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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끝도 한정도 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을 걷기에 지쳐 있었다.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게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 만경평야로 ….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 만경 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 내고 있는 곳이었다” 왜놈 돈 20원 받아먹고 팔려나갈 신세에 처한 김제 죽산의 방영근과 그 어미 등이 목적지인 군산으로 가던 도중의 금만평야를 작가 조정래는 소설 '아리랑'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징게 맹게는 김제 만경의 사투리 발음이고 ‘외에밋들’이란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로 연결돼 있어 그만큼 넓다는 뜻이다. ‘외에밋들’로 표현될 만큼 넓디 넓은 금만평야는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이 곳 들녘에 아스람히 펼쳐진 지평선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람을 연결짓는 고리의 선이다. 방영근이 어미와 함께 걸었던, 들판 속의 신작로는 군산항처럼 이 들판에서 생산된 쌀을 실어나르기 위한 수단이었다. 소설 ‘아리랑’ 은 금만평야를 배경으로 암울했던 격동기의 민초들이 겪는 고초와 민족적 상황, 일제의 수탈과 착취, 그리고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은 친일파들의 실상, 자신과 가족을 내던진 애국지사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2003년 ‘아리랑’ 출간 10주년을 맞아 개관한 아리랑문학관(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이 ‘문학을 통한 역사의 조망’을 주제로 오는 29일까지 특별전시를 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김제시 등이 주최한 ‘징게 맹게 외에밋들’ 전(展)이 그것인데,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민초들의 고난과 좌절, 눈물겨운 투쟁의 과정이 담겨있다. 외에밋들의 한복판인 죽산면사무소∼성덕면 남포∼광활면에 이르는 코스모스 길은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쬐는 청명한 가을날, 일제시대엔 쌀을 실어나르는 신작로였을 이 코스모스길을 따라 황금빛 ‘징게맹게 외에밋들’을 경험하고, 특별전시전도 관람하면서 지난 시기의 아픈 역사를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중국 남서부 양쯔강 상류에 위치한 성으로 양쯔강, 민장강, 튀장강, 자링강이 성내를 흐른다. 인구가 일 억이 넘는다고 현지인들은 주장하지만 공식적인 인구는 줄어들고 있어서 타지역으로의 인구 유출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지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농업식량 생산량과 쌀 생산량 모두 전국 제1위이고 중국 동북지역이 산업지역으로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개발으 속도가 더딘 지역이 또한 이 곳이다.문화혁명으로 다른 도시들은 유적과 유물 등을 찾아 보기 어려워졌지만 이 지역에는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유비보다 제갈량(諸葛亮)을 중시하는 무후사(武侯祠)와 두보초당(杜甫草堂) 그리고 망강루(望江褸) 등이 도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산동성 제남이나 하남성 정주 등의 도심에는 역사적인 사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 유비가 촉한을 통일한 지역이며 당(唐)의 현종(玄宗)은 안사의 난 때에 이 성의 도읍지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수당(隨唐) 시대 때는 창안(長安), 양저우(揚州), 둔황(敦惶)과 같이 4대 도시이기도 했다.이 도시 이름은 성도라고 흔히 읽게 되는 청두(成都)이다. 물론 이 청두가 도읍지인 이 성은 네 강이 성내를 흐른다 하여 붙여진 쓰촨(四川)성이다. 이 성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전라북도와 흡사한 면이 많다. 역사적인 배경이 있으며 농업이 주된 산업이면서 개발에서는 다른 시도에 비해 더디다는 점 등이 공통점이다. 이 성의 동부는 쓰촨 분지(四川盆地)라고 부르는데 주변에 3,000여 미터의 산들로 둘러 사여 있는 청두 평원이 있다. 이 평원에는 마치 김제의 벽골제처럼 아주 오래된 관개시설인 두장언(都江堰)이 있는데 지금은 관광지로도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기도 하다. 이 두장언에서 30여 분 거리에는 도교의 시원(始原)지역이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천성산이 있다. 청두에서 오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구채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쓰촨성 청두에는 우리 교민이 약 천여 명 살고 있다. 대다수가 유학생이거나 상사 주재원과 그 가족들이다. 잠시 머물 곳으로 생각하는 다수 교민과 달리 현지인과 결혼하여 그곳에 정착하는 교민들도 있다. 이들과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한중교류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공공기관이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자 할 때 용역을 실시하는 것은 정해진 절차나 다름없다. 사업의 타당성조사에서부터 실시설계까지 정확한 자료가 만들어져야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심이 너무 지나쳐 이중삼중으로 용역을 남발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일관성이 결여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더구나 보완용역이라면 몰라도 중복용역은 폐단이 더욱 크다. 유사한 성격의 용역을 겹치기로 하다보면 용역과 용역 간에 틀이 맞지 않아 이를 조정하는 용역을 다시 시행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견해가 항상 같을 수가 없을 뿐더러 전문가라고 해서 언제나 완벽한 답을 내놓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중복용역을 실시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혼란과 낭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동일 사안에 대해 반복해서 용역을 실시하는 것은 여러 모로 의혹을 자초할 공산마저 있다. 때문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의 용역에 되도록 많은 전문가를 참여시켜 단번에 완벽한 결과물을 얻어내야 한다. 그리고 한번 완성된 용역은 캐비닛 속에 처박아둘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시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혈세를 낭비한 죄'를 면할 수가 있다.김완주 전 전주시장(현 전북지사)이 재임기간 중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경전철사업에 대해 후임 송하진 시장이 다시 추진여부를 판단할 용역을 발주해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주경전철사업은 지난 1999년 타당성조사를 시작으로 7년여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줄기차게 추진해 온 대형 교통망개선사업이다. 추진과정에서 찬반 양론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한국갤럽에 의뢰,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도 있다. 