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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다불 켜진 창마다언어가 사는,불 꺼진 창마다언어가 숨는소설이다시다△짧은 시 속에 고층아파트 숲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숲속에 살면서도 숲을 보지 못하고 콘크리트 벽에 새긴 아파트 이름과 동을 표시하는 숫자만 읽곤 했었다. 그 속에서 살고 있을 사람은, 아니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새벽에 나보다 먼저 불이 켜진 아파트를 보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일 거라고 내 자신에게 응답했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고층아파트 창문을 바라보니 네모난 창문이 원고지 같았다. 그런데 그 속에 언어가 살다니요. 놀랍습니다. 불 꺼진 창은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행동하는 언어가 숨어 있다니요. <시인 이소애>
해가 뜨면일제히 고개를 드는해바라기내 온몸의해바라기는너를 향해 있다눈부신 노을을 남기고산을 넘어간 너 때문에잠들지 못하고내내너만 향해 있다.해가 뜨면너를 향해 다시 고개를 드는나는 해바라기△ ‘너’라고 부르는 강렬한 소리가 창문을 깬다. 쫘악 금이 간다. 눈부신 노을을 남기고 떠난 너, 온몸이 너를 향해 있어 잠들지 못하고 울부짖는 해바라기, 태양이 떠오르면 저절로 고개를 들고야 마는 연약한 해바라기를 불러본다. 온몸이 너를 향해 있음은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일. 온통 그리움으로 화자는 하루를 사는 걸까. 혹여 화자를 잊고 산을 넘어간다 할지라도 먼발치에서 빛의 부스러기를 맞이할 슬픔이 보이는 시다. 나는 너의 해바라기이니까. <이소애 시인>
눈빛조차 짜다내장 다 빼낸 뱃속을 소금으로 봉한 채통증을 발라먹고 있다시장 모퉁이물 간 바다 한 자락,갯비린내 풀풀 날리는 햇살 쫓느라물 한 바가지 끼얹자몸을 절였던 바다가 허공 가득 풀린다간을 쳐도 스미지 않는 몸,한 때, 꼬리지느러미로 검푸른 바다 휘감았던 그가더는 상할 것도 없는 짜디짠 고집그 힘으로좌판에 누워 온종일 시장바닥 헤엄치고 있다.△참 맛깔스러운 시다. 좌판에 누워 시장바닥 헤엄치고 있을 간고등어가 나의 마음을 끌고 갔으니 나를 흔들어 놓은 시다. 짭조름한 간고등어는 연탄불에 굽고 있을 어머니 손 냄새에서도 났다. 그 냄새는 어린 시절 햇볕 잘 드는 마루에서 귓밥 제거 할 때, 어머니 몸빼바지에 배 있어 사르르 졸음 속에서 검푸른 바다를 상상하게 하였다. 월급날 신문지에 돌돌 말아 들고 오시는 아버지의 축 늘어진 어깨가 눈에 선하다. 온종일 통증을 발라먹고 산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시다. 이소애 시인
입으로 토해놓은 辯(변)을 씻을 방법이 있을까내장의 비밀한 나눔과 착취를 거친 便(변)은 어떤지외출하는 변은 서로 같은데하나는 무형이고 하나는 유형이네체면을 위한 가식의 그림자 속에냄새나는 辨(변)과 便(변)은서로가 너무 가여웠다삶이 계속되는 한 인생의 구역질을 맑은 하늘에 쏟으며흙으로 돌아갈 여생의 평화를 기원한다저 便(변)의 근원은 입구의 辯(변)을 우러러보다가끔 저주를 퍼부어대며 진한 향기를 바친다△살아있는 것들의 토사물 중에서 이로운 것은 꿀밖에 없다는 말을 문단 말석에 앉아 들은 적 있다.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화음과 칭찬의 말도 이로운 것인데 왜 꿀밖에 없다고 하시는 걸까?시간 좀 지나니 얼핏 이해가 간다. 아름다운 화음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고, 칭찬의 말도 상대적인 것이어서 마냥 이롭지만은 않은 듯하다. 설마 꿀이라고 다 이롭기만 할까? 오늘 하루라도 辯(변)을 토하지 말아야겠다. 모처럼 하늘이 맑지 않은가?<김제 김영 시인>
