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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발달하여 사람살기가 엄청 좋아진 요즘이사 겨울나기가 일도 아니지만, 대다수 국민이 땅을 파서 먹고살던 농경사회에서는 한 겨울 지내기가 여간 대근하지가 않았다. 기본적으로 먹고 입을 것이 모자라는 데다 주거환경도 열악하기 이를 데 없어 몇몇 지주를 제외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집에서는 매서운 겨울맞이가 보통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이웃에 손벌리지 않고 자급자족만 해도 만족해 하던 그 시절, 웬만한 가정에서는 겨우살이 준비가 실로 버거웠다. 쌀 보리와 같은 주곡이 모자라던 터라 고구마나 감자 같은 부식을 준비해야 했고, 겨우내 버텨야 할 땔감도 미리미리 확보해 놓아야 했다. 또 솜을 타 이불을 다시 짓고 헤진 옷가지와 양말 따위를 꿰매놓는가 하면, 문짝에 새 창호지와 문풍지를 발라 방안의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대비를 하기도 했다. 밑반찬을 장만하기 위해 김장을 하는 것은 연례행사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차근차근 겨울맞이를 했던 것이다.그 뿐인가. 비록 너도나도 가난하게 살았지만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날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곡식을 거둬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에게 '치계미(稚鷄米)를 나눠 드리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 치계미는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고 마을사람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보태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근로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을 위해 최소한의 생계지원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이어받아야 할 미풍양속이 아닌가 생각된다.우리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1만6천달러를 넘어섰다는데도 도처에서 못살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민은 농민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우리가 가장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도대체 세계 11대 무역국가로 부상할만큼 외화를 많이 벌어들였다면서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국민은 더 늘어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게다가 더 한심스러운 것은 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정부가 별로 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기다리면 곧 좋아진다' 는 말만 되풀이 할뿐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농경사회 같으면 처지가 비슷해 서로 위안이 되거나 도와주는 이웃이라도 있어 의지가 됐는데 지금은 냉혹한 현실만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기나긴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날에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내년부터는 학교에서 적은 돈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과 후 학교가 전국 초·중·고교의 20∼50%인 2000∼5000여 학교에서 운영된다고 한다. 또 2007년부터는 이런 방과 후 학교가 전국 모든 초·중·고교로 확대된단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특기적성 활동, 수준별 보충수업, 방과 후 보육교실’등은 ‘방과 후 교육활동’으로 통합해서 ‘방과 후 학교’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초·중·고등학생들은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교에 남아 예체능은 물론, 국·영·수·논술까지 다양한 학습을 학원 강사나 해당 분야 전문가한테서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방과 후 학교는 이미 서울 인헌중, 전남 담양초등학교 등 전국 학교 48곳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교육인적자원부에서 이렇게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려는 가장 큰 목적은 사교육 부담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을 해방시키려는 데 있다. 이런 의도에서 시도하는 방과 후 학교 운영을 위한 법규 개정이 진행 중에 있어서 아직 확정된 것은 물론 아니다. 초중등교육법 23조 2항(방과 후 학교)를 신설키로 한 개정안이 지난 9월 국회 교육위를 통과했고 현재는 법사위에 계류 중에 있기 때문이다.사교육비 경감을 위해서 교육에 필요한 경비는 수익자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비를 지원해서 경제적 사정 때문에 교육 기회를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지원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라고도 한다. 방과 후 학교의 장소도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할 경우 지역사회의 청소년 수련관, 사회복지관, 종합회관, 도서관, 체육시설, 인근 대학 등 지역의 다양한 시설과 공간을 활용하게 되는 모양이다.이런 정부의 발표를 들으면서 1970년대의 학교가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물론 사교육이 당연히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교육을 없애겠다고 정부에서 내놓은 방안이 학교에서 방과 후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대다수 학생들은 정규교과과정 이외에 다시 보충수업을 듣는 일이 아예 일반화되었다. 물론 학원보다 싼 비용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까지도 엊그제 정부의 발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학교 안에서 그리고 법 테두리 안에서 시행한다고 사교육이 공교육으로 둔갑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공교육이 부실하다면 이를 바로 세우는 데 힘을 쏟아야 옳다. 공교육의 내실화는 사교육을 없애는 식으로 풀어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공부 열풍이 거세다. 학생은 물론 직장인도 영어를 못하면 행세하기 힘든 세상이다. 대학입시나 입사시험, 심지어 공무원시험에서도 토플이나 토익 성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치원때부터 아예 영어로 수업하는 곳이 인기다.또 해마다 영어연수 비용으로 7-8조원이 빠져 나가고 자녀의 조기유학을 위해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도 흔히 볼 수 있다. 부모의 빈부격차가 자녀의 영어실력 차이를 낳고 그것이 대물림되는 소위 영어격차(English Divide)도 위험수위에 달했다. 