결과는 찬성 68%, 반대 28%였으나 운수업체와 시민단체는 조사방법에 문제가 있다며 곧바로 반발을 했다.건교부로부터 도시철도기본계획 승인까지 받아놓은 경전철사업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니 뭔가 말못할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7년 동안이나 검토하고 또 검토해 온 사업인데 무엇을 또 검토할 것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새(新)용역을 실시해서 구(舊)용역을 갈아치우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세한도(歲寒圖)와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그림중 백미로 꼽힌다. 이들 그림은 물기가 적은 마른 붓과 먹을 아껴 쓰는 검묵(儉墨)을 통해 고졸(古拙)하고 간솔(簡率)한 문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두 그림 모두 학문과 예술, 서예와 그림이 하나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하지만 두 그림은 대조적 배경을 갖는다. 하나는 추사가 벼랑끝에 선 것같은 어려운 시절에, 또 하나는 만년에 한가한 가운데서 그린 것이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는 58세이던 여름,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그렸다. 역관(譯官)이자 제자였던 이상적이 중국의 새로운 자료를 보내주자 그에 대한 감사의 답례로 그려서 보내 준것이다. 이 그림은 표제-화면-발문(跋文)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그림은 가로 69.2㎝, 세로 23㎝지만 청나라 문사(文士)들의 시문까지 포함하면 무려 14m에 이른다. 그림은 황량한 바닷가 허름한 초가집을 사이에 두고 낙랑장송이 의연하게 솟아있고 그 옆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고고하게 서 있는 게 전부다. 추사는 발문에서 논어의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를 인용해 그림의 취지를 설명한다. 권세를 잃고 귀양 온 자신의 자화상인 셈이다.반면 불이선란도는 추사가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뒤 경기도 과천에 은거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난초가 적막한 산속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어, 여유있는 느낌을 준다. 걸림없고 허허로운 선사(禪師)를 연상시킨다. 본래 자신의 시동(侍童)에게 어느 날 우연히 손길가는대로 그려 주었던 소품이다. 발문이 4군데나 붙어있다.현재 전해지는 추사의 작품은 600여점. 이중 세한도는 최소 50억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러나 추사는 ‘글이 글씨보다 낫다’는 정인보(鄭寅普)의 말처럼 서예가에 앞서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고 학자였다. 금석학과 경학 불학 등에 탁월한 저술을 남겼다. 일본학자 후지쓰카 아키나오(藤塚明直)는 “추사는 당시 중국과 조선을 통털어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가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올해는 그의 타계 150년이 되는 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 간송미술관, 과천시민회관, 삼성미술관, 예술의 전당 등에서 그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등에서 진료를 받고 진료비를 계산한 사람들 대부분은 불쾌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선택진료제’ 때문이다.‘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에 항의도 해보지만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울분으로 그치기 일쑤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때 도입된 선택진료제는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치료해줄 특정의사를 선택하고, 의료기관은 기준에 따라 별도의 비용을 추가 징수할 수 있게 한 제도다.그 이전까지 일부 국립대병원이 의사들의 임금 보전과 근무의욕을 높인다며 ‘특진’ 시스템을 운영하던 것을 보완한 셈이다.물론 선택진료는 전문의 취득후 10년 경과한 의사등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환자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환자들에게 진료의사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제도 도입 명분과 취지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의료기관들이 이 제도를 편법적으로 운영하면서 의료 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데 있다. 가장 흔한 피해사례가 선택진료에 대한 환자의 동의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병원측이 선택진료비를 징수하는 경우다.실제 응급실을 찾는 경우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들은 병원측이 내미는 서류에 무심코 서명하기 마련이다. 또 일부 병원의 경우 특정 진료과에 선택진료 의사만 있어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여기에 선택진료를 하면 진찰비 이외에 검사료,마취료,수술비등에 까지 선택진료비가 부과된다.수익을 올리려는 병원들의 편법에 환자들만 ‘봉’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종합병원등 3차 의료기관은 우수한 시설과 양질의 의료인력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종별가산제를 통해 일반 병의원들 보다 높은 의료수가를 받고 있다.그런데도 선택진료제를 통해 환자가 본인 부담으로 별도의 가산금을 내는것은 2중부담의 불합리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선택진료제가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만 높인다는 비판에 따라 그동안 시민단체 등에서 꾸준히 폐지를 요구해왔지만 병원계의 반대로 처리가 미뤄져 왔다.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제도 개선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수요자들의 불편이 뻔한데도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제도의 합리적인 개선을 기대한다.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 미국이 2차대전중 비밀리에 추진한 암호명 ‘맨해튼 계획’의 프로젝트 책임자인 오펜하이머(1904∼1967.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는 첫 원폭실험 현장에서 원자폭탄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이같이 중얼거렸다.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핵폭탄 개발을 반대하던 과학자들을 연구소로 불러들이고 나치스에 쫒기던 유럽의 과학자들도 대거 참여시킨 게 그다. 4,50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매핸튼 계획'은 노벨상의 등용문이 됐다. 1945년 7월16일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도에서 실시된 최초의 핵폭탄 실험을 보고는 네오 질라드(1898∼1964)도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질라드가 누구인가. 