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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롭기만 한 휴일 아침입니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지요. 개천절이 국경일인데다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으니 잘 하면 내일 하루도 마저 쉴 수 있겠습니다. 올해처럼 이렇게 연휴가 연휴다운 때도 없습니다. 징검다리 휴일이라서 근무 생산성을 따지는 좋은 직장에서는 틈새에 있는 근무일을 쉬기도 하는가 봅니다. 그러면 거의 열흘을 쉴 수 있습니다.아쉽다면 다음 주 월요일이 한글날인데 쉬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한글날이 공휴일로 정해진 것은 1949년부터이니 당연히 광복 이후의 일이었지요. 공휴일에 관한 대통령령 124호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1990년정에 경제계 등에서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주장을 해서 지금의 행정자치부인 당시 총무처에서 법정 공휴일을 축소했습니다. 그 덕분에 10월에 집중되었던 휴일 중 한글날과 국군의 날이 공휴일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올해부터는 한글날만 다시 국경일로 복귀가 되었지만 아쉽게도 소위 노는 날은 아닙니다. 국경일이면서 공휴일이 아닌 날은 아직 한글날뿐입니다만 오는 2008년부터는 제헌절도 안 쉰다고 하니 쉴 수 있는 날 하루가 더 줄게 생겼습니다.날, 일, 절로 끝나는 각종 기념일은 38개 정도가 됩니다. 그 중 국경일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그리고 한글날이지요. 그리고 오늘이 그 중 하나인 개천절입니다.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10월을 상달(상월)이라 해서 한 해 동안 지은 농사를 거두어 햇곡식으로 조상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는 풍습이 있었으니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등의 행사와 마니산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의 제천행사가 바로 그런 예였습니다.광복 전까지만 해도 개천절은 한글날처럼 음력으로 기념일을 삼았었습니다. 개천절 행사는 상해임시정부에서 국경일로 정하여 경축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의미가 컸습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인 1949년 당시 문교부의 ‘개천절 음,양력 환용(換用) 심의회’의 심의결과에 따라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기념하게 되었습니다.인천국제공항에는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빈다는군요. 외국인들이기를 빕니다. 그 외국인들은 빼고 남아있는 한국 사람들이라도 개천절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태극기라도 내다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부인과 분만실을 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신세대들은 어쩐지 모르겠으나, 촌구석에 태반을 묻고 사는 출향객들에게 추석명절은 명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새로 난 오곡백과로 차례를 지낸 후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 음덕을 기리는 일은 정해진 순서이거니와, 가족 행사가 끝난 다음 애증의 세월을 함께 했던 이웃사촌들과 과거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특별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추석이 그냥 명절이겠는가.자동차가 자전거보다 많은 요즘이사 마음만 먹으면 고향길 나서기가 일도 아니다. 그러나 교통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던 시절에는 고향길이 사돈집 제삿길보다도 멀었다. 그래서 평소 고향집을 찾지 못하던 출향객들은 설,추석 양대 명절이라도 고향에 내려가려고 너도나도 귀성길에 올랐다. 혹 무슨 사정이라도 있어 고향에 못 내려가는 출향객이라도 생기면 '사업하다 부도가 났다' '직장에서 쫒겨났다더라' 등등 별 악소문이 퍼질 정도였으니 당시 귀성 풍속도를 미뤄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명절이 가까워지면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은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귀성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표 사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여서 날밤을 새며 줄서는 것은 다반사요, 설사 표를 구했다 하더라도 차에 오르는 것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이 몰려들었던지 예비차까지 동원해도 모자라 보통 정원의 두세배까지 꾸역꾸역 몰아 넣었으니 그게 짐짝이지 사람이었겠는가. 그래도 귀성객들은 조금만 참으면 고향집에 당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견뎌냈다.한데 이상한 일이다. 자가용 없는 집이 없고 도로도 사통오달을 했는데 명절 귀성객은 오히려 줄고 있으니 말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농촌인구가 크게 줄어 찾아오는 이가 적어지고, 그나마 있는 부모들마저 자식 찾아 역귀성을 하고 있는 탓이 크다. 토박이 농민들은 이제 명절이 닥쳐도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설상가상으로 추석명절은 아예 제쳐놓고 해외여행을 떠나버리는 '나대로 족'이 크게 늘고 있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이민간 동포들도 명절이면 고향쪽으로 차례상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절을 올린다는데 이게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이제 농촌의 추석은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만 쓸쓸히 지켜보게 생겼으니 실로 '고향무정'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면 친척들이 모여 조상을 어떻게 모실까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매장이냐 화장이냐의 문제가 이슈중 하나로 떠오른다. 대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난다. 하지만 일을 당하면 어느 하나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싶다.그러면 매장과 화장의 장단점은 뭘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매장(埋葬) 위주였다. 그것도 가능하면 넓은 면적에 후장(厚葬)을 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토가 온통 묘지강산으로 변해버렸다. 매장은 명당(穴)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명당은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과 발복을 근거로 한다. 동기감응론은 쉽게 말해 묘지에 묻힌 조상의 뼈를 통해 후손에게 그 영향이 미친다는 이론이다. 풍수지리의 고전으로 꼽히는 ‘장경(葬經)’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是以銅山西崩 靈鐘東應(서쪽에 있는 동산이 붕괴하니 동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종이 감응을 일으켜 울린다). 