최근 KBS와 교수신문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등 서울 5개대 인문사회과학 교수의 85%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삼성 현대 등 재벌 2·3세들 역시 대부분 영어권에 유학을 다녀왔다. 물론 영어 하나로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잣대임에 틀림없다.이러한 흐름속에 몇년전 영어 공용화가 고개를 들더니 이젠 영어 모국어론을 주장하는 사람마저 나오고 있다. 영어 공용화론자들은 세계에서 유통되는 정보와 지식의 80%가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모르면 경쟁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더우기 인터넷의 발달로 실시간 생산되는 정보를 번역을 통해 안다는 것은 이미 늦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령이나 공문서, 각종 서식 등에 영어와 한글을 병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부도 지난달 부산 인천 광양 등 경제특구와 제주도 국제자유도시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같은 공용화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어가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언어이므로 열심히 배워야 하되 그것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어를 모국어나 공용어로 쓰는 나라는 전세계 56개국에 8억명 정도다. 그중 선진국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를 쓰는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파키스탄 등은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지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다. 어쨌든 영어 열풍이 불면서 자치단체마다 영어마을 개설이 한창이다. 지난해 8월 경기도 안산에 영어마을이 들어서 성공을 거두자 서울 등 전국 40여개 자치단체가 영어마을을 추진하고 있다. 도내에서도 전주 기린초등학교에 초등 6년과 중학 1년을 대상으로 한 영어마을이 문을 열었다. 영어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국제적십자운동은 1859년이탈리아 북부에서의 전쟁이 계기가 돼 시작되었다.스위스의 청년 실업가인 장 앙리 뒤낭은 사업상 일로 나폴레옹 3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를 여행하던중 프랑스및 사르다니아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 사이의 전쟁터에 많은 사상자들이 그대로 버려져 있는 참혹한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제네바로 돌아온 뒤낭은 솔페리노 전투의 참상과 체험을 1862년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그는 이 책을 통해 부상병들을 돌보는 의료활동을 국제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조약체결을 제안했다.뒤낭의 제안에 따라 1863년 전쟁 부상자 구호 국제위원회가 창설되면서 16개국 대표들이 흰색 바탕에 붉은색 십자를 표장으로 채택한 것이 오늘날 적십자운동의 효시이다.우리나라는 1903년 대한제국 정부가 제네바협약에 가입한후 1905년 10월27일 고종황제가 칙령47호로 대한적십자사 규칙을 제정, 반포함으로써 출범하게 됐다.당시 적십자사가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국민들에 알리기 위해 기관지인 대한매일신보 등에 취지서를 게재하기도 했다.올해로 출범 1백주년을 맞는 대한적십자사는 인도(人道),공평, 중립, 독립 ,봉사(奉仕),단일,보편등 국제적십자운동 기본원칙에 따라 재해구호, 국민건강 사업,헌혈수급 업무,국제구호활동, 남북이산가족 상봉지원등의 다양한 사업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도주의 실현에 힘쓰고 있다.최근들어 지구촌에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않고 있고,태풍과 지진등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상황에서 적십자의 인류애가 곳곳에서 많은 세계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도내에서도 지난 1977년 익산역 폭발사건을 비롯 1993년 위도 서해훼리호 침몰사건,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한 수재등 대형 재난 현장에는 ‘붉은 십자의 봉사자’들이 맨먼저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펼쳤다.‘재난이 있는 곳에 적십자의 구호의 손길이 있다’는 등식이 나올 정도이다.오늘 오후 전주에서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주관으로 적십자 창립 1백주년 기념식을 갖는다.다른 어느 행사보다 뜻깊은 자리이다.적십자를 ‘인류의 등불’이라 칭송하기도 한다.앞으로의 또 다른 1백년도 사랑과 봉사라는 숭고한 정신으로 인류의 미래가 밝아지도록 적십자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오늘 방사능폐기물처리장에 대한 주민투표가 이루어진다. 주민투표제는 참여정부가 국민의 참여를 제도화하기 위해 2004년 도입한 제도이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자치를 보장하는 것으로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방자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일단 당선되고 나면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선출되고 나면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에서 잘못하면 주민들의 의사에 유리된 채 선출된 소수가 정책을 농단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참여예산제 등을 도입하여 주민의 직접적인 참여를 가능케 하는 나라가 많다.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주민투표가 활성화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중요사항이나 의회에서 의결된 입법 또는 중요한 안건을 주민투표에 부쳐 그 채택여부를 최종적으로 주민들이 결정한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선거를 할 때, 수십개 안건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따로 주민투표를 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선거를 할 때 같이 주민투표도 한다.부안방폐장의 경우 단체장이나 의회가 충분한 의견수렴을 하지 않은 상태로 정책결정을 하여 많은 분란이 있었다. 이런 경우 주민투표를 실시하면 최종적인 의견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당시 반대측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였지만 법적인 근거가 없어 법적 효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이번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을 지닌 투표이다. 