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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엔트로피와 교육

과학자들은 우주가 탄생(빅뱅)하여 확장해 가다가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라고 하며 이 우주의 확장을 시간이라고 한다. 마치 유리컵 속에 물을 담고 거기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잉크가 서서히 물에 퍼져나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시간은 멈출 수 없으며 결코 역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그런데 여기서 시간의 흐름은 우주만물의 물리적 변화를 동반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아무리 시간이 흘러 모든 물질이 변하더라도 그 상태가 변화할 뿐 우주의 총체적 에너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1의 법칙과, 또한 그 변화는 점차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한다는 열역학 2의 법칙 등은 이제 어느 정도 상식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올 여름 어느 방송사에서 방학특선으로 이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제작하여 방영한 것을 보기도 했다.이 중에서 열역학 2의 법칙을 엔트로피법칙이라고도 한다. 엔트로피란 '무질서의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앞서 말한 잉크와 물에서 순수한 잉크(질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에 확산되면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되는 것처럼 시간은 우주의 에너지를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위가 서서히 그 모습이 변하여 모래가 되고 결국은 먼지가 되며 사람의 몸도 서서히 변하여 늙고 병들어 결국은 썩어가는 것 등은 모두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인 것이다.이 이론은 물론 물리적 법칙이지만, 비단 물리현상만이 아니라 역사가 흐르면서 문명이 발전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현재의 물질문명은 물론 정신문화까지도 과거의 기준에서 보면 무질서하기 짝이 없다. 만약 조선시대의 어떤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면 현대의 문명과 정신세계의 질서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까? 그에게는 물질과 정신이 모두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다. 인간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며 문명의 발전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몇 십 년을 학교교육에 몸담고 있다 보니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현상에 대하여 자꾸만 이러한 이론이 생각난다. 특히 청소년들의 문화는 매우 심각하게 무질서를 향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을 휩쓸던 학교무용론이 이제 우리나라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학교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무질서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지면상 구체적인 내용을 전할 수 없어 안타까우나 국가적 역량을 모아서 고민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몇 년 전 도올 김용옥 선생은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의를 통해 엔트로피 이론을 설파하면서 "시간은 강물과 같이 흐른다. 강물에 있는 모든 것들은 물결 따라 흐르며 깎이고 닳아서 엔트로피 증가의 세계를 향하여 가지만 단 하나 그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물고기, 즉 생명이다. 무질서를 향해 흐르는 시간을 역행하여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생명이다." 라고 말했다. 인간은 이미 과학적 이론 이전에 철학적 사유로 우주의 원리를 통찰하고 있었다.인류는 역사를 통해 자유, 평등, 사랑을 얻었다. 이러한 것이 도올이 말한 생명운동에 속할 것이다. 자유와 평등, 사랑 등의 철학적 사유는 무질서의 인간역사에 질서를 잡아 준 생명력이다. 이러한 생명력은 물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역행하는 일이다.교육은 분명 문명발전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교육의 본질은 문명발전의 역행선상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청소와 같다. 인간의 삶은 시간을 타고 쓰레기와 무질서를 향해 달리는데 그 무질서를 되돌리는 청소가 교육인 것이다. 교육이 무너진 세상, 청소와 정리정돈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이세재 (시인전주 우석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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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7 23:02

[새벽메아리] 관변구조의 해체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애향'이란 단어는 참으로 정감 있게 다가온다. 매번 들을 때마다 뭉클하며 가슴을 저민다. 전주에서 40년을 넘게 살며 수시로 서울 출장을 다니지만 지금도 호남고속도로로 들어서 전라북도 표지판을 보면 왠지 모를 포근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니 명절 때 터미널이나 주요 간선도로, 전북 초입 등에 게재된 현수막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를 보며 출향민들이 느낄 아련함을 생각하며 애향운동본부의 역할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애향'을 이야기하며 사심 없이 전개하는 자발적인 고향 사랑과 자원봉사 활동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애향운동본부가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지역발전을 빌미로 패권주의와 대결주의로 타 지역과 분란을 조장하고 지역민을 볼모로 한 대결을 조장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여기에다 자발적이며 독립성을 갖추어야 할 애향운동이 관에 휘둘리며 말로는 독립 운운하고 부화뇌동하거나 대행기관처럼 되어서는 지역구도를 조장하는 큰일 날 조직이다.얼마 전 신문 보도를 보면 '퇴진 압박을 받는 애향운동 본부 간부'가 이사 둘을 새로이 임명하며 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단체인데 일부 인사들이 곡해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언사이다. 스스로 지역원로를 자처하는 분이 행할 일이 아니다. 멀리 볼 것 없이 이번 LH유치 대책위 활동에서 애향운동본부는 도 유치활동의 대리 역할을 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재정 지출도 대부분 이를 통해 집행되지 않았나? 도의회와 시민단체들이 애향운동본부의 재정적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시기에 책임 있는 인사의 발언은 딴나라 이야기이다.최소한의 충언조차도 모르쇠나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행위가 과연 지역 원로를 자처하며 수많은 요직을 독식하고 있는 분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아직도 나 아니면?' 하는 모습이 진정한 지역사랑과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닐까? 그래서 스스로 용퇴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애향운동본부는 환골탈태하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출향민들에게 가슴 벅참과 시공을 초월한 동질감을 주고 지역사랑의 모범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바라는 것이다.전라북도도 애향운동본부의 변질에 역할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애향운동의 거듭남과 본연의 역할을 찾는데 전북도가 적극 나서 협조해야 한다. 전라북도는 '관변단체의 활용론'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 김완주 도정이 강 도정을 닮아가는 것, 아니 닮은꼴이 된 것은 '그 밥에 그 나물'인 관변단체를 동원하다 스스로 포위된 것이다. 이것은 본인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강 도정의 권위적 도정과 불통의 도정, 일방통행식과 '오직 한 목소리 아니면 왕따'의 문화를 슬며시 세습한 것이다. 전주시장 시절 '강도정'에 매 사안마다 당한 그들이 임기 초반에 다름과 극복을 호언장담 했지만 눈앞의 '딸랑딸랑'과 단맛에 도취되어 스스로 그들을 닮아가고 역으로 족쇄가 된 것이다.김완주 도정은 아직도 3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이제라도 전라북도는 초심으로 돌아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다. 김완주 도정은 기필코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낙후된 전북에 실타래 같은 희망이라도 걸 수 있다. 더 이상 전북도민을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비록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어 힘겹지만 전북공동체 만큼은 '더불어 사는 삶'에서 희망의 단초를 내와야 한다./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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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0 23:02