핵분열을 이용해 핵폭탄을 만들 수있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히틀러가 핵폭탄을 만든다면 유럽은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폭탄 개발을 요구하는 편지를 쓰게 한 당사자 아니던가. 그런 그가 핵폭탄이 완성되고 난 후인 1945년 7월에는 핵폭탄을 실전에 사용치 말도록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제출한다. 연쇄반응에 의한 핵분열의 파괴력과 향후 무서운 핵무기 경쟁을 예견한 것이었다. 우라늄, 플루토늄 등의 원자핵 분열에 의해서 얻어지는 에너지를 살상 또는 파괴 목적에 이용한 게 핵폭탄이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은 30여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과학의 모험이 가져온 결과다. 북한이 이런 끔찍한 핵폭탄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에 이어 9번째다. 이들이 보유한 2만7,000기의 핵탄두가 지구를 덮고 있으니 끔찍한 일이다. 윈스턴 처칠이 인류 최초의 핵폭탄이 투하된 1945년 8월6일 말한 구절을 우리는 두고두고 새겨야 할 것 같다. “…인류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었던 자연의 비밀이 폭로된 것은 사물을 이해하는 인간 모두의 마음과 양심에 엄숙한 반성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은 이 무서운 힘이 국가간의 평화에 공헌하고, 지구 전체에 파괴를 가져오지 않고 무궁한 번영의 자원이 되도록 진심으로 빌지 않으면 안된다”
모순 하나, 중등교육에서 영어회화는 영어선생이 가르친다. 그런데 영미문학은 국어선생 몫이다. 이런 역할 분담이 이이러니컬한 이유는 이들 교사의 대학시절 교육과정에 있다. 영어 예비교사는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영어영문학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영미문학의 시와 소설 등을 중심으로 대학시절 교육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중등교육 현장에서 가르쳐야 할 영어교육의 내용은 시와 문학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영어회화 능력을 잣대 삼아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안팎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사가 된 다음부터는 영어회화 중심의 학습과정에 맞추어 가르칠 준비를 따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이들 영어교사가 맡아야 할 영미문학은 고스란히 국어교사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국어교사들이 대학 교육과정 중에서는 맛보기 정도에 그쳤던 영미문학의 내용을 마치 주전공인 양 가르쳐야 한다. 요즈음에는 대학 입시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논술까지는 국어교사의 몫이다. 하지만 국어교사 역시 사정은 영어교사와 비슷하다. 이들 영미문학과 논술 모두 대학 교육과정의 주된 내용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이런 중등과 고등교육 현장의 괴리는 학원교육을 양산한다. 중등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일찌감치 서울 영등포 둥지의 학원가를 찾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심지어 대학에서까지 이들 학원 강사를 데려다가 특강 자리를 마련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모순 둘,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영어선생이 더 잘 하는 줄 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려면 의사소통이 가능하여야 하고 그런 사람은 영어선생이라는 논리이다. 이런 생각들을 한국어교육을 위해서 해외에 파견하는 교사와 교수의 전공을 보면 쉽게 드러난다. 한국어교육이라는 전공이 학문분야로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해외파견 교수와 교사의 대다수는 국어교육 전공자가 아닌 영어 등의 외국어 전공자들이다.이들 외국어 전공자들이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들에게 한국어교육을 잘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배우지 않은 내용들을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라는 환경 탓만 할때는 지났다.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1999년)를 한두 해 앞둔 지난 1997년과 1998년,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문화에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당시 76세와 71세였던 김창자, 이시형 할머니가 남편의 부당한 대우에 대항하여 이혼소송을 제기, 유교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것이다.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순종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 온 할머니들이 '불평등한 삶'을 거부하며 이혼소송까지 불사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그러나 법원은 "몸이 불편한 남편을 돕는 것은 아내의 도리" "지금까지 살았으니 해로하시라"는 등의 주문과 함께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까지 간 이 재판은 결국 1심판결대로 확정이 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성노인의 이혼할 권리'를 단순한 개인문제에서 사회문제, 나아가 여성인권문제로까지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른바 '할머니들의 반란'이라는 이 사상 첫 '노인이혼청구사건'은 오늘날 우리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온 동기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후 8~9년이 지난 요즘, 노인부부 이혼신청 건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증하고 있다. 이달 초 서울가정법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올 1~7월까지 이혼신청 건수는 혼인기간 26년 이상이 전체(2천58건)의 19%(391건)로 1~3년의 9.4%, 1년미만의 4.1%를 크게 앞질렀다. 결혼생활을 오래한 부부일수록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는 일반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고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큰 폭으로 추월해버린 것이다. 아마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일종의 용수철 현상은 아닌지 모르겠다.우리보다 살기가 좀 낫다는 일본에서는 벌써 10여년 전부터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남편 정년 때까지 기다렸다가 퇴직금 나꿔채 갈라서는 황혼이혼 이야기는 이제 이야기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한다. 일본 남성노인들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면 은퇴한 50~60대 남편들을 구두 뒷굽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에 비유할까. 우리나라도 한가롭게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진작부터 퇴직한 남편들이 이사갈 때 짐보다 먼저 올라탄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는 것을 보면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들이여, 대체 무엇을 그리도 잘못하고 살았는가!"