멀리 있어도 동질의 기(氣)끼리는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라디오나 TV에서 같은 주파수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소리나 화면이 나오는 것과 같다. 생명과학에서 부모형제가 같은 DNA를 갖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능하면 좋은 자리를 잡아 조상을 모시는 것이 나쁠리 없다. 그러나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명당을 찾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또 전문가를 만나 명당을 찾았다 해도 자신의 소유로 하기가 쉽지 않다. 나아가 명당을 썼다 해도 산사태나 도로 댐 건설 등으로 맥이 끊길 수도 있다. 반면 화장(火葬)은 조상과 후손 사이에 감응을 일으킬 수 없어 어떤 좋고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화장을 하면 인체가 고온을 거쳐 가루가 되는 과정에서 동질의 기가 없어져 버린다. 결국 무해무득(無害無得)하게 되는 것이다. 또 뒷처리도 깨끗하다.그런데 이를 안치할 납골당이 문제다. 가루를 산이나 바다에 뿌려버리면 그만이지만 납골당에 모시려면 또 다른 문제가 따른다. 납골당 구하기가 어렵고 개인이 묘지처럼 만들 경우 곳곳이 흉측한 돌무덤을 이룬다. 돌은 천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 거기다 요즘에는 깞싼 중국산 돌들이 수입돼 국토훼손이 우려된다. 죽어서도 이래저래 몸 누이기가 쉽지 않아졌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죤 스튜어트 밀(1806∼1873)이 한 말이다. ‘배부른 돼지’는 그저 주인이 던져주는 밥이나 먹고 만족해 하는 사람, 무뇌아처럼 사유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좀 가난하더라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 고뇌하면서 사는 사람을 이르는 비유다. 이성의 힘으로 근본을 캐고 까닭을 규명하며 ‘왜’(Why)를 묻는다. 그리고 대안에 대해 고민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문학 사학 철학 같은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개념은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기원전 55년 키케로가 마련한 웅변가 양성 과정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후마니타스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중세 초기 성직자들은 후마니타스를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육과정으로 채택했다. 이른바 교양과목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선 누구나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인문학인 것이다. 이런 인문학이 어느새 기피학문이 돼버렸다. 실용학문에 떠밀려 전공자가 줄고 취업의 길도 좁디 좁다. 2003년 69.4%에 달했던 인문계열 졸업자 취업률이 2005년엔 53.4%로 급락했다. 지방대의 실상은 서울쪽보다 더 심각하다. 이처럼 토양이 척박해지니 ‘인문학 위기’라는 말이 세상의 화두가 되고 있다. 실사구시의 사회분위기와 이런 분위기로 몰아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내적으론 인문학자들이 외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한 필연적 결과다. 인문학이 빈사상태에 빠지면 다른 학문도 발전하기 어렵고 실용학문도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15일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이 ‘인문학 선언’을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에는 전국 80개 인문대 학장들이 현재의 인문학 위기 사태를 반성하고 대학과 정부, 우리사회의 관심과 지원책을 촉구하는 ‘인문학 성명서’를 26일 발표했다. 이번 기회에 인문학에 대해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됐으면 한다. 경제논리가 우선시되고 개인의 정신적 소양보다 당장의 이윤에 더 급급해 하는 세상이 된다면 ‘배부른 돼지’가 판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몽고반점을 중국 음식점을 이름이라거나, 으악새를 새 이름쯤으로, 첨성대를 경주 근처의 대학 이름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어떤가. 한국어 회화 좀 된다고 한국어 가르치는 일 정도는 가볍게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그런 생각을 바로 잡으려 들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그런 사람이 혹간 있다. 이는 마치 자동차 운전 좀 한다고 정비도 잘 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과 같다.요즈음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어교육과 구분해서 외국인과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육 영역을 따로 설정한다. 지난 24일에 제10회 한국어능력시험이 치러졌다. 1997년에 2,692명을 대상으로 출발한 이 시험이 작년도에는 국내외 25개국 62개 지역에서 26,611명이 지원하여 9년사이 10배가량 증가하였다고 한다. 올해에는 전년 대비 27.7%가 늘어난 33,983명이 응시하였고 인도와 타지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신규 시행되는 3개 국가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 28개국 73개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시행 초기에 비하면 응시자 수가 13배 증가한 셈이다.전체 응시자 수만 놓고 본다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05년 대비 06년의 증가 사유를 보면 중국에서의 응시자 수가 6,000여명이 늘어난 데서 기인한 바 크다. 우리 교민이 많이 산다는 미국에서의 응시자가 06년 현재 1500여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중국 응시자의 증가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할 수 있다. 또한 28개국이 응시하였다고는 하지만 천 명이 넘는 지역이라고는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중국 한 나라의 응시자 수만 12,813명이어서 전체 응시자의 37.7%를 차지하여 그 지역적 편중이 지나치다는 점 역시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24일 치러진 한국어능력시험이 외형적인 측면을 주목하는 이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이겠지만 그 내용을 놓고 보면 중국 응시생의 증기라는 단순한 요인 외에는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 보기 어렵다. 오히려 한류문화가 긍정적인 인상을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우리 문화 중 부정적인 요소가 외국인들에게 강화되는 추세여서 한류문화에 대한 재정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 인문학의 맥이 이러한 한류문화의 성장과 긴밀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의?주장이 다르거나 이해관계가 얽혀 투쟁을 하는 곳에는 으레 괴문서라는 것이 등장했다. 