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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아침 서신공원 벤치에서 중절모를 쓴 중년이 혀를 끌끌 차며 보다가 놓고 간 사회면 궁금해 바람으로 넘겨 가며 보고 또 보다가 얼굴을 붉히고 서산마루에 다다라 멈칫 눈시울을 적시며 혹여 내일은 밤새 사회를 비누로 빨아 밝은 얼굴로 말려 놔야 하거니. ================================ △아침 공원에서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중년이 혀를 끌끌 차며 읽은 신문을 태양이 읽었다. 바람으로 넘겨 가며 읽다가 멈추다가 끝내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저녁노을이 저리 처연하게 지는 것이다. 밤은 반성의 시간이고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공간이다.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위해 밤새 이 사회를 비누칠해 깨끗하게 빨아 놓아야 한다. 그래야 내일의 태양이 찬란하게 빛난다. /김제김영 시인
하루가 천추인 생애 우주를 휑하니 돌고 도는 무한 시공의 여정 하루씩, 천 곱, 만 곱절 하늘엔 흰 구름 가고 바다엔 만파의 물굽이 하루를 살아도 생명은 영원 내 삶이 행복이어라 ===================================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에게 내일은 없다. 어제도 없다. 오직 그에게는 현재만 존재한다. 해서 현재는 선물(present)이다. 이미 지나가서 흔적도 없는 어제에 잡히지 말자. 아무 노력도 안 하면서 내일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자.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잡지 못한다. 카이로스(Kairos)의 뒷머리가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인 이유는 사람들이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국어사전을 보면, 대머리는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도 있다. 해서 현재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하루살이는 시간을 살지 않는다. 시각을 살 뿐이다. /김제김영 시인
밤새워 생각했나 보다 정답을 못 찾았나 봐 잎도 없고 대궁에 숭얼숭얼 물음표와 느낌표를 구름처럼 얹어 놓았네 여름의 끝인가 가을의 시작인가. =================================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대표하는 꽃이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상사화를 소재로 하여 그리운 마음을 절절히 읊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다. 이 시에서 시인은 상사화를 보며 우리에게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밤새워 생각했지만 잎 하나 피우지 못한 상사화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구름처럼 얹어 놓았다. 이 계절이 끝인가 시작인가? 꼬박 새운 어젯밤이 어제의 끝인가 오늘의 시작인가? /김제김영 시인
오월이 되면 길가에 서 있는 백설기 떡처럼 하얀 꽃잎 쌀밥처럼 풍성한 이팝나무들 여기에는 말할 수 없는 또다른 슬픈 사연이 있다 그 옛날 쌀밥이 없어 보리밥만 먹던 보릿고개 시절 갓난아이 태어났지만 먹을것도 없었던 때 엄마 젖도 나오지 않자 어미 빈 젖만 빨다가 따뜻한 엄마 가슴에 묻고 세상을 떠났던 어린 아기 그 아기를 산에 묻고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아빠 슬픈 마음 가지고 산속에서 어린 이팝나무를 캐어 아기 무덤 옆에 심었다 천국에서 쌀밥을 바라보며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염원했다 아이들이 죽을 때마다 이팝나무를 그 옆에 심었고 이팝나무의 공원이 되었던 곳 그곳이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마령초등학교 자리이다 오늘도 길가에 수북이 쌓인 하얀 이팝나무 꽃가루를 보며 밥그릇에 쌓아 놓고 그 아기를 생각해 본다. =============================== △ 흔히 춘궁기라고 말하는 이때, 수북하게 담은 쌀밥 한 그릇을 따뜻하게 건네는 이팝꽃이 핀다. 이팝은 이밥, 즉 쌀밥이다. 요즘은 보릿고개가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어느 한구석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허리끈을 졸라매는 이웃이 있을 수도 있다. 나무도 쌀밥을 건네주는 때, 어려운 이웃에게 기꺼이 손 내밀자. /김제김영 시인
