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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낯선 세월이 문지방을 넘더니 나이와 아주 친해졌다 해가 뜨면 일을 했고 해가 지면 잠을 잤으며 틈틈이 술을 마셨고 가끔씩 사랑을 하면서도 생의 한가운데서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아 돌아보지 못했던 나이였는데 서로 보듬어 보니 사소한 것도 아름답고 삶의 아픔들도 함께 하며 손을 내밀어 본다. ========================== △ 나이 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낯선 일이다. 주어진 위치에서 책무를 다하며 열심히 살아내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노년이 되어 있다. 사소한 것도 아름답고, 같이 겪어낸 아픔들도 고맙다고 느끼는 순간, 그동안 겪어낸 삶의 상처들에게 비로소 악수를 청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가슴이 뛰는 나날이 찾아온다. -김제김영
당신을 읽는 중입니다 읽을수록 손을 놓을 수 없습니다 가슴을 열람하고 옆구리를 빌립니다 모음으로 된 당신의 뼈 자음으로 된 당신의 살 감탄 부호로 찍힌 음성 수억의 관문을 뚫고 입성한 내가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당신을 열독한 일입니다 언제일까요 폐문을 맞이하는 날 이별을 박차고 이 별을 나설 테지만 당신이라는 양서를 택한 나는 우등 사서(司書)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복사할까봐 차마 낭독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당신을 외웁니다 ▲ 지구상에서 소리 내지 않고 나의 속마음까지 읽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참 잘 살아온 것일 게다. 분명 나의 심장 구석에 감추어진 고뇌까지도 묵독할 테니까 말이다. 무관심은 뜨거운 가슴을 내어주어도 모르고 지나친다. 그러나 감탄 부호로 찍힌 음성까지 열독을 하는 이가 있다면 긴긴 겨울밤이 외롭지 않을 터이다. 행여 열독이 들킬까 두려워 아무도 모르게 외울 수 있는 한 구절의 시를 밤새도록 읊는다면, 싸늘한 겨울 밤바람이 봄을 업고 올 것이다. 겨울눈이 연초록빛을 틔울 것이다. <묵독>을 하기위하여 어떤 양서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소애 시인
불청객으로 찾아온 병은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어르고 달래보지만 막무가내 팽팽한 신경전 끝에 눈을 감고 병을 품었다 전의戰意를 상실한 내가 안쓰러웠나 기세등등하던 병이 꼬리를 내리고 떠난다 투병도 간단한 생을 위한 담금질이란 깨달음을 놓고 -담금질이란 어휘를 수십 번 되감기 하는 동안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가 가슴을 친다. 불청객으로 찾아온/ 병을 어쩌랴. 제대로 된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고온으로 열처리한 쇳덩이 같을까. 물속에 담갔다가 다시 불에 넣기를 열두어 번. 대장장이의 손에 담금질 당하는 쇳덩이와 저울질해본다. 행여 병의 고통으로 부데끼는 화자가 전의를 상실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을까 두 손 모아진다. 투병도 간단한 생을 위한 담금질이라고 신神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마음 놓는다. 이소애 시인
달의 옆선이 바람에 깎였다 달걀형이다 바람의 살집도 뼈만 남아 코트자락이 헛돈다 네가 빠져나간 갈빗대 사이를 달 부스러기가 채운다 - 새해가 닫힌 창문으로 들어와 달력을 바꿔 달았다. 대문짝만한 1월이 마치 신나는 행운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황금돼지 해인만큼 넘쳐나는 풍요로움을 막연하지만 기대를 가져본다. 달의 옆선이 바람에 깎여 아픔이 보여도, 코트자락이 헛도는 앙상한 몸집이어도 달은 꼭 화자를 기억하리라. 그럴 거라는 믿음으로 시인은 산다. 부스러기가 갈빗대 사이를 채울 때 달은 제 몸 불려 1월을 지나갈 것이고, 1월은 2월 꽃눈으로 바꿔질 것이다. 시인의 마음을 달래며 지나갈 것이다. 이소애 시인
