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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전당 신임 원장에 예원예대 김도영 교수 내정

한국전통문화전당(이하 전당) 신임 원장에 예원예술대학교 교양학부 김도영(55·전북 전주시) 교수가 내정됐다. 전당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 8월 원장 공모 이후 공모 지원자 9명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 면접 심사를 통해 김 교수와 보도국장 출신 A씨, 지방의원 출신 B씨를 최종 임원 추천 후보자로 발표했다. 27일 이사회 등을 통해 김 교수를 원장으로 최종 선정했다. 그는 전북대 상과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동양미학전공), 국립전남대 대학원에서 문화재학박사(미학·미술사학전공)를 졸업했다. 전남대 일반대학원 외래교수, 전라북도교육청 교육거버넌스 위원, 전주시 한옥보존·경관위원회 위원, 한국서예문화학회 학술이사 등을 지냈다. 현재 예원예술대 교양학부 교수, 호남미술사학회 회장, 한국서예학회 부회장, 한국전통문화전당 자문위원장, 전북도·전남도·광주광역시·충북도청 문화재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앞으로 한국전통문화전당이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재창조를 통한 세계화의 융합 거점으로써 재도약하고 다시 한번 전주가 전통문화의 수도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데 전력하겠다"고 말했다. 임기는 오는 10월 11일부터 2024년 10월 10일까지 2년이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9.28 16:35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세계 곳곳의 이야기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설렘 속에 내가 만나거나 지나왔던 곳들은 첫사랑처럼 기억 창고에 차곡히 보관되어 있다. 가끔씩 햇빛에 바래거나 희미해진 그 기억들을 다시 꺼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의 여행을 새로 시작해 본다." '글이 그림이 되는 순간이 있다'고 믿는 김병종 화백이 여행 산문집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너와숲)를 펴냈다. 김 화백이 <화첩기행> 이후 약 7년 만에 산문집을 출간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눈에 저장한 풍광과 외국 예술가에 대해 탐구하고 사색한 내용을 담았다. 예술가의 흔적부터 그들이 재능을 키워나갔던 도시, 공간,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행자 시선으로 그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여행만 떠나면 글을 끄적거리고 그림을 그렸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람과 사물의 풍경과 체험했던 것을 나중에라도 다시 끄집어내서 글로 정리하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여행 산문집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코로나19로 여행가지 못했던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충족시켜 주고자 했다. 이밖에도 독자들도 각자 기억하고 싶은 삶의 순간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표현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김 화백은 "내 나름대로의 문장과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영 찜찜한 기분"이라며 "표현하지 않은 채 구경만 하고 돌아오면 어쩐지 변죽만 울린 것 같다. 표현을 한 후에야 여행이 육화 되는 것 같다. 나의 여행 방식은 그런 면에서 좀 독특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남원 출신으로 서울대 미술대학,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미대 학장 및 조형연구소장, 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다. 40여 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세계적인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30여 회의 국내외 개인전, <화첩기행> 등 30여 권을 책을 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로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9.28 16:35

극작가 최기우 손끝에서 다시 시작된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문학동네는 아이들이 한 권의 책이 지닌 즐거움과 감동을 경험하고 직접 이야기 속 인물이 돼 보며 함께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소통하며 협동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지난 2019년부터 어린이 희곡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열 번째 시리즈는 <어린이 희곡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최기우 극작가가 제15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인 김진희 작가의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를 희곡으로 각색한 <어린이 희곡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문학동네)를 출간했다. 이 책의 특징은 동화가 희곡으로 각색되면서 등장인물과 구성, 세부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요소가 지문이 되고 어떤 요소가 대사가 됐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등 장르 간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희곡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줄거리는 저승사자의 실수로 저승에 간 아이가 이승에 오기 위해 빌린 노잣돈을 갚아 나가는 과정에서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가치인 진실한 양심과 우정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원작의 줄거리와 의미는 충실히 살리면서 곳곳에 극적인 요소를 넣어 희곡의 재미를 더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이 눈앞에서 생생히 펼쳐지는 듯하다. 최 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후 연극, 창극, 뮤지컬, 창작 판소리 등 무대극에 집중하며 100여 편의 작품을 올렸다. 대한민국 연극제, 전북 연극제 희곡상 등을 받았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인문서 <꽃심 전주> 등을 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장이며 전주교대 대학원에서 '교육연극'을 강의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9.28 16:34