요즘에야 떡이라는 먹거리가 별 게 아니지만 옛날 우리 전통사회에서 떡은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설령 특별한 날이라고 해도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하면 해먹을 수 없는 것이 떡이었다. 명절 때 모든 집에서 떡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한데 집안이 워낙 가난해 떡을 빚을 수 없는 아내의 상심을 달래려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냈다는 백결 선생의 이야기도 있다. 떡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그림의 떡’(畵中之餠)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차지할 수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말도 있다. 떡을 얻어먹는 것이 큰 횡재였기에 이런 말이 생겨났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는 말은 공연히 남의 일에 끼여들지 말고 네 잇속이나 차리라는 말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등의 말에 들어있는 떡은 횡재, 실속 또는 잇속을 의미한다. 근래에 와서 '떡값'이라는 묘한 말이 생겨났다. 떡값은 회사 등에서, 명절 때 직원들에게 주는 약간씩의 특별 수당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공사 입찰 등에서 입찰자끼리 담합하였을 때, 낙찰된 업자가 다른 업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약간씩의 돈도 떡값으로 부르고, 명절 때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뇌물조로 바치는 돈도 떡값으로 통한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보너스 성격의 돈이 사회적으로 활용되면서 엉뚱하게 뇌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 친지, 이웃, 동료 사이에 인지상정의 징표로 오가던 떡값이 뇌물로 변질되면서 잊을만 하면 ‘떡값사건’이 불거지고 있다. 이른바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사회에서 상납하는 관행이 완주군에 이어 전남경찰청에서 또 적발됐다. 아무리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떡값을 줄리도 없거니와 떡값을 받은 사람 역시 나몰라라할 수도 없는 게 세상 이치 아닌가. 뇌물을 고리로 한 사슬이 형성되면 업무의 공정성과 조직의 질서를 해친다. 사적인 컨넥션이 공조직의 암적 인자가 되는 것이다. 보험성, 댓가성 떡값을 받아먹다간 떡치고 만다. 언젠가는 두고두고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된다. 명절을 앞두고 떡의 의미, 떡값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한가롭기만 한 휴일 아침입니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지요. 개천절이 국경일인데다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으니 잘 하면 내일 하루도 마저 쉴 수 있겠습니다. 올해처럼 이렇게 연휴가 연휴다운 때도 없습니다. 징검다리 휴일이라서 근무 생산성을 따지는 좋은 직장에서는 틈새에 있는 근무일을 쉬기도 하는가 봅니다. 그러면 거의 열흘을 쉴 수 있습니다.아쉽다면 다음 주 월요일이 한글날인데 쉬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한글날이 공휴일로 정해진 것은 1949년부터이니 당연히 광복 이후의 일이었지요. 공휴일에 관한 대통령령 124호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1990년정에 경제계 등에서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주장을 해서 지금의 행정자치부인 당시 총무처에서 법정 공휴일을 축소했습니다. 그 덕분에 10월에 집중되었던 휴일 중 한글날과 국군의 날이 공휴일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올해부터는 한글날만 다시 국경일로 복귀가 되었지만 아쉽게도 소위 노는 날은 아닙니다. 국경일이면서 공휴일이 아닌 날은 아직 한글날뿐입니다만 오는 2008년부터는 제헌절도 안 쉰다고 하니 쉴 수 있는 날 하루가 더 줄게 생겼습니다.날, 일, 절로 끝나는 각종 기념일은 38개 정도가 됩니다. 그 중 국경일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그리고 한글날이지요. 그리고 오늘이 그 중 하나인 개천절입니다.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10월을 상달(상월)이라 해서 한 해 동안 지은 농사를 거두어 햇곡식으로 조상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는 풍습이 있었으니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등의 행사와 마니산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의 제천행사가 바로 그런 예였습니다.광복 전까지만 해도 개천절은 한글날처럼 음력으로 기념일을 삼았었습니다. 개천절 행사는 상해임시정부에서 국경일로 정하여 경축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의미가 컸습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인 1949년 당시 문교부의 ‘개천절 음,양력 환용(換用) 심의회’의 심의결과에 따라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기념하게 되었습니다.인천국제공항에는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빈다는군요. 외국인들이기를 빕니다. 그 외국인들은 빼고 남아있는 한국 사람들이라도 개천절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태극기라도 내다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부인과 분만실을 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신세대들은 어쩐지 모르겠으나, 촌구석에 태반을 묻고 사는 출향객들에게 추석명절은 명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새로 난 오곡백과로 차례를 지낸 후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 음덕을 기리는 일은 정해진 순서이거니와, 가족 행사가 끝난 다음 애증의 세월을 함께 했던 이웃사촌들과 과거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특별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추석이 그냥 명절이겠는가.자동차가 자전거보다 많은 요즘이사 마음만 먹으면 고향길 나서기가 일도 아니다. 그러나 교통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던 시절에는 고향길이 사돈집 제삿길보다도 멀었다. 그래서 평소 고향집을 찾지 못하던 출향객들은 설,추석 양대 명절이라도 고향에 내려가려고 너도나도 귀성길에 올랐다. 