오! 왔는가. 발과 발이 부딪치고 발등도 밟고 가는 장날이라 농촌 어촌 축산 다 모여 있네 오만가지 밥상 차려 놓았다 물고기가 하늘을 보고 뛰어 오른다 주인 만난다고 계절의 별미 주꾸미 확 터지는 개미알 입맛 다시고 간다. 금.값. 파랑 치마 노랑 치마 싱싱 채소 농부들의 땀 냄새 상다리가 숲을 이룬다 소머리가 웃고 있다 문전성시에 단백질 보충하시오 돼지 콧구멍이 벙긋벙긋 상추에 삼겹살 그 맛 개구리는 비 오는 날 목구멍이 터지고 사람은 삼겹살 먹는 날 볼때기가 터진다. 주머닛돈 쌈짓돈 공유와 상생 재래시장 흐르는 강물이라 강물은 흘러야 산다. 마르면 죽는다. =============================== △모처럼 흥겨운 시장입니다. 시를 읽는 동안 덩달아 즐겁습니다. 요즈음은 배달문화가 발달하고 대형 마트가 많아져서 이런 모습 보기 힘듭니다. 몹쓸 유행병까지 떠돌아 더더욱 그리운 모습입니다. 시인의 사명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드러내는 일이라면 이 시 한 편으로도 작가는 시인의 목표에 도달한 듯합니다. 강물처럼 흘러가야 할 재래시장을 위해 이번 주말은 재래시장으로 나가보아야겠습니다. /김제김영 시인
쓰레기장 구석에 가죽구두 한 켤레 놓여있다 누군가 내다 버린 체중계 위에서 걸음을 멈췄다 턱에 걸린 숨을 그만 내려놓은 듯 혀를 내밀어보이고 있다 쓰레기장 어둠이 퇴적된 것은 구두가 모든 길을 해감하기 때문이다 채 벗어내지 못한 무게는 320그램, 벼랑 끝 발길을 돌려 와서는 뼛속까지 박아 넣었을 못의 무게다 소리 새어나가지 못하게 못 끝 다져 문 속울음의 무게다 구두가 상처를 비벼 뜨는 순간 고장 난 센서등이 오래된 기억을 깜박, 켠다 언덕길만 걸어왔던 아버지 모서리마다 덧댄 삶을 벗고 빈 잇몸으로 생을 빠져나가던 날을 기억한다 등을 서까래처럼 세워두고 몸만 빠져나간 사막 소의 주검처럼 여전히 제 코뚜레를 풀지 못한 구두의 발등이 한없이 부어 보인다 ================================= △평생을 언덕길만 걸으신 아버지가 생전의 가난과 수고를 벗어두고 가셨다. 끝내 벗어내지 못한 320g의 무게는 속울음의 무게다. 부어오른 발등의 무게다. 뼛속까지 박아넣었을 못의 무게다. 바람이 사막 소의 주검을 어루만지듯, 부어오른 발등을 가만가만 쓸어준다. 쓰레기장 같은 세상의 모든 악취와 찌꺼기를 저 구두가 해감한다. /김제 김영 시인
은빛 가위가 미친 듯이 춤을 추면 꼿꼿하게 버티던 검은 체온이 가차 없이 잘려 나간다 마치 목을 꺾는 동백처럼 대리석 바닥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엄지와 중지에 걸터앉은 시퍼렇게 날이 선 가윗날 날렵하다 못해 비상하는 한 마리 학처럼 우아하다 이발사의 빛나는 가위 손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신들린 듯 굿판을 벌이고 주인을 떠난 머리카락은 주검이 되어 바람을 탄다 짐짓 고요가 허우적대면 하얀 가운이 가부좌를 틀고 혼백을 이별하는 늙은 이발사의 기도가 시작된다 ============================== △우리들의 머리카락이 늙은 이발사의 가윗날에 잘려 나간다. 학처럼 우아한 가위질은 검은 체온을 가차 없이 잘라낸다. 이발관에 손님이 끊기는 시간이면, 하얀 가운을 입은 채 고요 속에서 가부좌를 트는 늙은 이발사가 있다. 주검으로 돌아간 검은 체온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늙은 이발사가 우리 동네에 있었다. 기도를 게을리하는 지 이발관과 이발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 /김제김영 시인
