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23 12:07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경제 chevron_right 건설·부동산

[강대호의 건축단상] 전북 건축의 힘

과거에는, 어느 국가 또는 어느 지역의 건축은 대부분 그 곳 나름대로 독특하고 고유한 건축 양식과 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 지역의 자연적· 풍토적 조건과 생활양식에 맞도록 적응되어 오면서, 건축의 재료· 공법 그리고 형태까지도 고유한 특징들을 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어느 건축물을 보면 우리는 그 지역을 용이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의 전통주택을 보면, 우리나라 한반도 내에서도 북쪽의 함경도· 평안도· 중부의 경기도· 남부의 전라도, 울릉도· 제주도 등에 이르기까지 그 지역의 고유한 전형적인 형식이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을 살펴보면, 평면상에서 남쪽 지역으로 갈수록 바닥 면적에 대한 마루의 면적비율이 크다는 점이다. 함경도 지역의 전통주택은 춥고 긴 겨울에 적응하기 위해 마루가 없고 부엌 공간을 거실과 같은 공간으로 확대한 ‘정지’가 있으며, 방들이 서로 붙어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지역 특성에 따른 분명한 지역건축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건축의 기술과 정보의 발달, 생활의 보편화에 의하여 건축의 지역적 특성이 희미해지면서 건축물을 보고도 그것이 있는 국가 또는 지역을 짐작하기는 매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세계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현대건축은 모두 비슷한 양식과 분위기를 보이게 되었다. 예컨대, 호주의 시드니의 도심과 우리나라 서울 여의도의 원경사진은 거의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한편 이 두 도시의 원경사진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차이가 나는 건축물이 눈에 뜨인다. 조개껍질을 겹쳐서 세워 놓은 듯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핀란드 건축가 요른 유쫀 설계)이다. 이 건물의 건축적 우수성은 독특한 형태구성과 구조적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건물은 시드니 시에서 바다로 연장된 매립된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육지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육지로 향하는 장소적 힘을 강하게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페라 하우스는 이 장소에서만 가장 큰 건축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건축물은 현대 건축이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시드니의 지역건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에게 새로운 현대적 지역건축의 가능성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다. 최근 전북의 어느 군에 공공 화장실을 설계할 기회가 있었다. 새로 개발된 해안 계획도시에 있는 60평 규모의 작은 화장실이다. 설계 컨셉은 이 건축물이 산과 바다를 이어주는 회랑(gallery)으로서의 형태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두 개의 섬과 같은 건물 덩어리들 사이에 유리 박스를 두고 이 박스의 지붕은 한옥의 용마루 선 두 개가 교차되는 형태를 갖고 있다. 밤에는 유리박스 내부의 조명으로 인하여 육지에 있는 또 하나의 등대가 된다. 장소적 속성이 진하게 배어있는 지역건축은 그 지역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지역건축은 장소성이 없는, 기존의 비슷비슷한 형태의 현대건축에서 벗어나 그 지역의 고유성을 표현하기 위해 장소적 이야기를 엮어내야 한다. 전북지역은 매우 오랜 역사와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서 나오는 지역의 장소적 힘을 건축에 실어야할 것이다. 전북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지역건축의 힘을 기대해 본다. /전주대 교수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7.05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돼지우리와 월드컵

돼지라고 하면 우리는 조건반사적으로 그 뭉툭한 돼지 코와 더럽고 지저분한 돼지우리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또 돼지꿈은 길몽으로 여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옛날부터 우리는 돼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중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오해였다.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싸는 동물의 대명사로 알고 있던 돼지에 대한 일종의 오해였던 것이다.돼지를 키워보면 돼지도 제 나름대로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사용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밥 먹는 공간이 따로 있고, 잠자는 공간이 따로 있으며, 식사를 하는 공간도 잘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인간처럼 벽을 만들고 창과 문을 달아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돼지우리’라는 제한된 공간일망정 그것을 나눠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놀랄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돼지도 제 활동공간이 비좁거나 동선이 차단되면 우리 인간처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괜스레 ‘꽥꽥’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는가 하면,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돌변해서 난폭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과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도 원시시대에는 그렇게 ‘원형 움막집’이라고 하는 하나의 공간에서 가족전체가 먹고 자고 쉬는 일체의 문제를 해결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돼지만 흉볼 일도 아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웬만한 가정에서는 그저 방 하나에 오남매 육남매가 뒤엉켜 살았었다.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서로 살을 부딪치며 엎치락뒤치락 살면서도 언젠가 때가 되면, 수세식 화장실이 딸린 빨간 벽돌집에서 그럴듯하게 내 방 하나 꾸미고 살겠다는 그런 꿈을 꾸고 살았다. 다르다면 그게 달랐다. 건축에서 공간은 그런 것이다. 저절로 나둬도 산천동식물은 제 스스로 공간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좁으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또 이유 없이 제 공간을 침범당하면 사나워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말 어떤 때는 아주 좁디좁은 공간 하나에서 찬란한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내기도 한다. 지금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월드컵축구도 사실은 공간싸움이다. 미드필드에서부터 상대공격수의 공간을 미리 강하게 차단하는 압박축구는 전형적인 공간차지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좁은 국토에서 태생적으로 서로 밀치고 제치며 살아온 우리 한국축구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고 더 강한 압박축구를 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축이란 창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6.28 23:02

[강대호의 건축단상] 전북의 힘(주거 부문)

