 치료와 음악회 일정이 겹치자 항암치료를 미루면서까지 라면 음악회에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다행히 올해 그는 치료를 마치고 회복중이다. 그리고 행복도 찾아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다. 올해 라면음악회 날 그는 양가 상견례를 했다고 한다.라면 음악회에 참여하기 위해 보스턴에서 비행기 타고 온 먼 길을 날아온 조영웅(29)씨는 현재 보스턴대학에서 피아노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러시아 유학 후 미국 유학 중에 라면음악회 소식을 듣고 작년부터 라면음악회에 합류하고 있다. 그는 요즘 고민이 생겼다. 내년에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내년부터 음악회에 참석하지 못할까봐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11년 동안 라면음악회와 성장한 친구들도 있다. 동갑내기인 박민선(27)씨와 권설(27)씨는 학창시절 우연히 참여하게 된 라면음악회를 통해 음악을 전공하는 등 인생의 진로가 달라졌다. 동갑내기 친구는 11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는 개근 단원이기도 하다.남찬우, 남찬영 형제처럼 가족이 함께 라면음악회에 참여하는 가족들이 꽤 많다.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이 함께 하는 가족 음악회로 번지고 있다. 이외에도 발달장애를 가진 고등학생, 9살 초등학생, 68살의 할머니, 예비단원으로 참여한 초등학교 1학년들 등 103명의 라면드림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각기 다른 실력과 사연을 가지고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소외계층에 라면 나눔이날 음악회에서 모인 라면은 700여만원 어치로 익산시자원봉사센터에 기증되었고, 11년간 1억3000여만원의 라면이 익산지역 조손가정에게 전달되었다.라면음악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참여 이유도 다르고, 사연도 각기 다르다. 나이도 다르고 실력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하나다.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자신의 재능을 기부해 따뜻한 세상 만들기에 함께 하고픈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라면 음악회를 통해 행복바이러스가 되어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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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5 23:02

[문화&공감] 고창식 전통시장 부흥 프로젝트

지금은 상설시장으로 자리 잡은 고창읍 전통시장, 3일과 8일 열린다고 해서 삼팔장이라고 했다. 오일장 깊은 구석에 3일이거나 8일이거나 어김없이 팥죽집이 자리를 펴곤 했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넘치거나 말거나 가득 퍼담은 달달한 팥칼국수 한 그릇, 손때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낮은 키 3인용 나무의자. 장날 인파에 밀려 먹던 꼴로 자리를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는 사람들. 그 시절의 장마당은 소년들의 놀이터였다. 복판에서 밀려난 것은 팥죽집만이 아니었다. 대장간도 그랬다. 슈욱슈욱 풀무질 소리에 불이 일고 쇠가 익고, 캉캉캉 높은 톤 망치질이 수도 없이 이어지면 그랬다. 흙과 물과 나무와 돌과 겨루는 서슬이 퍼런 쇠붙이들이 하나하나 시렁에 내걸리기 시작한다. 거친 숨, 거친 손과 근육을 엿보다 이내 뭐든 다 고치는 신기료장수 곁으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삼십년 더 지난 고창장날 풍경이다.△ 장을 본다에서 마트에 간다아직 고창에는 대기업 대형마트가 없다. 대신 농협이 운영하든지 혹은 영문자 이니셜이 붙은 중소규모 마트가 여럿이다. 그 탓일까, 여느 도시만큼이나 시장보다 마트가 일상과 더 가까운 시절이 되었다. 장을 보러 간다는 표현은 자취를 감추고, 장을 보러 마트에 가다 혹은 그저 마트에 간다가 되었다. 장을 보는 공간이 시장에서 마트로 시나브로 바뀐 것이다. 마트가 장보기의 주체가 되어가는 동안, 시장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팥죽 한그릇에 마른 허기를 달래던 낡고 닳은 나무의자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은갈치 한무더기 흥정하던 카랑카랑 목소리들은 다 어디 갔을까. 불바람 일으키던 풀무질 거친 숨소리는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전통시장 부흥 프로젝트십년에 변한다던 강산이 몇 개월에 한 번씩 바뀌는 시절이라, 전통시장의 불황은 또 어딘가의 활황으로 변했을 터다. 그것이 말로 풀어져 마트에 가다이다. 마트로 향하는 걸음을 다시 시장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상설시장 골목에 지붕을 씌워 편의를 돕는다든지, 때마다 들썩들썩 가요제를 연다든지, 온누리상품권으로 할인정책을 도입한다든지, 다양한 시도도 대세를 돌려놓기 어려웠다. 이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통시장 활성화에 접근하고 있다. 이른바 고창식 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이다.고창군(군수 박우정)이 매개가 되어 고창전통시장 상인회(상인회장 최만영)와 고창의 다양한 생산가공유통 공동체가 모여 콜라보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시장상인회와 고창공동체협의회가 고창군 민생경제과와 함께 준비한 고창 대표상품겨루기, 시장 한복판에 모던한 품새로 카페와 겸하는 공동체공동판매장 개설, 시장골목을 풍성하게 하는 이동식 매대 운영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돋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고창공동체들과 품 나눔이 있다.△ 대표먹거리를 대표브랜드로지난 5월 고창전통시장 특화상품 선정행사를 진행했다. 고창 대표 공동체들이 발굴해낸 10가지 먹을거리 상품이 무대에 올랐다. 장날 하루, 시장이용자를 비롯해 시장상인들, 음식전문가들의 매운 품평을 거쳐 화산마을공동체의 청보리빵, 다홈공동체의 복분자장어파이, 모꼬지공동체의 바지락죽이 선정되었다. 고창을 대표하는 청보리, 복분자, 장어, 바지락을 맛깔 빛깔로 잘 버무린 결과다. 이 대표 음식상품을 6월 장날에 맞춰 진행한 전통시장투어에서 방문객들에게 맛보였다. 결과는 대만족.이렇게만 시장이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시도가 아직은 좀 낯설지만 시장상인들도 같은 배를 탄 공동체도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서 나가기를 바랍니다.전통시장 상인회 최만영 회장의 말이다. 결이 다른 두 개체가 만나서 어렵사리 이뤄가는 화음은 어떤 색깔일까.△ 고정 매대와 이동 매대의 화음전통시장 한복판과 시장골목을 채우는 두 가지 방식 매대 운영도 시작했다. 하나는 고정식, 하나는 이동식이다. 공동체공동판매장은 시장상인회에서 마련한 공간에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마치고 운영을 시작했다. 커피콩빵, 구운 소시지 같은 가벼운 스넥과 커피류 음료를 곁들여 고창 공동체들이 만들고 유통하는 다양한 제품들(북분자장어파이, 김부각, 아로니아분말, 고구마말랭이, 옻된장과 옻담수, 천일염, 복분자음료, 천연차, 질마재농장의 천연 어린이과자, 사임당 한과 등)이 진열되는 판매장이다. 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의 거점역할을 한다.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동식 매대를 택했다. 점이 공동판매장이라면 이동식 매대는 확장하는 선이고 면이다. 모두 8개로 운영하는 이동식 매대는 고창공동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전통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침체된 편에 배치해 운영한다. 제철 과일로 만드는 시절음료매대를 비롯해, 전통부각, 바지락죽과 비빔밥, 순쌀빵과 보리커피, 기능성 유기황콩나물, 모싯잎떡과 복분자 호박식혜세트, 청보리빵 매대로 시장 손님들의 걸음을 시장 깊숙이 끌어당기고 있다.△ 공동체 역량으로 무한 증식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는 10여년 전부터 전국에 불어닥친 유행이다. 고창의 시도가 남다른 것은 지역의 자생 생산공동체조직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이제 3개월 남짓 서로 색깔을 맞춰보았다. 앞으로가 관건이다. 전통시장활성화 바탕은 다졌으니, 앞으로 시장신문 발간, 시장영화제, 시장팜파티와 시장투어, 프리마켓 공동프로젝트 등으로 확장하는 일이 아스라하다.고창 전통시장이 다시 활력을 찾는다는 것은 고창 전체가 생동한다는 것을 뜻해요. 전통시장에 오래 살아온 상인분들 혼자만의 일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고창의 공동체가 공동체 정신으로 함께하는 것이구요. 고창공동체협의회 이창환 사업국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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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8 23:02