괴문서는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처럼 뒤에 숨어서 공격을 하는 비겁성 때문에 사회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괴문서에 담겨진 내용이 약자의 항변이거나 거짓이 아닌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종교는 사기'라는 괴문서가 나돌아 17C 유럽을 들쑤셔놓은 일이 있다. 이 괴문서는 "신과 종교는 대중의 공포와 무지에 기대어 자기들만의 특수 이익을 얻어내는 대중 농락 가공물" 이라며세 명의 사기꾼으로 모세와 예수?마호메트를 지목했다. 말 그대로 괴문서라 작성자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범신론(汎神論)적 세계관을 가졌다는 이유로 유대교에서 파문당하고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던 스피노자(1632~1677)가 장본인일 것이라는 추측만 할 따름이었다. 사상의 자유가 심하게 억압됐던 시대의 음울한 흔적이 아닌가 싶다. 케케묵은 이야기지만 지난 1993년에 '하나회 괴문서 사건'이라는 게 터졌다. 그 해 4월2일 비하나회 장교였던 백승도 대령이 서울 서빙고동 군인 아파트에 하나회 명단을 살포한 것이 괴문서 파동을 촉발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던 것이다. 조사 결과 실제 하나회라는 군부 내 암적인 사조직이 존재했고, 명단 또한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정부는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단행하고 군 기강을 바로 세웠다. 괴문서가 공동체문화를 훼손시키는 '공공의 적'이라는데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괴문서는 무조건 유해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언론을 포함한 공식적인 채널의 정보가 아무리 풍성하다 하더라도 모든 진실을 낱낱이 들춰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회 사건처럼 괴문서 하나로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일도 있다는 말이다.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의도 정가에 난데없는 괴문서가 나돌아 세인들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유력 대권주자들의 세력판도를 분석해놓은 이 괴문서들은 제법 그럴듯하게 작성돼 있다. 누구를 지지한다고 거론된 당사자 가운데는 음해세력의 장난이라고 발끈하는 이도 있지만 반드시 음해가 목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괴문서도 이런 괴문서는 국민들에게 꼭 해악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정치판 관전하기가 더 흥미롭지 않은가.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함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건성으로 한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벌초자리는 좁아지고 배코자리는 넓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벌초를 마지못해 하는 탓으로 그 구역이 차차 줄어들고 작아도 될 배콧자리(상투를 얹히려고 머리털을 깎아낸 자리)는 자꾸 넓어지기만 한다는 의미다. 북한지방의 속담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비유한 것이다.추석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휴일이면 벌초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여름 허리보다 높이 자란 잡초들이 산소 입구부터 막아선다. 봉분 위에도 키 큰 잡초가 무성하다. 잡초를 뽑아낸 뒤 예초기를 등에 지고 한쪽부터 차근차근 깎아 나간다. 어느새 등에 땀이 밴다. 갈퀴로 긁어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해진다. 이 때 잘못하면 예초기에 돌이 튀어 부상당하는 경우도 있다. 또 벌에 쏘이거나 독사에 물리는 경우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금화벌초(禁火伐草)라 하여 불도 조심해야 한다.이같은 벌초는 보통 음력 8월 1일부터 보름 이전에 마치는 게 상례다. 지금은 예초기가 나와 수월해졌으나 그 전에는 낮을 잘 들게 갈아서 가지고 갔다. 묘지가 멀면 낫목에서 부터 날부분까지 새끼로 가지런히 감았다.제주도에선 자손들이 살아 있으면서 벌초하지 않는 것을 ‘죽은 아방(아버지의 방언)곡두에 풀도 안그치는 놈’이라 해서 제일 불효로 쳤다. 그래서 자손들이 육지에 나갔다가도 8월이면 돌아와 선묘(先塋) 벌초에 나서야 했다. 벌초할 시기가 지나도 벌초 안한 묘지는 그 후손이 끊어졌다 해서 ‘골총’이라 불렀다. 조상의 묘를 모시는 것은 벌초만이 아니다. 사초(莎草)라 해서 훼손된 묘지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가 하면, 소분(掃墳)이라 해서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그 사연을 고하고 제사를 지냈다.하지만 이같은 풍습도 크게 변하고 있다. 도시로 나가 바쁘다는 핑계로 돈을 주고 벌초를 맡기는 것이다. 이맘때면 농협이나 산림조합, 벌초전문 대행업체에 이러한 주문신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것은 나은 편이다. 전국 2000여만 기의 분묘중 70% 가량이 무연고로 추정된다고 한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더 할 것이다. ‘처 삼촌 벌초하듯’이 ‘대접 잘 받았다’는 뜻으로 다가올 날도 머지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코리아’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였다. 6·25동란으로 잿더미에서 일어나 경제성장을 이룬 저력을 한껏 과시한 것이다. 이 서울올림픽 폐막식 식후행사는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의 소리와 정서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바로 만정(晩汀) 김소희의 ‘뱃노래’가 밤하늘에 가냘프게 퍼져나간 것이 그것이다. 환상적인 자태와 몸짓으로 배를 떠나 보내는, 작지만 거대한 산맥같은 국창(國唱)의 예술혼은 5000년 역사의 응축이었다.그녀의 한(恨)서린, 그러나 영롱한 소리는 배와 함께 우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듯 했다. 그리고 1993년 영화 ‘서편제’는 엄청난 인기속에 국민들에게 판소리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었다. 판소리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기폭제였던 것이다. 이 영화의 대미(大尾)는 김소희의 소리가 장식했다. 숙명여대 정병헌 교수는 이 대목을 ‘황홀하면서도 소름을 돋게 하는 거장의 소리’라고 평했다.그렇다. 고창에서 1927년 태어난 그녀는 평생을 판소리의 중심에서 대들보로 살다 간 진정한 예술인이다. 그녀는 판소리의 저수지요, 전통예술의 전범(典範)이었다. 첫 스승 송만갑을 비롯 이화중선, 정정렬, 박동실, 정응민 등 동편제와 서편제의 모든 유파를 받아들여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냈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맞게 전수시켰다. 또 거문고와 가야금, 춤, 서예 등에도 일가를 이룰만큼 폭넓은 예술세계를 펼쳐보였다. 그의 제자사랑은 끔찍해서 엄하면서도 자상하기 이를데 없었다. 안향련과 김동애, 신영희, 안숙선, 이명희 등을 배출했고 성창순, 오정숙, 장영창도 그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그러나 무엇보다 귀감이 되는 것은 그녀의 태도였다. ‘하늘이 내린 소리’라는 말을 들었어도 교만하지 않고 항상 단아하고 기품있는 모습을 보였다. “소리만 잘 하려고 허지 마. 