혹 무슨 사정이라도 있어 고향에 못 내려가는 출향객이라도 생기면 '사업하다 부도가 났다' '직장에서 쫒겨났다더라' 등등 별 악소문이 퍼질 정도였으니 당시 귀성 풍속도를 미뤄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명절이 가까워지면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은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귀성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표 사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여서 날밤을 새며 줄서는 것은 다반사요, 설사 표를 구했다 하더라도 차에 오르는 것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이 몰려들었던지 예비차까지 동원해도 모자라 보통 정원의 두세배까지 꾸역꾸역 몰아 넣었으니 그게 짐짝이지 사람이었겠는가. 그래도 귀성객들은 조금만 참으면 고향집에 당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견뎌냈다.한데 이상한 일이다. 자가용 없는 집이 없고 도로도 사통오달을 했는데 명절 귀성객은 오히려 줄고 있으니 말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농촌인구가 크게 줄어 찾아오는 이가 적어지고, 그나마 있는 부모들마저 자식 찾아 역귀성을 하고 있는 탓이 크다. 토박이 농민들은 이제 명절이 닥쳐도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설상가상으로 추석명절은 아예 제쳐놓고 해외여행을 떠나버리는 '나대로 족'이 크게 늘고 있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이민간 동포들도 명절이면 고향쪽으로 차례상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절을 올린다는데 이게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이제 농촌의 추석은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만 쓸쓸히 지켜보게 생겼으니 실로 '고향무정'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면 친척들이 모여 조상을 어떻게 모실까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매장이냐 화장이냐의 문제가 이슈중 하나로 떠오른다. 대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난다. 하지만 일을 당하면 어느 하나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싶다.그러면 매장과 화장의 장단점은 뭘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매장(埋葬) 위주였다. 그것도 가능하면 넓은 면적에 후장(厚葬)을 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토가 온통 묘지강산으로 변해버렸다. 매장은 명당(穴)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명당은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과 발복을 근거로 한다. 동기감응론은 쉽게 말해 묘지에 묻힌 조상의 뼈를 통해 후손에게 그 영향이 미친다는 이론이다. 풍수지리의 고전으로 꼽히는 ‘장경(葬經)’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是以銅山西崩 靈鐘東應(서쪽에 있는 동산이 붕괴하니 동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종이 감응을 일으켜 울린다). 멀리 있어도 동질의 기(氣)끼리는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라디오나 TV에서 같은 주파수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소리나 화면이 나오는 것과 같다. 생명과학에서 부모형제가 같은 DNA를 갖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능하면 좋은 자리를 잡아 조상을 모시는 것이 나쁠리 없다. 그러나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명당을 찾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또 전문가를 만나 명당을 찾았다 해도 자신의 소유로 하기가 쉽지 않다. 나아가 명당을 썼다 해도 산사태나 도로 댐 건설 등으로 맥이 끊길 수도 있다. 반면 화장(火葬)은 조상과 후손 사이에 감응을 일으킬 수 없어 어떤 좋고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화장을 하면 인체가 고온을 거쳐 가루가 되는 과정에서 동질의 기가 없어져 버린다. 결국 무해무득(無害無得)하게 되는 것이다. 또 뒷처리도 깨끗하다.그런데 이를 안치할 납골당이 문제다. 가루를 산이나 바다에 뿌려버리면 그만이지만 납골당에 모시려면 또 다른 문제가 따른다. 납골당 구하기가 어렵고 개인이 묘지처럼 만들 경우 곳곳이 흉측한 돌무덤을 이룬다. 돌은 천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 거기다 요즘에는 깞싼 중국산 돌들이 수입돼 국토훼손이 우려된다. 죽어서도 이래저래 몸 누이기가 쉽지 않아졌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죤 스튜어트 밀(1806∼1873)이 한 말이다. ‘배부른 돼지’는 그저 주인이 던져주는 밥이나 먹고 만족해 하는 사람, 무뇌아처럼 사유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좀 가난하더라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 고뇌하면서 사는 사람을 이르는 비유다. 이성의 힘으로 근본을 캐고 까닭을 규명하며 ‘왜’(Why)를 묻는다. 그리고 대안에 대해 고민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문학 사학 철학 같은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개념은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기원전 55년 키케로가 마련한 웅변가 양성 과정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후마니타스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중세 초기 성직자들은 후마니타스를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육과정으로 채택했다. 이른바 교양과목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선 누구나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인문학인 것이다. 이런 인문학이 어느새 기피학문이 돼버렸다. 실용학문에 떠밀려 전공자가 줄고 취업의 길도 좁디 좁다. 2003년 69.4%에 달했던 인문계열 졸업자 취업률이 2005년엔 53.4%로 급락했다. 지방대의 실상은 서울쪽보다 더 심각하다. 이처럼 토양이 척박해지니 ‘인문학 위기’라는 말이 세상의 화두가 되고 있다. 실사구시의 사회분위기와 이런 분위기로 몰아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내적으론 인문학자들이 외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한 필연적 결과다. 인문학이 빈사상태에 빠지면 다른 학문도 발전하기 어렵고 실용학문도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15일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이 ‘인문학 선언’을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에는 전국 80개 인문대 학장들이 현재의 인문학 위기 사태를 반성하고 대학과 정부, 우리사회의 관심과 지원책을 촉구하는 ‘인문학 성명서’를 26일 발표했다. 