갈등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주민투표제가 자주 발동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투표운동 과정에서 갈등이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고 예산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각종 선거에서 주민투표도 함께 하면 예산도 절감하고 주민의 참여도 더욱 촉진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투표 이전에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주민투표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각종 공청회, 위원회, 청원제도, 여론수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찬성이나 반대 측 모두 투명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여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주민투표 없이도 정책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중동을 문자로 풀어보면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모습이라고 풀이된다. 그러나 그 속 뜻은 목적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의도나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효율의 극치를 함축성 있게 표현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정확하게 분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본의 아니게 또는 고위적으로 수많은 분란을 일으켜 순탄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어렵다.걸핏하면 날뛰는 사람들을 보면 이 세상에 보이는 대상과 모양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정신과 영혼을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고요한 마음이 얼마나 큰 힘으로 작용하는 지를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섣불리 행동을 드러내는 것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이 세상은 이해득실로 얽혀서 삶 그 자체가 고통이다. 의식이 올바르지 못하면 귀중한 인생을 허비하고 만다. 조용히 이치를 꿰뚫어보면서 안목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중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정중동은 여러 가지 뜻으로 미묘하게 해석되어 서로 대비의 뜻을 나타내면서 깨끗함 속에서도 욕심을 지닌다거나, 맑음 속에서도 혼탁함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쉬는 듯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뜻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겉으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지 않고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지만, 실제는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이런 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갖가지 대안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결론적으로 정중동은 표면적으로는 조용한 가운데 내면적으로는 부단히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도내 정가의 움직임은 정중동의 상황이라고 봐야한다.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과 달리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선거를 둘러싸고 상당한 물밑 움직임이 있지만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이 적다. 하지만 많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략이나 술책이 아닌 정중동이길 바란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별 생각없이 듣거나 하게되는 말 가운데 '빈 말'이라는 게 있다. 빈 말은 '실상이 없는 말'이라는 뜻으로 남을 속일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거짓말과는 구별이 된다. 그러나 빈 말을 허언(虛言) 가언(假言) 망어(妄語)라고도 하는 것을 보면 거짓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빈 말은 알맹이가 없거나 그럴듯하게 꾸며댄 말이기때문에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고 만다. 우리가 흔히 듣는 빈 말 가운데 '장사꾼 밑지고 판다' '노인 죽고 싶다''노처녀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말을 3대 거짓말이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빈 말인 것 같은데 왜 빈 말 하느냐고 시비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빈 말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빈 말이 때로는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다.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십시오' '부자되세요' '미인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와 같은 덕담은 의례적인 인사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빈 말도 이런 빈 발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빈 말 중에는 애시당초 어떤 목적을 갖고 하는 빈 말이 있다. 인사권자가 '누구든 인사청탁을 했다가는 집안 망하는 줄 알라'고 엄포를 놓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싫은 사람이 인사청탁 해올까봐, 그리고 '나는 이렇게 깨끗한 사람이오'라고 과시를 하기 위해 너무도 당연한 일을 새삼 강조하고 나서는 것이다. 인사가 끝나고 나면 으례 누군 누가 부탁해서 승진을 했다는 설이 파다하지만 집안 망했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빈 말도 사기에 가까운 빈 말이 있다. 처음부터 아예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또는 다른 목적을 갖고 빈 말을 하는 경우가 곧 사기성 빈 말이다. 빈 말은 영특한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대개 가진 것 없고 덜 배우고 정보에 약한 순박한 사람들이 걸려든다.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이 거꾸로 배신까지 당하게 되는 것이다. 차액보상제를 실시하면 쌀값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던 정부의 공언이 빈 말이 되고 말았다. 외국 쌀 의무수입량 확대에다 추곡수매제 폐지까지 겹쳐 쌀값 하락은 예견된 수순이었는데도 콧노래만 부르더니 쌀가마가 거리에 나뒹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또 무슨 빈 말을 하여 국민들 가슴을 아프게 할지 참으로 안타까운 시점이다.