전북 폐교 활용도 높여야…방치된 폐교 7곳

전북 내 폐교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병욱(국민의힘 포항시남구울릉군)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북 내 아무 쓰임없이 방치된 폐교는 7곳이다. 전북교육청이 자체 활용하는 학교도 38곳에 달했다. 전북 폐교 현황을 보면 총 326곳이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폐교된 가운데 272곳이 매각됐다. 교육시설과 사회복지, 체육시설, 소득증대시설 등으로 쓰이는 폐교는 9곳에 그쳤고, 38곳은 자체활용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활용 계획없이 방치된 폐교는 7곳으로 폐교 지역에 활력소를 불어넣기 위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전국적으로 방치된 초중고 폐교는 351곳에 달했다. 김병육 의원은 “전국 시도교육청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폐교 자체를 활용할 여력이 없어 대부분 매각이나 대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하지만 폐교의 가치가 크지 않아 매수인을 찾기 힘들고, 폐교되면서 주변 인구도 감소해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는 더 이상 지방 소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폐교시설을 활용하려는 곳에 교육당국이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새로운 활력소가 될 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 교육일반
  • 이강모
  • 2022.09.28 16:34

무덤덤하게 따듯한 위로 건네는 법성포 블루스

강명수 시인이 첫 시집 <법성포 블루스>(천년의시작)을 출간했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50여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일상의 풍경과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인간의 삶이 가진 의미를 표현했다. 순탄한 삶은 아니지만 뜨거운 인생의 열기가 지나가면서 찾아온 감정 위주로 시를 썼다. 이에 시집은 법성포의 아름다운 정취가 펼쳐지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담긴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밖에도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을 포착하기도 하고,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감정을 시에 담았다. 인생의 좋은 것, 나쁜 것을 다 보여 주면서도 그 안에서 무덤덤하게 따듯한 위로를 보내는 것이 강 시인의 특징이다. 해설을 쓴 차성환 시인은 "그의 시에는 바다의 모래톱에서 망연하게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표정이 있다. 끈적끈적한 땀 냄새와 눈가에 흘린 눈물 자국, 헛헛하게 지어 보이는 씁쓸한 웃음. 그 인간의 체취를 넘어서 삶에 대한 무한 긍정과 함께 깨달음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있다"고 전했다. 강 시인은 "이렇듯 언어의 집을 짓는다.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음악 같은 내 삶의 이력, 시의 율동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항해는 미래 진행형일 것이다. 바다 위의 알바트로스처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북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제1회 김삼의당 시·서·화 공모대전 대상 등을 받았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09.28 16:34

최경식 남원시장, 정춘숙 보건복지위원장 등 국립의전원 설립 법률안 통과 건의

남원지역 시민단체, 시의회 등을 중심으로 국립의전원 설립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경식 남원시장이 28일 11월 정기국회에서 공공의대 설립 관련 법률안 통과를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이날 최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위원장과 강훈식 간사 및 국민의힘 보건복지위원회 강기윤 간사, 이용호 의원에게 공공의대 설립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관련 법률 통과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정춘숙 보건복지위원장은 "남원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공의대 설립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으로 코로나19로 공공의료인력 확충 필요성이 확인된 만큼 법률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전했다. 시는 공공의대 설립을 위해 보건복지부, 전북도와 협조체계를 구축해 부지매입과 도시계획시설 변경 등 행정절차를 밟고나가고 있다. 최경식 시장은 "국회와 정부 대응강화를 위해 서울과 세종에 사무소를 두고 전방위적인 대외활동을 모색할 계획이다"며 "서남대 폐교 이후 전북대와 원광대에 한시적으로 배정된 남원 몫인 의대정원 49명을 원상태로 회복하고, 필수공공의료인력확보와 지역의료격차해소를 위한 국립의전원이 반드시 남원에 설립될 수 있도록 공공의대 법률 통과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남원
  • 김선찬
  • 2022.09.28 16:31

