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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바라보았다 지렁이의 시간 속에서 두더지의 뾰족한 털이 자라나길 기대하면서 거꾸로 박힌 털을 하나씩 길러내며 역모(逆謀)를 꿈꾸듯 더듬거려보았다 삶을 자꾸만 실험하면서 실패를 반복하면서 어떤 가설도 정설로 받아주지 않는 암실에서 이 실험실의 각성제와 수면제의 틈에서 썩지 않는 화학공식을 깨면서 희미하지만 더듬거리는 손가락들에게 램프를 쥐어준다면 지렁이의 눈에 안대를 씌어준다면 삶도 자꾸 닳아져서 희미해지겠지 살을 닮아가면서 몸의 털들이 일어서며 삶을 살아가겠지 삶이나 살이나 화살을 뒤쫓아가겠지. 두더지의 시간이나 지렁이의 시간이나 텅텅 울리는 암실에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텅 빈 교실에서△시를 쓰는 사람은 항상 사물들과 암중모색 중이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텅 빈 교실에서, 혼자만의 암실에서 고독한 모색을 한다. 어둠에 익숙한 두더지가 되어 역모를 꿈꾸듯, 기존의 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참신한 시를 꿈꾼다. 그런 시를 무럭무럭 기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에는 정설이 없다. 모든 가설은 그냥 가설인 채 존재할 뿐이다. 훗날, 과거를 토막 내는 시대 안에 하나의 사조로 군말 없이 엮일 뿐이다.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 끝에 램프를 켜들고 자꾸 닳아가는 시인이여, 생은 실패를 실패라고 기록하지 않는 법이다. <김제 김영 시인>
저것은 아직 주검이 아닐 것이다.전주 덕진공원 덕진호반에는 붉게 마른 연대들이 고개꺾고 허리 꺾고 팔 다리 툭툭 꺾어 물속으로 서걱서걱 들어가는 중이다.바람 아래무수히 나부대는 한 마당 도리깨질 같다. 한 바탕행진 같다. 무성영화 같다.저것은 물론 죽은 아버지들의 이름이다.물 깊은 바닥 캄캄하게 쌓여 썩을 것이다.거기 또 불 질러새로 한 세상 꽃 피는 법일 것이다.△외롭고 쓸쓸할 때 겨울 연(蓮)을 만나보라. 칼바람에 꺾인 고요와 부러진 영혼이 숨어 있는 무성영화를 볼 것이다. 물속으로 서걱서걱 들어가는 마른 잎맥은 햇볕 한 줌 품고 있어 찬란한 슬픔이 보인다. 겨울 연이 강인한 것은 물 깊은 바닥에서 앙금도 품어 꽃피울 태세를 하기 때문이리. 말라비틀어진 꽃대를 꺾지 말지어다. 주검이 아닌 살아 있는 초록이다. 이소애 시인
가을이 오고 단풍이 물들면가슴 속 숨은 암반수 넘쳐흐른다그대 떠난 날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부르튼 입속으로슬픔을 꿀꺽 삼키던 통증,달력 걸린 못에 고무줄 걸어 첫 표시하고찰랑찰랑 저울 수 헤어보며성냥개비 숫자로 표시한 후긴 손톱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맘 놓고 마시던 때가 아련하다할머님이 빚었던, 시큼 달큰한 우리쌀우리밀의 농주 한 사발 마실 때면울긋불긋 가을 산으로 물들었다쌀쌀한 늦가을 해질녘에두 눈 붉게 충혈되어, 그대 떠난먼 산 바라보며멍먹한 목구멍으로 들어붓는 술부추전 손으로 집어서우적우적 눈물 섞어 삼키고 있다△농주 한 사발 마시면 상처만 남긴 옛사랑이 떠오른다.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부추전 손으로 집어서 또 한 잔 마셔볼까? 늦가을의 풍경은 화사한데 황금 옷을 벗어버린 은행나무 꼭대기 옥탑방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둥지를 떠난 사랑. 그 위태로웠던 사랑은 별리 이후에도 통증만 남는다. 새끼손가락으로 저어서 취하도록 마시고 싶은 농주가 아른거린다. 이소애 시인