몇 해 전 우리 대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통합교양 과목인 ‘인간과 주택’을 강의한 적이 있다. 강의는, 본인 살고 싶은 집을 글 또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과목이 교양과정이므로 대부분의 수강학생은 건축의 비전공자들이었다. 학생들은 본인이 꿈꿔왔던 주거의 공간과 형태들을 미숙하지만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살고 싶어 하는 주거의 종류는 아파트가 아니라 전원의 단독주택이라는 점이다. 우선 , 텃밭과 마당의 외부공간을 즐기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삶 , 음악실과 같은 취미실, 재택근무를 위한 작업 및 사무실 등의 내부공간으로부터 유럽의 성(城), 단순한 사각면체, 별모양, 둥근모양, 우주선과 같은 원뿔모양 등까지 매우 다양한 건축적 요구사항을 갖고 있었다. 주택의 예비 수요자인 학생들의 이러한 요구사항은 건축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문제인가?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주택을 선택하게 되는 시기에는 이러한 꿈, 자신들의 주택에 대한 꿈은 경제적인, 또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좌절될 수밖에 없는가? 우리 사회는 이러한 다양한 건축적 이상향을 이루어낼 수 없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도시의 한정된 토지로 인하여 우리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너무나 안일하고 획일적으로 보급해 왔다. 전국의 아파트 가격은 국가의 경제 상황에 지나치게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서울의 특정 지역의 아파트가 서울권 내 뿐만 아니라, 전국의 아파트 가격을 거의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자신들이 아파트라는 주거의 형태만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빚은 결과로서 어쩌면 우리가 자초한 일 일지도 모른다. 최근 어느 재개발 아파트 주민들이 평형별 보상가액이 차이가 난다고 소송을 냈던 33평형 13억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의 가격은 평당 약 3900 여 만원에 이른다. 이 금액이라면, 대지가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100 여 평의 꿈에 그리던 주택이 가능할 수도 있다. 아무리 아파트 단지의 입지적 조건에서 문화적, 사회적, 교육적 여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분양가, 잠재적 보유가 및 매매가를 인정한다하더라도,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아파트의 가치 평가는 우리의 이상적인 주거의 형태에 대하여 이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만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도 서울권에는 또 다시 이러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는 신도시의 아파트가 지금도 부족한(?) 공급량을 맞추기 위해 100대 1도 더되는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분양되고 있다. 전북의 아파트도 이러한 추세에 동참하려는 징후는 얼마든지 있다. 서울권의 아파트가 전국의 아파트 가격과 이러한 추세를 조절하고 있는 셈이다. 도시화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고층 아파트들을 공급하여 고밀화(高密化)하기 보다는 이제는 오히려, 도시를 저밀화(低密化)시켜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는 아파트만이 우리가 지향하는 주거 형태가 아니라는 우리의 인식이 필요하며, 또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살아나야한다. 자연이 풍부하게 살아 있는 도시 주변의 시골에 저밀화된 다양한 주거형태의 주택을 지어야한다. 적어도 전북권은 전국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주거형태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으로 유명해져야 한다. 낙후된 지역이 아니라, 가장 자연이 잘 보존되고, 쾌적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의 주거지역으로서 전북은 거듭나야한다. 이것이 바로 전북의 가장 큰 강점이자 잠재력이며 힘이라고 믿는다. 전북의 젊은이,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국의 젊은이들이 꿈꾸는 주거를 전북에 마련해 주는 청사진을 기대해 본다./전주대 교수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6.21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오방색과 월드컵

빨강 파랑 노랑을 색의 삼원색이라고 한다. 이 삼원색의 배합정도에 따라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각양각색의 색상들이 출현하게 되는데, 건축에서도 형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색(色)이다. 현대건축은 과거 암울했던 시대에 비해서 지금 우리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색상 자체가 꽤나 화려하고 다양해져 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저 칙칙할 것만 같았던 옛날 우리 건축에도 때로는 아주 화려한 색채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곤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단청(丹靑)이란 것이다. 단청은 일반 여염집에서는 감히 사용할 수 없었고, 왕이 거처하는 궁궐이나 부처님을 모신 사찰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우리 건축의 아주 강렬한 의장요소였다. 단청은 보통 삼원색의 바탕위에 흑과 백을 더하여 다섯 가지 색상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저 아무렇게나 화려하게만 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섯 가지 색마다 나름대로 고유의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단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좌청룡과 우백호, 북현무 그리고 남주작이라고 하는 네 가지 기본 틀 위에 중앙까지 합하여 오방(五方)색을 사용하게 된다. 우선 뒤에 앉아서 앞을 바라볼 때 동쪽은 좌청룡(左靑龍)이라서 청색이 되고, 서쪽은 우백호(右白虎)라서 백색이 된다. 그리고 남쪽에는 붉은 태양의 힘을 등에 업은 주작(朱雀)이 하늘을 훨훨 날아온다고 생각했으므로 적색이 자리 잡게 되고, 또 북쪽은 춥고 어두운 방위라고 믿었으므로 현무(玄武)가 되었다. 이렇게 동서남북으로 각각 파랑 하양 빨강 검정색을 배치하고, 그 중앙에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흙의 색깔, 누렁을 배치하게 된다. 그 결과 가장 중심에 앉아있는 왕을 황제(黃帝, 皇帝)라고 하게 되었고,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져있는 제후국의 왕은 각각 그가 위치하는 방위에 따라서 청제(靑帝), 백제(白帝), 적제(赤帝), 흑제(黑帝)라고 구분하여 불렀던 것이다. 이러한 오방색은 전통건축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일상생활에서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 장군총의 고분벽화나 조선시대의 궁궐과 사찰의 중요건축물에 칠해진 단청이 그 좋은 실례가 된다.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금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붉은 악마’의 ‘붉은 색’도 사실은 오방색에서 나왔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면서 붉은 기운으로 세상을 뒤덮는다는 상상속의 붉은 봉황새, 주작(朱雀)의 그 기운찬 정열을 우리 핏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탓인지 지금 우리는 이렇게 지구촌 전체를 온통 붉은 물결 일색으로 출렁거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6.14 23:02

[강대호의 건축단상] 원소론(元素論)과 풍수지리(風水地理)

건축(architecture)은 일반적으로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의 성격이 결합된 종합적인 분야라고 알려져 있다. 겉으로 나타난 물리적인 건축물의 내부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많은 영역이 내포돼 있다. 하나의 건축물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문화계(文化界)가 있고 문화계 내에는 역사계(歷史界)가, 역사계 내에는 인간계(人間界)가, 인간계 내에는 자연계(自然界)가, 자연계 내에는 신계(神界)가 존재한다고 필자는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영역(界)의 요소들이 잠재돼 최종적으로 표현된 결과가 건축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자연계이며, 자연계는 우리 인간들이 건축에서 불변적인 요소로 취급하고 있는 영역이다. 자연계에 대한 건축의 근본적인 접근 방법을 알 수 있는 개념의 하나가 서양의 원소론과 동양의 풍수지리라고 말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원소론(Atomism)은 인간의 자연계에 대한 사고체계를 반영하는 결과의 하나이다. 지구상에 모든 물질을 근본적으로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를 원소라고 정의하고, 원소를 모든 물질의 가장 기본 요소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원소는 일찍이 중국, 인도, 이집트, 그리스 등의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개념으로서, 당시에는 실험적인 근거와 과학적인 근거가 미약했으나 신의 도움 없이 스스로 움직여서 변화하여 온갖 모습으로 나타나는 근본재료로 정의했다. 그 본질은 불생, 불멸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자연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견해와 불변성으로 논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근원적 물질이 하나라는 일원론(一元論)을 제시했다. BC 5세기경 엠페토클레스의 4원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종합됐다. 그는 4원에 5원(五元)을 추가해서 5원 이야말로 세계를 만드는 유일한 근원재료인 ‘제일 물질(Quinta Essentia)’로 규정하면서 현실적으로는 그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가상적인 존재로 보았다. 원소론에 입각한 자연관을 살펴 볼 때 현대의 건축을 위해 매우 큰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동서양의 공통된 요소는 水, 火, 土이며 이에 건축적으로 활용되어온 동양의 풍(주: 風, 서양의 공기에 해당), 수(水), 지(주: 地, 서양의 흙에 해당), 리(理),를 포함한다면 풍, 수, 지와 에너지로 해석될 수 있는 화(火) 등으로 정리된다. 또한 석가의 공(空), 풍수지리의 리(理),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5원인 ‘Quinta Essentia’ 등은 동일한 개념으로서 구성요소들의 ’근본질서‘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동서양의 공통된 요소로서, 건축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자연계의 근본요소들은 풍(바람, 공기), 수(물), 지(흙, 땅), 에너지(火)와 함께 자연계의 통합적 근본질서(空, Quinta Essentia, 理), 등으로 종합된다.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슈퍼컴퓨터, 인공지능, 인텔리젼트 빌딩... 등의 이 시대에 있어서도 자연계는 언제나 자연 그대로 불변성을 갖고 존재하고 있다. 건축에 고도의 첨단기술을 적용하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자연계의 불변성의 개념을 잊지 말고, 좀 더 근본적인 건축적 대응과 적용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주대교수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6.07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쐐기