단종어진 영인본, 어진박물관에 모신다

단종어진 영인본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모습이 담긴 조선태조어진(국보 317호)과 함께 어진박물관에 모셔지게 됐다. 전주시와 영월군은 28일 전주시장실에서 우범기 전주시장과 최명서 영월군수 등 양 시·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표준영정 100호 단종어진 영인본(影印本) 기증식’을 가졌다. 단종어진 기증은 영월군이 태조어진과 어진봉안 유물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에 단종어진 영인본을 기증함으로써 영월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위상을 정립하고 단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면서 성사됐다. 단종어진은 2021년 4월 1일자로 선현정부표준영정 제100호로 공식 지정됐으며, 단종어진의 용모는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기록과 국보 317호 조선태조어진의 용안,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세조어진 초본의 용안을 참조해 추사(追寫)로 그려졌다. 완성된 단종어진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릉(단종의 능) 경내에 위치한 단종역사관에 봉안돼 있다. 시는 이날 영월군에 기증증서를 전달했으며, 기증받은 단종어진 영인본을 현재 진행 중인 어진박물관 증축공사가 완료되는 대로 지하 어진실에 모셔져 있는 6분의 어진과 함께 새로 조성될 1층 어진실에 함께 전시할 계획이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조선왕조의 본향인 전주에 또 한 분의 어진을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며 “단종어진을 기증해준 영월군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 사람들
  • 강정원
  • 2022.09.28 16:31

일본 전 총리의 참회

일본 내 대표적 지한파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지난 주말 진도와 정읍을 찾아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의 고개를 숙여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진도 왜덕산 위령제와 정읍 태인에 있는 3·1운동 기념탑을 참배하고 일본의 참회를 촉구했다. 그는 정읍시청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는 “한일관계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 일본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들고 “일본이 무한책임의 자세를 가진다면 한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현재 한일관계가 좋지 않다”며 “일본의 충분한 사죄가 이뤄지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3.1운동과 관련해서는 “일본의 식민 치하에서 벗어나기 위한 운동으로 많은 생명이 희생됐다”면서 “일본인으로서 깊이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진도 왜덕산과 일본의 이비총(耳鼻塚, 귀·코 무덤)을 비교하기도 했다. 왜덕산은 이순신 장군이 배 12척으로 왜군을 대파한 명량해전 당시 전사한 왜군을 진도 주민들이 수습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고 위령제를 지내는 곳이다. 이후 왜군에 덕을 베풀었다 해서 왜덕산이라 불린다. 현재 약 50여 기의 왜군 무덤이 남아있으며 이런 사실이 지난 2002년 진도 주민의 증언을 통해 알려지자 당시 숨진 일본 수군의 후손들이 왜덕산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언급하며 “조선인의 귀나 코를 가져가 자랑했던 일본의 역사를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일본인의 자성을 촉구했다. 도요토미의 명령으로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가 일본 곳곳에 만들어진 게 이비총이다. 대표적으로 일본 교토에 세워진 이비총은 12만 개가 넘는 조선인의 귀와 코로 무덤이 만들어졌고 전쟁의 공적으로 삼았다.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희생된 1만여 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의 코와 귀도 일본 곳곳에 묻혀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지난해 11월 일본 오카야마현에 있는 귀 무덤 위령제 때 참배하고 사죄하기도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지난 2009년 일본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 단독 정당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조부는 초대 자민당 총재와 52~54대 총리를 역임한 하토야마 이치로다. 부친은 하토야마 이이치로는 외부대신을 역임했다. 제국주의자인 할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일본의 과거사를 인정하고 한일관계 개선에 앞장서 오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경남 합천에서 원폭 피해자를 만나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참회처럼 일본 자민당 정권이 전향적인 자세를 가질 때 꼬여있는 한일관계도 쾌도난마처럼 해결될 것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2.09.28 16:29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7)조선에 남은 하멜 요리사 얀 클라슨