퍼렇게 사무치다가노랗게 부끄럽다가홀로 몸 뒤틀며고뇌까지 다 털고혼곤히 철학을 한다△무작정 걸어보고 싶은 가을이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은 머플러로 감싸주면 따뜻한 온기로 마음의 문이 열린다. 은행나무에 투사된 시인을 떠올려 본다. 가슴이 시퍼렇게 멍이들 정도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마냥 부럽다. 시간이 쌓여 노랗게 물든 추억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한 그 사랑이 단풍들었구나. 이젠 소멸의 아픔을 견디어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고통을 통하여 기쁨을 만날 수 있도록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에 내 몸무게를 올려 본다. 소멸의 철학을 경험해 보기 위해서다. ·이소애 시인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모악산을 오른다진달래 활짝 웃는 봄매미들이 합창하는 여름오색 단풍 아롱진 가을하얀 이불 펴 놓고 손짓하는 겨울철마다 반겨주는 모악산은어머니의 품이다안항 친구들아 올 가을에도모악의 어머니 품을 찾아돈독한 우정을 다지자△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산이다. 시의 힘은 어머니를 사계절로 치장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경에서 눈물과 웃음과 기쁨 그리고 고통의 모습으로 떠오르는 어머니가 존재한다. 사유의 폭이 경이롭도록 깊다. 금방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줄 것 같은 모악산의 바람. 그 바람 품속으로 안기기 위해서 화자는 가을을 등에 짊어지고 간다.<이소애 시인>
모음과 자음 사이에단단히 끼어 빠지지 않는 존재밀려나거나 배회하는 아웃사이더는 아니라서떨어져나갈 일은 없겠지만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중심이 되지 못하는휘황찬란한 도시의 밤하늘에 손톱 달처럼 있으나 마나한그러나 아는 사람은 꼭 찾아서 확실하게 끼어주는샛길이나 샛강처럼 옆으로 빠져도 의미 단단하게 지켜주고고깃배처럼 따로 노는 고기와 배를 일심동ㅊ로 묶어내며윗마을 아랫마을처럼 얼마간의 거리를 튼실하게 확보하여실한 고리로 묶어주는 짭짤한 역할평생 뒤에다 모음을 두지 못하여일가를 이루지 못하는 고독한 솔로△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역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변절자, 혹은 회색분자, 혹은 이기주의자라고 밀어냈다. 그래서 사이시옷은 하나의 성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심지어 달팽이도 왼돌이나 오른돌이는 있어도 사이돌이는 없다. 해서 무리를 지을 수도 없다. 제 영토를 주장하지 않고, 제 일가를 이루지도 않는 절대고독의 음소다. 다만 누군가의 발뒤꿈치를 받쳐주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고, 중재하는 일에 열심일 뿐이다. 간혹 등굣길이나 장맛비처럼 낯선 중재안을 내놓기도 하지만 자음의 존재감을 된소리로 살려주는 사이시옷은 얼마나 지극한가? <김제 김영 시인>
초라한 모습으로 버스에 오른다고속도로 주변 건물들이 아는 체 한다얼마나 자주 봤으면 나를 기억할까나무들은 손을 흔들고큰 건물들은 눈웃음 보낸다잘 댕겨오라고△아프다. 아픈 시인이 병원에 간다. 병원 가는 길은 이젠 익숙해서 기나긴 고속도로 주변을 훤히 꿰고 있다. 큰 건물이나 낮게 엎드린 작은 집들이 익숙하다. 구릉구릉 이어지는 산들과 친하고 무장무장 흐르는 강들도 잘 아는 이웃이 되었다. 잘 다녀오시라고, 꼭 이겨내시라고 나무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걱정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과 한마음으로 시인이 꼭 건강해질 것이다. 김제 김영 시인