우리 사람의 몸에는 수분이 약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풀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다. 거의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많은 부분을 사실상 물에 의지하고 있다.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라고 하는 오행(五行)중에서도 아마 물이 더 중요한 생명의 선행요소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한 물이 건축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이 없이는 건축을 할 수도 없지만, 또 반대로 물이 하자의 원인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에 덧대고 포개고 또 잘 짜 맞춰지도록 흙이나 목재를 주요소재로 설계하는 생태건축의 경우, 그 정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자연소재들은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처럼 습도변화에 초연한 것이 아니라, 대기 중의 수분함유량에 따라서 쉴 새 없이 신축팽창을 거듭하게 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재료가 ‘숨을 쉬고 있는 증거’ 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갈라지고 벌어지고 뒤틀어져 있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면 그게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한옥에 살다보면 이러한 상황들을 자주 직면하게 되는데, 봄 가을의 건조한 날에는 목재의 이음맞춤부분에서 저절로 틈이 벌어지게 되고, 그래서 걸어 다닐 때마다 마룻장이 삐거덕거리는 소리도 종종 듣게 된다. 또 고온다습한 장마철엔 반대로 문틈이 뻑뻑해지고 잘 여닫혀지지가 않아서 애를 먹기도 한다. 흙이나 목재가 대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이고 내뿜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 한옥에서는 그 틈을 보완하기 위해서 옛날부터 쐐기를 박아왔다. 비록 쓰다 남은 허드레 목재로 뾰족하게 깎아서 만든, 정말 작고 볼품없는 물건이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조금 벌어지고 뒤틀어진 부분에 쐐기를 꽂고 적당하게 두들겨 박아놓으면, 마룻장이 이리저리 놀지도 않고 삐거덕거리던 소리마저도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리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물건을 우리는 쐐기라고 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그래서 각 후보마다 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동량(棟樑)이 되겠노라고 역설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둥과 대들보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고 단단한 쐐기가 더 필요할 시대인지도 모른다. 기둥과 대들보에 나있는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건축물 전체를 빈틈없이 안정되게 하고, 때로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까지 몰아내던 그런 ‘야무진 쐐기’가 필요한 것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5.31 23:02

[강대호의 건축단상] 건축과 도시의 부가가치

전주 한옥마을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과거 이 마을의 보존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각종 건축적 규제로 인하여 그 가격이 땅에 곤두박질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을 감내하고 난 이후, 최근에는 새로운 건축적 프로그램인 휴식, 전시, 공연 등의 기능들이 부여됨으로써 마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마을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 단순한 주거기능의 가치에 문화적 프로그램의 가치가 더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전통문화중심도시로의 추진에 시발점이 되는 기대효과를 얻고 있다. 전주는 앞으로 추진할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위해 한옥마을 뿐만 아니라 도시전체로 그 눈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도시의 스케일에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주시 전체를 전통문화중심도시에 걸맞도록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전주의 4대문은 전주의 전통문화중심도시의 도시적 정체성을 잘 말해줄 수 있는 구심의 역사적 유물이다. 동문, 서문, 북문은 일제의 도시계획에 의하여 1911년에 철거되었고, 이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풍남문(보물 308호)은 주변의 도시화에 의해 로터리로 변하여 성벽도 없이 차도로 둘러싸인 섬이 된지 오래다. 대문의 나들목의 기능은 닫혀진 문짝으로만 짐작할 뿐, 가까이 가볼 수 없는, 함께 숨 쉴 수 없는 박제화된 옛 건축물일 뿐이다. 이제는 대문의 빗장을 다시 풀어야한다. 또한 없어진 나머지 3개의 대문도 복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풍남문 역시 역사적으로 보면 몇 차례의 수축(修築)과 재축(再築)을 거듭해 온 사실이 있으므로 이 대문들의 복원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복원된 대문의 도시적 영역에 한옥마을에서 시도해 본 경험을 살려 새로운 도시적, 건축적 프로그램과 디자인을 부여하여 문화적 부가가치를 적극적으로 얻어내야 한다. 구도심의 주거밀도를 높여 활성화하려는 단순한 재개발 방식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전주는 3세기 마한을 시작으로, 백제, 후백제, 고려, 조선시대의 1700 여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이야기 거리가 무궁무진한 도시이다.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의 도시 디자인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전주 8경, 10경, 동고산성, 남고산성, 반태산, 무왕말 등의 산성 등은 새로운 도시 디자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중심도시의 속성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건축과 도시의 디자인도 필수적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전통성과 함께 현재의 전통성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개관한 스페인 빌바오 시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매우 현대적으로 설계한 작품이다. 인구 40만 규모의 이 소도시는 스페인에서도 매우 역사적인 곳으로서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딕과 바로크 건축으로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도시에 새로운 미술관 하나가 역사적인 도시의 이미지와 부가가치를 세계적으로 높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제 전주는 전통문화중심도시의 큰 주제 아래, 한옥마을 뿐 만 아니라 도시전체의 스케일에서 건축과 도시 디자인이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건축과 도시의 부가가치를 높임으로써 말이다.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5.24 23:02