우선 사람이, 인간이 돼야지 올바른 국악인이여.” 이 말에는 그녀의 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도(道)’ 같은 것이 느껴진다. 2006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처음 기획한 ‘작고 명창열전’에 그녀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16일 열린 ‘위대한 소리-만정 김소희’기획에는 그의 제자 등 국악계의 슈퍼스타가 총출연했다. ‘생애와 예술세계’세미나도 열렸다. 24일까지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옥스팜’(Oxfam)은 빈곤이나 재난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주민들을 지원하는 세계적 민간구호단체다. 2차대전중이던 1942년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는 그리스인들을 돕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 시민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게 시발이다. 정식 명칭은 ‘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옥스포드 기근구조위원회). 영국에 본부를, 전 세계에 70개 사무소를 두고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1953년에는 한국전쟁 고아와 빈민들을 위해 6만 파운드를 지원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옥스팜’은 지금 헌 물건을 판매하며 얻은 수익으로 제3세계의 빈곤 구제와 사회 지원에 힘쓰고 있다. ‘옥스팜’을 모델로 삼아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대표적인 나눔장터를 실천하는 단체가 ‘아름다운가게’다. 지난 2002년 10월 서울 안국동에서 첫 선을 보였고, 전북에선 지난해 2월28일 1호점이 전주 서서학동 대광마트 에서 문을 열었다. 전북일보사가 후원하고 있는 아름다운가게는 전주 모래네 사거리와 익산 영등동, 군산 명산동 등 네곳에서 운영중이다. 아름다운가게는 ‘내게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더 쓰여야 할 물품’을 기증받아 손질한 뒤 이를 되판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이른바 ‘나눔과 순환’의 장이다. 의류, 주방용품, 중고서적, 스포츠용품, 학용품, 그릇 등 거의 모든 생활소품과 잡화류가 해당된다. 지금까지 전북지역의 기증품은 모두 2만4,700점으로, 개인 기증이 72% 비율이다. 명사들이 내놓은 기증품은 경매를 붙여 판매하는데 강희남 목사가 백자도자기를 기증했고 김완주지사는 고급 자전거와 도자기를, 서창훈 전북일보 사장은 고급 병풍을, 개그맨 박명수는 노트북을, 남전 이철우화백과 고상준 박찬주화백· 정윤희 익산아오아쇼핑몰 대표와 배나연 해와달갤러리원장 등 많은 명사들이 의미있는 서예와 그림을 내놓았다. 오는 23일엔 아름다운가게와 중앙일보가 함께 하는 나눔장터가 도청 신청사 광장에서 열린다. 내 주변의 남아 도는 물건은 지천인데 세상 어딘가에는 부족해서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많다. 넘치고 부족한 재화를 수평작업하는 곳이 바로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가게’다. 명사들과 기업, 기관 단체, 개인의 재활용 물품이 쏟아져 나왔으면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여흥이 채 가시기도 전, 우리는 한 미결수의 외마디 소리를 들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금 생각해 보면 미결수 지강헌이 처음 한 말은 아닐 듯 싶다. 구치소나 교도소 담장 너머에서만 낯선 단어였을 뿐 아마도 그 내부에서는 유행어처럼 사용되던 말이 아니었던가 한다. 당시 상황이 생중계된 탓에 탈주한 미결수들과 경찰의 대치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주동자 지강헌이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 노래를 들으며 삶을 마감한 장면은 우리가 생각하던 범죄자와는 유다른 모습이었다.동전의 양면처럼 공공의 질서와 개인의 인권은 양립한다. 이 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겠지만 체감하는 분위기는 이와 사뭇 다르다. 재벌 총수들은 수사망이 좁혀오기도 전에 외유를 떠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실제 상황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서민들은 이러한 재벌들의 행태에서 유전무죄의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기억은 서민들이 경찰서나 검찰을 드나들면서 겪었던 애환과 대비될 때 무전유죄의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최근 경찰에서는 영어 등 13개국 언어로 된 미란다 원칙 고지문을 일선 경찰서와 지구대에 배포했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익히 들었던 “귀하는 진술거부권이 있고 변호인을 선임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미란다 원칙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한 권리에 속한다. 피의자의 입장에서 신문 초기단계의 변호인 입회권 행사는 아주 중요한 권리이지만 이를 행사 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변호인 입회권은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피의자의 진술이 자신을 불리하게 할 수 있는 상황 역시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 이전에, 고지의 의무를 다 했다지만 묵비권 역시 피의자들이 권리로써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점에서 지난주에 접한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에 관한 신문연재 소식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연재중단의 소식을 우리는 들었다. ‘조직에 민감한 글’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문제라는 신문사측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아쉽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달 초 종영된 KBS 2TV 수목극 '투명인간 최장수'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초적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이 드라마는 불치병과 가족애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로 극이 전개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숭고한 정신세계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줬던 것은 날로 각박해져가는 세태에 최장수라는 인물을 통해 사람냄새 나는 삶이 무엇인가 극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작가가 왜 최장수에게 투명인간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줬는지는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투명해선지, 자신을 모두 벗어던지는 희생정신 때문인지, 어쨌든 지고지순하기까지 한 최장수에게 투명인간이라는 별칭을 붙여준 것은 약간 의외다. 