[새벽메아리] 군대(軍隊)가 아닌 군대(軍大)로

수 일전 얼굴이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젊은 청년이 겸연쩍은 듯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한 눈에 봐도 군인이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각 잡힌 자세와 "~까?", "~다."로 마무리되는 말투는 대한민국 군인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외박을 나와 그 동안 먹고 싶어도 못 먹었던, 일명 사제 음식들을 너무 과하게 먹은 탓인지 장염에 걸린 듯 했다. 구토와 설사가 심하여 탈수 증상이 겹쳐 있었고 열도 있었기에 수 일 간 입원을 권유하였다.하지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원이 어려우니 주사와 약을 처방받고 가겠다고 했다. 인근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근무 중이며 입대한지 얼마 안 되는 그야말로 서열 꼴찌의 신병이라 입원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내무반 생활에서는 증상이 호전되기 어렵고, 이 더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근무를 한다면 상태가 악화될 것이 분명하기에 부모님을 설득하여 부대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입원을 하도록 하였다.신참 의경을 보며 십 수 년 전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던 추억이 떠올랐다. 서른이 넘은 나이, 대부분 처자식도 있는 소위 머리통 굵은 전국의 선생님들을 모아놓은 군의학교에서 과연 제대로 된 훈련이 이루어질까? "8주 훈련기간은 뭐 대충 지나가겠지"하는 나의 생각은 며칠 못 가서 바뀌고 말았다. 머리를 깎고 군복과 군화를 착용하니 근엄한 선생님의 모습은 간 데 없고, 군부대 위병소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의 군인 아저씨들이 조교들 앞에서 목이 터져라 구령을 외치며 뒹굴고 있었다. 그 무엇이 이처럼 나이도 많고 잘나게 살아온 이들 조차도 군기가 바짝 든 그 신병처럼 영하의 날씨에 속옷만 입고 연병장을 달려도 불평 없이 따를 수 있게 하였을까? 다름 아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의 규율 때문이라 생각한다.6년 전 GP의 총기 난사 사건, 최근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등 우리 군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군 내부의 폭력과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규율의 부당성에 대해 많은 지적을 하고 있다. 물론 공감을 하는 부분도 있으나 무조건 가혹 행위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체벌이나 구타를 없애고 선임병의 횡포를 막는다고 간부가 아닌 선임들에게 명령을 할 수 없게 한다면 대부분이 외아들로 부모의 끔직한 사랑을 받고 자라온 다양한 개성의 젊은이들을 2년 여 시간 동안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전문가는 아니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 교육의 개선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중고 학교생활에서 조직사회의 규범과 역할 수행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교육과, 단체 생활을 통한 이타심과 협동심을 길러야 하는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부모들의 원성과 질책이 두려워 학생들 지도에 소극적이며, 거침없는 아이들의 반항이 두려워 쓴 소리에 인색한 선생님들을 탓하기 전에, 학교를 학원에 갈 때까지 시간 때우는 장소처럼 만들어 버린 정책 당국에 지적을 보낸다.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려면 군대는 필수적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선풍적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모 가수는 병역 면제를 위해 약속을 저버리고 미국 국적을 유지한 괘씸죄로 팬들에게 조차 외면당한 채 입국 금지라는 극형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 관료 임명에 따른 청문회, 지역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단체장을 뽑는 선거 역시 후보자들의 병역이 최대의 관심사이며 병역 면제 의혹으로 인하여 중도 탈락하게 되는 후보자들도 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병역에 대한 생각에는 에누리가 없음이 분명하다."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유행어가 있듯이 반드시 가야 된다면 긍정적이고 자기 개발의 시간으로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 기대감으로 갈 수 있도록, 부모의 입장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보내며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도록, 군대(軍隊)라는 다소 딱딱하고 걱정스러운 이미지 보다 학식과 교양을 쌓고 정신수양을 할 수 있는, 마치 군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라는 의미의 군대(軍大)에 입학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 군 문화에 대한 개선을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군필(軍畢)이란, 이력서 한 칸을 차지하는 의미 이상이니까./ 이재홍 (전주 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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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3 23:02

[새벽메아리] 횡단보도를 보행자에게 돌려주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중간에 미처 길을 건너지 못한 지팡이를 든 노인 한분이 서 계셨다. 마침 신호를 받은 자동차들이 줄지어 진행해오고 있어 그 노인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우리 도로에서 너무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서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였다. 줄지어 달리던 차량행렬이 끝날 때까지 멈추어 서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자동차 운전자는 신호등이 있을 때는 신호를 준수하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사실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횡단보도가 있지만 보행자가 자동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눈치를 보고, 자동차가 없을 때 스스로 안전을 지키며 건너야 한다. 따라서 보행자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의 눈치를 보며 숨을 몰아쉬며 뛰다시피 길을 건너고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쩌다 정지선에 멈추어 보행자를 보내주는 자동차를 만나면 착한 우리나라 보행자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길을 건넌다.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언젠가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보내주기 위해 멈추어 섰는데, 뒤따르던 차가 필자의 차를 앞서가려고 비켜 나가면서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낸 것이다. 차라리 보행자를 막고 그냥 진행했다면 이런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는 후회를 한 기억이 있다. 보행자가 현실적으로 우선권을 갖지 못하는 횡단보도, 자동차를 피해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한다면 사실 무단 횡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무단 횡단 할 때도 어차피 좌우 눈치보고 차 안 올 때 재빨리 건너는 것이니 말이다.유럽이나 미국 등 교통선진국을 여행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자동차 운전, 특히 보행자를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무조건,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자동차보다 보행자가 우선이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다가서면 양방향 차량 모두가 정지하고 보행자가 보도에 올라서는 것을 확인한 후 차를 출발시키는 등 무조건 보행자를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으로 여겨지고 있고, 보행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그 결과 인구 10만명당 보행자 사고 사망률이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가장 높으며, 주요 국가에 비하면 2~4배 이상 높다. 물론 우리나라의 교통사고도 꾸준히 줄고 있고, 교통질서 의식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 정지선 준수율이나 안전띠 착용률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다.이제 횡단보도를 주인인 보행자에게 돌려주자. 운행 중 횡단보도가 보이면 미리 속도를 줄여 보행자가 여유있게 횡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신호가 있건 없건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들어서면 무조건 정지하자. 그리고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완전히 건널 때까지 출발하지 말자.또한 운전자들이 횡단보도를 쉽게 알아보고 대비할 수 있도록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주변에 지그재그 차선을 설치하거나, LED조명 설치 등 시설보완도 필요하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주차장으로 착각하는 운전자, 차가 조금 밀린다고 횡단보도를 막아 보행자에게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와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게 하는 운전자는 즉시 단속되어야 마땅하다. 누구나 안전하게 길을 걷고 건널 수 있는 보행권이야말로 인권의 핵심인 생명권이며, 보행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은 운전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은 군산고와 원광대를 졸업하고 전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운수연수원과 대한산업안전협회공무원교육원 등에 출강, 20년 넘게 교육을 실시해오면서 지역사회 교통안전 파수꾼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지역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교통질서의 중요성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 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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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7 23:02

[새벽메아리] 새벽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승달 / 숲 사이로 지고 / 높은 벽 밑동아리에 붙어서 / 밤새워 울고 난 새벽 /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아래 / 밤새 울고 난 새벽.'가수 '시인과 촌장'은 새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높고 높은 벽을 넘지 못해 울다가 새벽이 밝아오면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다. 그 벽이 사랑의 벽이었건 혁명의 벽이었건 이제는 얼굴을 씻고 옷매무새를 고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밤새 울고 난 새벽'이라는 말에는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아픔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은 인간 모두를 한 줄로 묶어서 끌고 가기 때문에 특정한 개인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되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우리는 시간의 사슬에 묶여 새벽이 오면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만 한다. 아픔을 더 이상 아파할 수 없는 새벽은 그래서 절망의 순간이다.이렇게 넘을 수 없는 벽 아래서 울다가 일어서야만 했던 절망의 새벽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치 호루라기소리와 비명소리 속에서 신새벽 뒷골목 나무판자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썼던 김지하의 시처럼, 또는 어린 아들을 새벽차로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아침 눈길에 찍힌 발자국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이청준의 소설처럼, 그런가하면 이 밤이 새면 새벽 먼 길을 떠나갈 사람이여 꼬마인형을 가슴에 안고 기다리겠노라는 최진희의 노래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밤을 지새우곤 그 눈물을 숨기며 새벽을 맞이한다.역설적이게도 새날을 여는 희망의 새벽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절망을 안고 있다. 이것은 절망이 희망을 잉태한다는 것일까, 희망의 끝이 절망이라는 것일까.역사학자들은 인간의 역사를 논할 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경계한다. 과거가 현재를 위해 존재했고 현재는 미래를 위한 시간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매 순간의 삶은 그 자체로서 가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창문이 밝아오는 절망과,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새날에 대한 기대를 함께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절망과 희망의 세대를 인위적으로 단절시키거나 연결시키려는 억지가 개입되면 닭목을 비틀어도 온다는 새벽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요즘의 새벽 세대들은 이기적 욕망과 환락으로 날을 새운다. 그들도 언젠가는 절망하는 새벽을 맞이할 것이다. 한때 이념과 사상으로 하룻밤의 벽을 쌓고 그 벽을 넘지 못한 눈물이 식기 전에 새벽을 맞이한 세대들의 절망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이념과 사상을 견딘 후 안개가 걷히는 산골 새벽의 서늘하다 못해 슬퍼지리만큼 맑은 공기를 안다. 그들도 한때는 이념과 사상으로 이 도시를 물들였으나 지금은 그들의 서늘한 새벽 공기로 우리는 숨을 쉰다. 욕망과 환락의 새벽세대들이여!*이세재 시인은 임실 출신으로 전주 우석고 교감으로 재직중이다. 199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같은 해 시문학지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뻐꾸기를 사랑한 나무」가 있다./ 이세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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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20 23:02