방송 출연자에게서 가끔 발견되는 표현 중 하나가 ‘저희 나라’이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의 잘못이다. 이런 잘못은 물론 출연자의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잘못이 왜 유발되었는지를 한 번 되돌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우리말 표현이 서구 특히 영어권의 표현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듣는 이를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밥 먹었니?’라는 표현에서는 ‘예’와 ‘아니오’가 동일하지만 ‘밥 안 먹었니?’라는 표현에는 그 대답이 달리 해석된다. 우리는 ‘예’라고 대답이 ‘안 먹었다’라는 표현이지만 영어권에서는 ‘먹었다’로 해석된다. 이런 차이는 말하는 이의 생각을 존중하느냐 아니면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느냐 하는 데서 비롯한다.우리 나라 사람들은 듣는 이의 생각을 존중하다 못해서 스스로 겸손을 자초한다. 앞서의 ‘저희 나라’가 그런 태도의 연장선에서 해석하면 그 동기에 수긍이 간다. 이런 점에서 ‘동방예의지국’이란 말도 과장된 말이나 우리를 길들이려는 강대국의 의중으로만 돌릴 수 없다. 이런 어법으로 보면 우리 민족은 상당히 겸손하다.문제는 이런 겸손이 적절한 자리를 넘어서 과도하게 사용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남을 높이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말 그대로 남을 높이는 방법이 하나다. ‘아버지’를 ‘아버님’으로 높이는 것이 그 한 예다. 다음으로 남을 높이는 방법은 나를 낮추는 것이다. 마당쇠가 주인에게 말할 때 말끝마다 전형적으로 붙이는 ‘요’가 그 중 하나다. ‘밥을 먹었다’ 대신 ‘밥을 먹었습니다요’로 표현하면 말하는 자신을 낮춰 듣는 이를 높인다.예전에는 이런 존대와 겸양이 비교적 정확하게 구분되어 왔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존대와 겸양의 대상과 그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이 예전보다 못 한 것 같다. ‘우리’를 사용해야 할 대상에 ‘저희’가 들어가는 것이 ‘나라’에까지 미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방송에 한 번 출연하는 것이 황공할지라도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에게 ‘저희 나라’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존대나 겸손의 대상이 어떻게 되는지 전화로라도 확인해 보려고 하는 분들의 성의만 있다면 우리 말글의 살림살이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조선 태종은 1413년 전국을 8도(道)로 정비했다. 그리고 8도의 중심도시에 감사(관찰사)를 내려보내 다스리게 했다. 이러한 지방행정조직은 조선조 말인 1896년 전라도 등 5개 도가 남·북도로 분할돼 13도로 나뉠 때까지 지속되었다. 당시 감사가 머무르며 근무하던 관청이 감영(監營)이었다. 이 감영은 평양(평안도) 해주(황해도) 함흥(함경도) 원주(강원도) 서울(경기도) 전주(전라도) 공주(충청도) 대구(경상도) 등에 있었다.이 가운데 전주시 중앙동 옛 전북도청 터에 자리잡았던 전라감영은 오늘날 전북은 물론 광주·전남과 제주도까지 관할했다. 또 1894년 동학혁명 당시에는 농민군 총본부인 대도소가 설치돼 호남 53개 군현의 집강소를 총괄지휘했다. 18세기에 펴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전라감영은 정청(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을 비롯 포정루(정문) 관풍각 응청당 비장청 훈련청 진상청 보군고 의국 영선고 등 26동의 건물이 있었다. 또 ‘전주부사’에는 ‘여지도서’에 나타나지 않은 건물까지 약 40여 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규모는 조선 8도의 감영중 가장 큰 것이다. 당시 충청감영은 19동, 평안 15동, 강원 14동, 경상 13동, 황해와 함경감영은 각각 8동과 5동에 그쳤다.이 전라감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6·25 때인 1951년 11월이었다. 당시 경찰국 무기고에 있던 폭발물이 터지면서 남아있던 선화당 등이 소실되고 만 것이다. 이후 감영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큰 진전은 없었다. 1996년에는 전북도에서 복원계획까지 세웠으나 지지부진했고 도청이 전주시 효자동 신청사로 옮기기에 앞서 비로소 본격화되었다.하지만 옛 도청사(4800평)를 중심으로 전주중부경찰서와 전동성당 일대 등 당초 1만2000평에 이르는 전라감영을 어느 규모로 복원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구도심 공동화 문제와도 맞물려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전북도는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3단계(2007년 7월-2020년) 복원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전주시는 문화재청에 옛 도청사 부지에 대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신청했고 26일 허가가 나왔다. 복원의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전라감영이 복원돼 전주객사와 풍남문, 경기전, 한옥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상상해 본다.
‘둥둥 북소리에 만국기가 오르면 온 마을엔 인화(人花)가 핀다.연신 터지는 출발 신호에 땅이 흔들린다.차일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 이성교 시인이 쓴 ‘가을 운동회’의 일부다.어린시절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운동회의 추억을 아름답게 표현했다.시골학교 운동회는 학교나 학생들만의 연례행사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잔치였다.어머니들은 밤늦도록 김밥등 다음날 운동회에 가지고 갈 음식을 장만했다.운동회날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할머니 할아버지들 까지 모처럼 학교에 나들이해 손자의 달리는 모습과 재롱을 구경했다.운동장 한켠에서는 어김없이 흥겨운 술자리가 벌어지기 마련이었다.소풍이나 학예회등 학교의 다른 행사때도 주민들의 참여열기는 마찬가지였다.이처럼 시골학교는 단순한 배움터 역할에 그치지 않고 마을 공동체의 문화공간이자 정신적 구심체로서 기능했다.동시에 주민들이 학교에 쏟는 애정도 각별했다.자녀 교육을 위해 학교터를 기증하고,등짐을 져가며 건축공사를 도왔고,쌈짓돈을 털어 비품등을 마련했기 때문에 더욱 아끼고 보살폈다.정부가 내년부터 학생수 100명 이하인 농어촌 초·중·고교 통폐합 추진방침을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도내의 경우 전체 759개 학교중 학생수 100명 이하 소규모 학교는 331개 학교로 41%에 이른다.초등학교의 경우는 427개 학교중 절반인 218개 학교가 통폐합 대상이다.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투자의 비효율과 교육과정 운영의 문제점을 통폐합 이유로 들고 있다.시골학교가 지니고 있는 문화·정신적 기능은 완전히 무시된 셈이다.철저히 학생수라는 계량적 기준과 경제적 효율성 논리만을 내세운 단기간내 획일적 통폐합 추진은 주민들의 반발에 부닥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가뜩이나 지금 우리 농촌은 농업 경쟁력의 상실과 도농간 소득격차 심화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시골학교의 통폐합 강행 추진은 이농을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농민들이 농촌을 떠나는데는 교육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무시한 통폐합 강행보다는 시골학교 고유의 역할과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위기의 농촌을 살리고 돌아오는 농촌을 만드는데 일조하리라고 본다.