이번 기회에 인문학에 대해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됐으면 한다. 경제논리가 우선시되고 개인의 정신적 소양보다 당장의 이윤에 더 급급해 하는 세상이 된다면 ‘배부른 돼지’가 판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몽고반점을 중국 음식점을 이름이라거나, 으악새를 새 이름쯤으로, 첨성대를 경주 근처의 대학 이름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어떤가. 한국어 회화 좀 된다고 한국어 가르치는 일 정도는 가볍게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그런 생각을 바로 잡으려 들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그런 사람이 혹간 있다. 이는 마치 자동차 운전 좀 한다고 정비도 잘 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과 같다.요즈음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어교육과 구분해서 외국인과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육 영역을 따로 설정한다. 지난 24일에 제10회 한국어능력시험이 치러졌다. 1997년에 2,692명을 대상으로 출발한 이 시험이 작년도에는 국내외 25개국 62개 지역에서 26,611명이 지원하여 9년사이 10배가량 증가하였다고 한다. 올해에는 전년 대비 27.7%가 늘어난 33,983명이 응시하였고 인도와 타지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신규 시행되는 3개 국가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 28개국 73개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시행 초기에 비하면 응시자 수가 13배 증가한 셈이다.전체 응시자 수만 놓고 본다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05년 대비 06년의 증가 사유를 보면 중국에서의 응시자 수가 6,000여명이 늘어난 데서 기인한 바 크다. 우리 교민이 많이 산다는 미국에서의 응시자가 06년 현재 1500여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중국 응시자의 증가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할 수 있다. 또한 28개국이 응시하였다고는 하지만 천 명이 넘는 지역이라고는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중국 한 나라의 응시자 수만 12,813명이어서 전체 응시자의 37.7%를 차지하여 그 지역적 편중이 지나치다는 점 역시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24일 치러진 한국어능력시험이 외형적인 측면을 주목하는 이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이겠지만 그 내용을 놓고 보면 중국 응시생의 증기라는 단순한 요인 외에는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 보기 어렵다. 오히려 한류문화가 긍정적인 인상을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우리 문화 중 부정적인 요소가 외국인들에게 강화되는 추세여서 한류문화에 대한 재정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 인문학의 맥이 이러한 한류문화의 성장과 긴밀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의?주장이 다르거나 이해관계가 얽혀 투쟁을 하는 곳에는 으레 괴문서라는 것이 등장했다. 괴문서는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처럼 뒤에 숨어서 공격을 하는 비겁성 때문에 사회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괴문서에 담겨진 내용이 약자의 항변이거나 거짓이 아닌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종교는 사기'라는 괴문서가 나돌아 17C 유럽을 들쑤셔놓은 일이 있다. 이 괴문서는 "신과 종교는 대중의 공포와 무지에 기대어 자기들만의 특수 이익을 얻어내는 대중 농락 가공물" 이라며세 명의 사기꾼으로 모세와 예수?마호메트를 지목했다. 말 그대로 괴문서라 작성자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범신론(汎神論)적 세계관을 가졌다는 이유로 유대교에서 파문당하고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던 스피노자(1632~1677)가 장본인일 것이라는 추측만 할 따름이었다. 사상의 자유가 심하게 억압됐던 시대의 음울한 흔적이 아닌가 싶다. 케케묵은 이야기지만 지난 1993년에 '하나회 괴문서 사건'이라는 게 터졌다. 그 해 4월2일 비하나회 장교였던 백승도 대령이 서울 서빙고동 군인 아파트에 하나회 명단을 살포한 것이 괴문서 파동을 촉발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던 것이다. 조사 결과 실제 하나회라는 군부 내 암적인 사조직이 존재했고, 명단 또한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정부는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단행하고 군 기강을 바로 세웠다. 괴문서가 공동체문화를 훼손시키는 '공공의 적'이라는데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괴문서는 무조건 유해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언론을 포함한 공식적인 채널의 정보가 아무리 풍성하다 하더라도 모든 진실을 낱낱이 들춰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회 사건처럼 괴문서 하나로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일도 있다는 말이다.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의도 정가에 난데없는 괴문서가 나돌아 세인들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유력 대권주자들의 세력판도를 분석해놓은 이 괴문서들은 제법 그럴듯하게 작성돼 있다. 누구를 지지한다고 거론된 당사자 가운데는 음해세력의 장난이라고 발끈하는 이도 있지만 반드시 음해가 목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괴문서도 이런 괴문서는 국민들에게 꼭 해악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정치판 관전하기가 더 흥미롭지 않은가.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함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건성으로 한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벌초자리는 좁아지고 배코자리는 넓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벌초를 마지못해 하는 탓으로 그 구역이 차차 줄어들고 작아도 될 배콧자리(상투를 얹히려고 머리털을 깎아낸 자리)는 자꾸 넓어지기만 한다는 의미다. 