사람의 생애 절반은 잠 속 지구의 반생은 짙은 밤 존재 안에 절반이나 왜 부재를 삼는다는 말인가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게 하니라 생각하므로 소멸되어 가는 것이다 ============================================= 내가 다냥한 햇살을 즐기고 있는 동안 지구 반대편의 아마존강은 짙은 밤이겠다. 날마다 활기차게 생활하는 나도 하루의 절반은 잠을 잔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재고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면 잠을 자는 동안은 내가 아니란 말인가? 짙은 밤에 든 반대편은 지구가 아니란 말인가? 생각하면서 우리는 소멸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이여 일어나지 마라. 생각하므로 소멸된다는 시인의 선언은 생각이 많으면 맑은 정신이 크게 손상된다(思多太損神)는 말일 터. 그러니 생각이여 부디 일어나지 마시라.<김제김영>
오늘도 임실댁은 수를 놓는다 오색 비단실을 바늘에 꿰어 한 땀 한 땀 도안을 따라간다 초가집 길 어느 모퉁이 버드나무 아래 돌아갈 때 아름다운 화초도 한 폭 보이고 모란은 꽃 피고 나비는 춤추는데 꾀꼬리 고운 소리는 아직 수틀 속에 없는 듯하다 문득 지나온 길 뒤돌아보면 손끝에 빨간 핏방울 아프게 맺히기도 했고 흙먼지 바람이 불어 보푸라기도 일어났는데 마음은 한 올 한 올 풀어가며 어두운 길을 벗어나고자 한다 설계한 도안을 따라가며 바늘 끝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숨 쉬는 길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임실댁은 오늘도 수를 놓는다 ========================================== - 비단실을 바늘귀에 겁니다. 비록 지금껏 살아온 길이 비단길이 아닐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이 비단길이라는 보장은 없어도 한 땀 한 땀 수를 놓습니다. 아름다운 화초도 내 삶의 귀퉁이를 밝혀주고, 모란 나비도 불러다 앉힙니다. 아직 꾀꼬리 우짖는 화려한 길은 아니지만, 손끝마다 핏방울 맺히지만, 바늘 끝을 따라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수틀을 뒤집어 봅니다. 매듭자리를 이어 별자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온 내 삶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별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김제김영>
처음 목재가 된 나무는 무엇이 될지 모른다. 그 쓰임새는 내가 결정하고, 내가 만드는 것이다 지상의 나무는 모두 내가 무엇이 될지 무엇을 할지, 무엇이 문젯거리인지 그 무엇을 위해 나는 나를 만들지 않는다. 봄철 한때, 함박꽃은 왜 활짝 웃고 있는지 무엇이 웃음이 되는지, 무엇이 웃음이 안 되는지 목숨의 젖피를 쥐어짜도 아무 말이 없다. 나무는 철학으로 말하지 않는다. 나를 깎고 다듬다보면 나는 없고 목수의 인생만 빛이 된다고 그래서 목수가 되거나 대패가 된다 해도 나무는 하늘로, 하늘로만 나를 세워 태고의 숨결을 수혈하려 한다. 나무는 끝내 우주의 뼈가 되고 싶은가? =========================================== 나는 나를 만들지 않는다. 나는 철학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직 하늘로 하늘로만 나를 세워 태고의 숨결을 기억하는 것이다. 태고의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처음 태어난 나무가 자신이 무엇이 될지 모르듯이 지금 자신이 무엇이 될지 모르는 사람들이 읽으면 공감할 시다. 나를 깎고 다듬는 세상에게 나를 통째로 내어주지는 말자. 충실하게 태고의 숨결을 수혈하자. 우주를 받치는 뼈가 되는 날까지. <김제김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시작입니다 아픔은 들꽃 한 송이 바라보며 잊습니다 환희는 층층이 매단 접시꽃으로 붉게 퍼집니다 귀한 인연은 더 귀한 인연을 이끌어 와 뜻깊은 하루는 열립니다 베푸는 하루는 아니었습니다 우선 오늘 행복했던 것만 생각하렵니다 못 다한 것도 내일로 미루고 이 시간만을 감사하렵니다 아, 그러나 날마다 베푸는 하루하루를 꿈꾸렵니다 그리고 반성하는 것은 인정을 다 쓰지 못한 것 나의 감사가 더 큰 감사의 물결로 일고 그래서 빛 부신 아침이 올 것을 믿습니다 내일은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나날이 될 것 같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혹은 오랫동안 적조했던 사람들에게 오늘은 안부를 묻자.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마음을 담아 인사를 하자. 그리고 오늘 베풀지 못한 사랑은, 오늘 미처 챙기지 못한 행복은 또 내일 나누겠다고 서로를 살뜰히 챙겨보자. 날마다 빛 부신 아침이 기다린다고 서로를 격려해보자. /김영 시인