부모 곁을 처음 떠나기숙사에서 대학 다닐 때 보내온내 아버지 엽서 한 장첫째, 남 쉴 때 공부하고둘째, 남 잘 때 공부하고셋째, 남 공부할 때 공부하라. 고내 자식들 상경하여 학교 다닐 적에내가 보낸 엽서 한 장남 쉴 때 함께 쉬고남 잘 때 같이 자고남 공부할 때 그냥 공부 좀 하고 건강하면 된다. 고우리 아이들과 나보통으로 잘 살고 있다.△보통으로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남 쉴 때 공부하고 남 잘 때 공부한 이유가 어찌 자식 당대의 성공을 위해 부탁하신 말씀이시겠는가? 아버지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여 차곡차곡 내공이 쌓이면, 이젠 남 잘 때 같이 자고, 남 쉴 때 같이 쉬면서 보통으로 살 수 있는 내공이 생기는 것이다. 그 시절 어른들이 견뎌내신 실패의 경험이 축적된 유전자의 힘으로 후손들은 이제야 보통사람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 <김제 김영 시인>
아프리카 별들은 죽어 바다에서 다시 태어난다물보라처럼 솟아오르는 것은 하늘의 영혼동그란 똥 덩어리 하나면 평생을 먹을 수 있는쇠똥구리가 제 몸보다 큰 먹이를 지고서 간다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길을 재촉하지만 끝내 모래밭에 갇히고 말았다시지프스처럼 모래 언덕을 오르다 미끄러지고다시 일어서 굴려도 보는데 먹이는 그새 말라버렸다먹이를 짊어지고 있을 때에는 앞을 볼 수 없었던 그는먹이를 버렸을 때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볼 수도사막을 바로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별들은 바다에 떨어져 새로 태어나고쇠똥구리는 편안한 잠을 청하였다△아프리카의 밤은 온천지가 다 별 밭이다. 낮 동안 하늘을 우러러본 모든 것들이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주린 배를 밤새 달래는 아이의 눈동자도, 그런 아이를 우두커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유칼립투스 이파리도, 그걸 밤새 채록하는 시인의 눈도 모두 모두 별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목전에 두고 끝내 굴러떨어진 쇠똥구리가, 최소한의 먹이조차 말라 비틀어져 버린 쇠똥구리가, 사막을 건너간다. 갈증이 비구름 쪽으로 길을 잡는다. 밤하늘의 별들이 왜 그렇게 그렁거리는지 아프리카는 안다. <김제 김영 시인>
눈을 감고 바라보았다 지렁이의 시간 속에서 두더지의 뾰족한 털이 자라나길 기대하면서 거꾸로 박힌 털을 하나씩 길러내며 역모(逆謀)를 꿈꾸듯 더듬거려보았다 삶을 자꾸만 실험하면서 실패를 반복하면서 어떤 가설도 정설로 받아주지 않는 암실에서 이 실험실의 각성제와 수면제의 틈에서 썩지 않는 화학공식을 깨면서 희미하지만 더듬거리는 손가락들에게 램프를 쥐어준다면 지렁이의 눈에 안대를 씌어준다면 삶도 자꾸 닳아져서 희미해지겠지 살을 닮아가면서 몸의 털들이 일어서며 삶을 살아가겠지 삶이나 살이나 화살을 뒤쫓아가겠지. 두더지의 시간이나 지렁이의 시간이나 텅텅 울리는 암실에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텅 빈 교실에서△시를 쓰는 사람은 항상 사물들과 암중모색 중이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텅 빈 교실에서, 혼자만의 암실에서 고독한 모색을 한다. 어둠에 익숙한 두더지가 되어 역모를 꿈꾸듯, 기존의 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참신한 시를 꿈꾼다. 그런 시를 무럭무럭 기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에는 정설이 없다. 모든 가설은 그냥 가설인 채 존재할 뿐이다. 훗날, 과거를 토막 내는 시대 안에 하나의 사조로 군말 없이 엮일 뿐이다.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 끝에 램프를 켜들고 자꾸 닳아가는 시인이여, 생은 실패를 실패라고 기록하지 않는 법이다. <김제 김영 시인>