[아파트시세] 거래 비수기 약보합세 유지

5월 셋째주 도내 아파트 시장은 2주간 매매 0.18% 상승했다. 전세는 0.11% 올랐다. 지난달보다는 상승폭이 다소 커지긴 했지만 비수기로 거래 움직임은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이어갔다. 평형대별로 변동률을 살펴보면 매매가 51∼55평형 1.33%, 46∼50평형 0.43%, 55평형이상 0.31%, 21∼25평형 0.25%, 20평형 이하 0.18%, 26∼30평형 0.11%, 31∼35평형 0.06% 변동했다. 평형대 별로 고른 움직임 속에 상대적으로 중대형 평형대가 더 상승폭이 컸다. 전세는 46∼50평형 0.32%, 20평형 이하 0.20%, 26∼30평형 0.18%, 31∼35평형 0.12%, 21∼25평형 0.06%의 변동률을 보였다. 소형 평형을 중심으로 전세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매매]익산시 0.58%, 전주시 0.13% 변동을 보였다. 익산시 영등동 우남그랜드(1999년, 1100세대) 1000만원, 동산동 삼호1차(1993년, 248세대) 27·31평형 각 200만원 정도씩 매물부족으로 가격조정이 이뤄졌다. 전주시 효자동2가 더샵효자1차(2005년, 888세대) 54평형 1500만원, 47평형 1000만원 정도 올랐다. 이는 신규 단지로 입주를 희망하는 수요가 계속해서 형성이 되면서 가격이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전세]익산시와 전주시가 2주간 각각 0.32%, 0.10%씩 변동했다. 개별 단지를 살펴보면 익산시 영등동 우남그랜드타운 32평형 1000만원, 전주시 효자동1가 진흥더블파크2단지(2005년, 720세대) 33평형 500만원 정도씩 오름세를 보였다. 전세시장은 여전히 물건 부족을 보이며 가격이 조정되고 있는 모습이다.도내 아파트 시장은 일부 신규 입주단지와 생활 여건이 양호한 단지를 중심으로 실수요자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거래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아파트 시장은 인기단지를 제외하고는 약보합세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양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5.22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고층건축물과 탄성(彈性)

강하면 쉽게 부러진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강한 것은 부드러운데서 나온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고급무술은 거의 다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한 자세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춤동작 같기도 하다. 중국의 쿵푸가 그렇고, 일본의 유도와 또 우리 전래의 태껸과 국선도가 그렇다. 태풍이 오고 폭풍이 불면 굵은 나무들은 부러지거나 뽑혀나가게 되지만, 그 연약해 보이는 풀꽃들은 그저 흔들리기만 할 뿐, 좀처럼 꺽여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고산준령에는 비바람에 눕고, 눈에 밟힐 줄 아는 작은 풀꽃들만이 생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철근과 철골에다가 거푸집 형틀을 짜고 거기에 콘크리트를 부어넣으면, 콘크리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열(水和熱)을 내뿜으면서 단단한 돌덩어리처럼 굳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그 강한 구조체위에 우리는 피아노도 올려놓고, 침대도 올려놓고, 또 아무 불안감 없이 그 위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콘크리트 건축물도 그냥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리저리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거침없이 내려쬐는 태양열에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제 스스로 신축팽창을 거듭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표적인 초고층 건축물로 잘 알고 있는 서울의 63빌딩도 처음 설계당시부터 조금씩 흔들리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최고 꼭대기 층은 무려 30cm씩이나 흔들리고 있는데, 그렇게 거대한 제 몸을 조금씩 흔들어가면서 불필요한 외력을 중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용수철을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게 되고, 고무공을 세게 눌렀다가 놓아도 어느 한도까지는 다시 제자리로 재빠르게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탄성(彈性)이라고 한다. 보통 초고층 건축물은 그렇게 제 높이의 1/500 이내에서 조금씩 흔들리도록 설계하고 있다. 그것이 건축물의 구조에 훨씬 더 안전하고,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마음도 마찬가지다. 거친 풍파 속에서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지만, 그것이 일단 탄성한계를 넘어서면 문제가 된다. 오욕칠정의 번민에 시달리다보면 어떤 때는 정말 탄성한계를 훌쩍 넘어서,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소성(塑性)상태로 접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차라리 당초 설계의도대로 탄성범위 이내에서만 흔들리며 살아갈 줄 아는 저 건축물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5.17 23:02

[강대호의 건축단상] 한옥

한옥은 일반적으로 기와 지붕, 용마루의 곡선, 길게 내민 처마 선들의 중첩과 조화, 재료와 형태의 통일성, 그리고 동네 길을 포함한 내·외부 공간, 인간적인 규모(스케일,scale)와 배치로 인해 우리 고건축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다.전주 교동의 한옥마을은 이러한 고건축 본래의 아름다운 전통성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이제는 단순한 ‘보존’의 차원에서 더 높은 ‘재활(rehabilitation)’의 단계로 추진되고 있음을 본다. 즉, 과거의 주거용 뿐 만 아니라 현대의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인 전시, 휴식, 모임, 공연 등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고건축의 보존과 활성화를 위한 ‘재활’이라는 새로운 방법에 의하여 전통성이 확보될 수 있으며, 과거의 전통에 이제 새로운 현대적 전통의 문화적 부가가치가 더해질 수 있는 것이다.한편, 한옥을 옛 방식 그대로 지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았었던 그들은 한옥이 현재 생활의 용기(用器)로서 불편함을 느끼지만 한옥 그 자체라는 것만으로도, 건강하고 숨쉬는 천연 재료로 지어졌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보상받는다고들 한다. 우리는 왜 옛 방식의 한옥을 선호하는가? 옛 건축을 모사(模寫)한 현재의 ‘고건축’에서라도 그들에게 중요한 전통성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옛부터 지금까지 변하고 있지 않은 햇빛, 바람, 기후 등의 풍토적 불변인자를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전통성에 가치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우 아파트와 같은 현재의 주거형태에서 찾을 수 없는 전통성을, 우리의 자연과 풍토적 요소에 대해 과거 오랜 세월 순응했던 주거생활의 해결 방법으로서의 한옥에 대한 믿음을, 건강하고 자연적이라는 전통성에 대한 물리적 정신적 편안함을,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면서까지 한옥이라는 건축에서 찾고자 하는 현대인의 건축적 전통성에 대한 잠재적 요구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시대의 현대적 전통성을 구현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의 한옥의 모습은 옛 한옥의 가구식(架構式) 목(木)구조 만이 아닐 것이며,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지붕 위에 얹은 기와의 형태와 재료의 모습만이 아닐 것이다. 목구조에 적합했던 약 2.4m 한 칸은 새로운 구조재로서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고건축의 형태, 구조와 재료만으로 모사된 현대의 한옥은 건축적 전통성을 포괄하는 풍토적 불변인자를 고려한 가변인자들의 표현으로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전통 한옥의 ‘ㅁ’자형 평면 형태는 우리네 가족 구성원의 관계를 구심적으로 모이게 하여 한 몸으로 구성시킨다. 출입문의 전통적 창호화는 프라이버시를 위한 폐쇄성과 숨결을 느끼게 하는 필터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마당 공간의 분할과 통합, 진입 경로의 영역화, 숨쉬는 천연재료 등에 의해서, 과거 모사형 한옥 수준을 넘어 우리가 선호하는 한옥의 전통성을 새롭게 이어나갈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5.10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울타리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나, 너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우리 집, 우리 식구, 우리 학교, 우리나라라고 해야 뭔가 제대로 말한 것 같고, 심지어 내 남편, 내 아내도 우리 신랑, 우리 각시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라고 하는 말은 아주 친숙한 의미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 ‘우리’는 건축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울타리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때로는 그냥 간단하게 ‘울’이라고도 줄여 불리다가, 어느 때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친근하고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단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울안에 사는 동식물은 모두 ‘우리 편’이 되거나 ‘우리 것’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울 밖을 벗어나게 되면 모두 남으로 여기게 되었다. 아마 홍난파가 작곡한 ‘봉숭아’도 울밑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처량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만약 울밖에 있었으면 그것이 봉숭아든 장미든 진달래든 애잔한 모습으로 우리민족의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건축물에서 울타리는 하나의 경계로서 안팎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탓이었던지 오랜 세월동안 외국을 떠돌던 송두율 교수도 고국이라고 하는 울안으로 들어오려다가 모진 풍파를 겪은 후, 마침내 ‘울’이라고 하는 경계에 서서 그 안팎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경계인(境界人)’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울안은 언제나 따뜻하고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울 밖으로 나서면 왠지 낯설고 살벌하고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되곤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울 밖을 벗어나서도 한때나마 같은 울타리 안에 살았다는 끈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동문을 찾고, 친척을 찾고, 또 향우회를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축물은 그런 것이다. 그저 단순히 잠만 자고, 밥만 먹고, 배설만 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건축이 때로는 그렇게 우리의 머릿속에 강인한 의식을 새겨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열린’ 과 ‘개방’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 탓인지 수천 년을 건축의 주요소재로 사용되어 온 울타리(담장)를 경쟁적으로 철거하는 풍경 속에서, 그동안 어려운 고비 때마다 우리를 지켜왔던 그 ‘우리’라는 고유의 의식마저 허물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한번 되짚어 볼일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5.03 23:02