[새벽메아리] 전북의 변화·혁신, 민주당 독점구조 타파로부터

전북 정치권은 88년 총선부터 민주당(당명은 수시로 바뀜) 일색이었다. 91년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에는 비례대표 의원을 제외하면 단체장광역기초의원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의석을 민주당과 '무늬만 무소속인 민주당'으로 20여 년 동안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 거의 모든 선출직을 독점하고 있음에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도 전북의 낙후는 점점 심해지며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지속적으로 전북을 떠났다.물론 전북 낙후의 근본 원인은 지난 군사독재 30여 년 동안의 지역간 불균형 발전에 기인한다. 거기에 민주정부 시기에도 수도권 중심의 발전전략이나 지역균형발전도 광주 중심의 권역별 발전전략으로 나아간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 정치권을 좌지우지한 민주당의 책임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지난 30여년 가까이 전북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떡 주무르듯이 요리한 것은 전북의 집권당인 민주당이었기 때문이다.이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이나 연대로 정권교체를 이룩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권교체는 기필코 이루어내야 한다. 하지만 전북은 여기에 더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야권 통합이나 연대에는 '민주당 호남 물갈이론'이 반드시 거론된다. 맞다. 기득권의 포기 없이 어떻게 통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난 총선의 교훈이다. 지난 총선에서 전북 민주당 국회의원 30%물갈이는 무능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젊고 참신한 초선의원 3명이 교체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공천 심사위의 칼 끝 배후에 중앙당 당권파들과 얄팍한 계보정치의 그림자가 있어 중앙정치권에 힘이 없는 초선의원 3명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다시는 이처럼 폭거와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공천 물갈이는 말뚝만 박으면 당선되는 분위기에서 정치발전과 지역발전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한 다선 의원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교체되는 지역은 '낙하산 공천'이나 '야합에 의한 공천'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변화와 개혁, 쇄신의 바람을 담은 민주적인 공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야권 연대 과정에서의 배려도 '각 정당 간의 밀실 야합'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합의 과정'을 거쳐 연합공천이나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더 이상 지역을 소외시킨 중앙정치권에서의 밀실야합은 있을 수 없다.또한 비례대표제에도 지역할당의 원칙이 꼭 지켜져야 한다. 지금까지 비례대표제는 중앙당 당권파들의 자기사람 심기와 해바리기형 서울지식인들의 독무대였고 지역 기반의 당직 인사나 여성, 전문가들은 철저하게 소외받았다. 비례대표도 지역할당과 공개적인 추천과 경선 방식을 도입하면 이런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또한 민주당을 제외한 각 정당들과 시민사회진영의 경쟁력 있는 인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에 후보로 참여하여야 한다.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 밥에 그 나물'을 차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정권교체 없이는 전북지역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도, 개혁적이고 참신한 시민사회인사, 지방자치에서 교육되고 훈련된 인사, 진보정당 후보의 정치권 진입도 사실상 어렵다.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을 목표로 전북지역에 신망받는 각계 인사들로 야권통합 전북추진위를 구성하여 야권통합 운동 전개와 민주당 개혁 및 참신한 인사들의 정치 참여를 지지, 성원하는 활동을 제안해 본다. 공감하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민주당 독점 구조의 타파와 변화와 혁신, 개혁적이고 참신한 신진 인사의 발굴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흐름을 형성해보자.*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시민운동가로, 현재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 운영위원장과 (사)전북희망나눔재단 운영위원장, 예원예술대 객원교수, 전북미디어공공성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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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15 23:02

[새벽메아리] 명품 가방 사는 것이 재테크?

얼마 전 대화 중에 우연히 샤테크란 단어를 듣게 되었다. 생소한 단어지만 대강 '무엇에 대한 투자이지 않을까'하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니라 다를까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명품 가방을 미리 사두면 투자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말이란다.원래 재테크라는 말은 보유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최대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재무(財務)와 영어(technology)의 합성어인 재무테크놀로지를 줄인 말로 원래 기업 경영에서 사용되던 용어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산을 안전하게 불려나가려는 일반 가계에서도 쓰이게 된 말이다. 고전적인 재테크 방법이던 저축이 더 이상 자산 증식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면서 땅테크란 신조어가 생겨났고, 금 값 폭등으로 금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금테크, 절세를 통하여 지출을 줄이는 세테크, 경제력을 갖춘 배우자와 혼인을 통하여 경제력을 확보한다는 혼테크 등 유행어가 알려졌다. 이 모두가 당시의 경제 흐름을 반영하며 나름대로 분석적이며 효과적인 투자 방법이라는 것에 공감한다.하지만 가격이 오르기 전에 샤넬 명품 가방을 미리 사두면 이익을 낼 수 있다라는 샤테크라는 말은 국민적 공감 보다는 과소비를 조장하고 많은 불법 행위를 야기하는 반감을 유발하는 단어인 것 같다. 뉴스에 따르면 최근 인천공항 세관을 통해 적발된 면세 범위 초과 미신고 명품 가방 적발 건수가 전년에 비해 86%나 증가했다고 한다. 샤테크 열풍을 타고 벌어진 결과이다.우리 국민의 이런 명품 사랑에 대해 명품 기업들은 어떻게 보답했을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의 국내 매출은 최근 5년간 많게는 2배 이상 증가하였다. 명품 구입 자체도 증가하였지만 가격 상승에 따른 효과도 크다. 실제 샤넬 브랜드의 모 제품은 3년 사이 2배나 가격이 인상되었다. 유로화에 대한 환율이 낮아졌음에도 가격은 해마다 상승하였다.이처럼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생각하는 명품 기업들을 배불리며 싼 값에 명품을 구하기 위해 만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쇼핑을 떠나는 일부 소비계층의 행태가 과연 적절한 재테크일까? 명품의 구매는 우월감의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남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또는 흔히 루저라 불리우는 열등인이 되기 싫은 의식이 명품 구매를 부추기게 된다.그러면 이러한 명품에 대한 잘못된 사랑을 바로 잡고 명품 중독으로부터 대다수의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자기 돈 가지고 명품 인생을 즐기겠다는 것을 탓할 수도 없는 현실이고 수입명품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백화점과 기업 또한 존재목적이 이익추구에 있는 만큼 부당한 규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결국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하며 명품 구입으로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도록 국민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애국심을 갖도록 교육이 필요할 것이며 기부 문화의 확산을 통한 나눔 정신, 그리고 대기업이나 부유층들이 도덕적이며 솔선수범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사회적으로 충만해지도록 하는 것이 샤테크와 같은 희귀한 신조어를 더 이상 탄생시키지 않는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국산 제품의 질을 향상시켜 가격 경쟁을 통한 판매 우위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다행히 우리 지역에서는 3초마다 한 번씩 볼 수 있어 3초백이라 한다는 가방이 그렇게 자주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이 진품이든 짝퉁이든 무조건적으로 구매하지는 않는 수준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하다. 우리 전북도민들은 지역사회 문화를 사랑하고 국산품을 애용하여 대한민국에 투자하는 현명함을 보였으면 한다.샤테크보다는 대한민국에 투자하자라는 의미의 코테크(코리아에 재테크)가 어떨까?/ 이재홍 (전주 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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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06 23:02