저것은 아직 주검이 아닐 것이다.전주 덕진공원 덕진호반에는 붉게 마른 연대들이 고개꺾고 허리 꺾고 팔 다리 툭툭 꺾어 물속으로 서걱서걱 들어가는 중이다.바람 아래무수히 나부대는 한 마당 도리깨질 같다. 한 바탕행진 같다. 무성영화 같다.저것은 물론 죽은 아버지들의 이름이다.물 깊은 바닥 캄캄하게 쌓여 썩을 것이다.거기 또 불 질러새로 한 세상 꽃 피는 법일 것이다.△외롭고 쓸쓸할 때 겨울 연(蓮)을 만나보라. 칼바람에 꺾인 고요와 부러진 영혼이 숨어 있는 무성영화를 볼 것이다. 물속으로 서걱서걱 들어가는 마른 잎맥은 햇볕 한 줌 품고 있어 찬란한 슬픔이 보인다. 겨울 연이 강인한 것은 물 깊은 바닥에서 앙금도 품어 꽃피울 태세를 하기 때문이리. 말라비틀어진 꽃대를 꺾지 말지어다. 주검이 아닌 살아 있는 초록이다. 이소애 시인
가을이 오고 단풍이 물들면가슴 속 숨은 암반수 넘쳐흐른다그대 떠난 날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부르튼 입속으로슬픔을 꿀꺽 삼키던 통증,달력 걸린 못에 고무줄 걸어 첫 표시하고찰랑찰랑 저울 수 헤어보며성냥개비 숫자로 표시한 후긴 손톱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맘 놓고 마시던 때가 아련하다할머님이 빚었던, 시큼 달큰한 우리쌀우리밀의 농주 한 사발 마실 때면울긋불긋 가을 산으로 물들었다쌀쌀한 늦가을 해질녘에두 눈 붉게 충혈되어, 그대 떠난먼 산 바라보며멍먹한 목구멍으로 들어붓는 술부추전 손으로 집어서우적우적 눈물 섞어 삼키고 있다△농주 한 사발 마시면 상처만 남긴 옛사랑이 떠오른다.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부추전 손으로 집어서 또 한 잔 마셔볼까? 늦가을의 풍경은 화사한데 황금 옷을 벗어버린 은행나무 꼭대기 옥탑방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둥지를 떠난 사랑. 그 위태로웠던 사랑은 별리 이후에도 통증만 남는다. 새끼손가락으로 저어서 취하도록 마시고 싶은 농주가 아른거린다. 이소애 시인
퍼렇게 사무치다가노랗게 부끄럽다가홀로 몸 뒤틀며고뇌까지 다 털고혼곤히 철학을 한다△무작정 걸어보고 싶은 가을이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은 머플러로 감싸주면 따뜻한 온기로 마음의 문이 열린다. 은행나무에 투사된 시인을 떠올려 본다. 가슴이 시퍼렇게 멍이들 정도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마냥 부럽다. 시간이 쌓여 노랗게 물든 추억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한 그 사랑이 단풍들었구나. 이젠 소멸의 아픔을 견디어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고통을 통하여 기쁨을 만날 수 있도록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에 내 몸무게를 올려 본다. 소멸의 철학을 경험해 보기 위해서다. ·이소애 시인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모악산을 오른다진달래 활짝 웃는 봄매미들이 합창하는 여름오색 단풍 아롱진 가을하얀 이불 펴 놓고 손짓하는 겨울철마다 반겨주는 모악산은어머니의 품이다안항 친구들아 올 가을에도모악의 어머니 품을 찾아돈독한 우정을 다지자△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산이다. 시의 힘은 어머니를 사계절로 치장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경에서 눈물과 웃음과 기쁨 그리고 고통의 모습으로 떠오르는 어머니가 존재한다. 사유의 폭이 경이롭도록 깊다. 금방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줄 것 같은 모악산의 바람. 그 바람 품속으로 안기기 위해서 화자는 가을을 등에 짊어지고 간다.<이소애 시인>