[문화&공감] 전주 '문화공간 무지개'

전통문화는 저에게 새로운 곳을 여는 창문과도 같아요.문화공간 무지개를 운영하고 있는 김지훈(32)씨의 말이다. 대금을 전공하고 세상에 나왔지만, 무대나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고, 먹고 살기 위해 학원생을 모집하고 까페를 시작했지만, 사실은 음악을 널리 알리고, 함께 모이고, 사람들의 숨결을 더 많이 접하고 함께 만들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문화공간 무지개다.△ 두 젊은 국악인 의기투합서문초등학교 담벼락 옆에 있는 문화공간 무지개는 여느 주택가와 다름없는 조용한 곳이지만, 낮에는 튀는 노랑과 파랑 건물과 커피향으로 시선을 끌고, 밤이 되면 대금소리와 한국음악퓨전음악 등이 어우러지는 공연공간으로 변신을 한다.대금연주자 이창선(41)과 김지훈(32)이 공동투자하여 만든 무지개는 문화공간을 표방하는 많은 공간들 중에서도 전통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심의 젊은 전통음악기반 복합문화공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전통문화의 새로운 시도, 특히 젊은 국악인들이 주 네트워크인 이곳에서는 지역의 청년국악인들이 모여 새로운 전통문화의 모습을 꿈꾼다. 이달 말 공연 예정인 광대 권삼득은 벼리, 아따, AAP(Alive Art Project), 젊은 판소리꾼들과 국악전공 고등학생들까지 모여 공연을 만들고 있다. 이들의 주 아지트인 1층 까페 마실은 밤마다 이들의 열기로 불이 꺼질 줄을 모른다.△ 전시공연연습장 갖춰Cafe 마실은 1층 공간으로 까페 겸 공연, 전시, 체험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 그리고 2층은 대금을 비롯한 다양한 국악기를 경험하고 연주하고 연습할 수 있는 동호회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2015년 9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는 골목길 음악회로 가야금과 기타의 콜라보레이션 공연, 장구, 판소리, 재즈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한옥마을 버스킹과 같은 의제로 포럼을 진행하기도 한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정오의 음악회를 통해 동네의 작은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도도한 전통문화가 아닌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함께 하는 공간, 사람들의 숨결이 녹아지는 공간이 되길 원하는 게 무지개의 꿈이다. 2층의 대금 동호회들과는 한 달에 두 번 공원이나 시장, 천변 등에서 대금 버스킹을 진행할 계획이다.△ 예술인 네트워크 구축프로와 아마추어를 따지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무지개 공간에서 숨을 쉬길 원한다는 김지훈 대표. 많은 예술가들이 이 공간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하고 서로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그것이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동호회 간의 네트워크 교류 모임을 통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서로 이해하고 연계할 수 있는 공간, 누구에게나 이 공간에만 가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문화매개공간으로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문화공간 무지개는 또한 무지개 동심 플리마켓도 꿈꾸고 있다. 초등학교 옆이여서 매일 아이들을 만나요.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어린이 동심 플리마켓이라고 해서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을 실현하고 즐길 수 있는 무대로 골목을 만들고 싶어요. 화가를 꿈꾸는 친구, 가수와 댄서를 꿈꾸는 친구, 과학자와 글쓰기, 요리사 등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동심 플리마켓을 통해서 재능을 가족과 함께 발견하고 확인하고 지속될 수 있는 순수한 아이들의 놀이문화요. 참 즐겁지 않을까요? △ 전통음악 매개 문화가꿈 장소로대금을 사랑하고 대금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시작한 공간에서 현재는 전통음악의 대중화와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에 밀착된 새로운 전통음악, 전통다운 일상문화를 꿈꾼다. 머물러 있는 전통음악이 아닌 지역의 청년국악인들의 끊임없는 만남과 시도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젊은 스승과 제자의 공간이, 더욱 다양한 사람들의 색깔 속에서 자리매김되길 기대해 본다.△ 이창선김지훈 씨는전남 나주 출생인 이창선(41)은 전북대와 목원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전주시립국악단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아르코 프론티어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앨범으로 꿈꾸는 소년이 있다. 김지훈(32)은 전남 여수 출신으로 대학원 시절 이창선의 제자로 입문하였으며, 현재 Interactive Art Company 아따(ATTA) 대표, 지역의 청년국악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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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1 23:02