사실 투명인간이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보다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할로우 맨' '투명인간의 사랑'과 같은 공상과학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은 대개 약을 잘못 먹거나 우연한 사고로 투명인간이 돼 정의의 사자가 되거나 못된 일을 저지르는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투명인간이 맞는 최후는 거의 비극적이다. 해피 엔딩 으로 대미를 장식할 만도 한데 슬프거나 음울하게 최후가 묘사되는 것이다. 평범한 것보다 비범한 것이 더 좋아 보이지만 결국 비범한 것보다 평범한 것이 더 낫다는 뜻일 게다.누구나 한번쯤 나도 투명인간이 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나를 아무도 못볼테니 감정있는 사람 찾아가 복수도 하고, 은행에 들어가 돈도 털어 오고 얼마나 재미나겠는가. 또 남의 비밀이란 비밀은 모두 캐볼 수 있고, 남 모르게 나 하고싶은 일 다 해볼 수 있는데 얼마나 깨소금 맛이겠는가 말이다. 한데 묘한 일이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으니 좋은 일 하는데 써먹어야 할텐데 꼭 못된 짓 할 것부터 생각이 나니 참으로 얄궂다.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투명인간인줄 알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있다. 남들은 뻔히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는데 본인만 정작 아무 것도 모르고 날뛰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투명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투명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빨리 꿈에서 깨어나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환생하기 바란다.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측근에서 모셨던 A씨는 ‘누에 예찬론자’였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장관 등을 지낸 그는 거의 매일 폭탄주를 마셨는데도 끄덕없이 견뎌냈다. 전주에 내려와 기관장들과 술자리가 벌어지면 병권(?)을 잡고 좌중을 휘어잡았다. 폭탄주를 자신이 제조하기 시작해 몇차례 돌리고, 또 주고 받기를 하면 거의 20잔 가까이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자정이 되면 어김없이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아침 일찍 DJ 앞에 나타나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보고를 했다고 한다. 그는 그 비결로 두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부안산 누에였다. 부안에서 구입한 가루누에를 환으로 만들어 상복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운동이었다. 술을 마셔도 반드시 1시간씩 런닝머신을 뛰며 흠뻑 땀을 냈다. 이 얘기에 얼마나 과장이 섞였는지 모르지만 그는 가는 곳마다 ‘누에가 건강에 제일’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누에를 키우는 양잠(養蠶)업은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수출 효자노릇을 했다. 농촌에 가면 누에를 치고 뽕나무를 기르는 농가가 흔했다. 잠사(蠶絲)공장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누에고치 수매가 있는 날이면 농민들이 목돈을 만지며 흐뭇해 했다. 그러다 비단 수요가 급격히 줄어 들고 값싼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그런 양잠업이 요즘 웰빙바람을 타고 다시 각광받고 있다. 누에와 뽕나무가 갖고 있는 각종 의학적 효능이 검증되면서 부터다. 차와 동충하초 등 건강식품은 물론 비누, 누에그라, 화장품, 의약품 등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누에가루는 천연혈당 강하제일 뿐 아니라 중풍과 항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중국의 고서 본초강목(本草綱目)은 누에의 유일한 먹이인 뽕나무에 대해 “뿌리부터 잎, 껍질, 열매까지 어느 하나 약으로 쓰이지 않는 것이 없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옛부터 누에와 뽕나무를 하늘이 내린 곤충과 나무란 의미에서 각각 천잠(天蠶), 신목(神木)이라 불렀던 것이다.때 마침 정부가 부안군 변산면(유유지구)과 하서면(농원지구) 일대 83만㎡를 누에타운 특구로 지정했다. 누에 생산에서부터 가공과 유통은 물론 체함학습관, 누에전시관, 곤충과학관 등을 세울 것이라고 한다. 청정 변산반도와 어울려 명소로 발돋움하길 바란다.
고교 평준화제도가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 시작됐으니 제도 도입 만 30년이 넘는다.도내에서도 1979년 전주에 이어 1980년 군산과 익산시로 확대돼 현재 3시에서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고교평준화가 우리 교육에 끼친 공과(功過)는 제도 도입 직전의 상황과 대비하면 잘 드러난다.시행 이전만 해도 중학생의 30% 이상이 과외수업을 받았고,이른바 명문고에 진학하기 위한 재수생이 급증하는등 사회·교육적인 문제가 심각했다.정서불안등 ‘중3병’에 걸린 학생이 전체의 27%나 된다는 통계도 있었다.과열입시가 중학교육과정을 기형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평준화가 도입되면서 과열 고입경쟁은 사라졌다.평준화가 중학교육의 정상화와 고교간 격차해소등에 기여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헌법재판소도 1995년 이 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과열 입시경쟁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판시,이같은 긍정적 평가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평준화 제도 도입 당시부터 제기됐던 논란은 수그러지기는 커녕 최근에는 국가 성장전략과 맞물리면서 확대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학생들의 학력 저하,교육의 획일화,학생들의 학교 선택권 제한 등이 논란의 골자다.평준화 폐지론측은 제도의 틀을 바꿔 학교에 학생 선발권을 되돌려줘야 공교육 위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고교평준화에 대한 끊이지 않는 논란속에 최근 전주지역 고교의 치열한 우수 신입생 유치경쟁이 이 제도의 또 다른 부작용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폐지 빌미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과열경쟁의 양태는 재단은 물론 동창회까지 나서 해외연수를 비롯 장학금까지 제시하는 모양이다.현행 선발방식이 선(先)지원 후(後)배정이기 때문에 1순위로 해당학교를 지원할 경우 그 학교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학교측이 이 점을 이용하는 셈이다. 서울대등 명문대학 고교별 합격자수가 공개되는 상황에서 학교측이 명예를 높이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이겠지만 교육적 차원에서는 적절치 않다.우수학생도 각 학교에 고루 배치돼야 하는 평준화제도 취지에도 배치된다.제시할 당근이 없는 학교는 손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정의롭지 못하다.우리 사회 최대 난제인 양극화문제가 교교평준화에 까지 나타난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다.