모음과 자음 사이에단단히 끼어 빠지지 않는 존재밀려나거나 배회하는 아웃사이더는 아니라서떨어져나갈 일은 없겠지만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중심이 되지 못하는휘황찬란한 도시의 밤하늘에 손톱 달처럼 있으나 마나한그러나 아는 사람은 꼭 찾아서 확실하게 끼어주는샛길이나 샛강처럼 옆으로 빠져도 의미 단단하게 지켜주고고깃배처럼 따로 노는 고기와 배를 일심동ㅊ로 묶어내며윗마을 아랫마을처럼 얼마간의 거리를 튼실하게 확보하여실한 고리로 묶어주는 짭짤한 역할평생 뒤에다 모음을 두지 못하여일가를 이루지 못하는 고독한 솔로△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역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변절자, 혹은 회색분자, 혹은 이기주의자라고 밀어냈다. 그래서 사이시옷은 하나의 성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심지어 달팽이도 왼돌이나 오른돌이는 있어도 사이돌이는 없다. 해서 무리를 지을 수도 없다. 제 영토를 주장하지 않고, 제 일가를 이루지도 않는 절대고독의 음소다. 다만 누군가의 발뒤꿈치를 받쳐주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고, 중재하는 일에 열심일 뿐이다. 간혹 등굣길이나 장맛비처럼 낯선 중재안을 내놓기도 하지만 자음의 존재감을 된소리로 살려주는 사이시옷은 얼마나 지극한가? <김제 김영 시인>
초라한 모습으로 버스에 오른다고속도로 주변 건물들이 아는 체 한다얼마나 자주 봤으면 나를 기억할까나무들은 손을 흔들고큰 건물들은 눈웃음 보낸다잘 댕겨오라고△아프다. 아픈 시인이 병원에 간다. 병원 가는 길은 이젠 익숙해서 기나긴 고속도로 주변을 훤히 꿰고 있다. 큰 건물이나 낮게 엎드린 작은 집들이 익숙하다. 구릉구릉 이어지는 산들과 친하고 무장무장 흐르는 강들도 잘 아는 이웃이 되었다. 잘 다녀오시라고, 꼭 이겨내시라고 나무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걱정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과 한마음으로 시인이 꼭 건강해질 것이다. 김제 김영 시인
이 비는 무슨 비?장맛비!내 어릴 적엔 그냥 장마비였다어느 날부터 서울이,서울사람이 표준이 되었던가내 사는 이곳은 전라도 남원아직도 먼 과거형으로 비는 맹물 맛인데한반도엔 장맛, 장맛비가표정 없는 표준으로 지겹도록 내리고△서울사람이라고 다 표준 아니다. 중류사회에 속해야 표준이다. 어디 말뿐이랴? 여론도, 문화도, 돈도, 예술도, 다 서울, 중류, 이외는 변방이 되어버렸다. 어디고 점을 찍으면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말은 우리를 혹세무민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유명 예술인의 이름에 기대지 않으면 낮은 수준으로 취급해 버리는 지역 문화예술의 현주소도 그야말로 장맛이다. 지겹도록 표정 없는 표준이다. 김제 김영 시인
산을 아름답게 보려거든저만치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사람도 아름답게 보려거든저만치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산속 깊이 들여다보면살생과 약탈, 반항과 분노약육강식의 속살이 보이나니,사람 속 깊이깊이 들여다보면모함과 증오, 가식과 허위환멸스런 속살이 보이나니,너무 가까이 다가서지 말라.너무 멀리 도망치지 말라.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그대 아름다움이그대로 아름답게 보이리라.△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저만치의 거리는 얼마큼일까? 일주일에 한 번 밥 먹는 사이는 너무 가까울 것이고 해가 바뀌도록 전화 한 통화 없는 사이는 너무 멀다. 한 달에 한 번 안부 나누는 사이 역시 너무 도식적이다. 불현듯 보고 싶은 사이, 딱 그만큼의 정이면 되겠다. 풀과 씨름해야 하는 전원생활보다 한 발 떨어져 그림 같은 집에 들어가 사는 꿈을 꾸는 그만큼의 거리가 더 행복할 듯하다. 그 거리가 가슴 설레는 거리다. 가슴과 가슴이 나누는 교신이 아예 끊기지 않는 거리가 적당한 거리다. ·김제 김영 시인
어머니, 참깨를 보내오셨다보따리에 묻어온 가을 한 됫박둥그런 저녁 밥상에 통깨 뿌린 겉절이입안 가득 환한 깨꽃이 핀다참 깨소금 맛이다꾸러미 꾸러미 꾸려놓고흐뭇해하셨을 깨꽃처럼 하얀 어머니뙤약볕에 얼마나 볶였을까들들 볶일수록 톡 톡튀어 오르라고 보내셨나?달달 들볶인 하루가 톡톡 튀어 오르며고순내 진동한다△참깨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시다. 가을 햇볕 쨍쨍한 앞마당에서 도리깨질하던 정겨운 풍경이 눈물겹도록 떠오른다. 긴 막대기로 탁탁쳐서 참깨를 얻어내시던 그 사람들이 모두 하늘나라에 있으니 키로 까불고 체로 치는 일은 별들이 하겠구나. 도리깨질 소리에 가을이 여물어 가는데 통깨 뿌린 겉절이가 입맛 돋운다. 둥그런 밥상에 누구를 초대할까 마음 설렌다. ·이소애 시인