[문화&공감] 〈부안이야기〉 펴내는 '부안역사문화연구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규보의 시에 변산은 예로부터 천부(天府)로 불리면서 좋은 재목 가려 동량으로 쓴다고 하였다. 산천과 물산이 풍부해 사람 살기에 좋아 생거부안이라 했다. 변산은 부안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대항리패총이나 구암리고인돌 등 선사시대 흔적들부터 시작해 역사시대 인간의 오랜 생활사를 간직하고 있는 부안, 그러나 기록되고 기억되지 않으면 그 역사마저도 사라져버릴 터, 부안의 역사문화 혹은 부안 사람들의 생활사를 소중하게 이야기하고 남기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사람들은 부안역사문화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주된 사업이 반년간 잡지 <부안이야기>를 발간하는 일이다. 모여든 이들의 면면이 부안의 역사문화에만 일상적으로 매달리지 못하는 생활인들인지라 타박타박 걸어왔다. 그렇게 8년째 켜켜이 쌓아진 게 벌써 열네권째, 2009년 겨울에 창간호를 선보이더니만 어영그영 이번 6월에 통권 제14호를 내놓는다. 부안땅, 부안사람 이야기라는 표제어를 내세운 그 이야기들이 제법 두툼해졌다.△치과의사가 발행인애초 사람들은 부안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나 2003년 부안 핵폐기장 싸움이 계기가 되어 시야를 역사와 생태, 생활사 등으로 넓혀 왔고, 그러다 의기투합해 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곧장 부안지역의 삶을 담은 <부안 이야기>를 펴내게 되었다. 발행인은 생뚱맞게도 치과의사 신영근 원장이다. 백산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올해 퇴직한 정재철 선생, 부안여고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김중기 선생, 지역의 사진작가인 허철희 선생, 그리고 또다른 치과의사인 서융 원장과 김상훈 원장 등이 함께 한다. 지난 겨울에 부안역사문화연구소 총서 1호로 <사진으로 보는 해방전 부안풍경>을 낸 정재철 선생의 말이다.부안의 역사문화를 현장 중심으로 연구하고 정리한다는, 전문가만 있어도 안되기에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부안에 애정과 열정으로 뭉친 사람들이죠.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서로 내거다 하는 자부심을 갖고 부안의 역사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거죠. 협동적 상호작용이랄까, 서로 보완적으로 참여하죠. 우리가 하는 일에 잡음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어요.△고문서 전문가사진작가 참여부안 사람이 아닌 외지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의 전경목 교수, 국가기록원의 김병남 학예연구사 등이 이들이다. 부안이 좋아 부안에 자주 들락거리는 전 교수는 고문서 전문가다. 2년여 전에는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를, 2001년에는 우반동 부안 김씨 고문서를 끄집어내 전라문화 총서로 <우반동과 우반동 김씨의 역사>를 썼다.사진작가 허철희 선생은 변산면 마포학교에 있는 부안생태문화활력소 대표이면서 인터넷신문 부안21을 운영하고 있다. 20년 동안 부안지역의 사진작업에 몰두해온 터라 산들바다 생태, 사람의 생활사, 역사와 문화, 새만금 갯벌 및 핵폐기장 반대투쟁 기록 등 부안지역의 사진자료로 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방대한 양을 축적해놓고 있다. <새만금 갯벌에 기댄 삶>, <허철희 사진집>, <변산반도 자생식물>등의 사진집을 펴냈다. 이 저력에 힘입어 허 선생은 <부안이야기>의 사진 콘텐츠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지속적 발간의 힘이번 6월에 펴내는 <부안이야기> 14호는 특집으로 줄포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줄포는 오래 전에 폐항되었지만 지역사회 근대사 형성의 한 줄기를 차지했던 줄포항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허철희 선생이 정리하는 줄포의 땅과 마을 이야기, 줄포 출신의 백산고 국어교사이자 시인인 이용범 선생의 줄포 이야기, 필자가 정리한 1920-30년대 신문기사에 나타난 줄포의 근대사 등으로 줄포를 다시 기억한다. <부안이야기>는 특집 중심으로 새만금갯벌을 가다, 줄포만을 가다, 외변산 속으로, 내변산 속으로, 진서면을 바라보는 시선들, 위도 이야기 등을 다루어 왔다.인구 6만명이 거주하는 작은 농어촌 지역에서 민간이 주도해서 꾸준하게 이만한 잡지를 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정기적인 잡지 발간에 필요한 필진 구성의 지속성과 확장성, 기획과 화두의 새로운 개척, 사진 이미지의 연계성 등이 뒤따라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재철 선생은 구성원들의 신뢰와 의리가 갖는 힘이라며 애정과 열정으로 지역과 미래를 보고 순수하게 투자한다고 말한다. <부안이야기>를 만드는 주력세대는 60대를 넘어섰다. 더 젊은 사람들의 영입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지만 부안에서는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재밌게 읽는다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책을 받아보는 사람들은 군에서 내느냐, 문화원에서 내느냐고 묻기도 한단다. 부안을 알리는 데 요만한 잡지가 없다, 자랑스럽다는 향우들의 반응도 있단다. 어느 촌로는 우리들이 못하는 걸 해주니 정말 고맙다고 치켜세운단다. 그러나 지역잡지라 해도 어떤 의미만 고집해서는 안될 일, 독자들에게 읽혀져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부안이야기>는 사람들이 재밌다고 한다. 독자이며 동진초 교사인 이민은 선생은 든든한 위로를 기대하며 <부안이야기> 10호(2014 여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지역사는 우리의 손때가 묻고 손에 닿을 듯 너무 가까운 곳에 있다보니 관심두는 사람도 없이 소홀하게 다루어 온 것이 현실이다. 이런 지역사를 담아낼 책이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요구에서 출발한 <부안이야기>가 과거의 지역사를 충실하게 기록할 뿐만 아니라 현재를 정확히 꿰뚫고 미래까지로 영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요구일까.△비용은 모두 자체 조달가장 절실한 문제, 발간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까? 모두 자체 조달한다. 13명의 운영위원들이 한달에 5만원씩, 80명의 후원회원들이 한달에 만원씩 낸다. 치과의사협회 등에서 정기적으로 특별회비를 내기도 한다. 이게 자금 형성의 전부다.총 2000부 발간하는데 제작비와 발송비 등으로 1회에 900만원 가량 쓰인다. 이렇게 자금을 모두 자체 조달하니 관이나 정치권의 눈치를 볼 일이 없단다. 물론 원고료는 지급되지 못한다. 무가지다. 배포는 일간지 배달망을 활용해 부안군민들에게 돌리거나 향우 및 중앙도서관 등에 발송한다. 군민들이 드나드는 의원이나 병원에 비치하기도 한다. <부안이야기>는 읽을 거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보물단지 화수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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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4 23:02

[문화&공감] 박찬국 화가의 '달문 프로젝트'

달을 우리 동네 앞마당에 매어 두고 싶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달 그리고 소유하지 않은 기억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는 익산시 중앙동 문화예술의 거리 박찬국 화가(35)의 프로젝트를 엿보려 한다.△ 달에는 정말 토끼가 살까달. 月.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낯선 느낌은 사라지고 익숙한 느낌만 남는 아주 오래된 연인같은 느낌이랄까. 달은 언제나 지구를 돌며 매일 지구를 사랑하지만 가끔은 달의 존재를 잊고는 한다.어린 시절 올려다 본 달은 동심의 꿈나라로 기억한다. 토끼가 방아를 찧고 사는, 햇님 달님의 동화로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쳤던 공간이었다. 그런 달이 지구의 자연위성으로, 태양계내의 위성 중 5번째로 크며 지구 중심으로부터 달 중심까지의 거리가 평균 38만4400km로, 지구 지름의 30배이며,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400분의 1이라는 지식을 습득하면서 달은 더 이상 토끼의 나라가 아니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로, 달은 현재까지 인류가 직접 탐험한 유일한 외계이다.이런 달을 우리 동네 골목에 매어 놓으려는 엉뚱한 발상이 기획의 전부다. 내가 올려다 본 달은 크고 아름다운데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달은 작고 멀리 있는 경험, 한번쯤을 해 봤을 것이다. 달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빛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로맨틱할까? 수줍은 상상도 해본다.△ 우리동네 달 띄우기달 그리고 소유하지 않은 기억 프로젝트는 지름 8m짜리 대형 달을 중앙동 문화예술의 거리에 띄운다는 기획을 실행에 옮겼다.달은 어김없이 위상의 변화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무엇이든 소유하려는 인간은 70년대 미국이 달에 깃발을 꽂았지만 그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니며 그 누군가의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어렸을적부터 바라봐오던 달을 소유할 수 없지만 하늘에서 빌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지난 달14일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시간의 작업이 마무리 될 무렵. 커다란 달이 건물 옥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바람의 시샘인지, 거의 성공을 앞두고 바람의 저항을 이기지 못한 달이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며 달이 익산에 착륙해 버렸다. 덕분에 시민들은 지구로 떨어진 달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즐거운 서프라이즈를 즐겼다.당초 계획대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달은 아니었어도 수 십명의 시민들이 달 착륙을 도왔던 장면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여러군데 기운 자국이 보이는 달이 주차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달을 붙잡고 있는 시민들의 표정이 해맑다. 덩달아 작가는 더 해맑은 표정이다.△ 초상화로 시민들과 교감박 작가는 소셜 네크워크를 아주 잘 활용하는 젊은 세대다. 그는 SNS를 통해 작품 이야기를 소통한다.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익산 시민 300인 초상화 그리기 도전에 나섰다.SNS을 통해 신청한 시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그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전시할 계획이다. 그의 이런 계획은 SNS와 입소문을 타고 번져 그의 작업실을 찾는 시민들이 매일 줄을 이었다.얼마 전 높은 고위직(?) 어느 분이 스케줄이 없는 관계로 사진만 보내면 안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는데, 작가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억을 함께 교감하고 그 분의 인생을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밝히며 직접 작업실에 찾아와 주실 것을 정중히 답했다고 한다.무료로 진행하는 초상화 프로젝트지만 직접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그의 무료 초상화 프로젝트는 지난 달말까지 선착순 300명에 한해 진행됐으며, 이달 중 익산문화예술의 거리 일대에서 전시된 후 초상화 주인공들에게 직접 선물할 계획이다.△ 고향의 기억흔적 찾아 나서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박 화가는 국민대 회화과. Colors in the volume전(2016, 가나아트스페이스), 빎 그리고 돎전(2015, 문화공간 이목), 8090세대의 현대 미술전(2012, 성곡미술관) 등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진행한 경험이 많은 작가다. 익산에서는 처음 시도된 작업으로 예술가들이 익산을 주제로 문학과 미술, 영상, 디자인 등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업을 펼칠 수 있도록 E-127 창작스튜디오 공간과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예술과 지역이 교류를 통해 예술로 교감하는 사업이다.공공예술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익산과 인연을 맺은 박 화가는 익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 다른 지역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자신처럼 과거의 기억을 가진 익산 시민들이 옛 익산의 기억을 회고할 수 있는 작품을 처음부터 기획했다고 한다. 과거 작가가 기억하는 익산의 옛 기억을 돌이켜 보고, 흔적을 찾는 작업이다.15년여 타지에서 작품 활동을 해 온 그는 사실 남성고 출신이다. 당시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던 남성고에서 미술을 선택한 사람은 박 작가뿐이었다고 한다.15년만에 고향 익산땅을 제 발로 찾았고, 그는 지금 고향에서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쏟아 붓고 있다.작가는 예술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전시 작가들은 단지 갤러리에 들려 작품을 많이 보러 와 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예술은 상업적이라는 것을 떠나서 일상적인 모습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재미있게 다양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다. 작품을 보며 공감하고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많이 마련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작가는 7월이면 부안 휘목 레지던시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러나 다시 찾은 고향 익산에서 맺은 새 인연들을 놓지 못하고 연을 이어가려고 한다.지역을 사랑하고 그 기억의 파편을 모아 예술혼을 펼치고 있는 젊은 예술가의 열정과 도전이 계속될 수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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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07 23:02