산나물 캐러 산속을 들어갔는데 나물이 기다리고 있을 자리에 노루 한 마리 지키고 앉아서 달아날 생각은 않고 흰꼬리 방둥이 들고 아악아악 너 누구냐, 소리 지른다 나? 사람이다 밤 열시, 낚시를 하다가 물가에 물체 하나 있어 불 비춰 바라본다 고라니 한 마리 물 가운데 서서 허리 굽혀 물을 먹는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저벅저벅 다가가 너 무엇하냐 물으니 나? 사람 아니다 달아난다 =============================== △나? 사람이다/ 나? 사람 아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종일 입가에 맴도는 말입니다. 단순히 시가 가진 리듬 때문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사람이었다가 다시 사람이 아니었다가 하는 순간들이 되풀이되곤 합니다. 한결같은 순간에도 사람의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이 진정 문사다운 삶이겠지요? 짧은 시 한 편이 거대한 울림으로 나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김제김영 시인
속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뜨기보다 속이거든 속아 주자 사랑을 셈하지 말고 우정을 저울질하지 말며 마음의 주판을 털어버리자 용서하지 못할 일도 내가 먼저 용서하고 조건 없이 한 뼘 내어 주자 약삭빠른 자들의 날카로운 눈빛보다 온순한 양의 마음으로 손해 본 것도 잊을 줄 아는 아름다운 바보가 되자 =============================== *요즈음은 바보가 될까 봐 안달인 세상이다. 해서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정보가 최고인 양 우겨대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에 서로 옳다고 우기느라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그냥 속아주면 어찌 될까? 이드거니 물러나 기다려 주면 어쩔까? 영원한 바보는 없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진실을 알게 된다. 셈하고 저울질하고 이익을 다투고. 손해 본 것조차 잊을 줄 아는 아름다운 바보가 새삼 그립다. /김제김영 시인
팽팽히 다림질한 수면에 조심조심 산 그리메 드리우다 물방개 길을 내며 나아가고 지워지는 물살에 미끄러지다 촉, 물잠자리 꽁지를 적시고 사라지다 바람이 무늬를 내이며 지나가다 설핏 허공을 지나가는 구름이 스며들다 호수, 파문을 지우느라 온종일 묵묵히 부산하다 ======================================== △산 그림자도 조심조심 드리우는 오송제 호수는 온종일 묵묵히 부산하다 구름이 스며드는 파문을 지우느라 바쁘기 때문일까. 심술부리는 물잠자리 꽁지를 적시고 사라지는 작은 파문이 내 고요한 생각을 흔든다. 물방개의 물길을 조용히 지우며 꼭 기억에서 지워야 할 사람도 지우개로 지운다. 바람의 발자국처럼 아닌 듯 다가오는 포근했던 사랑을 떠올려보는 자투리 시간이었다. /이소애 시인
바다 숲에 풀어 놓은 내 꿈을 거둬 줄줄이 엮어놓고 멀뚱히 세상을 바라보는 네 눈은 무심의 절정 끝도 갓도 없는 바다를 머금고 짭쪼롬하게 세월의 간을 맞추려는 네 몸뚱어리는 순응의 극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굴비라는 이름에서 비굴하지 않다는 게 보여 일렬로 묶여있어도 굽히지 않는 너의 자존. -------------------------------------------------------------- △ 회개와 속죄로서 정화하려고 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굴비를 바라보는 눈매가 아닌, 굴비가 세상을 짭조름하게 머금는 세월의 간을 맛보는 시인. 네 몸뚱어리는 순응의 극치라며 일렬로 묶여있는 굴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 엮어놓은 굴비보다 낮은 자세로 바라보아야 그 소리가 들린다.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려고 할 때 굴비가 세상을 바라본다고 느낀다. /이소애 시인
말없이 떠난 사람 생각 말자 애를 써도 생각나는 사람 하나 멀리 가까이 닮은 모습만 비쳐도 행여 그 사람인가 울컥 다가오는 사람 하나 잊기엔 너무 아파 사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야 할 그런 사람 하나 그리움으로 그리워하는 그리움 가슴 적시는 것은 그리움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움으로 그리워하는 그리움 가슴 속 깊이 묻혀둔 울음보가 울컥 온통 세상 밖을 적신다. 강물처럼 흐른다. 물결은 햇살 드리운 곳에서 사랑의 색으로 반짝인다. 초록으로 얼굴 내민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행여 그대의 모습이 보일까? 가슴 두근거리는 봄날이 왔다. 잊겠다는 약속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외로워지면 흔들리는 것 모두 그대 모습으로 보이는 걸 어쩌랴. /이소애 시인