[강대호의 건축단상] 건축의 전통성

전통은 먼 옛날의 과거 표현들이 아니다. 전통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외부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오늘날에도 우리의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다. 과거 그 당시에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표상들에는 지금, 이곳의 전통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통성이란 시간 흐름의 축선 상에 주어진 조건에 의해 나타나는 그 시대, 그 장소의 삶의 물리적, 정신적 현상으로서, 시간적, 장소적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전통은 항상 당시, 당 장소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서 건축 또한 어느 시점과 어느 장소에서도 항상 전통성의 모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전통을 새롭게 하거나 다시 받아들이거나 현대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고건축, 근대건축, 현대건축이라고 시간의 틀에 의해 구분하고 있는 모든 결과물들은 ‘그 당시의 현재 건축’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단순한 시대적 구분에 의해 정의된 ‘전통건축’은 엄밀하게 표현하면, 과거의 건축, 고건축을 의미하며, 이들 모두가 진정한 전통성을 가진 건축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전통성은 고건축과는 별개의 문제로 취급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건축에 관련된 전통성에 대해 정의 자체가 불분명한 채, 일반적으로 고건축을 전통건축으로 통칭하고 있다. 이는 근세의 서구화 초기에, 이전의 중국과 같은 인접 동양문화권과는 매우 상이한 서양 문화권의 건축과 당시의 기존 건축을 구별하기 위해 쓰여진 용어라고 여겨진다. 예컨대, 고려시대의 중국 원나라 문화의 도입과 조선시대 이후의 서양문화의 도입은 문화의 수용에 있어, 기존 문화와의 이질성의 차이가 매우 컸을 것이고, 그 문화적 이질성을 강조할 수 있는 표현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전통건축에 대한 용어와 관심은 우리나라가 급속한 서구화 과정을 겪으면서 1970-80년대에 일기 시작한 우리 고유문화의 정체성 확인 욕구와 함께 더욱 부각되어, 지금까지 이 용어가 고건축의 고유성을 대신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전통건축이라는 용어의 개념은 단순히 시대적 구분을 위해 고건축을 통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의 각 시대별 전통성을 규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이 개념은 건축에 관련된 불변인자(不變因子)에 대응하는 가변인자(可變因子)의 표현이 건축적 전통성이라고 해석하는 방법을 필자의 주관적인 가설을 전제로 하고 자 한다. 불변인자로서는 햇빛, 기후, 바람, 땅, 물 등의 ‘풍토적 요소’와 ‘민족성’, ‘역사성’, ‘장소성’ 등이며, 가변인자는 건축 관련 입지환경, 기술, 자재, 법규, 교통, 기능적 수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최근 우리사회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건축의 전통성과 현대성의 개념은 대별되거나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불변인자에 대응하여 건축적으로 표현되는 가변인자의 내용을 규명함으로써, ‘전통건축의 현대적 해석과 수용 작업’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4.26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건축물은 그 시대의 자화상

벚꽃이 만발한 지금은 확실히 정치의 계절이다. 눈에 좀 띨만하다 싶은 주요 네거리 건물마다 대형걸개 인물사진이 보란 듯이 내걸려 있다. 디지털 시대의 사진기술 탓인지 후보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마치 건물크기만 하게 커졌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기쁘고 좋은지 하나같이 환하게 웃고들 있다. 지금 시민들은 FTA(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에 불안해하고, 극심한 빈부 격차에 시달리며 이젠 세상 살맛조차 잃어버렸다는데, 그 시민들을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선거에 나선 사람들은 저렇게 한결같이 말쑥한 차림으로 웃고 있는 것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고 정치는 그 천심을 읽는 것이 먼저라고 했는데, 아마도 민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환기를 하고, 채광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망(眺望)의 장소가 되라고 만든 창문까지 저렇게 대형걸개사진으로 가려놓은 지금, 우리 시내의 거리풍경은 확실히 이상해졌다. 비록 선거 때까지 한시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거리풍경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물론, 건물주인들은 상당히 고무되어 있을 것이다. 건축물이 그동안 단순히 전세를 받고 월세만 받던 고리타분한 대상에서 벗어나, 이젠 본의 아니게 새로운 부업의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건축물을 더 크고, 더 넓고, 또 더 높게 설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그동안 건축물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광고간판 때문에 훼손되었던 건축물의 설계이미지와 도시경관은 이제 다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건축물이 하얀 두건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탈춤을 출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건축물에 탈바가지를 씌워놓은 것 같다. 속이야 어떻든 거의 모든 후보들이 안동 하회탈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하회탈이라면 저 몸짓 저 손짓 저 웃음이 모두 다 조롱과 풍자를 담은 가짜라는 얘기인데, 정치란 그 출발인 선거부터 그렇게 속과 겉이 다른 가짜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주는 것 같다. 건축물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게 그 시대를 말없이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도시의 주요 네거리마다 보란 듯이 걸려있는 저 대형걸개 인물사진에서,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혼란스러운 자화상을 비춰보고 있는 것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4.19 23:02