요즘 시중엔 신문이 또하나 생긴다는 게 화제다. 전북지역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이 9개이니 하나가 더 추가되면 10개가 된다. 신문사가 자꾸 생기니 한때는 “늘어날 바엔 아예 10개를 채워라”는 식의 빈정거림이 회자됐었다. 한데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이 수치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 둘씩 느는 사이 어느덧 전북지역의 일간신문이 10개에 이른 것이다. 인구 180만명이 채 안되는 지역에서 일간신문이 10개나 된다니 세간의 화젯거리일 수도 있겠다.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지방 일간신문은 88개다. 지역별로는 부산 3개(1개는 경제지), 대구 5개, 인천 6개, 광주 13개, 대전 11개, 울산 5개, 경기 11개, 강원 2개, 충북 6개, 전남 2개, 경북 5개, 경남 6개, 제주 3개 등이다. 호남지역의 지방신문이 대략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부산은 인구가 400만명에 이르는 큰 지역이다. 2000년 기준 1인당 GRDP(지역총생산량)가 2,723만원이다. 전북은 인구 180만명에 1인당 GRDP는 1,472만원이다. 부산은 인구도 많고 1인당 GRDP도 많은데 신문이 2개 밖에 안된다. 왜 그럴까. 대검 형사부장으로 가 있는 이동기 전 전주지검장이 이 현상을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 근무할 때 보니까 어떤 기업이 신문사를 만들 움직임이 보이면 기존 신문들이 그 모기업을 융단폭격하더라. 그러니 신문 만들 엄두를 못낸다” 신문 창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신분상승 효과나 모기업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게 큰 이유다. “기업을 할때는 도청의 사무관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신문사 사장이 되니까 도지사가 밥 먹자고 하고, 민원도 잘 해결되더라” 건설업을 하면서 신문사를 차린 기업인이 한 말이다. 난립으로 인한 역기능이 양산되는 게 문제다. 경영악화와 비윤리적 행위를 낳고 기자들의 근무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든다. 결국 신문의 질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감언이설로 많은 젊은이들을 꼬여 저임금의 현장으로 몰아넣은 뒤 나중엔 신문사를 팔아 이익을 챙기는 파렴치 인간들도 문제다. 기자들은 이런 인간을 ‘신문사 벤처사업가’로 부른다. 숟가락 3개면 족할 밥그릇에 10개 숟가락이 들락거린다면 인심이 사납게 된다. 민폐 관폐도 많다. 지방신문 난립이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불상사로 이어질까 두렵다.
착각 퀴즈 하나. 닭장에는 닭이 있고 외양간에는 소가 있다면 모기장에는? 정답은 모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들은 규칙을 만들어서 복잡한 사물이나 사건들을 기억하고 생각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규칙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야 ‘-장’하면 그 앞에 오는 짐승을 가둬두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모기장은 그런 규칙에 어긋난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질문을 던지면 일정하게 굳어있는 패턴대로 답을 하기가 십상이고 사람들의 웃음보를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이런 착각 퀴즈를 패러디해 보면 이런 퀴즈가 있을 성 싶다. 의사가 쓰는 글을 환자를 위한 것이고 선생이 쓰는 글은 학생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검사가 쓰는 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검사의 사명이 공권력을 바로 세우는 일이란 점에서 피해자를 위한 글을 써야 제 격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만으로 보면 피해자를 위해서 검사가 글을 쓰는 것도 흔하지 않다. 피해자를 위한 법률 서비스 중 다수는 변호사들이 맡아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에 한 검사가 일간지에 연재를 시작한 글은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를 위한 것이어서 이채롭다. 피의자로부터 진실을 끄집어 내야하는 당사자가 피의자의 입장에서 알아 두어야 하는 내용들을 연재하겠다는 것 자체가 화젯거리로 삼을 만하다. 이런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밝히자 글쓴이는 동료에게서 조직에게서의 추방 운운하는 소리를 들어야했다고 고백한다.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듣기에 거북한 것은 확실하다.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은 피의자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업무를 진행한다. 재판을 통해서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심리적인 취죽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사를 해 왔던 이들도 피의자 신분이 되면 불안에 떤다고 하니 말이다. 피의자의 입을 열어야 하는 입장에서야 이런 피의자들의 심리적 위축이 진실에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수사기관과 피의자의 관계는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과거의 수사관행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 또한 살펴야 한다.피의자의 권리를 안내하려는 현직검사의 의도는 “공정한 게임(fair game)을 통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칙적이고 투명해서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 되어 대처하기가 쉬워질 때 우리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부디 계획했던 대로 연재되기를 기대해 본다.