[새벽메아리] 언어구사의 바로미터는 인격이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이 /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조선중기 작자미상의 이 시조는 지적(知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정적(情的)인 느낌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즉 무익하고 불합리한 말은 화(禍)의 근원이 되기에 조신(操身)하라는 경고로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진리가 아닌가 한다.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으로 생각에다 감정을 실어 표현하는 수단이 곧 언어다. 생각이 맑으면 말 또한 맑게 전달되며, 생각이 저속하거나 어두우면 표출되는 말은 야비하고 거칠 것이다. 살다보면 때로는 재물을 잃는 경우가 있더라도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부딪힐 수 있는데, 신뢰는 곧 언어로부터 시작되며, 그 언어는 자기를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고, 솔직담백해야 상대를 이해시키며 설득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을 하다보면 자칫 실언 할 수도 있고, 본심과는 달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서 곧바로 후회하기도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지식과 교양과 자존심으로 쌓아 올린 그 인격체가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일 수도 있으며, 원인은 모두 자기로부터 시작되어 타인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한 번 왔다 가면 같은 유형으로는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데, 시간과 기회와 말(언어)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짧은 생각으로는 시간은 무궁무진한 것 같고, 기회는 일생동안에 세 번은 온다고 하고, 말은 하고난 뒤 번복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한다면 앞에 언급한 말은 말장난이었을까?기초가 단단하지 않은 사상의 누각처럼 인격이 덜 갖춰진 지식만으로는 존경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교양인 또는 지성인을 가늠하는 척도 중 대표적인 것은 그 사람의 행동과 언어를 구사하는 행위다. 말(言語)에는 질서가 있어야 듣는 사람이 혼란이 없으며, 작은 혀(舌)놀림이 자신을 더럽힐 수도 있고, 나아가 생의 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 남을 저주하는 말이나 감정이 담겨진 악의(惡意) 있는 비판은 자신에게 엄청난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에세이에 '미인은 말(언어)을 할 줄 알아 꽃보다 낫고, 꽃은 향기가 있어서 미인보다 낫다. 동시에 미인과 꽃을 한 손에 쥘 수 없을 땐 향기만을 뿜는 꽃보다는 말을 하는 꽃을 택하겠다.'라는 구절이 있다. 마음까지 예쁘게 화장을 하는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얼굴만 단장하는 사람은 덜 행복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고개는 끄덕여진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의 독선을 넘어선 유연함으로 서로의 가슴을 여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너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큰 장벽이 무너질 것이며, 선과 악이 대칭되는 잣대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시선을 멈춰야 할 것 같다.목표를 추구하는 삶을 영위할 때, 인간의 능력은 더 발전하고 사회에 이로움을 준다고 한다. 눈이 떠있는 모든 시간에는 해야 하는 말, 농담이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신중하게 전달하고, 아름다운 자기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표현 수단인 말을 부드럽고 정감 있게 구사해보자.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행위가 되며, 행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된다. 인격은 바로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의 재능과 세상에서의 필요가 교차되는 그 곳에 당신의 사명이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나를 고품격으로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내가 표현하는 언어는 내 모든 것들을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된다./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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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9 23:02

[새벽메아리] 새만금 조력발전, 득실 또는 허실

삼성의 새만금 투자 발표를 지켜보면서 '갈 길이 여전히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하다. 그 어떤 투자라도 정치적 입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삼성의 투자 발표는 어쩐지 어설프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삼성은 그 발표를 신뢰할만한 신호를 우리들에게 보내지 않고 있다. 어쩌랴.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새만금은 농지로 기획되었다가 최근 들어 산업중심 도시로 방향이 크게 틀어졌다. 그 산업이란 것도 녹색산업, 다시 말해 신재생에너지산업이 주력이란다. 심성도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겠단다. 20년 전 방조제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일체 거론된 적이 없는 개념들이다. 자, 그러면 매립이 완료되는 10~20년 후에는 또 무슨 산업이 거론될 것인가? 철학 없이 시작된 국토개조 사업은 부평초처럼 시류에 편승하고, 정치에 흔들리며 떠밀려갈 것이 뻔하다.아무튼 현재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는 재미가 쏠쏠한 산업으로 유치할만하다. 새만금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는데, 그것은 새만금이 사용할 전력의 상당량을 신재생에너지로부터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석유, 석탄, 우라늄 등의 '죽은 원료'로부터 벗어나 바람, 햇볕, 밀물과 썰물, 바이오매스 등의 '살아있는 원료'를 주로 사용해야 한다. 새만금 또한 당연히, 아니 더 모범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새만금 마스터플랜'에는 15%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되어있으나, 지금 제시된 방법으로는 솔직히 불가능하다. 5MW급 풍력발전기 175기를 세워 전체 에너지의 9.6%를 담당하겠다고 했지만 새만금 그 어디에 그 누가 경제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발전소를 막대한 자금을 들여 건설한다는 말인가? 먼 장래에 기술개발로 인하여 이것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85%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그래서 석탄부두가 건설되며, 열병합발전소 5개, LNG 공급시설 4개소가 새만금에 건설될 예정이다.이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새만금의 모습인가? 회색도시 하나 더 만들자고 그렇게 국토를 깎고 메웠단 말인가? 정녕코 이것은 답이 아니다. 새만금은 지금 계획보다 더, 훨씬 더 녹색으로 가야 한다.그 대안의 하나로 조력발전을 다시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 해수유통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그 동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하자, 말자의 일방적 주장보다는 진지하게 득실을 따져보는 기회는 가져야 한다.서해는 세계적으로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조력발전의 적지이다. 이미 시화호발전소가 완공되었으며, 가로림만도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외에 인천만, 아산만, 강화 등에서 서로 하겠다고 난리다. 조력발전은 풍력, 태양광과는 달리 기후와 계절에 상관없이 상시 가동되고, 원자력발전소급의 대용량이 가능하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에너지원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1967년 프랑스 랑스발전소 이후 전 세계 어디에도 건설되지 못한 데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이 방조제를 쌓기보다는 새만금 같이 기왕의 것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 많다.새만금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는 용담댐, 부안댐, 금강에서 가져오고, 농업용수만 자체 조달하기로 되어 있다. 다 아시다시피 새만금은 농지가 72%에서 30%로 축소된 반면 산업관광용지 등은 70%로 확대되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담수호가 여전히 필요한지, 해수유통은 과연 불변의 금기인지 허실을 따져볼 때가 아닌가 한다./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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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2 23:02

[새벽메아리] 혁신학교, 그 토대는 지역

혁신학교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교육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혁신학교라 명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상당수의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교 문화를 바꾸어 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학교 구성원의 자발성과 헌신성에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한 가지를 첨가한다면 지역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그래서 필자는 혁신학교는 철저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지역 학생을 중심으로 학교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지역도 살고 학교도 산다. 흔히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렸다 하며 홍보하는 학교를 보면 하나같이 인근 지역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며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고 통학하는 학생들로 채워진다.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남한산초등학교나 거산초등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이 통학을 한다. 현재 전북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여러 유형의 혁신학교에서 추후 그 성과를 이야기 할 때, 더 나아가 성공여부를 이야기 할 때 학생수의 증가를 제시할 것이다. 대부분 학생을 다른 지역 학생들로 채워 운영했을 때 이를 성공한 학교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런 경우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가 나타나거나 지역사회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실제 모 초등학교의 경우는 전주, 읍내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아무리 좋은 학교라 하더라도 초등학생 때부터 지척에 학교를 두고 원거리 통학을 시킨다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지역과 학교가 공존할 수 없을 때 증가한 학생수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더 나아가 지역의 중고등학교와도 연계되어야 한다. 사실 잘 운영된다고 하는 초등학교 졸업생은 대부분 또 다른 상급학교를 찾아 지역을 떠난다. 그 자체의 성과로 끝나고 만다. 심하게 말하면 학부모와 학생은 단물만 빨아먹고 떠나는 형국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당연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지역 인재육성의 중요한 틀에서 중고등학교와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가령 어느 지역에 초등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했다면 연차적으로 그 지역의 중고등학교로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고산중학교의 움직임은 삼우초등학교의 긍정적 학교 운영에 기인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혁신학교가 지속적으로 학교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혁신학교는 지역 지자체(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혁신학교는 당연히 그 지역 활성화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지자체가 그토록 교육 분야에 예산을 쏟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 혁신학교를 이루고자 하는 주체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여야 하고, 지역시회의 고민을 함께 풀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혁신학교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요사이 경기도에서 말하는 혁신교육지구와 같은 개념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혁신교육지구는 학교를 넘어 교육청 및 교육지원청, 지자체, 교육시민사회단체 등 지역공동체가 힘을 모아 새로운 교육협력 모델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현재 학교 교육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혁신학교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학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이 혁신학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현재의 우리 교육현실이 암울하게 비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렇지만 여전히 현재의 교육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유는 아직도 열정적인 선생님이 학교에서 열심히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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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15 23:02