북한지방의 속담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비유한 것이다.추석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휴일이면 벌초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여름 허리보다 높이 자란 잡초들이 산소 입구부터 막아선다. 봉분 위에도 키 큰 잡초가 무성하다. 잡초를 뽑아낸 뒤 예초기를 등에 지고 한쪽부터 차근차근 깎아 나간다. 어느새 등에 땀이 밴다. 갈퀴로 긁어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해진다. 이 때 잘못하면 예초기에 돌이 튀어 부상당하는 경우도 있다. 또 벌에 쏘이거나 독사에 물리는 경우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금화벌초(禁火伐草)라 하여 불도 조심해야 한다.이같은 벌초는 보통 음력 8월 1일부터 보름 이전에 마치는 게 상례다. 지금은 예초기가 나와 수월해졌으나 그 전에는 낮을 잘 들게 갈아서 가지고 갔다. 묘지가 멀면 낫목에서 부터 날부분까지 새끼로 가지런히 감았다.제주도에선 자손들이 살아 있으면서 벌초하지 않는 것을 ‘죽은 아방(아버지의 방언)곡두에 풀도 안그치는 놈’이라 해서 제일 불효로 쳤다. 그래서 자손들이 육지에 나갔다가도 8월이면 돌아와 선묘(先塋) 벌초에 나서야 했다. 벌초할 시기가 지나도 벌초 안한 묘지는 그 후손이 끊어졌다 해서 ‘골총’이라 불렀다. 조상의 묘를 모시는 것은 벌초만이 아니다. 사초(莎草)라 해서 훼손된 묘지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가 하면, 소분(掃墳)이라 해서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그 사연을 고하고 제사를 지냈다.하지만 이같은 풍습도 크게 변하고 있다. 도시로 나가 바쁘다는 핑계로 돈을 주고 벌초를 맡기는 것이다. 이맘때면 농협이나 산림조합, 벌초전문 대행업체에 이러한 주문신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것은 나은 편이다. 전국 2000여만 기의 분묘중 70% 가량이 무연고로 추정된다고 한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더 할 것이다. ‘처 삼촌 벌초하듯’이 ‘대접 잘 받았다’는 뜻으로 다가올 날도 머지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코리아’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였다. 6·25동란으로 잿더미에서 일어나 경제성장을 이룬 저력을 한껏 과시한 것이다. 이 서울올림픽 폐막식 식후행사는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의 소리와 정서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바로 만정(晩汀) 김소희의 ‘뱃노래’가 밤하늘에 가냘프게 퍼져나간 것이 그것이다. 환상적인 자태와 몸짓으로 배를 떠나 보내는, 작지만 거대한 산맥같은 국창(國唱)의 예술혼은 5000년 역사의 응축이었다.그녀의 한(恨)서린, 그러나 영롱한 소리는 배와 함께 우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듯 했다. 그리고 1993년 영화 ‘서편제’는 엄청난 인기속에 국민들에게 판소리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었다. 판소리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기폭제였던 것이다. 이 영화의 대미(大尾)는 김소희의 소리가 장식했다. 숙명여대 정병헌 교수는 이 대목을 ‘황홀하면서도 소름을 돋게 하는 거장의 소리’라고 평했다.그렇다. 고창에서 1927년 태어난 그녀는 평생을 판소리의 중심에서 대들보로 살다 간 진정한 예술인이다. 그녀는 판소리의 저수지요, 전통예술의 전범(典範)이었다. 첫 스승 송만갑을 비롯 이화중선, 정정렬, 박동실, 정응민 등 동편제와 서편제의 모든 유파를 받아들여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냈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맞게 전수시켰다. 또 거문고와 가야금, 춤, 서예 등에도 일가를 이룰만큼 폭넓은 예술세계를 펼쳐보였다. 그의 제자사랑은 끔찍해서 엄하면서도 자상하기 이를데 없었다. 안향련과 김동애, 신영희, 안숙선, 이명희 등을 배출했고 성창순, 오정숙, 장영창도 그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그러나 무엇보다 귀감이 되는 것은 그녀의 태도였다. ‘하늘이 내린 소리’라는 말을 들었어도 교만하지 않고 항상 단아하고 기품있는 모습을 보였다. “소리만 잘 하려고 허지 마. 우선 사람이, 인간이 돼야지 올바른 국악인이여.” 이 말에는 그녀의 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도(道)’ 같은 것이 느껴진다. 2006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처음 기획한 ‘작고 명창열전’에 그녀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16일 열린 ‘위대한 소리-만정 김소희’기획에는 그의 제자 등 국악계의 슈퍼스타가 총출연했다. ‘생애와 예술세계’세미나도 열렸다. 24일까지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옥스팜’(Oxfam)은 빈곤이나 재난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주민들을 지원하는 세계적 민간구호단체다. 2차대전중이던 1942년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는 그리스인들을 돕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 시민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게 시발이다. 정식 명칭은 ‘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옥스포드 기근구조위원회). 영국에 본부를, 전 세계에 70개 사무소를 두고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1953년에는 한국전쟁 고아와 빈민들을 위해 6만 파운드를 지원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옥스팜’은 지금 헌 물건을 판매하며 얻은 수익으로 제3세계의 빈곤 구제와 사회 지원에 힘쓰고 있다. ‘옥스팜’을 모델로 삼아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대표적인 나눔장터를 실천하는 단체가 ‘아름다운가게’다. 지난 2002년 10월 서울 안국동에서 첫 선을 보였고, 전북에선 지난해 2월28일 1호점이 전주 서서학동 대광마트 에서 문을 열었다. 전북일보사가 후원하고 있는 아름다운가게는 전주 모래네 사거리와 익산 영등동, 군산 명산동 등 네곳에서 운영중이다. 아름다운가게는 ‘내게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더 쓰여야 할 물품’을 기증받아 손질한 뒤 이를 되판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이른바 ‘나눔과 순환’의 장이다. 의류, 주방용품, 중고서적, 스포츠용품, 학용품, 그릇 등 거의 모든 생활소품과 잡화류가 해당된다. 지금까지 전북지역의 기증품은 모두 2만4,700점으로, 개인 기증이 72% 비율이다. 명사들이 내놓은 기증품은 경매를 붙여 판매하는데 강희남 목사가 백자도자기를 기증했고 김완주지사는 고급 자전거와 도자기를, 서창훈 전북일보 사장은 고급 병풍을, 개그맨 박명수는 노트북을, 남전 이철우화백과 고상준 박찬주화백· 정윤희 익산아오아쇼핑몰 대표와 배나연 해와달갤러리원장 등 많은 명사들이 의미있는 서예와 그림을 내놓았다. 