몇 일 전에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부유층이 소비를 늘리면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저소득층 소득이 늘어나는 이른바 ‘물 흐름’(Trickle-down) 효과가 2001년 이후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유층이 늘어난 소득보다 훨씬 많은 돈을 유학 자녀에게 송금하거나 여행 경비, 수입품 구입 등으로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계층 사이의 ‘물 흐름’ 효과는 상위 소득 20% 계층과 하위 소득 20% 계층의 소비 상관관계로 타나나는데, 2001년 이후 상위 계층의 소비 증가가 하위 계층의 소비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이전의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 96년부터 2000년까지는 상위 계층이 소비를 100원 늘리면, 3개월 후 하위 계층 소비도 60원 늘어났다. 이제 그 효과가 22원으로 줄었다고 한다.현재 우리나라 가계 소비지출액 중 수입품을 구매하는데 8%를 사용하고 해외여행 등에 2.9%를 사용하여 가계지출의 10.9%가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이는 95년 7.1%, 2000년의 7.8%와 비교해보면 2000년 이후에 급격히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해외로 유출되는 곳은 가계지출 외에도 많다. 주식이 많이 올랐는데도 예전처럼 소비자극을 통한 경제활성화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 상승의 이익을 대체로 외국인들이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나 기업의 MA나 기업취득 후 판매 또는 기업금융 등에서도 외국인들이 알짜를 차지하여 커다란 국부가 외국인에게 가고 있다. 각종 로얄티로 지출되는 것도 엄청나기 때문에 국부의 해외유출이 이제 한국에서 일상화된 셈이다.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많은 이익을 창출하거나, 부유층들에게 소득이 증가하여도 그 돈이 중간에 해외로 증발돼 하층으로 흘러드는 돈이 크게 줄고 있다. 중소기업까지 적극 해외로 진출하여 일자리조차 줄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는 더욱 급격하게 양극화되고 있다. IMF 이전인 1997년 상위 10%계층 소득이 하위 10%계층 소득의 7배였으나 현재는 18배에 달한다고 한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은 이러한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불만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의 복지와 안녕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을 위해서도 이런 양극화 추세를 되돌려 빨리 소득격차를 줄여나가야겠다.
최근에는 인기있는 인터넷 컨텐츠 아래의 덧글이나 의견쓰기에 붙어서 슬쩍 광고물을 게시하는 경우가 있다. 무임 승차하는 광고성 글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컨텐츠의 조회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거기에 기생광고들이 많이 달라붙어, 찾아온 이용자들을 유인한다. 인터넷 뿐만 아니라 지하철 액자 광고, 엘리베이터안 광고에도 기생광고들이 존재한다. 주로 광고 모퉁이에 명함 크기의 광고물을 붙여놓고 사라진다.광고 효과는 좋으나 관리가 힘든 광고 또는 관리를 안하는 모든 물체에는 걸핏하면 기생광고가 붙을 수 있다. 컨텐츠나 물건이 사람들 관심 밖에 나면 기생광고가 더 이상 붙지 않는다. 이른바 숙주에 해당하는 광고나 물건이 더 이상 힘이 없어진 것이지 기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기생광고는 대부분 열악한 업체나, 불법 판매조직 등에서 많이 사용한다. 어떤 생물이 다른 생물의 체표 또는 체내에 붙어서 양분을 취하며 생활하는 일이 바로 기생이다. 다른 생물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벼룩, 이, 진드기, 모기 등도 일시적이긴 하지만 기생하며 살아간다.동물의 소화기관에 기생하는 회충, 십이지장충, 간이나 폐에 기생하는 디스토마, 세포 속에 기생하는 말라리아 병원충, 혈액 속에 기생하는 트리파노소마 등도 그것이다.그런데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생물들이 있는데 이것을 공생한다고 한다. 공생중에서 한쪽만 이익을 받고, 다른 쪽은 이익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 관계도 있다. 더부살이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를 공생이라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아무튼 기생은 우리사회에서 별로 좋은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공생은 호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다. 흔히 말해서 윈윈의 의미도 바로 공생관계다. 최근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이 발견되어 난리법석이다. 김치를 수입한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김치를 수입하였다니 황당하다. 어디서부터 구멍이 뚫려 기생충까지 수입한 것인지 기분이 썩 좋지 못하다. 먹는 것만은 당국에서 철저했으면 한다.
서울시내 번화가에 도심 풍경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멧돼지가 연거푸 출몰해 세상 사람들의 이색적인 구경거리가 된 적이 있다.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길을 잘못 든 이 멧돼지 들은 생판 처음 보는 인간 세상의 복잡한 삶의 구조에 놀라 천방지축으로 날뛰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가하면, 하찮은 시설물 몇 곳에 작은 흠집을 내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알량한 힘에 도취돼 먹이가 있는 곳이면 아무데나 휘젓고 다닌 것이 제 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사실 멧돼지는 생긴 모습 그대로 거칠고 저돌적이다. 저돌적이라는 말의 ‘저’자에 돼지저(?)자를 쓰는 것만 보아도 멧돼지가 돌격 스타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게다가 멧돼지는 후각과 촉각이 매우 발달하여 몇 km 밖 화약냄새까지 감지해낼 수 있는데다 동작 또한 민첩하여 시속 70km 속도로 내달릴 수도 있어 가히 위협적이다.더구나 겉모습이 우직하게 생겼다고 해서 멧돼지가 미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생긴 것을 보면 멍청하기 짝이 없을 것 같지만 하는 짓을 보면 제법 영리한 구석이 있다. 용인의 에버랜드에서 ‘멧돼지 쇼’를 본 사람이나, TV를 통해 평택의 한 농부가 멧돼지를 길들여 쟁기질을 시키고 수레도 끌게 하는 장면을 본 사람은 멧돼지가 저런 재주까지 부릴 수 있을까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멧돼지 우습게 보아온 것이 얼마나 잘못된 고정관념인지 알게 됐을 것 이라는 말이다.