[강대호의 건축단상] 주거의 참살이

최근 우리의 모든 생활을 새롭게 지향하는 개념 ‘웰빙(wel-being)'을 순 우리말로 ‘참살이’라고 하자는 의견들이 있다. 좋은 느낌을 주는 단어로 다가온다. 건강한 생활을 지향하는 여러 가지의 방법과 모습들로써 참살이가 더욱 풍성해 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주거는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의, 식, 주의 일부로서, 매우 다양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비싼 동네에 있는 넓은 크기의 고가의 주거(주택 또는 아파트)는 우리에게 부(富)를 상징하는 객관적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참살이의 개념에서 보면, 우리는 이러한 객관적 가치 보다 더욱 중요한 주관적 가치를 잊고 있는지 모르겠다. 좋은 주거는 좋은 가족을, 나쁜 주거는 나쁜 가족을 만든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건강한 주거에서는 건강한 가족이, 병든 주거에서는 병든 가족이 된다. 주거는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가족 구성원을 보듬어 주기도하고, 밖으로 내 몰기도 하고, 환하게 맞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주거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참살이의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소통이 이루어져야한다. 가족 모두가 서로 대화하고 느낄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대부분, 주거 내부의 불투명한 여닫이 문은 닫으면 벽이 되어 내외부가 차단되어 버린다. 자녀가, 부모가, 형제가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리면 차단되어 버리는 벽체의 일부로서의 문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라도 내외부 여과막(필터)과 같은 창호(窓戶)로 되돌려 질 때, 우리는 자녀의 숨결을, 기침소리를 느끼고, 고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주거에서 거실의 가구 배치를 보자. 마치 대합실이나 영화관처럼 대부분 소파가 TV를 향해져 있다. 이러한 일방통행의 시선과 위치에서 가족간의 풍성한 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주거의 ‘참살이’를 위해 좁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가족이 서로 마주보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가구배치를 해보자. 건강한 생명체의 내부에는 다양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공간은 넓은 크기의 공간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족이 적절한 크기에서 다양하게 공간감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공간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조명이다. 우리 주거의 대부분은 전반조명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서 모든 공간이 퍼져 있는 단순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공간을 부분적으로 모아 주고 나눌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전반조명과 국부조명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다. 거실에는 소파 부분만을 비추는 바닥 스탠드(floor stand)를, 좋은 그림의 벽 액자에는 스포트라이트(spot light)를 설치해 봄직하다. 우리 주거의 내부를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둘러보자. 공간을 빛으로 풍성하고 다양하게 나누어 즐겨보자. 가족을 위한 그릇, 우리의 주거에 생명체로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 이제는 주거의 객관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우리 주거의 ‘참살이’를 위해 주거의 주관적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시각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전주대교수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4.12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문(門)

문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방문을 열고나서는 것은 동트는 그 날 새아침과의 경이로운 만남이며, 남의 집 대문이나 현관문 그리고 방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고 노크를 하는 것도, 사실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된다. 그래서 문 앞에 서있는 그 짧은 순간,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헛기침을 하면서 그렇게 긴장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작을 의미하고 있다. 건축에서도 문은 단순히 출입구라는 개념을 넘어서 일종의 의미와 의식을 담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금줄을 대문(大門)에 먼저 거는 것도 그렇고, 하루 일을 시작하면서 ‘문을 여는’것도 그러하다. 또 어떤 세계에 막 들어서는 것을 입문(入門)이라고 하고, 한 학교에서 배운 사람들끼리 동문(同門)이라고 하면서 서로 똘똘 뭉치는 것도 그렇다. 문은 그 집의 규모와 주인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나뉘게 되는데, 삽살개가 드나들던 단순한 형태의 사립문에서부터 흔히 사찰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과 일반 민가의 평대문 그리고 중앙지붕이 좌우행랑채 지붕보다도 더 높은 솟을대문 등이 있다. 또 옥문(玉門)이나 하문(下門)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여자의 성기를 뜻하고, 열두 대문은 으리으리하게 큰 집을 상징하기도 하였다.문은 재료에 따라서도 각각 달리 불린다. 널쪽으로 좁게 짜맞춘 널문, 판자로 만든 판문, 싸리나 댓가지로 대충 엮어서 만든 싸리문, 삽작문 그리고 헛간이나 뒷간에서 거적만으로 그 입구를 간단하게 가리던 거적(덕석)문이라는 것도 있었고, 또 때때로 큰 집에서 방과 방을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쓰던 분합문도 있었다. 그런데 문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종종 그 출입이 엄격이 제한되기도 하였다. 내외구분이 엄격하던 시절, 밤이 되면 대감마님이 안주인의 방으로 찾아가던 비밀스러운 편문(便門)이 그랬는가 하면, 사당이나 제실의 대문 중에서 일반사람은 다니지 못하도록 항상 잠가놓는 중앙의 신문(神門)이 그랬다. 물론 사람이 만들어놓은 출입문뿐만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가슴에 나있는 ‘마음의 문’도 쉽사리 열릴 줄 모르고 잠가져있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4.05 23:02