오는 23일엔 아름다운가게와 중앙일보가 함께 하는 나눔장터가 도청 신청사 광장에서 열린다. 내 주변의 남아 도는 물건은 지천인데 세상 어딘가에는 부족해서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많다. 넘치고 부족한 재화를 수평작업하는 곳이 바로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가게’다. 명사들과 기업, 기관 단체, 개인의 재활용 물품이 쏟아져 나왔으면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여흥이 채 가시기도 전, 우리는 한 미결수의 외마디 소리를 들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금 생각해 보면 미결수 지강헌이 처음 한 말은 아닐 듯 싶다. 구치소나 교도소 담장 너머에서만 낯선 단어였을 뿐 아마도 그 내부에서는 유행어처럼 사용되던 말이 아니었던가 한다. 당시 상황이 생중계된 탓에 탈주한 미결수들과 경찰의 대치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주동자 지강헌이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 노래를 들으며 삶을 마감한 장면은 우리가 생각하던 범죄자와는 유다른 모습이었다.동전의 양면처럼 공공의 질서와 개인의 인권은 양립한다. 이 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겠지만 체감하는 분위기는 이와 사뭇 다르다. 재벌 총수들은 수사망이 좁혀오기도 전에 외유를 떠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실제 상황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서민들은 이러한 재벌들의 행태에서 유전무죄의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기억은 서민들이 경찰서나 검찰을 드나들면서 겪었던 애환과 대비될 때 무전유죄의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최근 경찰에서는 영어 등 13개국 언어로 된 미란다 원칙 고지문을 일선 경찰서와 지구대에 배포했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익히 들었던 “귀하는 진술거부권이 있고 변호인을 선임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미란다 원칙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한 권리에 속한다. 피의자의 입장에서 신문 초기단계의 변호인 입회권 행사는 아주 중요한 권리이지만 이를 행사 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변호인 입회권은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피의자의 진술이 자신을 불리하게 할 수 있는 상황 역시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 이전에, 고지의 의무를 다 했다지만 묵비권 역시 피의자들이 권리로써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점에서 지난주에 접한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에 관한 신문연재 소식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연재중단의 소식을 우리는 들었다. ‘조직에 민감한 글’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문제라는 신문사측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아쉽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달 초 종영된 KBS 2TV 수목극 '투명인간 최장수'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초적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이 드라마는 불치병과 가족애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로 극이 전개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숭고한 정신세계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줬던 것은 날로 각박해져가는 세태에 최장수라는 인물을 통해 사람냄새 나는 삶이 무엇인가 극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작가가 왜 최장수에게 투명인간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줬는지는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투명해선지, 자신을 모두 벗어던지는 희생정신 때문인지, 어쨌든 지고지순하기까지 한 최장수에게 투명인간이라는 별칭을 붙여준 것은 약간 의외다. 사실 투명인간이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보다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할로우 맨' '투명인간의 사랑'과 같은 공상과학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은 대개 약을 잘못 먹거나 우연한 사고로 투명인간이 돼 정의의 사자가 되거나 못된 일을 저지르는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투명인간이 맞는 최후는 거의 비극적이다. 해피 엔딩 으로 대미를 장식할 만도 한데 슬프거나 음울하게 최후가 묘사되는 것이다. 평범한 것보다 비범한 것이 더 좋아 보이지만 결국 비범한 것보다 평범한 것이 더 낫다는 뜻일 게다.누구나 한번쯤 나도 투명인간이 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나를 아무도 못볼테니 감정있는 사람 찾아가 복수도 하고, 은행에 들어가 돈도 털어 오고 얼마나 재미나겠는가. 또 남의 비밀이란 비밀은 모두 캐볼 수 있고, 남 모르게 나 하고싶은 일 다 해볼 수 있는데 얼마나 깨소금 맛이겠는가 말이다. 한데 묘한 일이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으니 좋은 일 하는데 써먹어야 할텐데 꼭 못된 짓 할 것부터 생각이 나니 참으로 얄궂다.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투명인간인줄 알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있다. 남들은 뻔히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는데 본인만 정작 아무 것도 모르고 날뛰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투명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투명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빨리 꿈에서 깨어나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환생하기 바란다.
새만금의 것은 새만금에게
전주문화재단 20년, 정체성·역할 재정립을
지방선거 본격 불법행위 신속 엄단 대응을
단체장 경선이 중요한 이유
“시민의 일상이 관광이 되는 도시 전주”
탑-승한
‘뭉쳐야 산다’ 5극 3특 시대, 통합을 움직이는 힘은 결단과 책임이다.
'매커니즘'보다 '구조'가 좋아요
규제 풀어야 현대차 새만금투자 성공한다
전북은행장, 지역이해도 높은 내부 발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