내 삶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궁금한 적이 많다 언제 쯤 막다른 골목길처럼 갈 수 없는 길을 만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외로운 적이 많다 * 외로울 때면 내가 나에게로 와서 말을 건넨다. 내 삶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물어 보아도 대답이 없다. 다만 허전한 마음에 찬바람만이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나의 모습이 호수 잔물결에 일렁일 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주름살은 지나간 시간을 말해 준다. 후회가 금방 밀려와도, 누구에겐가 용서를 빌어야 할 일도 생각이 어둡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뒤뚱 거려도 아무도 나를 잡아당기는 사람이 없다. 없음은 외로움의 시발점으로 온다. - 이소애 시인
소소한 흔들림에서 시작되었다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햇가지 같은 마음 꺾여, 후회는 필경 가까운 곳에서 깊어지느니 그대에게 흔들리며 일렁인 나도 분명 어디 상처 주고 살았겠다 꽃 같은 사람아 지금은 가을, 잎도 떠날 시간이다 잎 지면 내 마음도 한풀 꺾일 터 안녕, 손 흔들며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말자 해가 지고도 한참 노을이 붉다 ------------------------------- * 가을 뒷모습이 쓸쓸하다. 나무가 잎을 틔워 매달 듯이, 한평생 살아가며 우리는 숱한 인연을 만나고 또 만든다. 소소한 흔들림으로 온 그 인연이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되기도 한다. 그 바람에 흔들린 나도, 내가 매단 잎을 흔들어 바람을 만들고 또 다른 인연에게 상처가 되기도 할 터이다. 낙엽이 진다. 잎 지면 내 마음도 한풀 꺾일 터이다. 나무가 평생 잎을 매달지 못하듯, 사람의 인연도 평생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해가 지고도 한참 노을이 붉듯 그 인연을 보내고도 우리는, 한참 먹먹할 것이다. -이소애 시인
오늘 온 인류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령 하나를 하달한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의 국어사전 속에서 다음 단어를 벼락 치듯이 지우고 보고하라 전쟁 2018년 4월 1일 꼬마대장 군사분계선이 보이는 소떼길에서 남과 북의 두 정상이 함께 심었다는 소나무가 참 푸르다. 나무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 한라산과 백두산 흙을 섞고 한강 대동강물을 몸으로 받은 소나무는 한족임을 수천 년 미래에도 가슴에 새기리라. 전쟁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지울 것이다. 백두산 천지의 맑은 물과 한라산 물을 받아드렸으니 우리 또한 지구상에서 전쟁을 잊고 살 날이 오겠다. 도보다리 새들처럼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살 것이다. 꼬마대장의 명령에 순종하겠다. 국어사전 속에서 전쟁을 지우시오. /이소애 시인
불이 켜지자 서늘한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꿈에서 깨어나 듯 서둘러 스크린 밖으로 빠져나가는 관객들 우수수 낙엽이 날린다 엔딩화면 속 날아오르는 기억 저편 익숙하고 낯선 이들이 하나 둘 계절 속으로 사라진다 동네 아저씨1, 행인1, 주인공 주변을 얼쩡거리던 단역들이 날아올라 흩어진다 날아오르는 이름 속에 나도 묻혀 사라진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엔딩 크레딧의 낙엽들 극장 앞 골목에 흩날리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엔딩 크레딧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서둘러 스크린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불이 켜지기 전에 일러났다. 낙엽은 외롭고 쓸쓸한 가을무대의 엑스트라다. 낙엽은 가을 계절에 얼쩡거리는 행인1.이지만 단풍이 들고 낙엽이 땅에 뒹굴지 아니하면 어느 누가 가을이 왔다고 하겠는가. 시 한 편을 쓰기위해 언어사냥을 하는 나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엔딩 크레딧으로 지나가리라. 아등바등 견디어 온 생이 시간을 밟고 지나가는 행인 엑스트라일 뿐이다. -이소애 시인