이 비는 무슨 비?장맛비!내 어릴 적엔 그냥 장마비였다어느 날부터 서울이,서울사람이 표준이 되었던가내 사는 이곳은 전라도 남원아직도 먼 과거형으로 비는 맹물 맛인데한반도엔 장맛, 장맛비가표정 없는 표준으로 지겹도록 내리고△서울사람이라고 다 표준 아니다. 중류사회에 속해야 표준이다. 어디 말뿐이랴? 여론도, 문화도, 돈도, 예술도, 다 서울, 중류, 이외는 변방이 되어버렸다. 어디고 점을 찍으면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말은 우리를 혹세무민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유명 예술인의 이름에 기대지 않으면 낮은 수준으로 취급해 버리는 지역 문화예술의 현주소도 그야말로 장맛이다. 지겹도록 표정 없는 표준이다. 김제 김영 시인
산을 아름답게 보려거든저만치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사람도 아름답게 보려거든저만치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산속 깊이 들여다보면살생과 약탈, 반항과 분노약육강식의 속살이 보이나니,사람 속 깊이깊이 들여다보면모함과 증오, 가식과 허위환멸스런 속살이 보이나니,너무 가까이 다가서지 말라.너무 멀리 도망치지 말라.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그대 아름다움이그대로 아름답게 보이리라.△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저만치의 거리는 얼마큼일까? 일주일에 한 번 밥 먹는 사이는 너무 가까울 것이고 해가 바뀌도록 전화 한 통화 없는 사이는 너무 멀다. 한 달에 한 번 안부 나누는 사이 역시 너무 도식적이다. 불현듯 보고 싶은 사이, 딱 그만큼의 정이면 되겠다. 풀과 씨름해야 하는 전원생활보다 한 발 떨어져 그림 같은 집에 들어가 사는 꿈을 꾸는 그만큼의 거리가 더 행복할 듯하다. 그 거리가 가슴 설레는 거리다. 가슴과 가슴이 나누는 교신이 아예 끊기지 않는 거리가 적당한 거리다. ·김제 김영 시인
어머니, 참깨를 보내오셨다보따리에 묻어온 가을 한 됫박둥그런 저녁 밥상에 통깨 뿌린 겉절이입안 가득 환한 깨꽃이 핀다참 깨소금 맛이다꾸러미 꾸러미 꾸려놓고흐뭇해하셨을 깨꽃처럼 하얀 어머니뙤약볕에 얼마나 볶였을까들들 볶일수록 톡 톡튀어 오르라고 보내셨나?달달 들볶인 하루가 톡톡 튀어 오르며고순내 진동한다△참깨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시다. 가을 햇볕 쨍쨍한 앞마당에서 도리깨질하던 정겨운 풍경이 눈물겹도록 떠오른다. 긴 막대기로 탁탁쳐서 참깨를 얻어내시던 그 사람들이 모두 하늘나라에 있으니 키로 까불고 체로 치는 일은 별들이 하겠구나. 도리깨질 소리에 가을이 여물어 가는데 통깨 뿌린 겉절이가 입맛 돋운다. 둥그런 밥상에 누구를 초대할까 마음 설렌다. ·이소애 시인
밤 가면 아침이듯, 바람에 비 오고비 오니 천둥번개 치면서가뭄과 장맛비의 소나기에폭설이 하얗게 쌓이는봄, 여름 갈 겨울을순리로 쫓는 온골사람들은너 나 없이 넉넉한 마음이라서완산칠봉 위의흰 구름은 노저어가고다가산에 고운놀이 일어맑게 흐르는 냇물과 같이못 잊어 찾은 모악산 바람이덕진못 연꽃을 간질이고 있네요.△동학농민군 전주입성비가 있는 완산칠봉에서 전주찬가를 읊어본다. 아카시아꽃 향기에 처음 취해본 다가공원에서의 청춘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덕진공원의 연꽃과 흔들다리의 아슬아슬한 생의 모습도 그려본다. 천년 전주의 마실길인 전주천에서 화자의 지난 시간을 띄워보면 어떤 소리가 날까? 남부시장 온골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이 가슴으로 들려올까? <이소애 시인>