사람을 멧돼지에 비유해서 좀 거시기한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실제로 인간사회에서 멧돼지 4촌쯤 되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우직하고 미련한 것 같다가도 어느새 교활하다 할 만큼 영리한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먹이감이 있다 싶으면 물불 안가리고 달려드는 것이 멧돼지 하는 짓과 비슷하다. 그런 인간일수록 겉으로는 고도로 훈련된 인격으로 포장을 하고 있어 웬만큼 투시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는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다. 더구나 대담하고 난폭하고 영리하기가 역모꾼 뺨칠 정도여서 당하는 순간까지는 알아차릴 수 없는데다, 일을 저질렀다하면 뒷끝이 참혹해 세상에 끼치는 해악이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탐욕이 지나쳐 날뛰는 인간은 언젠가 도심으로 뛰어든 멧돼지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늘을 향해 뻥 뚫려 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노천극장과 야외극장은 그 어감이 다르다. 노천이라 함은 덮을 수 없어서 뚫려 있는 그래서 대책 없는 극장으로 느껴진다. 반면 야외극장은 조금 품위가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덮을 수도 있지만 일부러 덮지 않았으니 싫으면 다른 데 가 보라는 배짱을 부리는 기세가 엿보인다.말이 다를 뿐이지 사실은 이 둘이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야외극장으로 불리는 경우는 초창기 연극과 관계가 깊다. BC 5세기경 그리스에서는 연극 상연이 곧 국가적 행사였던 관계로 극장의 수용 규모가 수만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였다. 연극 초창기뿐 아니라 17세기 초 옥내 극장의 형태로 바뀌기 전까지는 야외든 노천이든 그 표현이야 어떻든 그렇게 놀이의 장(場)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요즈음에는 야외극장이 좀더 세련된 모습으로 단장을 하여서 그런 환경에서도 공연이 자주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전으로 그 것도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옥내공연장 흔히 극장이라 불렸던 옥내 공연장이 주류였다. 공연장의 구실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들 극장은 무대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둡고 음습한 기운마저 도는 그 공간에 대한 추억은 사실 후한 점수를 주기에 망설여진다.그런데 그 극장에서 봤던 것 중에서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은 것은 무대 양 켠에서 불을 밝혔던 두 개의 단어다. ‘금연’과 ‘탈모’.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깜깜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 불빛은 예외란 듯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문제는 어린 나이에 봤던 그 두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그 두 단어 중에서 먼저 해독이 됐던 것은 ‘금연’이었다. 그런데 늦게까지 해독이 되지 않는 단어가 바로 ‘탈모’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금연이란 단어는 비교적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여서 쉽게 그 뜻을 이해하지 않았나 한다.‘탈모’는 그에 비해서 극장 등의 실내에서나 적용되는 단어였다는 점이 해독을 어렵게 하지 않았나 한다. 그와 더불어 ‘탈모’는 탈모(脫毛)가 하나 더 있어서 헷갈리기도 햇겠다는 생각이 든다. ‘탈모’란 말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요즈음 야외극장에서 실내극장의 추억이 떠오르다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조선의 개혁군주였던 정조는 남다른 애연가였다. 그의 말을 기록한 일득록(日得錄)에는 “담배가 사람에게 유익한 점은 더위를 씻어주고 추위를 막아주며, 식사 뒤에는 음식을 소화시키고, 변을 볼 때는 악취를 쫒고, 잠이 오지 않을 때 피우면 잠이 오게 한다”고 흡연을 예찬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였던 프로이트 역시 애연가였다. 아니 니코틴 중독자에 가까웠다. 프로이트는 24살때부터 담배를 입에 물고 살았다. ‘시가’를 즐겼는데 하루 평균 20개 이상을 피웠다. 그러면서도 84살까지 살았다. 그의 제자들은 “담배가 없었다면 정신분석학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또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과 독립선언문을 쓴 제퍼슨은 대형 담배농장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은 영국을 상대로 담배전쟁을 일으켜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같은 담배예찬론을 늘어 놓으면 ‘야만인’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데 대부분 동의하기 때문이다. 금연운동가들은 담배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애연가들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더우기 담배 한 개비에는 20여종의 발암물질과 4000여 종의 독성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고 한다. 또 심장병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의 위험요인이며, 남자들의 생식력도 떨어뜨려 그것이 잘 서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연단체에서는 국회에 ‘담배 판매및 제조금지법’ 제정을 청원해 놓았다. 현재 국회의원 과반이 넘는 167명이 법안에 서명한 상태다.그럼에도 국내 흡연인구는 약 1050만명에 이른다. 20세 이상 성인 남성의 65%(미국은 27.6%), 성인 여성의 5%가 담배를 피운다. 고교 3년생의 흡연율은 38%로 일본의 8%보다 크게 높다. 갈수록 흡연연령도 낮아지는 추세다.정부는 지난해부터 담뱃값을 올려 흡연인구를 줄이려 하고 있다. 지난해말 500원을 올린데 이어 올해안에 또 500원을 올릴 예정이다. 그래서 연말을 앞두고 소매상들이 ‘사재기’에 나섰다고 한다.문제는 저소득층이다. 우리나라 흡연자들의 담배값 지출은 매달 5만원 가량인데 월평균 95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은 8만원을 쓰고 있다. 담배값이 오르면 아예 안피면 될 것이다. 하지만 담배 연기에나마 시름을 날려 보내던 저소득층 서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제비,백로,뻐꾸기등 여름철새가 남쪽으로 떠나고,북녘에서 오리,독수리, 두루미,고니등 겨울철새가 겨울을 나기위해 우리나라를 찾는다.초대하지 않았고, 길 안내도 없지만 철새들은 어김없이 이 강산을 뒤덮는다.