[강대호의 건축단상] 건축용어

최근 아파트 분양 선전 문구에서 흔히 등장하는 용어는 ‘사이버(cyber) 아파트’이다. 실제, 이 용어는 인터넷 등을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선로 설비를 갖춘 유비쿼터스와 같은 아파트를 지칭하고 있다. 일반적으로‘사이버’라는 용어는 정보화 분야에서 사이버 쇼핑몰(cyber shopping mall), 사이버 대학(cyber campus), 사이버 오피스(cyber office)등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가상적으로만 존재하여 기능하는 대상을 말하고 있다. 만약 실제로 ‘사이버' 아파트라면,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cyber character)들이 사는 가상의 주거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1980년 초반, 우리나라에서 고급 연립주택을 지칭하는 용어였던 ‘빌라(villa)’는 본래 ‘별장’을 의미한다. 만약 휴양지나 교외에 있는 실제의 별장을 ‘빌라’라고 부른다면 일반인들은 아마도 그것이 별장이 아닌 교외의 연립주택으로 잘 못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맨션(mansion) 아파트’라는 용어는 본래 실내가구가 갖추어진 아파트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건축의 도입 초기 이후, 건설업계에서 막연하게 넓은 평수의 고급아파트를 지칭하였다. 이 경우는 건축용어가 상업주의적 오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실내 가구가 갖추어진 최근의 아파트가 실제의 맨션아파트라는 사실은 별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 듯 하다.우리나라 도시와 근교에 있는 많은 음식점의 이름인 ‘가든’의 ‘garden’은 본래 ‘정원’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음식점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되어 버렸다. 상업적으로 통용되는 이 용어는 당초 정원이 갖추어진 음식점을 지칭하였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의 ‘가든’은 정원이 전혀 없는 도심의 일반 음식점 명칭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아파트(apartment)라는 건축용어는 한 건물에 여러 세대가 구조적, 공간적으로 벽, 바닥, 복도, 입구 등을 공유하여 생활하는 공동주거형태를 의미한다. 최근 주택개량 사업으로 신축된 농촌의 단독 주택은 아파트의 평면 및 입면을 그대로 옮긴 듯한 형태를 취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아파트와 같은 내부공간과 평면 등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주택내부에 들어서면 고층 아파트의 창처럼 높은 창 높이 때문에 실 내부는 푹 꺼져 있어 답답한 느낌을 받을 뿐 만 아니라, 과거 전형적인 농가주택에서의 주요 기능인 농산물의 건조, 가공, 저장 등을 위한 공간, 그리고 외부공간으로의 연결과 작업 동선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아파트라는 용어는 도심의 고밀도 공동주거 형태의 건축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 막연한‘고급주거 건축물’로 변해버려 우리에게 무조건 선망하고 지향하는 대표적인 주거 건축물을 의미하는 용어로 자리 잡아 가고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용어는 대상을 지칭하는 동시에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막연한 환상으로 우리를 호도하는 건축용어에 휘둘리지 말고 이제는 분명한 개념이 담긴 건축용어의 통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전주대교수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3.30 23:02

[아파트시세] 계절적 수요...매매·전세 오름세

3월 셋째 주, 전라지역의 아파트시장은 지난달에 이어 매매, 전세 모두 꾸준한 상승 움직임을 유지하고 있다. 매매시장은 2주간 전남 0.06%, 전북 0.12%의 변동률을 보였고, 전세시장은 전남 0.15%, 전북 0.16%로 매매보다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평형대별로 변동률을 살펴보면, 전남 매매시장은 36-40평형이 0.67%로 움직임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26-30평형 0.13%, 31-35평형 0.08%씩 상승했다. 반면 21-25평형은 0.01%로 다소 하락한 모습을 보였다. 전북 매매시장은 51-55평형 0.4%, 26-30평형이 0.24%, 31-35평형 0.15%, 36-40평형 0.12%, 20평 이하 0.09%, 21-25평형 0.08%, 41-45평형 0.06%씩 상승하면서 평형대별로 고른 모습을 보였다. 전세시장은 전남 36-40평형 0.85%, 46-50평형 0.34%, 26-30평형 0.24%, 31-35평형 0.21%, 21-25평형이 0.04% 변동률로 상승세를 보였다. 전북은 31-35평형 0.24%, 20평형 이하 0.19%, 26-30평형 0.18%, 51-55평형 0.17%, 21-25 0.12%, 41-45평형 0.08%, 36-40평형 0.05%, 46-50평형 0.03%씩 상승했다. 전남아파트 시장은 중소형을 중심으로 상승 움직임이 강했던 반면, 전북은 중소형뿐만 아니라 일부 중대형까지 평형대별로 고른 상승 움직임을 보였다. [매매]전남 매매시장은 2주간, 화순군 0.75%, 목포시 0.13%로 상승 변동을 보였다. 반면 해남군은 일부 아파트의 수요 감소로 -0.75%의 하락 변동률을 나타냈다. 개별단지를 살펴보면 화순군 화순읍 금호타운 (1997년, 506세대) 27,31평형 200~250만원 정도 매물부족을 이유로 가격이 조정되면서 전반적인 상승세를 주도했다. 목포시는 옥암동 일대의 아파트수요가 늘면서 일부 가격이 조정됐다. 제일3차하이빌(2002년, 354세대) 전 평형(27,31,36)이 350~500만원, 현대아파트(2002년, 351세대) 33평형 400만원 정도 가량 올랐다. 전북은 군산시와 익산시가 각 0.2%, 전주시 0.09%의 변동률을 보였다. 군산은 나운동 일대를 중심으로 상승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특히 현대3차(1995년, 479세대) 52평형과 현대 2차(1995년, 899세대) 32평형은 매물부족의 이유로 각각 1,000만원, 350만원 가량 가격이 조정됐다. 익산시는 모현동 현대5차(1998년, 257세대) 44평형 700만원, 동산동 삼성(1991년, 270세대)350만원, 어양동 주공7단지(2000년, 343세대) 22평형 300만원 정도 올랐다. 전주시 송천동 우림(1996년, 417세대) 33평형 500만원, 평화동 동도미소드림(2004년, 541세대) 34평형 500만원, 서신동 비사벌(1996년, 216세대) 39평형 250만원씩 변동했다. 계절적인 매매 수요가 있지만 워낙 출시되는 매물이 적어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고 일부 매물은 가격조정이 이뤄지며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세]전남 전세시장은 2주간, 화순군 3.01%, 목포시 0.21%의 변동률을 보였다. 화순군 화순읍 부영2차(1995년, 453세대) 47평형 500만원, 미릉타운(1992년, 228세대) 31평형 250만원 정도 올랐다. 목포시는 매매에서 상승을 보인 옥암동의 현대 33평형 500만원, 제일3차하이빌 33평형 400만원 정도씩 변동했다. 전북은 익산시 0.53%, 정읍시 0.47%, 남원시 0.15%의 변동을 나타냈다. 익산시 모현동 현대5차 32평형 800만원, 현대4차 33평형 600만원, 정읍시 상동 현대2단지 32평형 250만원, 남원시 왕정동 비사벌1단지 30평형 100만원 가량 조정됐다. 전라지역의 전세시장은 봄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으나, 전세물건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세품귀 현상 속에 수요는 계속 늘면서 가격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계절적인 수요가 늘면서 매매, 전세 모두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출시되는 매물이 수요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여 시장이 활발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신규로 출시될 매물 역시 많지 않아 수요 움직임이 안정되기까지는 당분간 가격이 소폭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3.27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미륵사지 석탑