[새벽메아리] 찢겨진 현수막을 내리자

'껴안고 죽을지언정 결코 내놓을 수 없다'던 LH공사가 결국 진주로 넘어가고 유치 실패가 되돌이킬 수 없는 현실임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비장한 문구의 현수막과 입간판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누가 죽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모씨가 이름도 낯선 함거라는 것을 타고 며칠 길거리 공연을 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수건 돌리기 식의 책임론 공방이 이어지는 한편으로, 이 정부의 그간 태도로 보아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상경투쟁도 언제 멈춰야 할지 뒷수습이 난감한 형국이 되었다.그간 분산이전 방침을 공언했던 이 정부가 LH 이전문제를 지극히 정략적 속셈에 따라 전북을 버리는 결말로 몰고 간 것은 '국가균형발전' 같은 것은 애초 안중에도 없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일괄유치와 분산유치 전략 중 그 무엇이 현실적이었나 하는 사후논의는 사실 별 의미 없는 것이다.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자면 중앙정부가 국가예산과 권력의 모든 분배권한을 배타적으로 차고 앉아 지방정부를 줄세우고 '구걸 자치'로 내모는 현재의 정치 현실에 있을 것이다. 이 구조에서 중앙권력을 누가 먹느냐는 정말 사활적인 게임이 되고 만다. 예산철이 되면 줄줄이 중앙부처 앞에 기다리고 서서 애걸복걸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오늘 전주가 내일 진주가 된들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다.그러면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것으로 전북의 정치권은 면죄부를 받아도 좋을 문제인가. LH문제를 도정 최대 현안으로 잔뜩 부풀리고, 관의 위세에 힘입어 전북 곳곳을 현수막으로 도배하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면, 그에 합당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도 누구하나 화끈하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이 아니라 분명한 항의의 차원으로 봐도 그렇다. 그러니 전북이 늘 만만해 보이는 것이다. 오랜 기간 물이 고여온 전북정치의 현 주소다. 초라한 가장, 누추한 살림살이를 들어 애써 바깥을 탓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서울이나 외국의 이름을 내밀며 또 언제 뒤집힐 지 모를 몇 년 몇 십 년 신기루에 도민들의 눈을 붙들어 놓는 수법을 재탕하는 것도 이제 좀 접자. 도민들에게 자괴감을 안겨주는 '논두렁' 정치는 넘어서자. 지방자치 20년, 경쟁 없는 안주의 정치 20년 동안 지역사회의 제반 영역에 굳은살이 박히고 동맥경화증이 너무 심해졌다. 물이 오랫동안 고여 쉰내가 난다면 대접을 뒤집어엎고 새 물을 채우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쓰여진 그 문구 그대로 책임도 지지 못하는, 찢겨진 현수막은 빨리 내리자. 걷어치우자. 도민들의 마음 속에서 지금 거세게 흔들리는 현수막을 쳐다보고, 그 무서운 민심의 깃발에 먼저 머리를 숙이자. 그런 다음에 전북을 물먹인 이 정부를 넘어설 진짜 큰승부를 준비하자. 지역을 가르고 끊임없이 줄세우는 이 '구걸의 자치' 구조 자체를 들어엎고 진정한 균형발전의 큰 깃발이 전국에 나부끼게 하자./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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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8 23:02

[새벽메아리]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가쁜 숨결로 살았던 아름다운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가고, 우리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슬픈 추억을 그리게 하는 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가 교육이기에 '교육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는 자나 깨나 자녀들의 교육, 취업, 성공적인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옆을 돌아다 볼 틈을 내지 못하고 산다. 엊그제 입학한 학생들은 벌써 한 학기의 중간을 훌쩍 넘어 선 시간에 머무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교육이라는 특수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사회제도로 조직된 학교사회는 개인이 지식과 교양을 쌓으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직업을 얻으려는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 집단이다.교육의 현장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는데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왜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교육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리의 현실교육은 본질에서 멀어진 틀 속에 갇혀 편향된 이념의 답보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엘리트 양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극단적 물질주의를 더욱 가속화시켜 사람냄새를 잊어가게 하고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인간을 만들어 낼 뿐이다.교육이 지향하는 근본이념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찾아야, 오늘의 교육이 바로 설 것이다. 교육의 제자리란 지적수준을 향상시키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가르침과 비틀거리는 공교육이 정상화되어 그 곳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며, 교육의 정초(定礎)가 된다.공교육 회복의 관건은 사도(師道) 확립과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합류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인성교육에 있다. 인성은 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가진 사회 안에서 그 사회의 영향에 의해서 이룩되는데, 그 안내원은 바로 교육자들이다. 좋은 교사가 좋은 제자를 키워내고, 교사들의 탁월한 지식(학문성)과 인격 그리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교단의 권위가 바로 설 때 공교육이 사는 길이다.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오직 지적 향상만을 지향하는 학교교육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데 있으므로 이제는 옛 것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정립으로 돌파구를 찾아가야 한다.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칭찬했는데, 국내에서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어지며,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난리들인데, 이런 이면을 제대로 알면서 칭찬하는 것일까? 야멸차고 냉철한 이성으로 살아갈 사람들만 가르쳐내는 현실의 교육에서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한가'라고 물었을 때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주말도 없이 책상에 매달려 밤 12시가 다된 시간에 퇴근하는 선생님과 교복 입은 학생들의 귀가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이것이 인문계고교의 현실이며, 하루 세끼를 교내에서 해결해야 하고 넓은 운동장은 쓸쓸히 비어있으며, 24시간 중 3분의 2를 학교에서 보낸다.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틈만 나면 배우라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의 학생들은 부와 명예를 얻는 성공과 출세를 하려고, 영어의 나라 미국을 꿈길에서도 동경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동시에 올바른 인성을 지닌 인간으로 자라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40여만 명의 이 땅의 선생님들이여 ! 어려우시겠지만 초심(初心)을 잃지 말고 당신들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페스탈로치의 봉사하는 정신과 교육이념에서 우러난 따뜻한 가슴으로 성적이 조금 모자라도 꿈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사랑을 심어 주신다면, 우리 교단의 새싹들이 밝은 모습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리라 믿습니다./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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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01 23:02

[새벽메아리] 보국탑의 부활

1935년 모리라는 일본인 지주가 군산 월명산 자락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 천황에 대한 충성의 징표로 5층 석탑을 세운다. 그것이 보국탑(報國塔)이다. 모리는 노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만주에서 장사를 해 돈을 모았으며, 그 후 군산으로 와서 농장과 정미소를 운영하며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던 자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민족정기를 세우며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이 탑은 파괴되어 시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 탑이 최근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물론 파괴되었던 터라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학계에서는 일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식민지로 삼았지만 근대화에 이바지한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 듯하다. 언뜻 보면 그럴싸하지만 이 논리는 압제를 정당화하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줄 소지가 다분히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풍조가 도시재생이나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까지 스며들고 있어 우려스럽다.군산이 대표적이다. 군산에서는 일제가 남기고 간 낡은 건축물을 보수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근대문화도시를 조성한다며 낡은 은행건물이며 창고를 복원하고 있다.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거행되었으며, 강점기에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전이 열리기도 했다. 근대문화유산 투어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런 유산을 배경으로 영화들이 촬영되고, 근대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세미나가 이어졌다. 근대문화 해설사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시립박물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는데도 상당수의 유물이 근대라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국탑도 시립박물관 야외에 전시된다.심하게 말하자면 일제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군산은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광복된 지 어언 66년, 글로벌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웃인 일본을 과거의 감정으로 대하거나 그 잔재를 애써 지울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미화하고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은행의 복원도 좋지만 그 은행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우리의 재산이 빼돌려 졌는지도 알려줘야 한다.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도 좋지만 이 항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려줘야 한다.근대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일은 환영할만하나, 그것이 한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형성하거나 나아가 선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제 36년은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치욕이며, 일제문화는 우리의 치부다. 철면피가 아니고서야 어찌 치부를 드러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인가.우리나라가 근대국가가 아니듯이 군산은 물론 근대도시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들이 군산을 마치 일제가 갑자기 건설한 신도시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나온 '群山市史'에 보면 "개항 당시의 군산은 약 150여 채의 한옥이 산재할 뿐"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정말 그럴까? 조선시대 인구센서스에 해당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18세기말 군산에는 4,446호 14,649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사조차 식민사관에 의하여 날조된 거짓말을 그대로 싣고 있으니 딱하기 그지없다. 군산이 근대문화로 재미 좀 보려거든 역사의식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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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5 23:02