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유지하거나 수만 마리가 일제히 비상(飛翔)해 연출하는 화려한 군무(群舞)는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철새는 부족한 먹이를 해결하기 위한 생존차원에서 이동을 한다.철새는 이동중 숱한 선택을 하고,비축된 에너지 양 한도내에서 최고의 효율을 거두는 전략을 짜기도 한다.한번 떠나면 수개월,수천Km를 날아야 하는 여행에 앞서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인 지방을 체내에 최대한 비축한다.끊임없이 먹어 하루에 체중의 10%까지도 늘린다.비행속도도 풍향및 풍속을 이용,순풍이 불면 최대한 많이 날고 반대의 경우엔 자제한다.(폴 컬리저의 저서,‘세계의 철새,어떻게 이동하는가?’)철새들은 W자형,V자형,―자형등 다양한 형태로 무리져 비행한다.앞의 새 날갯짓에서 발생하는 소용돌이나 상승기류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비행은 지구의 자기장(磁氣場)을 이용해 일출,별자리 같은 기준 말고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새의 부리 안쪽 천장에 있는 수용체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현재 국내 조류 372종 가운데 266종이 철새이다.가창오리의 경우는 전세계 서식 개체의 90% 이상이 국내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철새가 사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임을 입증해 준다.철새와 철새 도래지를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런데 최근 전세계적으로 조류독감 비상이 걸리면서 자칫 철새가 천덕꾸러기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이미 조류독감이 발생한 러시아,몽골 등지의 겨울철새가 이달 말부터 한반도로 건너오기 시작하면 철새를 매개체로 조류독감이 국내에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일부 닭·오리 사육농장에서는 철새 접근을 막기 위해 그물망을 설치하는가 하면,공포탄까지 쏘아대기도 한다.오는 12월 제2회 ‘세계 철새페스티벌’을 계획중인 군산시도 타격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물론 방역등에 만전을 기해야 하겠지만 과잉반응으로 사육농가등 애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근 각 대학교마다 연구비수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구비는 교수들의 연구에 필요한 실험장비나 재료와 인건비 그리고 연구에 참여하는 대학원생의 재정보조로 사용하여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대학의 경우 연구비 수주는 그 대학의 연구발전의 사활을 결정한다. 연구비를 수주하지 못하는 연구소는 폐쇄되고 연구진은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비를 많이 수주하는 학교는 연구가 증가하여 학교 랭킹도 올라가고 장학금도 많아져 더 좋은 대학원생들이 온다. 대학이 연구비에서 떼어 마음대로 사용하는 간접연구비도 50%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 대학재정에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따라서 대학에서도 연구비를 많이 수주하는 교수를 크게 우대한다. 또한 연구비를 대체로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대학교수들이 연구비와 관련된 각종 서류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 놓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또는 일부 연구비는 전혀 서류준비가 필요 없는, 그야말로 결과만 제출하면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미국에서 두 개의 연구비를 받은 적이 있는데 결과물 제출로 모든 과정이 끝나 아주 편했다.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연구비를 받으면 비현실적인 규정으로 정산처리가 너무 복잡하여 전담인력을 두지 않으면 실수하기 쉽다. 더구나 신청한 항목들이 실제 집행할 때 적합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를 수정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적당히 서류를 꾸며 전체 집행을 맞추어 놓지만 실제 집행내용은 신청서와 다른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연구비를 횡령하지 않더라도 연구를 하면 할수록 가짜서류를 더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나타난다.전북 지역 대학들도 그 동안 BK21, 누리사업 등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연구의 질을 많이 높여 왔다. 그 동안 교수들의 연구는 전북과 한국의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점검하고 학문의 질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최근 연구비 관련 문제로 연구의욕 저하도 나타나고 있지만 대부분 교수들은 묵묵히 교육과 연구에 힘쓰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나 연구재단은 불합리한 연구비 관련 제도를 빨리 개선하고, 대학은 연구비 관리능력을 제고하고 관리과정을 투명화하면, 교수들도 연구에 전념하여 지역발전 및 학문발전에 더욱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컴퓨터와 정보산업의 뒤를 이어 문화산업이 세계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역축제가 여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것도 문화산업으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논리다.지역축제가 지역이미지 제고를 비롯해 관광객 유치를 통한 소득증대 등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흔히 말한다. 민선시대 출범 후 각 자치단체들이 지역축제를 개발하고 명품화시키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같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축제가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역축제가 난립하면서 부작용도 심각한 상태이다. 선거를 의식한 관주도의 형식적 축제, 시민참여율 저조, 차별화 미흡, 연계 관광상품 부족 등으로 관광객 유치에 한계를 드러내 그들만의 잔치요 예산의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일부 축제는 시대정신과 거리가 멀고 전시행사로 전락했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전통이나 지역성을 상실하고 먹자판이나 놀자판으로 변질된 것도 상당수로 나타나 축제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주민참여와 주민소득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으로 전락하고 실속없이 덩치만 크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지역내 부가가치 창출효과를 가져오는 축제라면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지말라고 해도 참여한다. 