[문화&공감] 군산풍류악회

시작은 늦었지만 10년 후면 군산의 명물(문화재)이 되어 있을 겁니다.이곳저곳 여행을 하다 보면 문화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보인다. 문화를 통한 지역 경쟁력 확보가 화두가 되어 있는 탓이다. 전국의 축제와 문화예술 담당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도 문화자원으로 각 지역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지역뿐 아니라 나라도 전통과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볼거리와 관심을 가질만한 거리, 먹을거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누리고 즐기는 것 자체가 풍류우리나라 문화예술과 향유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 중에 대표적인 것이 풍류다.특정계급과 특정인만이 누리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누릴 수 있는 능력만 갖추면 풍류객이요 풍류인이 될 수 있었다. 풍류는 특별한 절차 없이 예술인의 경지로 올라버리는 말이었다. 지금은 한류라는 단어가 해외 수출용으로 쓰이고 있지만, 그 조상은 우리만의 풍류가 아닐까 한다.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풍류는 민간풍류, 향제풍류 등이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풍류는 문화를 향유하는 활동 자체였다.풍류는 듣는 이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그 당시, 그 지역의 풍류객이 모여 연주를 즐기며 다시 그 지역과 시대의 음악을 이끌어 간 것이다. 즉, 관객을 위한 예술 활동이 아니라 예술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활동이었던 것이다.△ 군산풍류 복원 위해 모임 결성문헌상에는 정읍 이리 흥덕 성내 부안 김제 옥구 전주에 지역 풍류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연주되어지거나 접할 수 있는 향제(지역자체)풍류는 많지 않다.군산도 예외가 아니다. 군산풍류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군산지역에 전해지던 군산풍류를 복원하기 위한 모임이 만들어졌다.군산 출신과 군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수년전부터 마음을 모아오다가 올해 군산풍류악회를 결성했다.군산풍류악회는 원광대 국악과의 우종양(해금, 전북문화재위원회 위원장)교수와 홍종선(피리, 군산국악관현악단 지휘자)교수가 예술 고문을 맡고, 조보연(가야금, 아리울연주단 음악감독), 장윤미(해금,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해금수석), 오승용(해금, 전주시립국악단 상임단원), 이정민(해금, 군산아리아해금연주단 단장), 유승열(피리, 군산청소년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정지웅(대금, 전주시립국악단 상임단원), 서정미(대금,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대금부수석), 송진아(가야금, 군산청소년국악관현악단 지도강사), 장연숙(거문고,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상임단원), 장은영(거문고, 군산 회현중 거문고 지도강사), 박태영(타악, 풍류지악 대표)씨가 참여하고 있다.회원 대부분 전주와 익산군산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군산청소년국악단과 군산전통예술원에서 오랫동안 활동 해온 인연들이기도 하다.△ 군산만의 음악 만들자 마음 모아군산풍류악회 조보연 회장은 군산만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찾고, 연주자들도 공부하며 즐기기 위해 풍류악회를 결성했다고 말했다.도내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이리향제줄풍류(중요무형문화재 제83-나호)와 전주삼현육각보존회(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6호, 2011년 지정)가 있으며, 정읍에는 풍류방 샘소리터에서 정읍풍류의 맥을 이끌어 가고 있고, 부안향제줄풍류보존회도 2009년도부터 활동하고 있다. 군산은 지역향제풍류가 사라졌다.조 회장은 연주자들이 군산과 인연이 닿아 오랫동안 활동해왔고, 이제는 중견 연주자들이 되었는데, 지역과 연주자 모두를 위한 음악활동을 모색하다가 군산풍류 활동이 해법이 됐다고 덧붙였다.회원들은 군산국악관현악단과 아리울 연주단, 군산전통예술원, 군산청소년국악관현악단, 군산아리아 해금연주단 등 다양한 지역 연주단체에서 활동해왔다.△ 정기 모임 갖고 연주활동군산풍류악회 포부는 크다.연주단체를 결성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북에 크고 작은 단체들이 워낙 많다보니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데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단체가 출범한 만큼 군산 대표 명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풍류악회는 매달 2~3회 모임을 갖고 있다. 군산시 지곡동의 군산전통예술원 공간을 빌려 연습을 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자체 연주회도 구상하고 있다.지금은 전해지지 않지만 군산만의 색을 가진 풍류악회를 통해 옛 군산지역 선비들이 즐기고 사랑했던 풍류의 역사를 다시 쓰고, 국악대중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사회현상을 반영하듯이 국악계에도 크로스 오버를 통한 퓨전국악, 또 다른 형태의 콜라보레이션등에 국악걸그룹까지 등장하고 있다.대중성을 확보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우리음악을 친숙하게 알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정체불명의 문화가 생길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많다.반면 지난 2010년을 기점으로 국악계는 사라져가는 향제(鄕制) 풍류를 연주하는 단체가 붐을 이루고 있다. 전통음악의 특색을 찾거나 원형을 찾아가는 또 다른 움직임이다.우리의 문화, 그중에서도 지역성을 담고 있는 향제풍류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 연주자들을 보며 이러한 활동이 보다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10년후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겠다는 군산풍류악회의 소망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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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4 23:02

[문화&공감] 고창 상하면 송림마을 '활력'