제 몸 깎으며 하늘벽을 오르는 별은 오래 반짝이지만 제 몸 다 지니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별은 떨어져 돌이 되었다 나는 세상을 걸으며 강변에 왜 그렇게 돌이 많은지 다시 알았다 △ 이 시를 읽었을 뿐인데 천변에 깔린 돌을 밟으니 소리가 들린다. 놀랍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몸을 낮추면 돌이 하늘에서 왜 떨어졌는지가 보인다. 화자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별이었다고, 하늘벽을 오르는 별은 제 몸을 깎는 고통이 있었다고 내 마음을 붙잡고 호소한다. 용케도 선거철이면 돌은 서로에게 부딪히며 말을 세상에 내놓는다. 소음이 아니기를 바란다. 오래 반짝이는 별이 하늘의 주인공이다. 단 몇 행의 시어로 돌을 직조해내는 시인에게 따뜻한 봄꽃을 보낸다. /이소애 시인
여름을 얼리고 겨울도 얼리는 투명한 겨울 정거장 남으로 향하는 번지 없는 철새들이 동면하는 기억을 깨워 철로 없는 투명열차를 타고 야간여행을 떠날 때 난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다 꺾어지고 부러진 겨울에 헤메이는 목마를 타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듯 얼굴 없는 겨울에 빈 다리를 건너고 넘어 투명열차를 타고 야간여행을 하고 싶다 ========================== △야간여행은 생각만 하여도 마음이 설렌다. 철새들이 동면하는/ 기억을 깨워 투명열차를 타고 목적지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삶의 팁이다. 야간열차는 분명 나 혼자인데도 동반자가 보인다. 차창밖에 비친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쓸쓸한 그리움을 눈치채고 뺨에 적시는 눈물이 있어, 너는 나다. 기차 바퀴 소리에 헝클어진 시어들을 정돈해 보는 소리와의 융합이 야간여행이다. /이소애 시인
청풍靑風의 땅 작은집 모퉁이에 하나둘 사라져가는 삶의 흔적을 지켜보던 가슴이 철딱서니 없이 익어갔다 아~ 하루가 익어가는 이 밤 그 무엇이 두려워 잠들지 못하고 어둠의 늪에서 헤매고 있을까? 서서히 지워져 가던 삶의 흔적들 안방 화롯불에선 뜨거운 세월이 마지막까지 들썩이며 아우성치다 시나브로 지쳐 연기처럼 무너질 때쯤 지친 문풍지마저 바르르 떨고 있다 고뿔 한번 들지 않는 세월- 간절히 붙들고 싶었던 흔적들 철없이 휩쓸려가는 삶의 늪 속에 신음하는 가막골 양반 ========================= △며칠 전 고인이 된 시인에게 빚을 갚기 위해 붓을 들었다. 진작 초대했어야 마땅한데 내가 게을러 빚쟁이가 되었다. 그 무엇이 두려워 잠들지 못하고/ 어둠의 늪에서 헤매고 계실 것 같아 뜨거운 세월을 살다 가신 시인께 흔적을 붙잡아 드린다. 간절히 붙들고 싶었을 시간이 문풍지처럼 바르르 떤다. 삶의 늪 속에서 신음하시는 모습을 고스란히 새겨드린다면 고엽제에 피폭되어 통증을 견뎌내는 모습이다. 시詩가 시인의 흔적이다. /이소애 시인
저녁 7시의 핸들이 무겁다. 소태정 고개를 넘어 멀리 전조등을 내쏜다. 귀가하는 불개미들의 불빛이 굼실굼실 꼬리를 물고 다가왔다 지나간다. 섬광이 번쩍, 눈앞이 캄캄하다. 온몸이 감전된 듯 소름이 돋는다. 낯선 인연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하루 피곤을 짊어진 불개미들이 지금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구가 수만 바퀴 돌다 망가질 때까지 그렇게 불개미들이 짐을 지고 헤맬 것이다. ========================== △ 지구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불개미들은 살아있을 것이다. 세상의 종말까지 불개미들은 일을 할 것이다.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불개미들은 귀가하고 또 출근할 것이다. 그래서 제가 기어이 불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그 불이 꺼지는 날 비로소 우주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김제김영 시인
