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학살, 전북정치권에 던지는 화두는
 중원 제패를 둘러싸고 자웅을 겨뤘던 항우와 유방은 전혀 다른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항우는 벌죽한 집안 출신으로 모든 면에서 뒤질게 하나도 없었던 반면, 유방은 학력, 경력, 집안 등이 소위 듣보잡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방이 최종 승리해 한나라를 열었고, 항우는 패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유방에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항우 곁은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보는 눈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게 결국 승패를 갈랐다. 구태여 옛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요즘 국민의힘과 민주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과정을 보면 과연 누가 향후 국정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국민의힘은 용산을 중심으로 한 친윤계를 대거 꽂아야 하고,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가까운 이도 요소요소에 끼워넣는 줄타기를 하고있다. 반면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소위 친명계로 완벽하게 포진시키려 하고있다.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한동훈과 이재명의 명운은 오는 4월 10일 총선에서 확연히 갈린다. 그에 앞서 자신의 진영 엔트리를 정하는 공천전쟁이 여야를 막론하고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소위 3김시대가 무려 30년 넘게 계속되는 동안 이들은 제왕적 총재로서 국회의원 공천을 떡주무르듯 했다. 특히 양김씨의 경우, 전국 지도를 펴 놓고 마치 바둑돌을 놓듯 자신의 의중대로 공천자 하나하나를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보면 국회의원은 나름대로 역량과 자질을 갖춰서 된 것 같아도 양김씨가 볼때는 하나의 바둑돌에 불과했다. 총재의 의중에 따라 요석이 폐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석작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때론 폐석이 요석이 되기도 했다. 신인이건 중진이건 예외가 없었다. 총재로서 권력을 유지하고 훗날 대권가도에 도움이 될 만한 가치가 얼마나 있는가 하는게 가장 중요한 잣대였다. 눈 밖에 나면 물갈이의 대상이 되곤했는데 전북에선 한때 이철승, 손주항, 김원기 등이 마법에 걸리기도 했다. YS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으나 사석이 됐던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정가에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정계를 은퇴하지 않았던가. 역대 국회의원 초선 비율을 보면 21대 때 무려 50.3% 였고, 18∼20대는 44.8%, 49.3%, 42.3% 등이었다. 이재명 대표 체제를 굳히기 위한 이번 총선에서도 전북은 가장 먼저 사석이 될 가능성이 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모난돌이 거의 없는데다 유력한 도전자도 없기에 현역 생존율이 높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독특한 컬러가 없이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나 실세들만 바라보는 해바리가 정치인이나 생계형 정치인들로 대거 포진돼 있다는 얘기다. 공천장을 쥐기위해 오로지 이재명 마케팅만 하고 있는게 오늘 전북의 현주소다. 그런데 최근들어 홍영표, 이수진, 박용진, 윤영찬 등 전북 출신 의원들이 퇴출 조짐을 보이고 있고, 전북 지역구 의원 중에서도 재선 한명, 초선 한명이 낙제점을 받았다는 관측도 난무하고 있다. 2000년 제16대 총선때 당에 갓 들어온 이회창 총재는 김윤환, 이기택 등 중진들을 대거 낙천시켜 공천학살이라는 말이 그때부터 생겼다. 가히 이번 국민의힘, 민주당 공천은 한동훈, 이재명 체제를 굳건히 하기위한 공천학살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자기 계보가 없는 한동훈과 달리, 이재명은 완벽한 당 장악을 기도하고 있는 듯 하여 물갈이와 공천학살의 칼날이 휘몰아치고 있다. 그 결과 총선 이후 전북정치권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재편될지 도민들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