대통령을 소재로 한 블랙 유머 2제(題). 역대 대통령을 한 글자로 묘사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쇠' 전두환 대통령은 '돌' 노태우 대통령은 '물'이고, 김영삼 대통령은 '꽝' 김대중 대통령은'뻥'이란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퍼주기 계속하다가 '황(荒)'이 될거고, 다음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 뒤치닥거리 하다'꽥'이 될까 걱정이 된단다.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내무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다음 날 야당의 논평과 언론 보도는 다음과 같았다. "불안한 대통령, 이제는 방귀까지 뀌어" "품위 잃은 대통령, 이제 도를 넘었다" "대통령, 이제 막가자는 것인가" "방귀 뀌는 것이 서민대통령인가" "언론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독재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대통령 모독죄'라는 법 조항이 있어 대통령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행위는 언감생심 꿈도 못꾸었다. 한데 신문사에서 간혹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곤 했다. 활자로 신문을 찍어내던 때라 문선과 교정이 실수하면 대통령이 대령이 되거나 견(犬)통령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정보기관의 사상 검증이 시작됐고 실수였다는 판정이 나야 겨우 대통령 모욕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궁리 끝에 신문사는 '대통령'이라는 세활자를 아예 묶어버렸다.더 재미있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어떤 탤런트는 대통령과 얼굴이 닮았다는 죄로 브라운관에서 강제 퇴출을 당하는가 하면, 어느 코디미언은 대통령 흉내 한 번 잘못 냈다가 정보기관으로 끌려가 안죽을 만큼 두들겨 맞기도 했다. 대통령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밥줄이 끊겨도, 골병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해도 숨 한번 크게 못쉬고 죽은 듯이 엎드려 지냈겠는가.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불과 30년 전후에 벌어졌든 일 들이다.이제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했는데 대통령이 코미디 소재가 된다고 해서 뭐 대수겠는가. 그러나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끌어내릴 의도로 코미디 소재를 삼으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여 오히려 역한 감정만 올라온다. 적어도 모두에 소개한 블랙 유머처럼 공감이 가고 재미도 있어야 대통령 코미디로서 사랑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못된 장난질이나 치자고 대통령 뽑아놓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백두산은 우리 땅의 뿌리요 태조산(太祖山)이다. 한반도 모든 산줄기의 시원(始源)이 되는 할아버지인 셈이다. 이같은 개념은 우리 민족의 자연 인식체계를 이루는 주요한 틀이었다. 18세기 중엽 실학자였던 순창출신 신경준이 쓴 ‘산경표(山經表)’에 이것이 뚜렷이 나와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까지 한반도의 등뼈를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익의 ‘성호사설’ 등이 모두 여기에 기초하여 지도를 그리고 지리서를 썼다.그만큼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서장(序章)을 연 영산(靈山)이요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졌다. 역사적으로도 단군왕검을 비롯 부여와 고구려 발해 등 우리 민족의 발상지가 이 산이었다. 금(金)나라와 청(淸) 왕조의 발상지 또한 이 산이다.육당 최남선은 ‘백두산 관참기(觀參記)’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언제 아무 데서고 이마를 스치는 것은 백두산의 바람이요, 목을 축이는 것은 백두산의 샘이요, 갈고 심고 거두고 다듬는 것은 백두산의 흙이요, (중략) 이렇게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고 떼려 해도 떨어지지 아니할 사정에 있는 것이 우리와 백두산의 관계이다. ”이 백두산은 불함산(不咸山) 개마산(蓋馬山) 도태산(徒太山) 백산(白山) 태백산 이라고도 불렸다. 또 중국에서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 부르고 있다.우리 민족이 성산(聖山)으로 여겼던 이 산이 최근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일환으로 ‘백두산= 중국의 산’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백두산을 산둥의 태산, 안후이의 황산 등과 함께 ‘중화(中華) 10대 명산’에 포함시켰고 대대적인 관광개발에 나섰다. 이에 앞서 1986년에 이곳을 ‘국가자연보호구’로 지정했고 내년 2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할 예정이다. 백두산 개발을 위해 관할권을 옌볜(延邊) 조선족자치구에서 지린(吉林)성 직속으로 바꿨다. 이곳에서 나는 광천수로 축제를 열었고 인삼 녹용 벌꿀에 창바이산 상표를 부착시키고 있다. 또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제스키장을 만들고 공항과 철도 고속도로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이 백두산 천지(45%가 중국 소유)에서 제6회 동계아시안게임 성화를 채화하는 모습이 아프게 다가온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도시는 크고 작은 강이나 하천을 중심으로 발달됐다.도시의 하천은 바로 그 도시의 역사와 주민들의 문화공간인 셈이다.나아가 환경측면에서는 도심과 외곽의 생태계를 연결해주는 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의 강과 하천은 물을 이용하는 이수(利水)기능과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기능만 강조되면서 환경기능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도로와 주택건설을 위해 복개되기도 하고,홍수 방지를 위해 콘크리트로 제방을 쌓기도 했다.온갖 오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한 수질오염은 하천을 시민들 곁에서 멀어지게 했다. 전주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1998년 이전만 해도 오염에 찌들어 악취가 진동하고 쓰레기만 나뒹굴던 버려진 하천이었다.전주천이 오늘난 모습으로 되살아난 것은 2000년 부터 추진한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콘크리트 호안블록을 자연석으로 바꾸고,여울과 소를 설치해 산소를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수질정화 효과를 최대화하는등 수질개선및 생태계 복원을 위해 힘썼다. 이런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1급수 지표어종인 쉬리와 버들치가 돌아왔고,25종의 어류가 서식하는 생태하천으로 변모했다.생태계가 복원되면서 백로·왜가리 등이 날아들어 도심속에 그림같은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물놀이를 즐기는가 하면 둔치에 만들어진 산책로와 운동·휴식공간에는 건강과 삶의 여유를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주천의 복원성공은 전국적인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100여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다녀가기도 했다.지난 2002년 ‘일본 강의 날 대회’에서는 전세계 79개팀 가운데 대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마침 전주시 일원에서 오늘부터 사흘간 제5회 ‘전국 강(江)의 날 대회’가 열린다.강에 대한 공동의 상(像)을 만들며 바람직한 하천운동의 모델을 찾는 행사가 하천복원의 대표적 성공도시인 전주에서 열리는 것은 의미가 크다.때 늦은 감 마저 없지 않다.도시 하천은 이제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다.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값진 자원이다.이번 대회가 쉬리가 서식하는 청정 도심하천과 함께 전주의 맛과 멋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뜻깊은 행사가 되길 기대한다.