산빛이 물빛 못지않게 맹렬하다. 묵은 초록에서 산벚꽃 흩날리는 연한 분홍을 넘어 기세등등 연두로, 생생한 초록으로 번지는 그 맹렬이 정점으로 치닫는다. 산 발치와 마을이 만나는 작은 호수, 송림제(松林堤)는 그 한없는 초록물을 빨아들이고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이 맹렬과 깊이가 번갈아 수만 번, 그렇게 키워놓은 고창군 상하면 송림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걸음마를 떼고 조금씩 활력을 찾아가는 마을을 찾았다.△ 조기산제 풍습 간직= 첫 고사리를 끊을 때면 마을사람들은 목욕재계를 하고 산에 올랐지요. 그때가마을 내력을 소상히 꿰고 있는 직전 마을이장 박영준씨는 그때가 곡우(穀雨) 무렵이었다고 한다. 마침 알이 차고 살이 연한 조기떼들이 칠산 앞바다로부터 북상을 시작하는 때였다. 마을사람들은 산 못지않게 바다로도 걸음을 재촉했다. 고창에서 서해에 닿아 있는 심원면, 해리면, 상하면까지 조기가 북상 채비를 시작하면 마을도 바빠지곤 했다. 갯가로 떠밀리다시피 올라오는 조기를 건져내기 위해서다. 그렇게 뭍에서 물에서 얻어다 차린 음식이 고사리조기매운탕이다. 집집마다 이른 봄 먹을거리를 챙겨주신 하늘과 땅과 바다에 올리는 작은 제사를 준비했다. 조기산제(조기심리라고도 했다)다. 보릿고개 어렵사리 허기를 견뎠던 송림마을 사람들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그 봄 풍경이다.송림마을은 송림산과 장사산이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든든하게 감싸안은 작은 분지에 놓였다. 차분하고 고즈넉한 정경이다.△ 공동체사업 통해 함께 걸음= 모두 17세대 47명 주민 대부분이 밀양박씨. 그야말로 오순도순 한 모둠으로 살고 있는 송림마을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꿈틀거리고 있다. 꿈틀거림이 어느덧 걸음마가 되었다. 벌써 몇 발자국 걸음을 내딛고 있다.그 첫 걸음이 메이플스톤공동체사업이었어요. 지난 2015년 공동체 창안대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였죠.당시 마을이장으로 공동체사업을 이끌던 박영준 씨는 송림마을이 공동체창안학교를 마치고 뿌리단계에 선정되면서 받은 300만원이 종자돈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마을공동 고사리 밭을 일구고, 건고사리 포장재를 개발해 마을을 알리는 매개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도 무엇인가 함께 뜻을 모아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 것이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오쇼 프리마켓에 먹거리 선보여= 오쇼 프리마켓은 고창군(군수 박우정)과 고창공동체협의회, 고창식도락마을체험사업단이 함께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고창읍성 앞 광장에서 여는 프리마켓이다. 고창의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공동체들이 땅을 빌어 키워낸 농산물, 여럿이 힘을 모아 가공한 농제품에, 체험거리, 만들거리, 볼거리, 먹을거리를 가지고 여는 작은 장터이다. 오쇼는 빨리빨리 오시오(싸게싸게 오쇼)라는 뜻에, 고창에서 찾는 다섯 가지 쇼(Show, 보러오쇼, 사러오쇼, 놀러오쇼, 먹으러오쇼, 만들러오쇼)라는 뜻도 함께 담고 있다. 오쇼 프리마켓은 쌀빵 만드는 공동체, 발효음료 만드는 공동체, 도자기 만드는 공동체, 동물체험하는 공동체, 농사체험하는 공동체, 마을음식 발굴하는 식도락공동체 같은 고창공동체협의회 소속 서른 개 남짓 공동체가 참여해, 3월부터 시작해 지난달 30일 두 번째 장마당을 열었다.송림마을은 고사리, 콩, 녹두, 깨, 호박, 복분자, 오디, 고추 같은 농산품을 장에 내놓았다. 고창에서 아직 낯설은 형식 프리마켓을 찾은 사람들의 반응이 눈에 띠게 살아나고 있다. 어차피 첫술에 배부를 리는 없는 것. 이것이 송림마을에게는 작지만 어느덧 두 번째 걸음이다.△ 마을 동굴 황금박쥐 서식= 송림마을은 다시 생생마을 기초단계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올해 초 이장이 새로 뽑히면서 마을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세 번째 의미심장한 걸음이다.우리 마을에는 7년 전인가부터 황금박쥐가 살고 있어요. 마을 뒤편 송림산 기슭에는 서른 개 남짓한 인공동굴이 있다. 일제 말기 서해바다를 향해 대포를 설치하려 뚫은 것이라 한다. 식민지 마을사람들의 고된 노역도 욕된 역사와 함께 갇혀 있다. 그 동굴 가운데는 얼마 전까지도 한여름이면 음식을 보관하던 냉동동굴이 있다. 동굴이 만들어지면서 마을 냉장고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리고 5미터가 넘는 깊이 동굴 하나에는 빨간박쥐라도고 불리는 멸종위기종 황금박쥐가 살고 있다.송림마을에 찾아와 이제는 한 식구가 된 소중한 이웃 황금박쥐를 생생마을의 대표선수로 내세우기로 한 것이다. 마을 출신으로 고창을 대표하는 진을주 시인 생가(진을주동산)와 물빛 고운 송림제 사이에 황금박쥐 포토존을 만드는 것을 필두로, 마을공동창고 벽면에 황금박쥐 테마 벽화, 마을 산품을 담는 황금박쥐 포장재 개발 등을 알차게 준비하고 있다.△ 지도자의 건강한 역할분담= 공동체사업도 다시 가다듬었어요. 그전에는 없던 마을사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며 고생하신 박영준 전 이장님은 오쇼 프리마켓을 계속 책임지고요.고교 진학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가 30대 중반 결혼과 함께 다시 고향마을에 둥지를 튼 박재만 이장(50세) 자신은 생생마을 기초단계 도전과 진행을 맡기로 한 것이다. 직전 이장과 새 이장의 건강한 협력의 출발, 싱싱하다. 두 사람의 리더가 준비하는 송림마을의 미래, 황금박쥐 힘을 빌어 절대로 멸종하지 않을 건강한 마을의 꿈이, 마지막 봄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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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17 23:02