모진 가뭄도 가뭄이지만 내 몸 추스르기도 힘든 유월 가진 것도 든 것도 모자라기만 하고 이제 버릴 것은 시집 몇 권과 잡동사니 너절한 묵은 서가가 전부인데 정작 버려야할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서어한 욕망의 굴레일는지. 겨우 가뭄 달래는 마른 장맛비가 찔끔거리는 후텁지근한 오후 더 내려 놓은 것은 없나 뒤적여 보는 헌책 갈피에 끼워 있는 청년시절 받은 엽서 한 장 - 허접한 나의 청춘은 잔돌평 철쭉 빛으로 불타고 있어도 내 영혼 불 지필 불쏘시개 감으로라도 이승에 남을 것인가 소나기 한 줄기 넓은 잎 오동잎에 후두둑 걸어오는 유월 마지막 날 △생의 가뭄에 들어섰다. 윤기 나고 화려했던 젊음은 어디로든 벋어나갔으나 이젠 가뭄만 타는 고비에 접어든 것이다, 간혹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가뭄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버릴 것 다 버렸는데도 아직 시집 몇 권과 연필 몇 자루는 가지고 있다. 청춘은 철쭉 빛으로 타올랐으나 내 영혼에 이글거리는 불을 다시 지필 수 있을 것인가? 사위어 가는 재를 다독여 주는 소나기 한줄기가 말라가는 오동잎을 건드린다. 김제 김영 시인
바다에 그물을 던지면 고래는 웃고 새우들은 죽을상이다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도 고래에게는 거미줄이고 새우에게는 동아줄이다 강에 그물을 던졌다 큰 고기는 다 빠져 나가고 잔고기들만 잡혔다 그물 속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었다 ===================================================================== △우린 고래 잡는 법을 모른다. 소설을 빌려 말해보면 고래를 잡으려면 작살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정조준해야 한다. 그러고도 그가 기진하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고래를 잡으려고 하면 큰일 난다. 온갖 특권으로 보호 받는 인종이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직도 활개 치고 있다면 가난한 나는 오늘 가까운 가게에서 고래밥이나 한 통 사서 와삭와삭 깨물어 먹어야겠다. /김제 김영 시인
하루하루가 삶의 선물입니다 하루하루가 늘 새롭고 신비스럽습니다 같은 길을 가도 늘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하루밖에 없는 하루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축제여야 합니다 ======================================================================== △어제는 지나가 버렸으므로 없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없다. 오로지 오늘만 있을 뿐이다. 어제는 오늘이 순간적으로 나를 떠난 것이고 내일은 내게 오는 순간 오늘로 변하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는, 어제의 슬픔을 오늘까지 갖고 있지 않아야 하고, 내일이 무궁무진하리라 믿고 오늘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한다. 아직 모르는 미래 때문에 오늘 걱정하고 있는가? 지나간 어제 때문에 오늘 분노하고 있는가? 가만히 짚어볼 일이다. /김제 김영 시인
기나긴 추위에서 움츠려 참았었고 바위틈 한 방울 물 생명수 되어 주며 자갈밭 생명 없는 곳 뿌리 내려 피웠지 씨앗이 떨어진 곳 탓하지 않았었고 그 누구 원망 없이 그 자리 내 자린 듯 뿌리를 뻗고 뻗어서 내 운명을 받았지 누구도 생각 못한 그곳에 꽃은 피고 풍파를 이겨낸 힘 짙은 향 발산하며 아픔을 견뎌낸 너는 활짝 웃고 있었지 ========================================================= △꽃 한 송이 피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해서 시인 묵객이 시대를 초월하여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찬양한 것이렷다. 무서리 내리고 잠도 오지 않았던 밤을 꽃이 피기 직전의 통증에 비유한 서정주도 있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고 반문을 넘어서서 강변을 토한 시인도 있다. 추위도 참고, 한 방울 물도 감사하며, 떨어진 자리 탓하지 않아야 꽃이 피고 향기가 진하다. 꽃만이 아닐 것이다. /김제 김영 시인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 온 길 또 다시 어드메로 흘러가는가 앞은 길을 따라 열고 등 뒤로 지나간 길은 꿈결만 아른 거리네 한평생 울고 웃으며 살아온 길 뒤 돌아보니 가파른 언덕 넘어에 굽이굽이 아픈 사연만 남아 피고 지는 꽃도 향기마저 잊어 버렸네 이제와 그 길 다시 걸어도 아픈 세월은 여울지고 눈물은 말라 가슴만 메여 우리 이길 다시 걸어도 들꽃처럼 소리 없이 지고 말 것을 우리 손잡고 발맞추며 함께 가세나 ========================================================= △전근표 시인은 2008년 한국시로 등단해 한국시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6대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사랑합니다! 아버지> 등이 있다.