“너희는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디서 오는 길인가?” “우리는 화란인이며 코레아에서 오는 길입니다” 1666년 9월 14일, 조선 탈출에 성공한 네델란드 선원 하멜 일행 8명이 나가사키 관리에게 심문받으며 답변한 말이다. 본국인 네델란드로 돌아가기 위해 그들은 표류한 이유와 당시의 현황 그리고 조선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름·나이·항해할 당시 직책과 거주하는 장소까지도 최선을 다해 답변하였다. 남원에는 요리사 얀 클라슨(Jan Claeszen, 49세)을 비롯하여 헨드릭 코넬리슨(Hendrick Cornelissen, 37세)과 요하니스 람펜(Johannis Lampen, 36세) 3명이 남아있고, 순천에 조타수 야콥 한스를 포함한 3명 그리고 여수 좌수영에는 포수 산더 바스켓을 포함 2명이 남아있다고 『하멜보고서』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은 조선을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하멜표류기』의 일부이다. 하멜 일행이 표류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의 행적이 자세하게 전해진 데에는,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이 네델란드 본사에 <항해일지> 등을 기록해서 보고 해야만 하는 직책인 ‘서기(書記, 회계사 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1653년 하멜 일행은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타고 7월 30일 지금의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났다. 악전고투 끝에 암초에 좌초되어 제주도에 표착한 날이 8월 16일이었다. 선원 64명 중 선장을 포함한 28명이 죽고 36명이 살아남았는데, 당시 하멜은 23살이었고 훗날 1666년 탈출할 때 나이는 36살이었다. 조선 땅에 그토록 오랫동안 머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생존자들은 시신을 수습하여 함께 묻어주며 조선에서의 ‘13년 28일’ 중 첫날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파도에 떠 밀려온 생필품을 살펴보고 밀가루와 고기 베이컨이 들어있는 상자와 와인 상자를 발견했지만, 불이 없어 요리하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텐트를 만들어 비를 피하고 있는데 세 명의 현지 사람이 나타나 화승총으로 위협해 불을 얻어내었다. 아마 그때 첫 요리를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그 요리사가 ‘얀 클라슨’일 확률이 높지만, 기록에는 없다. 그들은 좌초한 곳이 일본 부근일 것이라는 생각했으나, 그들을 포위하고 억류한 사람들의 옷차림이 일본이나 중국과 달라 어딘지 알 수 없었다가 제주임을 알게 된다. 제주도 사람들은 점차 하멜 일행을 관대하게 대했으며 지닌 음식이 베이컨과 고기뿐임을 알고, 너무 굶주린 상태에 많이 먹으면 탈이 날 것을 염려해서 쌀죽을 조금씩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와인을 맛보고는 무척 만족해했다고 하며, 이후 숙소로 옮겨와 심문받을 때도 외출을 허락해 점차 반찬 요리도 해 먹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던 10월 29일 벨테브레이(J.J. Weltevree)라는 조선으로 귀화한 네델란드인 박연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일본으로 향하던 중 음료수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에 상륙하였다가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조선인 여자와 결혼하여 귀화한 사람이었다. 박연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과 맞서 싸운 조선의 군인이었다.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총포 제작과 조작법을 지도하며 포로들을 감시하고 통솔한 자로, 하멜 일행의 통역을 위해 제주에 내려가 대면하게 되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는가?” 그가 누군지 제주 목사가 묻자, “우리와 같은 화란인”이라 대답하자 제주 목사는 웃으며 “틀렸다. 이 사람은 코레시안(Coresian, 조선인)이다”라고 했다. 하멜 일행의 제주도 표류와 행적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윤행임(1762-1801)의 문집 『석재고(碩齋稿)』에는 “박연은 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뒤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자기 옷깃이 다 젖을 때까지 울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제주에서의 10개월을 보낸 뒤 왕명을 받아 박연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와 훈련도감에 배치된 하멜 일행은 조선군 신분이 된다. 하지만, 일행 중 두 사람이 청나라 사신을 만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쫓겨나게 된다. 유배 가는 길에 배웅나온 박연과 마지막으로 보고, 1656년 강진의 전라병성에서 담장을 쌓으며 잡초를 뽑고 주변을 정비하는 노역을 하며 고향으로 갈 희망 없는 삶을 살게 된다. 현재 강진 병영성 인근의 천연기념물 성동리 은행나무는 하멜의 기록에 등장한 나무라하며 주변의 특별한 마을 돌담은 그들의 흔적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그곳에서 하멜 일행은 7년 동안 22명이 남는다. 그러다 기근이 심해지자, 12명은 여수로 5명은 순천으로 5명은 남원으로 각각 이송되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여수에 있던 8명이 탈출에 성공하고, 죽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2년 뒤 1668년 일본으로 송환된다. 그런데, 그중, ‘남원에 살던 요리사 출신인 얀 클라슨’은 송환을 거부하고 조선에 남았다. 네델란드에 도착한 하멜은 억류 기간 못 받은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동인도 회사에 보고용으로 기록한 항해일지를 기반으로 <하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이 1668년 책으로 출간되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유럽인들에게 조선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17년 재미교포 잡지에 연재된 것을 최남선이 발견하여 『청춘』 6월호에 처음 소개되었고, 이후 『하멜표류기』로 출판되었다. 하멜 일행은 남(南)씨 성을 나라에서 하사받았고 강진에는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후손들이 있었다고 하나 이야기로만 전해진다. 더구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남원에 남았던 요리사의 흔적은 더욱 묘연하다. 오래전 이국적인 모습의 사람이 조리한 서양 음식의 흔적이 남원에 아직 남아있을까? 그 마음과 자취를 따라 가을날 사랑이 깃든 남원으로 특별한 맛 기행을 떠나야겠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9.28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