샘들이 있어 못 잊히는 곳아니다먕부석의 기다림에그리운 곳이 아니다내장산이 있어 못 잊히는 곳도 아니다정읍살구꽃 같은 사랑의 꿈길이정읍천 물굽이를 핥고손을 흔들다그만 가슴앓이 하는바람이 있어서이다정읍붉은 함성을 몰고 오다입술 깨물어 떨어진 핏자국에황토가 붉게 물들었구나△어렸을 적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정읍은 맑은 시냇물이 곳곳에서 흘렀다. 매일 소쿠리를 들고 물고기를 잡았다. 냇물은 내 고무신을 빼앗아 도망치기도 했다. 내장산에서 ‘단풍’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으며 사랑의 색도 느꼈다. 화자는 가슴앓이하는 바람이 있어 향수를 느끼나 보다.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는 황토빛 고향이 그립다. 이소애·시인
오목대에 올라고려의 멸망을 조롱하며조선 건국의 야망을 드러냈던이성계 장군은 몰랐다하늘이 안아주고 지켜주는온전한 온 고을이기에완전한 고을 전주이었음을장군 이성계는 까맣게 몰랐다518년 만에 종지부를 찍은반 천년 조선의 역사를유구히 이어갈 수 있게 하는도심지가 꽃심이란 것을온전한 고을 전주가바로 그 꽃심이었다는 것을태조 이성계는 미처 몰랐다△꽃심 전주를 생각한다.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인 꽃심이 전주의 정신이다. 오목대에 오르면 반 천년 조선 역사 속에 내가 있다. 상수리나무 그늘에서 태조 이성계를 떠올려보는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온고을 전주의 숨소리를 들어 본다. 꽃심은 대동, 풍류, 올곧음, 창신 등 네 가지 정신을 품고 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온고을에서 매미 소리를 듣는다. 오목대에서. 이소애시인
민낯으로 뒹굴던논배미마다에니 논 내 논다 잡아 물 가둬세 살배기 눈으로 본바다 논에서연두 애기씨 보듬는 손길에엄니 마음이 숨어 있어라우긴 못줄에 걸어둔풍년가 소리도 없이농기계 지난자리마다아슬아슬 버티더니만어느새기지개 쭈욱 켜며오늘 또 내일 다르게드넓은 김제 들녘초록바다 어우르고풍년가를 준비해요△못줄 잡던 상칠이 오빠도, 허리 다 꼬부라지게 모심기하던 순이네 어머니도, 걸핏하면 미끄러져 논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던 모쟁이 영진이도 모두 갔다. 세 살배기는 무논이 바다인 줄 알고 좋아하지만, 그 무논을 바라보는 나는 엄니가 그립다. 세상에서 제일 잘 벼려진 저 푸른 말씀들. 김제 김영·시인
햇볕 지나간 자리에노란 병아리 주둥이 만큼싹이 나오더니뻐꾸기 소리에 깜짝 놀라 한 뼘 크고까치 소리에 뜀뛰듯 또 한 뼘 자란다구름 보고 훌쩍 한 뼘 크고익어간 산 빛이 좋아 또 한 뼘 자란다밤하늘 별을 세면서 한 뼘아침 이슬 반짝이자 또 한 뼘식욕이 왕성한 들짐승도 아닌 것이기차를 타고 먼 나라 여행이라도 하는 줄 안다이윽고 호박 넝쿨은 온 언덕을 덮더니들깨 밭까지 내려와 허리를 칭칭 감으며이젠 하늘마저 덮을 듯 기세가 등등하다샛노란 호박꽃 활짝 웃음 짓듯내 알량한 신앙도 그렇게 자랄 수 있다면얼마나 좋을까△여름 내내 밭두렁을 타고 무성하게 벋어나가는 호박 넝쿨을 보고 있다. 푸른 숨소리가 귓전에 닿아 기세 좋게 벋는 호박 넝쿨을 바라보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 햇볕과 바람, 세상 모든 것이 여름 내내 호박 넝쿨을 키운다. 뻐꾸기, 까치, 구름, 산, 별, 그리고 아침 이슬까지 모두 호박 넝쿨을 키우는데 골몰하고 있다. 드디어 넝쿨손이 하늘에 닿았다. 삶의 부기를 다스리는 달짝지근한 성품이 완성되었다. 김제 김영·시인