밤 가면 아침이듯, 바람에 비 오고비 오니 천둥번개 치면서가뭄과 장맛비의 소나기에폭설이 하얗게 쌓이는봄, 여름 갈 겨울을순리로 쫓는 온골사람들은너 나 없이 넉넉한 마음이라서완산칠봉 위의흰 구름은 노저어가고다가산에 고운놀이 일어맑게 흐르는 냇물과 같이못 잊어 찾은 모악산 바람이덕진못 연꽃을 간질이고 있네요.△동학농민군 전주입성비가 있는 완산칠봉에서 전주찬가를 읊어본다. 아카시아꽃 향기에 처음 취해본 다가공원에서의 청춘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덕진공원의 연꽃과 흔들다리의 아슬아슬한 생의 모습도 그려본다. 천년 전주의 마실길인 전주천에서 화자의 지난 시간을 띄워보면 어떤 소리가 날까? 남부시장 온골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이 가슴으로 들려올까? <이소애 시인>
샘들이 있어 못 잊히는 곳아니다먕부석의 기다림에그리운 곳이 아니다내장산이 있어 못 잊히는 곳도 아니다정읍살구꽃 같은 사랑의 꿈길이정읍천 물굽이를 핥고손을 흔들다그만 가슴앓이 하는바람이 있어서이다정읍붉은 함성을 몰고 오다입술 깨물어 떨어진 핏자국에황토가 붉게 물들었구나△어렸을 적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정읍은 맑은 시냇물이 곳곳에서 흘렀다. 매일 소쿠리를 들고 물고기를 잡았다. 냇물은 내 고무신을 빼앗아 도망치기도 했다. 내장산에서 ‘단풍’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으며 사랑의 색도 느꼈다. 화자는 가슴앓이하는 바람이 있어 향수를 느끼나 보다.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는 황토빛 고향이 그립다. 이소애·시인
오목대에 올라고려의 멸망을 조롱하며조선 건국의 야망을 드러냈던이성계 장군은 몰랐다하늘이 안아주고 지켜주는온전한 온 고을이기에완전한 고을 전주이었음을장군 이성계는 까맣게 몰랐다518년 만에 종지부를 찍은반 천년 조선의 역사를유구히 이어갈 수 있게 하는도심지가 꽃심이란 것을온전한 고을 전주가바로 그 꽃심이었다는 것을태조 이성계는 미처 몰랐다△꽃심 전주를 생각한다.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인 꽃심이 전주의 정신이다. 오목대에 오르면 반 천년 조선 역사 속에 내가 있다. 상수리나무 그늘에서 태조 이성계를 떠올려보는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온고을 전주의 숨소리를 들어 본다. 꽃심은 대동, 풍류, 올곧음, 창신 등 네 가지 정신을 품고 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온고을에서 매미 소리를 듣는다. 오목대에서. 이소애시인
민낯으로 뒹굴던논배미마다에니 논 내 논다 잡아 물 가둬세 살배기 눈으로 본바다 논에서연두 애기씨 보듬는 손길에엄니 마음이 숨어 있어라우긴 못줄에 걸어둔풍년가 소리도 없이농기계 지난자리마다아슬아슬 버티더니만어느새기지개 쭈욱 켜며오늘 또 내일 다르게드넓은 김제 들녘초록바다 어우르고풍년가를 준비해요△못줄 잡던 상칠이 오빠도, 허리 다 꼬부라지게 모심기하던 순이네 어머니도, 걸핏하면 미끄러져 논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던 모쟁이 영진이도 모두 갔다. 세 살배기는 무논이 바다인 줄 알고 좋아하지만, 그 무논을 바라보는 나는 엄니가 그립다. 세상에서 제일 잘 벼려진 저 푸른 말씀들. 김제 김영·시인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태풍의 눈 ‘통합 전주시장’
남원 모노레일 500억 참사, 시민은 분노한다
완주‧전주 통합, 특례시 지정으로 완성해야
지방선거 앞 공무원 정치적 중립 원칙 지켜야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공직 후보자, 아는 만큼 참모습이 보인다
김온 : 다섯 줄
대선 패배의 반성과 교훈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