하늘 밑과 바다 끝 그 경계가 아득한 저물녘이다 수평선 따라 통통배 한 척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멀리 벌어진 쪽부터 하루가 캄캄하게 채워지고 있다 ============================================================== △수평선을 천천히 어둠으로 닫고 있는 통통배가 지나간다. 한 폭의 그림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풍경이다. 저물녘, 매급시 태양이 잠겨버린 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찰나의 충동이 일기도 한다. 환상일까? 짧은 시가 육지에 살고 있는 나를 바다로 훔쳐 간다. 시인의 상상력에 감탄해서인지 파도 소리가 안방까지 밀려오는 환청에 시달렸다. 수평선 너머엔 누가 살고 있을까? 태양의 비밀스러운 곳, 그곳에서 지퍼를 열어볼까 생각해 본다. 빛이 그리울 때. /이소애 시인
꽃들은 제 이름을 자랑하지 않는다 지독한 자기 연민과 사랑으로 한평생 흔들려도 목숨줄 부여잡고 제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꽃이다 나는 꽃이다 석 달 열흘 땡볕가뭄에도 나는 꽃이다. 속울음 삼키며 눈 부릅뜨고 있다 꽃들은 목 놓아 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 △제 이름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시인이 있다. 살고 싶지 않았을 때도 살아서 내가 고맙다.는 시인은 슬프고 아프고 괴롭고 쓰고 떫은 것들을 정화할 수 있어서 시에게 고맙다.라는 시인의 말에 내가 현혹되었다. 시름시름 앓던 나도 눈 부릅뜨고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본다. 사람들은 꽃나무를 볼 때 행인처럼 바라본다. 달맞이꽃이 시들면 기생초와 배롱나무꽃도 시든다. 쇠약해지는 꽃나무 이름을 불러주는 자비의 시인으로 재생하려면 몇 편의 시를 탈고해야 하는지요. /이소애 시인
터벅터벅 실업급여 타러 가는 좁은 골목길 발 끝에 채여도 무심히 지나치는 게 불문율이다 비정규직의 봄은 갓길로 온다 =====================================================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노동자들의 절규를 생각한다. 눈물을 가슴에 품고 실업급여 타러 가는 노동자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터벅터벅 좁은 골목길의 민들레를 밟고 지나가도 아픈 상처의 비명은 땅 밑으로 깔린다. 가녀린 꽃대가 부러질까 바람은 비껴가는데. 발끝에 채여도, 아니 죽어가는 생명이라 할지라도 세상 사람 누구 하나 관심을 주지 않는 민들레다. 짓밟아도 다시 피어날 거라는 천박하고 질긴 생이라는 운명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소애 시인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태풍의 눈 ‘통합 전주시장’
남원 모노레일 500억 참사, 시민은 분노한다
완주‧전주 통합, 특례시 지정으로 완성해야
지방선거 앞 공무원 정치적 중립 원칙 지켜야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공직 후보자, 아는 만큼 참모습이 보인다
김온 : 다섯 줄
대선 패배의 반성과 교훈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