[새벽메아리] 5월에 교사들은

푸르름이 더해가는 5월,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가정의 달답게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행사도 많다. 학교도 중간고사가 끝나고 현장체험학습, 체육대회 등 행사로 이어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또 여기에 스승의 날이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 스승의 날이 마음에 편치 않을 때가 많다. 세상이 그만큼 많이 변화되었다. 갈수록 교사의 사회적 존중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정적 직업으로서 선택될 뿐이다. 그래도 이날 안부를 전하는 제자가 있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초임 발령을 부안고등학교로 받고 교직 생활을 시작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어가는데,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여러 일들이 있다.교직생활 하면서 눈시울 뜨겁게, 마음으로 반갑게 받은 몇 번의 촌지(?)가 기억난다. 초임지 부안고에서 3학년을 맡고 대학 원서를 쓸 때였다. 무척 성실하고 착실한 녀석이었는데, 어느 국립대학의 공업교육과에 원서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점수가 되지 않아 그곳은 힘들다고 하니 제 소원이니 써 달라고 한다. 그러면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다음날 오신 어머니는 자식의 소원이니 써 달라고 부탁한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애정 표현이었으리라. 교무실 밖으로 부르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몇 장의 천 원짜리 지폐를 펴더니 내 손에 쥐어 주었다. 한사코 받지 않는다는 말에 서운함이 얼마나 컸던지 눈시울을 붉힌다.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졸업 후 그 아이는 취직을 하고 뒤늦게 대학을 다녔고 언제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신문》을 보내왔다. 그 책 속 쪽지에 "세속적인 빛에 가리어 소중하고 귀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잠시나마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형식적으로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작년 12월 만남 이후 반년이 흘러가고 있죠. 만남을 기약하며 건강하시고요. 앞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겠습니다. 늘 가정에 평온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제자가 바랄게요. 제자 올림" 스승의 날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래서 교사로 사는 것이 아닐까?진안에서 근무하면서였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조금은 엉뚱한 구석이 있었고 순진한 녀석이었다. 지금은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열심히 근무하면서 가끔씩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 녀석이다. 담임을 하고 있을 때 나를 부르더니 종례 끝나고 사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곳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사거리로 가자 그 애는 가방 속에서 비닐 주머니를 꺼낸다. 그 속에는 예쁘게 익은 살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만 먹으라는 소박한 그의 마음이었으리라. 올해도 스승의 날 무렵에 전화가 왔다. 교사는 이런 보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진안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가르친 몇 명의 제자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을 때 한편 가슴 뿌듯함도 있었지만 오히려 앞으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교사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희망을 주고 보람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출근한다./ 이상훈(전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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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18 23:02

[새벽메아리] 오월의 노래

산색이 참 좋은 때다. 다시, 오월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리 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갈아엎는 달이 사월이라면, 오월은 겹겹이 층을 이루며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자연의 빛깔이 보여주듯 사물의 기운이 충만해지는 때다. 몸과 마음이 자꾸 밖으로만 도는 청년의 시간대다.오월은 특별히 우리 현대사의 시간표에서도 잊을 수 없는 달이다. 역사의 중요한 고비들이 다 이 계절에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 또래들은 오월만 되면 몸이 막 뜨거워진다.이제 막 싹을 틔운 4월 민주혁명을 뒤집고, 한강을 넘는 탱크와 군화로 장면 전환한 박정희 체제가 백년을 갈 것처럼 위세를 부리던 권력의 출발점이 1961년 5월 16일의 쿠데타였다. 그 오월의 반동을 다시 돌려놓은 것이 1980년 5월의 봄이다. 막 피었다 비바람에 스러진 여린 꽃들처럼 좌절한 민주화의 꿈과 오월 광주 시민 봉기의 핏빛 기억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를 오래 남겼던 역사의 봄이었다.그 짧았던 봄의 마지막 기억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시민군의 항전 본거지였던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의 마지막 대치 장면으로 끝난다. 광주항쟁의 마지막 투사 윤상원은 투항을 거부하고 총을 든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총은 발사된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내 형제들일지도 모를 어린 군인을 겨냥해 끝내 쏘지는 못하고, 그는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완벽한 고립의 순간, 그 새벽에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을 윤상원은 비바람에 지는 오월의 꽃잎처럼 너무도 이르게 낙화했다.그러나 그것은 단지 쓸쓸한 사라짐은 아니었다. 그처럼 자진해 스러진 수많은 꽃잎들로 인해 1980년대는 사계절이 언제나 오월이었고 오월을 통해서 우리 역사는 평화적 정권교체로, 남북의 화해로 나아갈 수 있었다.이제 다시 2011년의 오월. 1980년 광주가 품었던 대동세상의 꿈으로부터 31년의 세월이 지났다. 완벽한 한 세대의 전환이다. 대다수 어린 학생은 518을 교과서로만 기억한다. 좌충우돌 속에서도 한걸음씩 앞으로 전진해왔던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 한참을 뒤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오월의 신록이 그 선연한 빛깔로 제 계절을 일러주듯 역사는 굽이쳐도 결국은 제 갈길을 간다. 신민이 국민이 되고, 다시 공감과 참여로 행동하는 시민의 시대로 진화해온 우리 역사의 긴 호흡에서 보면 이 희한한 역주행도 한순간일 뿐임이 분명하다.최근의 민심은 뜨거웠던 오월을 기억하고 다시 역사를 말하는 세대의 힘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1980년 오월 그때의 내 나이가 된 아이들과 함께, 난 오래된 노래 한 곡을 흥얼거려본다. "꽃잎처럼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일찍 낙화한 꽃잎들을 그리워하며 오월의 헌신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마음 속에서 어떤 비바람에도 지지 않는 그 역사의 꽃들은 여전히 희고 붉다. 그득하다./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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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11 23:02