전국잔치나 지역잔치는 커녕 동네잔치도 안되는 축제나 행사가 부지기수다.이제 전통의 보전과 개발도 중요하지만 지역발전과 소득과 연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전통과 문화를 강조한다해도 소득이나 산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이다. 문화나 역사 그리고 예술인들이 진행하는 행사는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보조나 지원금이 없으면 그야말로 두손을 번쩍 들기 마련이다. 행사의 중심라인에 기획과 마케팅전문가들이 자리잡았으면 한다. 멍석을 까는 일과 주머니를 여는 일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지갑을 여는 체험과 감상은 지금과 같은 축제나 행사가 아니다.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증권시장의 유혹에 한두 번쯤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잘만 되면 쉽게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고, 잘못되면 망할 것 같기도 해서 선뜻 마음을 정하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주변에서 주식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대세 상승기에 주식 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게 되면 증시를 잊고 살다가도 은근히 회가 동하기 시작한다. 증시가 활황인 때는 투자종목을 대충 선택해도 주식 값이 올라 투자자 대부분이 돈을 벌기 때문에 주식을 하지 않으면 자기 혼자 손해를 보는 것 같아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하는 것이다.소위 개미군단이라고 불리는 일반투자자 상당수가 이런 동기에서 주식시장에 뛰어 든다. 어떤 이는 증권 시장이 ‘자본주의의 꽃’ 이라는 믿음과 함께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려면 적어도 증권시장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주식시장을 찾는다. 허나 어디 증권시장이 말처럼 그렇게 자본의 과실을 쉽게 딸만큼 만만한 곳인가. 도박판도 그처럼 살벌한 도박판이 없는 것을. 지난 1980년대 후반, 온 나라에 증권광풍이 불어 된통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공기업의 이익을 고루 나눠주겠다며 국민주를 할당해준 것이 화근이었다. 공돈 맛을 본 국민 중 일부가 허파에 바람이 들어 소 팔고 집 팔고 전세 돈까지 빼내 몽땅 배팅했다가 알거지가 돼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속출했던 것이다. 수업료 치고는 너무 비싼 수업료를 치를 셈이다.주가지수 네 자리 숫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객장을 떠났던 개미투자자들이 다시 모여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근래 들어 투자설명회가 부쩍 잦아지고 그 설명회장마다 개인투자자들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망각하는 속성이 있다더니 그렇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도 정을 못 다신 모양이다.투자설명회에 아기 업은 아줌마가 나타나고 신문지상에 활짝 웃는 투자자 사진이 실리면 주가는 상투라는 말이 있다. 또 객장에 주식박사들이 창궐하고 펀드매니저 주위에 투자자들이 모여들 때도 주가는 이미 천정을 치고 있다고 한다. 각자 자기 신세 알아서 할 일이지만 공돈에 들떠 부화뇌동 하다가는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평가의 계절이기도 하다. ‘평가’란 말이 요즈음처럼 난무하는 시절도 없을 것이다. 걸핏하면 평가를 들이대는 형국이니 말이다.어느 분야인들 평가에서 자유로울까마는 그 중에서 세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분야는 단연 교육이 아닐까 한다. 교육분야를 손에 꼽는 이유는 간단하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그리고 고등교육에 걸쳐져 있는 기간이 무려 16년에 이르고 그런 기간에 자식이나 조카가 걸쳐져 있지 않은 집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교육전문가가 다 되어 버렸다.이런 우리에게 교육기관이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교육기관 중에서도 특히 대학에 대한 관심이 그렇다. 덕분에 매스컴에서는 대학들을 한 줄로 세우는 일을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이다. 마치 ‘거봐라, 대학의 속내가 별거드냐’하는 소리를 하려는 듯 싶다. 그래서 평소 지명도가 높은 대학일수록 평가 결과에 대한 부담은 크기 마련이다. 결과가 잘 나오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여론의 뭇매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이런 평가의 계절이 다름 아닌 가을이다. 학문분야 평가, 대학종합평가, 교육대학원 평가 등이 주로 가을에 치러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언론에 공표된다. 그런데 발표내용은 전과 사뭇 달라졌다. 최우수와 우수 등의 표현으로 해당 대학들을 대별하였던 과거와 달리 그 서열까지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발표 방식 덕분에 대학들은 서열의 우위를 점하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문제는 평가의 기준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하는 점이다. 그 한 예를 들면 현재의 잣대에 대학의 연륜은 고려되지 않는다. 교육기자재 중에는 단기간에 구매하기 힘든 고가의 장비가 적지 않아 신생 대학일수록 이들 고가 기자재의 확보에 어려움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런 평가기준의 공정성은 일부 학문분야의 평가를 거부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좋은 약이 입에 쓰지만 병을 다스리는 데 유익하고 충고는 귀에 거슬리지만 그 행동에 유익하다는 사실은 모두들 안다. 오히려 그때문에 평가의 기준을 좀더 공평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평가결과 드러나는 대학 서열을 너무 신뢰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
시민예술, 무대와 삶을 잇는 다리
남원파크, 전·현직 시장에 구상권 행사해야
정부는 완전통합에도 재정지원 규모 밝혀라
동학농민혁명 서훈, 왜 1차 봉기 참여자 배제하는가
표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탈출-장민강 청명초 2학년
전북 제3금융중심지 재도전, ‘이번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