[문화&공감] 군산 동국사길

이 도시에선 근대문화라 쓰고 예술 이라 부른다.지금 군산은 아스러지는 옛 근대역사문화 가치를 인정받고 생기를 얻고 있다. 흉물스러운 건물이 사람의 온기로 채워지는가 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홀연히 사라져 버릴 건물이 문화재로 당당히 거듭나고 있다. 원도심 한복판을 거닐다 보면 마치 시간여행 하듯, 세월이 켜켜이 쌓인 빛바랜 근대문화와 마주하게 된다.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를 비롯해 신흥동 일본식가옥(구 히로쓰가옥), 구 군산세관 본관, 근대미술관(구 일본 제 18은행 군산지점),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등 20여 곳의 근대문화 흔적들이 마천루 사이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역사 간직한 낡고 허술한 골목길잰걸음으로 둘러본 근대문화투어는 월명동 골목에서 한없이 느려진다. 군산 개항후 일본인들이 살았던 동네로, 부자 동네로 알려졌으며, 해방 직후 군산 유지들이 일찍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한때 이곳도 다른 지역처럼 신도시 개발과 공공기관 이전으로 거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낯선 거리로 변화했었다.하지만 지금은 후미진 뒷골목에선 알록달록한 벽화와 함께 최신 K팝의 노래가 귓전으로 울린다. 그 옛날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는 순간 낯선 장소에 대한 경계심은 무장해제된다. 칙칙하고 흉물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컬러풀하게 단장한 동국사길 골목은 호기심을 무한 자극한다. 이곳 동국사길 골목골목의 이런 과감한 변화는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 문화공간이 변화 단초여러 이웃이 모여 뜻을 이루다라는 그윽한 뜻이 있는 창작문화공간여인숙이 원동력이 되었다. 1960년에 지어져 2006년까지 실제로 상봉 여인숙으로 운영됐던 곳이지만 영업을 하지 않아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던 건물을 문화공동체 감 이상훈 대표가 새롭게 재생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창작문화공간여인숙은 복합문화 전시 공간이자, 레지던시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주민과의 교류사업도 활발히 펼쳐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을 가꾸기-동국사길사업이다. 2010년부터 여인숙 레지던시 입주 작가, 지역작가, 지역주민들이 낡고 허름하고 제각각이던 간판들을 특색을 갖춘 멋진 간판으로 바꾸었다. 동네 벽은 스토리텔링을 입힌 멋진 벽으로 바뀌었다. 빨래터, 아기 업은 소녀 등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모티브로, 옛 군산의 마을을 상상해 그려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거리엔 조그마한 이동식 화단도 조성돼 눈이 즐겁다.이러한 변화와 함께 창작문화공간여인숙은 군산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지난 2012년에는 문화관광부와 (사)한국건축가협회가 제정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으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간문화대상은 일상생활 공간을 사람과 문화가 주인이 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전통문화와 유산을 문화공간으로 구체화해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새롭게 확립한 활동과 장소, 그리고 한국문화의 특성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상생활 속의 시민공간으로 재창조한 활동과 장소를 선정하고 있다. 창작문화공간여인숙의 활동이 지역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지역주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자원을 보존활용해 주민들의 공간 환경을 개선한 사례로 인정받은 것이다.△ 예술가와 일촌 맺은 주민들동국사길은 주말이면 수백 명의 관광객과 시민들이 다녀간다. 마을에는 안내 게시판도 생겨났고, 예술창작으로 정비된 깔끔함이 돋보이는 입간판과 빨강우체통도 시선을 끈다. 그리고 동국사길 의 다양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것저것연구소는 동국사길의 쉼터이자 햇살 좋은 소통의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마련돼 젊은이들의 발길이 오고가고 있으며 지역 문화예술을 다양한 방향으로 토론해 볼 수 있는 대화의 창으로 활용되고 있다.호락호락 문을 열지 않을 것 같은 콧대 높은 작가들의 공방은 찾아볼 수 없다. 동국사길의 작가 갤러리와 공방들은 주민들에게 마치 사랑방 오가듯 장 보러 왔다가 방문하도록 문턱을 낮췄다. 일반인 대상으로 3D 프린팅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 상인들은 손님의 발길이 잦아지니 즐겁고 예술가들은 그들과의 소통으로 창작의욕이 불끈 솟는다.몰라보게 달라진 동국사길 골목골목을 둘러보노라면 우리네 할머니 같은 상인들을 만날 수 있고 개성 넘치는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도 있다. 예술가들은 칙칙한 후미진 골목에 색색의 그림으로 활기를 주었고, 상인들은 제 살던 공간을 기꺼이 내주었다. 상인과 예술가의 협업을 여실히 보여주는 동국사길은 지역문화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미묘한 공생관계로 엮인 동국사길 주민들과 예술가들은 대중과의 소통을 꿈꾸며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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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10 23:02

[문화&공감] 마을 이야기 콘텐츠化 고창 반암마을 사람들

옛날 옛적 신선이 놀러와 차일봉에서 잔치술을 마시다가. 고창 아산면의 반암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야기를 그렇게 시작한다. 선운산 자락으로 굽이치는 인천강 모래톱 위에 기묘하게 우뚝솟은 병바위가 있어 그로부터 마을이 열리기 때문일까. 1750년에 제작된 <해동지도>에도 나타나 있는 병바위(壺岩)는 말 그대로 병 모양새를 닮았다. 신선이 마시던 술병이 거꾸로 꽂혀 병바위란다. 이웃에 호암(壺岩) 마을이 있다.△전북 8대 명당으로 알려져=마을을 둘러싼 산세나 들녘은 예사롭지 않은 자연지형으로 이방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며, 거기에 더해 오래도록 살아온 인간의 흔적은 인문적, 풍수적 경관으로 흐르고 흘러 잊혀질 듯 말 듯 많은 이야기거리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인촌 김성수의 할머니 묘가 있어 전라북도 8대 명당으로도 알려졌다. 선비 김길중(1882-1949)은 병바위 위에서 주변의 일품 8경을 한시로 읊었다. 마을 이야기들을 최근 콘텐츠화한 것이 반암마을 풍수담론이다. 그 절정은 아무래도 정감록 십승지 이야기겠다. <정감록>에 십승지(十勝地)라 하여 전쟁, 흉년으로부터 피신해 살기 좋은 열 곳이 기록되어 전해지는 바, 그 한 곳이 바로 반암마을이라는 것이다. 원래는 부안군의 변산으로 지목되어 왔으나, 2012년 고창군의 연구용역 결과 고창의 반암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는 도내 일간지들이 보도하여 알려졌고, 이 마을 출신의 풍수학자 김상휘 박사가 이전부터 주장했다.△농촌마을 개발사업 시행착오=명당의 땅이니 십승지니 하며 조명되는 것만으로도 반암마을은 복받은 동네다. 그 기세로 반암마을은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54억원의 정부지원을 받는다. 2007년의 일이다. 테마파크가 조성되고 주민참여로 반암권역영농조합법인이 설립되었다. 풍천장어, 참게, 복분자, 자생녹차를 특산물로 내세우고 복분자 체험, 인천강 뗏목타기, 풍천장어와 참게 잡기, 경관 볼거리 등으로 농촌테마관광의 명소로 자리잡겠다는 의지가 컸고 주민들도 그렇게 기대했다.그러나 초기에만 잠깐 반짝였다. 생각대로 명소로 자리잡기는 커녕 주민간 불화와 갈등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반암마을은 한국전쟁 때의 인민재판 후유증이 한 켠엔 아직도 남아 있다. 반암리 601번지는,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에 기반해 조선경제사를 연구한 역작 <조선사회경제사>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로 유명한, 그리고 해방공간 시기에 좌파 정치가로 활동하다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의장까지 역임한 동암 백남운(1895-1979)이 태어난 곳이다. 백남운이야 전쟁 전에 북으로 갔으니 무관한 일이겠으나 학살 피해를 입은 집안의 원한은 그와도 연루시키는 모양이다.△역사문화자원 관심 가져=반암권역사업은 애초부터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일 수도 있다. 겉보기 성과와 소득증대사업에 치중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농촌마을이다보니 주민소득사업에 집중한 것은 당연한 일일 터, 그러나 관광객 유치와 돈벌이를 앞세우기 전에 주민들 스스로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하도록 하고 이해관계에 얽혀 마을이 불신하고 분열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프로그램 설계가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마을의 풍부한 역사문화풍수 자원들을 콘텐츠화하는 것도 세심한 배려와 방식의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백남운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마을의 자랑으로 내세울만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부친 한학자 백낙규가 운영한 초당은 백남운이라는 이름 석자도 없이 폐허로 방치되고 있다. 피해자 후손의 원한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그 원한은 특히 이념적 비극에서 비롯된 바 크기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역사적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서 풀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테다.반암마을 사람들은 올해 작은 사업 하나에 참여한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주최하고 고창학연구회가 주관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다. 고창학연구회의 오강석 대표가 작년에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주련(기둥이나 벽 따위에 써붙이는 글귀) 11점이 반암마을 김성수 조모 재실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여러 언론들이 보도했다. 반암마을의 역사문화적 콘텐츠에 김정희 주련이 추가되었다. 반암 역사문화의 새로운 상징이 발굴된 것이다.이 상징은 전문가들의 몫으로만 돌리지 않고 주민들의 문화적 의미망으로 가져가자는 게 오 대표의 생각이다. 교육 활동을 주민참여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반암마을 사람들의 문화공동체적 관계를 새롭게 조성해보자는 취지다.△ 주련 계기 문화로 소통나서=이 마을에 김정희의 주련이 왜 있을까. 오 대표는 반암마을이 1840년 김정희의 제주도 귀양길 행적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인천강 별빛을 보았을까. 주련 중에 하나는 귀양길 강 물결에 별빛도 따라 움이네라는 소동파 시구로 귀양길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한 주민은 마을에 김정희가 지나갔으면 전해질텐데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고창학연구회는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이번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추사의 길을 만들어나가게끔 할 계획이다. 김정희의 반암마을에서의 행적을 조사하여 스토리텔링하겠다는 것이다. 마침 선운사 성보박물관에 김정희가 직접 짓고 써준 백파율사비가 보관되어 있어 마을 사람들의 탁본 체험도 마련된다.교육이 시작된 4월,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각기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아직 간보고 있는 모양새다. 광역사업 후유증이 남아 있어 그런 걸까. 당시 그렸던 벽화 인물화도 지우고 새로 조성해야 할 판이다. 그 사이 세상을 뜬 어르신들이 있어 마치 영정사진같다는 공론이 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병바위 옆 두암초당에서 만정 김소희가 15살 때 득음을 했다고 한다. 이제 마을 사람들이 득음하려나 보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반암마을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기회가 왔다. 서로 신뢰를 쌓는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교육 프로그램의 진행자나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더 소중해진다. 이 시대 민초로 살아왔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직접 표현되고 소통되고 공감되는 스토리텔링, 풍부한 역사-문화-풍수 자원들과 함께 사람들의 감동과 향기가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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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26 23:02