억양이 틀어지고 특이하게 변하는촌스러운 방언 눈물 나게 정겹다얼씨구, 맞장구치는전라도 사투리허벌나게 와버리랑께느그들 그러코롬 싸가지가 없어 어따 쓰것냐니기미, 시방 모라코라어따 껄떡대지 마소△교수님께서 지역 방언에 관한 논문 쓰시는 곁에서 내 토종 사투리를 그대로 발음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김제를 벗어나 본 적이 없고 게다가 나는 사투리를 징허게 많이 썼기 때문이다. 삐얄기, 소시랑 호맹이, 달챙이, 멀크락, 교수님이 풀어서 물으시고 나는 단어로 대답하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전라도 사투리를 모아 놓은 폴더가 내 컴퓨터 안에 떡 버티고 있다. 전라도 서부지역 사투리는 조선 전기 국어(고어)와도 많이 닿아있다. 덕분에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그냥 척척 해석되곤 했다. 야 시얌에 두름박질허는 박적 깨져 버렸다잉 살살 썼는디 히마대기 하나 없이 짜개져버렸네잉. 시인의 말처럼 촌스럽지만 눈물 나게 정겹다. ·김제 김영(시인)
태양이 지상의 커튼을 젖히며붉은 장미뚝뚝옥정호 휘도는 길목국사봉 계단에 놓인걸음걸음정지된 시간 너머로몇 겁 인연인가붕어섬은 시방물비늘이 낮별로 떼지어무도회 폴카 연습 중하늘바라기 푸른 숲엔들숨 날숨 콩닥콩닥합궁 채비중이다△덩굴장미가 붉은 태양을 업고 지상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옥정호 바람을 휘돌며 오솔길에 이르면 철조망 담장 위로 고개를 내민 장미의 유혹에 발길을 멈춘다. 초여름의 유혹은 팔뚝을 걷어 올린 옷으로부터 매력을 느낀다. 뚫어지게 보아야 붕어섬으로 보인다. 물비늘이 낮별로 떼 지어 무도회를 하는가? 덩굴장미의 얼굴이 붉은 이유를 알겠다. 이소애 (시인)
바람 일지 않게스란치마 끄는 소리로그러나 여물게 굴러 떨어지는잎새에 흘러소년의 반짝이는 이꽃잎에 앉아소녀의 부끄러움산천을 씻는 빗물 방울방울산도 들도 초록 세상한 마리 새로 날아서 올라구름도 초록으로 물들이고 싶은△스란치마를 입은 여인의 자태를 생각한다. 대청마루에서 들리는 스란치마 끝자락 소리를 떠올려 본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영글게 세상으로 굴러떨어지는 비가 초록이다. 초록 잎에 몸을 내려놓으니 초록빛이고 산천이 초록이니 초록 비리라. 비는 옛날 옛적 소년과 소녀를 떠올리는 부끄러움에 젖게 한다.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빗방울을 새의 날개에 적셔 보고 싶은 화자. 구름에 스며들고 싶은 그리움 때문일까. 이소애 시인
당신을 사랑하는 이 가슴망울진 채 평생피워낼 수 없다면이대로 돌이 되어그대 몸 다하던 날석관石棺으로 깎여향기어린 마디마디이승의 파편들을감싸고나 살으리.△애절한 사랑이 담긴 시다. 화자에 몰입하고 보니 마치 사춘기 시절 가슴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수수만년 머리가 하얗도록 꽃피우지 못한 그늘진 사랑을 품고 살다니요. 얼마나 한이 맺혀 그대의 석관으로 거듭나서 이승의 파편들을 감싸고 싶다니요. 허리통증도 아픈 사랑을 공유하는 표징인가요. 사랑하지 않으면 시인이 될 수 없는 건가요. 시인은 우주의 모든 사물을 사랑할 때 시가 분출한다지요. 이소애 시인
손때 맵기로 동네 소문 난 핏대양반어느 여름날 점심,보리밥에 찬물 말아 왈칵왈칵 먹는데울퉁불퉁 인상 궂은 청양고추생된장에 푹 찍어 먹었겠다.약찬 풋고추가 깨나 매웠던지입 호호불어 대며 손부채 부치다가물 한 대접 들이킨다.아이 매워 아 참 고놈, 눈물이 다 핑 도네겸상 밥 먹던 중3 아들아버지, 매운가요?아무리 매워도 아버지 손때 맛만 하겠어요.△마치 어렸을 적 평상에 앉아서 먹던 보리밥이 생각난다. 찬물에 말아 마른 굴비 쭉쭉 찢어 먹던 그 맛. 어머니가 장독에서 퍼온 생된장에 청양고추를 찍어 먹어 보아야 여름을 체험한다. 매운맛에 손부채를 부치다가 물 한 대접 들이키기를 수차례 하다 보면 여름이 갔다. 아하, 아버지 손때 맛이 맵던가요? 아무리 매워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그 맛을 보여 줄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 이소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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