[새벽메아리] 우리의 교육! 지금쯤은 뒤돌아 볼 때다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초목의 생명들이 꽃을 피우고 꿈틀대는 계절의 여왕답게 기념일이 무려 13일이나 되는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싱그럽기 그지없는 달이다. 사랑 가득한 가정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며, 정상의 길에서 일탈하는 상당한 학생들의 어두운 미래에 가슴이 아파오는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 평소의 생각을 메모해본다.일등과 일류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라면 이 지구상에 남겨질 사람이 얼마쯤 될까? 뒷자리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들 나름대로의 빛이 날 것이다. 영재와 수재들이 모여 미래를 그려가는 일류대학에서 발생한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은 어디서부터 기인되었을까?학교의 사명과 기능은 어쩌면 교과교육보다 더 중요한 건전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및 사회성을 고취시켜 주어야 하며, 학생지도의 핵심은 인성지도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교권이 위협을 받고, 학교의 기본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에서 적절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학교교육의 현실은 양적인 팽창은 있을 런지 모르나, 적재적소에 필요한 수준 높은 인재 양성과 배출은 어려울 것이다.교육의 의미는 지적수준을 깨우쳐 끌어 올리고, 인성을 다듬고 함양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며, 탄탄한 인격의 기반위에 쌓여진 지식이라야 영롱한 보석으로 가공 될 것이다. 이질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교육의 장에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론 강제성도 용인되어야 할 것이고, 학생들의 권리와 자유는 상황에 따라 제한되고 유보될 수도 있어야 한다. 민주교육의 현장에서 체벌의 용납과 인권침해를 정당화 하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지구촌시대에 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그리는 유토피아의 인생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즉 가난의 대물림은 교육의 불평등에서 기인되었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선생님이란 호칭이 무척 많은 나라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 사회의 명사님들, 교양취미기술을 생활 속에서 가르쳐 주는 선생님, 주변의 어른을 일컫는 선생님, 작가 선생님 등 존경하고 배우고 이끌어 줄 선생님들이 많은 나라인데도 어쩐 일인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진정으로 앞장서서 깨우쳐 주고 질타하는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어째서일까?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사람은 한쪽 눈은 크게 뜨고, 한쪽 눈은 지그시 감아본다고 한다. 떠 있는 눈으로는 현실과 앞을 보고, 감고 있는 눈으로는 이상을 그리고 이면(裏面)을 본다고 한다. 이 땅에 계시는 선생님들!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수십 년을 살아갈 지혜를 가르쳐 주시고, 소질과 특기를 찾아내어 알찬 인생설계로 꿈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지도하실 선생님을 절실하게 찾고 있답니다. 1980년대 이후 교복과 두발 자유화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면서 교단에도 새로운 물결이 밀려와 유능한 교육인재들이 교단을 떠나거나 현장에 있으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결과적으로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신뢰가 줄어드는 풍조가 공교육의 불신을 불러오고 결국 교사들과 학생 그리고 학부형들 모두가 피해자가 되었다고 본다.교육의 틀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부모와 교사다. 덕망과 실력을 갖춘 소신 있는 교사들이 어깨를 펴고 근무할 수 있도록 교육현장의 분위기가 쇄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비포장 길을 의식 없이 터벅터벅 걷는 청소년들을 바로잡아 주는 꾸짖음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머리로만 살아가는 지식 전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바로서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토끼의 해에 토끼와 같은 영민하고 따뜻한 교육의 본틀로 한국사회가 진정한 교육이념이 뿌리내려 교육복지 국가로 거듭 성장하기를 기원해본다./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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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04 23:02

[새벽메아리] 축제, 그리고 제사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방방곡곡에서 화사한 봄꽃과 더불어 축제가 한창이다. 봄날의 산하는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는데 그에 더하여 여기저기서 무슨 축제라 이름 붙여 다양한 즐길거리로 우리를 유혹하니 여간내기인들 어찌 행락을 주저할까. 난장이 벌어지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봄나물과 싱싱한 해산물을 상상만 해도 우리는 벌써 그 곳에 가 있다. 각 지역은 관광산업의 일환으로 축제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대로 된 축제는 어지간한 산업 못지않은 소득을 안겨준다.그런데 이 축제가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아마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신 또는 자연에 올리는 제사는 반드시 놀이를 동반하고, 그 놀이를 통하여 인간은 신과의 합일을 경험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 등 고대사회의 제천의식(祭天儀式)에는 반드시 춤과 노래가 수반되었다. 아리랑의 원무도 기실은 제사의식이다.엘리엇(T. S. Eliot)이 '황무지'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4월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노래한 것도 죽음과 재생의 순환을 기원하는 곡물제의(穀物祭儀)가 그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 또한 만월을 통하여 생명력을 얻고자한 원시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의 축제 '마츠리'도 제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물론 요즘 들어 제사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제사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식이 변질되고 기능이 약화되었지만 신과 제사는 인간의 의식에서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의 무의식에서 신화는 여전히 살아있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많은 상징과 기호가 신화와 관련되어 있음을 융(Carl Jung)은 잘 증명한 바 있다.각설하고 축제의 본질은 제사다. 축제가 돈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축제가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놀고 마시는 것이 전부다. 그 축제를 통하여 '놀이 참가자'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없다. 제대로 된 축제라면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제사기능이 부가되어야 한다. '진주남강유등축제'를 가보라. 남강을 유유히 떠가는 형형색색의 등에는 각 사람의 소원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유등의 원형은 '위도 띠뱃놀이'이다. 전북은 기막힌 축제의 모티브를 보유했음에도 현대화에 실패했다.1980년인가 필자가 대학 2학년 때쯤이었나. 내가 다닌 대학의 상징이 용이었는데 대학축제가 예나 지금이나 그저 먹고 마시는 것 밖에는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전국에서 용을 테마로 하는 민속을 뒤졌다. 그래서 찾은 것이 '김제 벽골제의 쌍용놀이'였다. 그 해 가을 대학축제 때에 필자는 거대한 용 2마리를 만들어 싸우는 장엄한 무대를 대운동장에서 연출했다. 동원된 학생만 500 명이 넘었다. 사라질 뻔 했던 쌍용놀이는 그 후 벽골제에서 재현되었고 지금은 벽골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놀이 또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제사에서 비롯된 것이다.며칠 전 군산에서 '새만금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기간 내내 시끌벅적했지만 마치 영혼이 없는 허수아비와 춤추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바라고 축제를 열었는 지 알 수 없었다. 민중의 꿈과 그 꿈을 실현해 줄 전능자와 꿈을 비는 행위가 축제의 모티브가 되어야 한다. 축제를 기획하는 분들에게 권한다. 문화인류학에 대한 깊은 소양은 차치하고라도 재미삼아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라도 한번 읽어보시라./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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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27 23:02

[새벽메아리] 진안 어린이날 큰 잔치

오랫동안 진안에서 생활하다가 전주로 온 지 세 해가 되어가지만 진안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버스를 타고 진안으로 가 골목집에서 친구를 만나고 막걸리를 벗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곤 했다. 골목집은 3~4평 되는 막걸리집인데, 그 집에만 가면 으레 만나는 친구가 있다.진안에서 18년간 생활하면서 지역 선생님, 주민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던 일이 많았다. 여러 단체와 연대하여 추진했던 어린이날 큰잔치, 마이 어깨동무느티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학생신문 제작, 청소년 문화축제, 지역을 바로 알기위한 진안역사 골든벨, 통일 골든벨, 전통문화 기행, 벽화 그리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가지고 진안의 수백 군데 마을을 답사하면서 지역 구석구석의 향토를 모아 진안의 마을신앙, 진안의 마을유래, 진안의 탑 신앙, 진안의 마을 숲 등 책을 엮어내고 향토교육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역 사람들은 필자가 진안 출신인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마음은 늘 진안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겸연쩍게 진안이라고 대답한다.그러면서 인상 깊었던 활동은 어린이날 행사와 독서교실이다. 지금도 학생신문과 함께 행하여지는 두 행사는 진안지역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진 교육활동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고 생각한다.독서교실은 어렵게 사회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으로 시작하였는데 학부모님의 관심과 열기가 대단했다. 독서라는 것이 꼭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자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침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매달 쉬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독서교실이 열린다.진안 어린이날 큰 잔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역의 아이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행사다. 10여년을 이어오는 동안에 지역 초등 선생님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농촌 학생들에게 어린이날을 지역축제로 만든 열정적인 모습은 지금도 살아있다. 진안의 어린이날 큰 잔치는 단순히 어린이날 행사가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지역축제가 되었다. 농민회는 어린이날 행사 때 손수 떡을 준비해와 아이들과 함께 떡메치기를 하고, 소방서에서는 아이들에게 소방체험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종교단체는 천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주었고, 때로는 개인이 돼지 한 마리를 후원하기도 했다. 어린이날 행사를 도왔던 교대생이 졸업 후 지역 선생님으로 발령받아 진안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무엇보다 진안 어린이 날 행사의 힘은 많은 사회단체의 연대에 있다. 진안문화의집, 진안평생학습지도자협회, 소연문화원, 청소년지원센터, 무진장소방서, 진안농민회, 진안보건소, 진안 청소년수련관, 진안 지역아동센터 등 많은 단체는 어린이날 행사를 더욱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그래도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선물을 받는 일이다. 아이들을 위하여 준비한 티셔츠는 비록 몇천 원의 값어치에 불과하지만, 혹시라도 늦게 와서 못 받으면 울고불고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어느 해인가는 책 선물을 주기도 했고, 자전거를 주기도 했다. 요즘에는 토마토 모종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생명을 가꾸어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며칠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진안 친구가 집에 다녀간 적이 있는데, 그 날 이후 아들이 묻는다. "아빠 어린이 날에 진안 갈 거죠?" "그래, 가자." 올해도 우리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한마당 축제가 되리가 생각한다. 언제나 진안 어린이날 행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상훈 (전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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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20 23:02

[새벽메아리] 전국은 야권 연대, 전북은 야권 혈투?