[문화&공감] '국내 최고령' 전주 삼양다방

로변정담(爐邊情談) 그리고 다방. 전주의 다방에는 항상 이야기가 있었다. 달달한 차 한잔과 더불어 담배연기 자욱하게 둘러앉은 지인들과의 사소한 잡담들. 하지만 이들은 문화와 사회, 정치를 논하는 담론의 장소로까지 공간을 확장하며 이후 다양한 전시회, 음악공연, 집회장소로 다방을 이용했다. 전주 근현대 사람들의 사회적 사교를 책임지던 유일한 문화사랑방 다방(茶房),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현존하는 다방으로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삼양다방을 소개한다.△ 관공서 밀집지역에 문 열어=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는 19세기 말까지 올라가지만,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공간은 거의 없다. 전라북도에도 다방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하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중앙동 2가에 요시다 다야라는 다방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이곳이 차 원료를 파는 집이었는지, 찻집이었는지 알 수 없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전주에 몰리면서 여관과 국밥집, 다방과 악극 등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불안한 사람들의 심리는 오히려 현실을 즐기는 쪽으로 흐르며, 전주의 근현대 일상생활문화가 만들어져 갔다고 한다.전주의 다방들은 1951년 지금의 영화거리 쪽 고향다방을 시작으로 왕궁, 우인, 카멜다방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삼양다방은 1952년 현재의 자리에 개업했다. 삼양다방이 있던 자리는 주변의 법원이나 시청, 도청 등의 관공서가 많아 영화의 거리 쪽 다방과는 분위기가 달랐다고 한다. 다방의 주 수입도 관공서에서 단체로 시키는 배달 차 주문으로, 결혼식이라도 있는 날에는 30잔, 40잔씩 차를 주문했다고 한다. 1950년60년대 전쟁과 근대화 등 급변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숨통을 돌리는 사교공간으로서의 다방의 역할은 197080년대에는 일반 대중들의 공간으로 커피향과 더불어 최신 서양문화를 접하는 데이트 공간으로 각광 받았다.△ 다방의 몰락= 그 이후의 다방의 몰락은 사실 다방 내부에 있었다기 보다는 외부 변화에 더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관공서 이전과 커피자판기의 등장, TV나 미디어 확산으로 마담이나 레지와 같은 이쁜 연예인 같은 이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문화공간이 만들어지면서 다방이 가지고 있던 많은 기능들이 사라져갔다. 여기에 90년대 커피숍의 등장은 빠르게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며 다방은 어르신들의 공간으로 점점 잊혀졌다.삼양다방은 2005년 지역 문화예술원로들의 모임인 계절회의 추억의 전시회로 다시 공간과 전주사람들의 문화를 알렸다. 그리고 2013년 새로운 건물주의 건물 매입으로 사라질뻔한 위기를 넘기고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65년째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구도심 활성화 지역네트워크 조성= 2014년부터 새롭게 리뉴얼된 삼양다방은 1950년대 피난온 영화인들과 전주영화인들의 아지트였던 다방을 기리고자 전주영화소품창고를 지하에 마련했고, 젊은 세대들과의 교감을 위해 핸드메이드 셀러들과 나도 마켓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또 문지방(문화와 지역이 만나는 사랑방) 공방 입점으로 지역예술인들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삼양다방 건물주와 삼양다방을 지키기 위해 모인 8명의 지역민들은 자발적으로 지금의 삼양다방을 지키며, 근현대 문화를 만들어가던 장소,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령 다방이 가지는 추억과 향수의 사회상을 담은 공간, 사람들의 만남과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는 공간으로 가꾸고 있다. 또한 다방을 지켜왔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는 구술작업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2015년 삼양다방 단골회원제는 삼양다방을 중심으로 전주구도심의 10개 공간을 엮어 활성화를 도모하는 지역네트워크를 조성하기도 했다. 건물주는 임대비를 받지 않으며, 다방 수익은 구도심활성화를 위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변하듯, 삼양다방 리뉴얼도 3년을 맞았다. 장소의 고유성만이 다방의 가치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공간의 의미를 부여하는 장소성이 세대를 이어가며,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오래된 다방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찾고 싶은 그 무엇이 아닐까. 어느날 우연히 만난 1950년대 후반 클래식 음악감상 동호회 쌀롱 세리너를 이끌던 어르신이 주셨다는 음악은 오늘도 삼양다방의 공간을 채우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인 기리고전주영화소품창고지난 2014년 삼양다방 리뉴얼 때 조성됐다. 1950년대 피난 온 영화인들의 아지트였고, 전주영화인들의 사랑방이었던 것을 기리는 공간이다. 특히 1950년대 영화 거리에 있었던 우인다방은 현인이 주인인줄 알 정도로 많은 영화인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우인다방의 종업원은 영화에 출연해 후에 여배우로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영화소품창고는 전주영화촬영소에서 제작돼는 영화의 시나리오 및 대본, 소품, 핸드프린팅 등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배우 의상 등은 직접 입어볼 수도 있다. 전주영화의 역사와 전주지역 다방의 역사도 한눈에 알 수 있고, 삼양다방의 옛 집기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한켠에 마련된 소셜룸은 15명 정도의 모임이 가능한 공간이 있어 프로젝트 사용도 가능하며, 찻값만 내면 공간사용은 무료다. 영화 7번방의 선물 명량 은밀하게 위대하게 하모니 평양성등의 소품과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맞춰 전주지역에서 촬영된 도리화가 사도 마담뺑덕 상의원 타짜 신의 손 등의 소품이 새로 전시된다. 소품은 전주 영상위원회에서 제공 및 관리하고 있다.● 예술로 通하다문지방지난 2015년 7월 삼양다방 지하에 조성된 공방이다. 문화와 지역이 만나는 사랑방이라는 뜻으로, 통신판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셀러들과 의기투합해 만들어졌다. 직접 손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을 원칙으로 작업실과 판매장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지역작가들의 작품과 아트상품도 위탁판매 하고 있다. 매월 첫째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나도 마켓에 참여하는 20여개 셀러들의 제품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으며, 특히 동문거리 미술작가 지망생과 작가가 함께 그린 동문캔버스 작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현재는 메리엘(캔들), 은은한지(한지악세사리), 바농하나(패브릭)등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핀프로젝트(석고방향제), 밴지(악세사리), 달로별(악세사리), 더브리에(프리저브드 플라워), 사이프러스(조명), W-shop(우드펜), 캔즈(수첩)등이 입점해 있다. 옛 문화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직접 만들어보고자 하는 모두에게 공간이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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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19 23:02