서양에는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독교 건축물이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불교건축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웬만한 산에만 찾아가도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작은 사찰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이른바 명산대찰(名山大刹)인 셈이다. 그런 명산대찰에 찾아갈 때마다 우리는 으레 대웅전 안마당에 떡 버티고 서있는 탑(搭)을 보게 된다. 저 혼자 우뚝 서있는 것도 있지만, 불국사 안마당의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양쪽으로 정답게 나뉘어져 그 사이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진만 찍고 돌아서던 그 탑에도 사실 나름대로 의미가 담겨있다.절을 짓는 것은 우선 탑과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육중한 돌로 그렇게 어렵게 조각해서 만든 석탑을 그 중요한 대웅전 안마당에 버젓이 세워놓은 것은, 원래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고 단순해 보이는 그 탑들이 사실은 불상을 모신 대웅전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고장에서도 조형미가 뛰어난 석탑이 몇 기 있는데,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석탑과 왕궁 5층 석탑 그리고 금산사 6각 다층석탑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단연 돋보인다. 지금은 한쪽 구석이 허물어져 다소 보기 민망한 형태로 기울어져 있지만, 미륵사지 석탑은 부여 정림사지 석탑과 함께 한국 초기석탑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역사적인 탑이다. 사찰을 지을 때, 처음에는 목탑(木搭)이 많이 세워졌으나 화재로 자꾸 소실되자 좀 더 견고한 석탑을 건립하게 된다. 미륵사지 석탑은 바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그래서 미륵사지 석탑은 돌로 만든 석탑이면서도 기둥이 있고, 지붕이 있고, 또 벽면이 세밀하게 디자인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결과 얼핏 보면 마치 목탑처럼 보이게 된다. 무려 1400여 년 전, 백제 무왕 때 어느 이름 모를 장인이 그 차가운 석재를 정으로 쪼고 또 쪼아서 곱디고운 목탑처럼 만들고자 했던 그 노고를 생각하면서 익산 미륵사지석탑 주위를 한번 천천히 돌아보면, 아마 세월 속에 묻혀버린 백제 무왕의 좌절된 기상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마치 사자가 하늘을 향해서 울부짖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獅子仰天) 미륵산의 그 웅혼한 정기와 함께···.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3.21 23:02

[강대호의 건축단상] 아파트 평수

아파트 크기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단위는 제곱미터(m2)와 평(坪)이다. 제곱미터(m2)는 19세기에 제정된 미터법에 의한 국제적 통일 단위로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식단위로 채택하고 있다. 미터(meter)법은 지구의 자오선 길이를 기준으로 하였으므로, 이전까지 사용되던 건축에 관련된 전통적 단위와는 매우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역사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단위로서 동양의 척(尺, 자: 30.303cm)은 손가락을 펴서 재는 길이를 , 서양의 1피트(1 foot: 30.48cm)는 한 걸음의 폭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특히 건축에 관련된 분야의 경우에는 건축이 인체와 생활을 담는 용기(用器)로서의 속성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평 단위는 사방 6자(1자: 30.3cm, 6자: 1.818m), 30.3058 m2에 해당되는 크기이다. 인체는 키와 양팔 벌린 길이가 동일하므로, 이 크기는 남자 성인이 양팔과 다리를 뻗고 누웠을 때 점유하게 되는 크기와 같게 된다. 이러한 개념으로 볼 때, 가구와 벽체 등의 바닥 점유면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8평의 거실은 8명이, 5평의 침실은 5명의 성인이 누어있을 수 있는 크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이라는 면적 단위는 공간의 크기를 우리의 신체로 가늠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건축물의 평면적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서는 칸(또는 간(間))이 있다. 이 단위는 4개의 기둥이 이루는 구조적 공간 단위인 사각형 평면 1칸에 근거한다. 1칸의 크기는 대부분 평균 8자x8자(약 2.424mx2.424m) 정도이며. 전통주택의 가구식(架構式) 목구조에서 기둥 위의 보의 길이에 의하여 생겨난 크기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최소 주거 단위공간의 크기로 정의 될 수 있다. 즉 인체의 크기와 실내 동작공간을 고려한 공간크기의 단위는 1칸(5.875㎡: 2.424mx2.424m)이며 약 1.8평에 해당된다. 즉, 초가 삼간(칸)은 5.4평, 사대부 주택 99칸은 178.2평의 규모가 된다.아파트의 규모를 표현하기 위한 단위를 우리의 전통적 단위인 칸 수로 표현하는 방법을 제기해 본다. 즉, ‘25평형 아파트’를 ‘14칸’으로, ‘32평형 아파트’를 ‘18칸 아파트’로 표현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 주거 단위로서, 우리는 주거 크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25평 아파트는 작은 집이 아닌 초가 삼간 3채에 해당되는 크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현재, 우리는 어쩌면 주거의 ‘큰 평수’ 지향주의로 흐르지 않는 지 자성해 볼 필요도 있다. 아파트에서 실내공간의 크기를 늘리기 위해 외부를 느낄 수 있는 중간영역 공간인 발코니를 없애고 있다. 공간의 절대 크기만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항상 공간의 면적에 대해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것이다. 이제는 아파트의 평수 뿐 만아니라 공간의 질에 눈을 돌려야할 때라고 생각된다.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3.15 23:02

[최상철의 건축이야기] 형태의 의미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하늘이 몹시 캄캄하고, 땅은 누렇다고 믿었다(天地玄黃). 그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무한히 넓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宇宙弘荒). 처음 글을 배우는 천자문 첫머리부터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천자문뿐만 아니라,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살던 건축물 구석구석에도 그 생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경주 석굴암만 봐도 그렇다. 잘 알려진 대로 석굴암의 특징은 원(圓)과 각(角)의 절묘한 배합에 있다. 석존불이 모셔진 공간은 원형인 반면, 사람들이 참배하는 공간은 네모나다. 원형공간은 하늘과 같이 존엄한데 비해 우리 인간이 발을 디디고 서있는 땅은 낮고 세속적이라는 당시 사상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일반무덤도 마찬가지다. 관(棺)이 놓이는 부분은 땅속이라서 사각형으로 만들지만, 그 무덤이 하늘로 드러나는 봉분은 하늘과 비슷한 형태로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서양 기독교건축이 하늘을 향해서 찌를 듯이 높게 치솟아있는 고딕스타일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같은 하늘을 염원하면서도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면 이렇게 서로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건축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도 하늘을 향한 머리는 둥글지만, 상대적으로 땅에 가까운 몸통은 네모난 형태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을 소우주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작은 부분이 전체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홀로그램의 성질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늘을 둥글다고 생각한 것은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는 ‘원의 의미’와도 상통한다. 그래서 부처님을 모신 사찰이나 임금님이 계신 건축물은 으레 잘 깎아 만든 원형의 우람한 기둥을 사용하였고, 일반민가에서는 원형과 대비되는 사각형의 기둥만 사용하도록 강제하였다. 현존하는 옛날 민가들은 그러한 당시 우주관의 건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다. 건축물이란 형태를 통해서 옛날 우리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그 사상과 철학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 건설·부동산
  • 전북일보
  • 2006.03.07 23:02
경제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