427 재보선의 막이 올랐다. 전국 38곳에서 치러지는 이번 재보선은 미니 총선과 지방선거가 결합되어 있는 탓에 내년의 여야 대격돌을 앞두고 미리 보는 시험지, 전초전 같은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특히 야권에서는 보수진영의 집권 연장을 막을 가장 강력한 전략으로서 포괄적인 야권 연대, 연합이 유일하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어 왔기 때문에, 이번 재보선에서 반드시 야권 후보단일화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경남 김해을에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되는 과정은 야권 정치세력 공동의 위기의식이 강제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로써 이번 선거는 강원도, 분당과 김해를 주요 축으로 '한나라당 대 야권단일후보'의 일대일 대결 구도로 짜여지게 되었다.그런데 전북지역은 전국적인 야권연대의 흐름과 다르게 야권 내의 혈투가 예상된다. 전주 덕진 제 9선거구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와 야3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연대후보 간 대결구도가 벌어진 것이다. 각 정당의 지도부가 강원, 분당, 김해, 순천에서는 손을 맞잡아 들어 올리다가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일컬어지는 전북에서는 얼굴을 붉히게 생겼다.먼저, 아쉬운 것은 정동영 의원의 행보다. 바깥을 향해서는 자신이 야권 단일정당론자임을 자임하면서 일정표까지 제시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야권연대 실현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없다. 만일 정동영 의원이 자신의 영향력이 결코 가볍지 않은 지역구에서 일관된 야권연대전선의 확대를 위해 진보정당, 시민사회를 끌어안는 노력을 보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 의원 측근 간의 생존게임에서 벗어나 좀 더 큰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선거가 훨씬 재미있어지고 전국적 야권단일전선 흐름과도 맞추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측근 세력 등 민주당 내부의 반발은 일부 있었겠지만 그렇게 확대된 연대 틀 속에서 대선을 종착점으로 하는 야권연대의 현실성과 신뢰를 높여가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원래 우리 몫의 광역의원 선거인데 뭘 야권연대까지.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민주당이 왜 순천은 내놓았던가.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현재 전북정치에서 민주당의 대표성이 부족해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합치지 않으면 질 것 같으니까 뭉치자, 조금 내주자. 그런데 전북은 굳이 안 내주어도 되잖아." 이렇게 정황에 따라 셈법을 바꿔가며 단순 합을 추구하는 것이 야권단일정당론의 문제의식일 수는 없다.한국정치가 제대로 서려면 야권연대와 정치혁신이 같이 가야 한다. 큰 승부에서의 승리를 위해, 지혜롭게 합치되 민주당의 퇴행적 행태는 혁신하고, 진보 세력은 좀 더 국민의 눈높이와 호흡하는 대중화의 길을 가야 한다. 기존 정당에서 수렴하지 못한 신진세력들, 시민사회의 다양한 역량들도 합리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개방된' 정당 틀을 만들어가야 한다.진보정당에서는 민주당이 '호남의 한나라당'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고인 물과 낡은 정치에 대한 뼈아픈 충고가 숨어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면적인 진실일 수는 없다. 정운천 씨가 들으면 서운할 소리이지만, 나는 우리 지역에서 한나라당을 배제해온 대중의 선택을 진보적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이 지역감정으로 매도될 것이 아니다. 그러면 진보정당이 민주당의 온전한 대체재가 될 수 있는가. 지난 20년 진보정당이 거둔 성적표에 답이 있다. 물론 선거제도의 맹점과 오랜 분단체제가 강요해온 이념적 제약도 적지 않게 작용했음을 기억하자. 진보정당의 오랜 헌신과 외로운 깃발이 한국정치의 다양성을 열어놓았음도 잊지 말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민주진보 단일정당으로 함께 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혁신하고 더 진취적으로 개방하며 진보정당은 대중화의 길에 합류하는 '혁신과 통합의 길'. 버스파업을 둘러싼 쟁점으로 비유한다면 파업 노동자와 시민의 입장을 다 같이 아우를 수 있는 큰길을 가야 한다. 그 큰길 위에서 오늘 전북정치의 주류가 보여주는 이 답답함과 한계를 제대로 넘어설 수 있는 너른 들판을 만나게 되길 열망한다./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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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13 23:02

[새벽메아리] 인생은 선택이다

순간의 선택이 자신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운명은 선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두 갈래 길에서 하나를 가려야 하는 순간의 고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임어당은 "삶이란 영위하는 사람에 따라 난해하고 복잡한 논문이 될 수도 있고, 산뜻하고 부드러운 수필이 될 수도 있다."라고 했다.수필과 같은 삶이란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행복을 느끼는 삶이 아닐까하고, 잠시 생각을 멈춰 본다. 우편물 집배원들 그리고 택배 아저씨들의 힘든 하루가 시작되는 출근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행복을 실어다준다' 라고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갖는다면, 그분들의 삶은 고달프지만 웃으며 일하는 하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선택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경솔한 선택은 인간을 곤경에 빠뜨리고, 무책임한 선택은 화(禍 )와 해로움을 초래한다.선택은 대체로 자유로운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다. 부모나 형제와의 만남은 자력이나 자기 의지의 범주에서 벗어난 운명이라 할 수 있으나, 일상의 많은 것들의 선택은 중요하고, 필요한 것만을 취한 뒤에 나머지를 버려야 하므로 매우 어려운 결단이다. 힘들게 선택했더라도 잘못되어졌다고 생각되거든 바로 철회 할 수 있는 용단이 바보 같은 삶을 빠르게 벗어나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중대하고 비장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의 힘든 결단은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독백의 문장이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민고민 하다가 경험자를 찾아 자문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해법을 찾으려는 신중한 행위는 행복과 쾌감을 느끼기 위한 선택의 길이다 .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땀과 열정을 바쳐 목적을 이뤄낼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모아야 성공의 문이 열릴 것이다.삶은 부메랑이다. 우리들이 선택했던 생각이나 말 그리고 행동의 결과는 언젠가는 틀림없이 되돌아 온다. 모두의 인생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을 결정짓는 3대 선택이 있다. 첫째로 일생을 결정짓는 배우자의 선택은 지혜로워야 하고, 둘째는 삶의 틀을 만들어 주는 직업의 선택은 현명해야 하고, 끝으로 어떤 인생을 사느냐를 가늠하는 가치관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선택은 행과 불행, 성공과 실패의 길이며 지혜와 순발력을 수반하는 판단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거나, 현실의 자기 위치와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을 때의 결단은 분명 자기 인생을 어둡게 할 것이다.우리들의 삶에서 예고 없이 찾아드는 뜻하지 않은 재앙과 이상기류의 불청객인 너울성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거센 격랑에서 살아남으려면 평상시의 생각들이 뜻대로 되도록 전력을 다해야만 웃는 얼굴의 현실이 지속될 것이다.살아가면서 가장 큰 실수는 어렵다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이란다. 한 달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 동북부지역 대재앙의 극한 상황에서 국가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이냐, 가장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야 하느냐의 인간적인 고뇌의 기로에서 전자를 택했던 한 소방관의 애틋한 사연을 들었던 지구촌 사람들 모두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려야했다.상황에 만족하고 또 그 선택의 결과로 흡족해 하며 살고있는 세상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작은 일에서 부터 크고 중요한 것들까지 매 시간, 매일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며, 그런 선택들이 잘못되지 않도록 신중한 결단이 내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수놓으리라./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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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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