[문화&공감] '문화공간' 변신 시도하는 춘포역

문화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만드는 2016 시민기자가 뛴다-문화&공감지면이 오늘부터 11월까지 매주 화요일 게재됩니다.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운영되는 문화&공감에서는 도내 곳곳에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이뤄지는 다양한 공동체활동과 지역만의 특색있는 문화를 가꾸는 단체나 공간 등을 조명하게 됩니다. 올해는 고길섶 문화비평가와 김정준 전북도립국악원 공연팀장, 김진아 익산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서진옥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큐레이터, 이대건 고창 책마을 해리 촌장, 이수영 문화포럼 이공 대표가 참여합니다.아빠 왜 나무를 심는 거야?응, 춘포역이 외롭지 않게 우리 예인이랑 감나무를 심어주는 거지.지은 지 100년이 넘는 춘포역에서 젊은 아빠와 어린 딸이 나무를 심고 있다. 생전 처음 보는 낡은 기차역이 어린 딸은 마냥 신기하다. 커다란 기차역만을 알고 있던 아이는 아빠가 들려주는 춘포역의 이야기가 재미있다.지난 2일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사업으로 온새미로 창의체험지원센터, 익산시 관광두레, 곳간이 공동으로 트래킹과 나무 심기, 문화 체험이 진행됐다.시간이 멈춰버린 춘포역. 아이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 참가했다는 30대 부모는 아이와 함께 감나무를 춘포역에 심었다. 부녀는 나무를 심으며 푸른 춘포역의 미래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일제강점기에 역사 지어= 춘포(春浦)의 우리말식 본 이름은 봄개, 봄나루를 뜻한다. 봄이 드나드는 물가라는 뜻이다.춘포역은 1914년 일제 강점기에 지어졌다.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의 목조 구조로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로 역사적건축적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210호로 지정되어 있다.우리 농민들로부터 높은 소작료를 거둬 식량을 수탈해간 현장으로, 아픔이 있는 과거가 춘포역을 포함해 일본 농장가옥, 정미소 등 역사적 장소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이다. 또한 춘포역은 전주와 이리시(익산의 옛 지명), 군산시를 연결하는 철도중심지로 기차가 30분마다 있었으며, 당시 까마귀 떼라고 표현할 정도의 검은색 교복을 입은 많은 학생들이 통학을 위해 춘포역을 이용했다. 1970~80년대 익산지역에 섬유산업이 발전하면서는 근처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여자들이 많아져 딸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예전 주변에는 빵집, 술집, 고깃집, 식당 등이 즐비한 번화가였다. 하지만 2011년 5월 13일 전라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폐역이 되면서 점차 마을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근대 역사문화 담긴 공간= 효용을 다한 것처럼 보였던 춘포역이 변하고 있다. 몇 년 전 코레일로부터 지자체가 무상 임대를 받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사업이 추진중이다. 온기가 사라진 기차역에 사람들이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지역의 의식 있는 문화단체와 시민단체, 예술인들이 춘포역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춘포역은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추억의 장소다. 주변 볼거리로는 호소가와 농장이 복원되어 있고, 만경강 둑길을 걸을 수 있으며, 춘포 교회의 오래된 종, 일제 강점기 우정국 건물 등을 볼 수 있다.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춘포역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곳이다.△ 이야기 그림 영상으로 기록= 춘포역에서는 역사를 활용한 문화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익산문화재단의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과 2013년 모리에 서다단체가 달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지역 예술가들의 프로젝트 진행도 활발하다. 봄 느린 기차라는 지역 예술가와 시민들의 모임에서 춘포역을 특별 관심 지역으로 지역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었던 역사(歷史)로 새로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이 곳은 계절별로 역사문화 답사 프로그램이 운영중이다.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게 가족과 함께 하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춘포역을 바로 알고 인근 지역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나누는 행사들 위주다. 주로 가족 단위로 모집된 참가자들은 직접 춘포역과 주변을 걸으며 잊혀지는 옛 역사를 느끼며 문화를 통한 교육을 하고 있다.춘포역에는 기차는 서지 않지만 역장은 있다. 제일 먼저 역에서 맞아주는 반가운 얼굴은 명예 역장 최중호 씨다. 코레일(구 철도공사)에서 정년퇴임을 한 명예 역장은 사명감을 가지고 낯선 방문객을 맞아준다. 역장을 통해 춘포역과 호남선, 전라선의 재미난 이야기는 보너스다.춘포에 대한 관심은 지역의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지역의 문화기획자와 글쟁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춘포의 첫 느낌과 그동안의 삶, 현재에 이르기까지 춘포와 역사에 관련된 생활을 개인의 삶과 시선으로 녹취, 서술, 사진, 영상 등 기록화 작업을 했다. 최진성 작가는 춘포역과 마을 연혁 등을 입체형 인포그래픽과 소품으로 만들고,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했다. 곽정숙 작가는 춘포역을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과 글쓰기, 현장체험학습 등을 진행했다. 춘포역 이야기라는 작은 전시회도 열렸고, 춘포에 핀 국화 웹툰 공모전도 진행됐다.△ 문화로 덧입혀지는 봄나루= 춘포역은 지금 아트공간으로 대변신을 꿈꾸고 있다. 주변의 근대 건물과 연계해 하나의 살아있는 마을 박물관으로, 주민들과 방문객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지역 어린이들과 방문객에게 추억의 공간과 역사 교육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지역주민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지역 공동체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춘포문화학교를 통해 마을 공동체 회복 및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춘포역을 교통 기능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에 주민 스스로가 나선 것이다.춘포역을 무대로 주민, 지역문화단체, 지역예술가들은 저마다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다. 이 상상은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이고, 외로운 간이역 춘포역에 무지개가 뜰 날도 머지않았다.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은 오르세역이었다. 오르세 역은 1986년 오르세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오르세미술관은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을 비롯한 인상파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간이역의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는 최고의 모델중 하나다.오래된 전통을 지켜가며 발전시키는 것은 낡은 것을 허물고 새 것을 짓는 것보다는 어렵다. 문화로 되살아나는 춘포역. 백년을 걸어온 그 길에 앞으로의 백년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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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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