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는 벼 이삭을 본뜬 상형문자다. 쌀 한 톨이 나오기 까지엔 여든 여덟번의 손길이 미쳐야할 만큼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래서 88세 나이를 미수(米壽)라 했다. 미(米)자를 파자하면 ‘八+十 +八’로서, 88차례나 손길이 가야하는 쌀 농사의 특성을 나타낸다. 벼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브리히’(Vrihi)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쌀도 고대 인도어 ‘사리’(Sari)가 어원이라는 견해가 있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벼가 전해진 시기는 6,000∼7,000년 전 쯤으로 추정된다. 쌀농사는 남쪽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이순신의 말 처럼 호남은 그 전진기지였다. 금만평야 나주평야가 그 중심이다. 쌀은 수천년동안 우리 민족의 주식이었다. 쌀은 단순한 먹거리 차원을 떠나 우리들의 삶 속에서 혼이 되고 문화가 된지 오래다. 그런 쌀이 우리들의 밥상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친환경쌀 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본격적인 햅쌀 수확기가 다가와도 지난해 생산된 친환경쌀이 판매되지 못하고 재고량이 쌓여 농협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말 현재 친환경 인증쌀 재고량은 유기농쌀 1,003톤, 유기농 전환쌀 1,460톤 등 모두 2,500여톤에 이른다. 예년보다 2.5배나 많은 물량이다. 재고가 쌓이는 이유는 생산량은 많은데 소비량이 이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환경쌀의 생산량은 연평균 70%씩 늘어나지만 소비량 증가율은 30%에 그치고 있으니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해도 남아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재고가 쌓이긴 하지만 친환경쌀 생산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엔 생산에만 주력했지만 이젠 소비촉진 대책을 모색함으로써 생산과 소비를 병행하는데 관심을 쏟아야 할 때이다. 결국 대안은 유통망과 소비층 확대다. 선진국처럼 학교와 군대급식, 병원급식 등 단체급식을 늘리고 소비자들도 이에 관심을 기울이며서 추가지출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농도라는 전라북도는 친환경쌀 재고량도 파악치 못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대책이 나올리 만무하지 않은가. 친환경쌀 경작을 장려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선 나몰라라하는 격이니 원성을 살만도 하다.
이번 학기부터 영어교육이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지난 1997년 3∼6학년을 대상으로 시작된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10년만에 전체학년으로 확대된 것이다. 2년 뒤에는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확대할 지 결정할 예정이다.이런 제도권에서의 영어교육은 사실 뒷북이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유치원 아니 그 이전부터 영어를 배워야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어열풍을 두고 찬반 양론이 대립한 지도 오래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한 해답은 아직 없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너도나도 아이들을 영어학습에 내몰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국외를 바라보면서 교육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유학생들 역시 늘고 있다.어제 교육부에서 발표한 06년 고등교육기관 교육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은 2만2천여명으로 작년 대비 7천여명이 늘었다. 이들 유학생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고등교육기관은 대학으로 4천여 명이고 다음으로는 대학부설 대학원에 천 5백여명, 전문대학 8백여 명 순이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서울, 충북, 부산, 경북, 대전, 경남, 충남, 경기 그 다음으로 전북이 313명 증가하였다. 06년 현재 전북 지역으로 유학을 온 학생이 천 2백여명인데 도내 대학 중 217명이 재학하고 있는 우석대학교가 전국 4년제 대학 중에서 12위에 올라 있어서 도내 대학 중 유학생 수가 가장 많다.이러한 유학생의 증가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전망이다. 대학 진학인구의 감소가 그 주요 원인인데 등록금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는 사학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도내 대학의 유학생 증가율은 우려할 만하다. 전년 대비 유학생 증가율은 134%로 전국 평균 증가율 145%를 밑도는 12위에 그쳤다. 충북 지역은 전년 대비 258%로 다른 시도에 비해 큰 폭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경남, 대전, 경기 등이 그 뒤를 이었다.이제는 유학생 유치와 더불어 양질의 한국어교육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 끼워넣는 식으로 한국어교육을 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또한 제대로 한국어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통해서 양질의 교사를 확보하는 일 역시 서둘러야 할 것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
정부는 완전통합에도 재정지원 규모 밝혀라
남원파크, 전·현직 시장에 구상권 행사해야
시민예술, 무대와 삶을 잇는 다리
동학농민혁명 서훈, 왜 1차 봉기 참여자 배제하는가
표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전북 제3금융중심지 재도전, ‘이번엔 꼭’
탈출-장민강 청명초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