새벽 잠버릇에 하루가 길다 용건에 맞게 미리 물건을 챙기지 못한 날 손발에 고양이 한 마리 붙어살아도 늘 치매기가 발동하여 큰 눈으로 어둠을 쓸지만 그만 소리의 발을 밟고 만다 매섭게 추운 날 미화원의 날카로운 비질 소리 같은 시간쯤 만나지만, 먼저 건넨 인사말 되돌아오지 않아 듣지 못해 그러려니 하고 다시 건네도 들리는 토막말 아직 없다 그냥 지나친 일상이 부끄러워 가슴이 찔렸을 거라는 속 좁은 내 생각 경인년 동짓달 가로등 밑 애써 되돌리고픈 마음의 꼬리 바람이 헤적여 낙엽처럼 날린다 ============================= △ 애써 돌리고픈 것들이 어디 마음뿐이랴. 아버지의 굽은 등도 돌려놓고 싶고, 어머니의 손마디도 돌려놓고 싶다. 총총하던 총기도 돌려놓고 싶고, 화사하던 꽃양산도 돌려놓고 싶다. 돌려놓고 싶다는 건 다시 불러오고 싶다는 것, 가난하지만 쇄락했던 마당도 불러오고 싶고, 사람과 사람 사이, 따뜻하던 인정도 불러오고 싶다. /김제김영 시인
바다의 언어는 파도다. 밤낮없이 제 살을 주름잡아 세상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풀지 못해 천지창조의 주역과 조역을 알지 못한다 거센 파도가 치면 바다는 더욱 푸르러 바람과 화답하고 가슴에 안개 거친 날은 파도와 바다가 한 몸 되어 해원에 언어의 씨앗을 뿌린다 파도는 우주의 역사를 상형문자로 기록한 바다의 언어다. ================================== △ 바다는 파도로 제 말을 하는구나. 제 살을 주름잡아 만든 파도라는 상형문자로 우주의 역사를 기록하는구나.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구나. 가슴에 거친 안개 가득한 날은 머나먼 수평선 끝까지 언어의 씨앗을 파종하는 구나. 그래서 바다에는 늘 윤슬이 조잘대는 구나. 바다의 언어를 받아쓰는 시인은 우주의 역사를 받아쓰겠구나. /김제김영 시인
별스레 눈이 간다 많고 많은 나무 중에 오랜 날부터 사랑 받아서가 아니다 바람 부는 언덕이 추워서도 아니다 왜 좋아, 물으면 벙어리처럼 우물거릴 뿐 이끌리는데 무슨 이유 있을까 가까이 가는 사람이 있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 △ 매화가 봄꽃의 으뜸인 것은 단지 꽃이 지닌 향기 때문일까? 오랜 관습 때문일까? 딱히 꼬집어서 말하긴 어려워도 어쩐지 늘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 추위가 극성을 부리는 동안에도 끝까지 봄을 믿는 사람이다. 얼어붙은 현실을 포기하지 않고 꽃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온 생을 치열하게 정진하여 마침내 피어나는 꽃 같은 사람이다. 어둠을 이기고 새벽 이마에 이슬 한 방울 얻어두는, 그런 사람이다. /김제김영 시인
하늘은 오늘도 그냥 열려 있다 삼라만상이 아직은 무사하다 벽 앞에 서보라 벽 어딘가에 문이 있다 문이 없는 벽은 이미 벽이 아니다 벽이 없는 문도 문이 아니다 우리는 벽을 위하여 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문을 위하여 벽을 쌓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문을 만들기 위하여 벽을 쌓고 있다 ==================================== △ 벽에게는 무언가를 막고, 구분하려는 의도가 이미 내재되어 있다. 벽에게는 무언가를 지키고, 통합한다는 의미도 이미 내재되어 있다. 해서 벽은, 소통과 폐쇄, 분열과 화합의 의미를 동시에 가졌다. 해서 세상의 모든 문과 벽은,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다. 그대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완강한 벽 앞에 서 있는가? 완강한 벽은 반드시 문을 준비해 두고 우리를 기다린다. 문도 벽에 기대어 서서 우리를 기다린다. 한 발자국만 더 디뎌보자, 조금씩만 더 마음을 내어보자. /김제김영 시인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태풍의 눈 ‘통합 전주시장’
남원 모노레일 500억 참사, 시민은 분노한다
완주‧전주 통합, 특례시 지정으로 완성해야
지방선거 앞 공무원 정치적 중립 원칙 지켜야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공직 후보자, 아는 만큼 참모습이 보인다
김온 : 다섯 줄
대선 패배의 반성과 교훈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