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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눈꽃이 피어 있다 이럴 때면 나는 하나씩 내 마디를 끊는다 작년에는 담배를 끊었고 금년에는 술을 끊었고 명년에는 무엇을 또 끊을 것이다 허세 같은 하얀 생명이 숙명처럼 피어 있을 때 나는 나의 소유를 잘라내며 과잉된 모습을 지우고 있다 ======================= 눈이 내려 세상이 순백의 옷을 입었다. 아무 꾸밈도 없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일체는 모두 말이 없다. 하얀 눈꽃이 피는 아침이면 우리는 모두 조용해진다. 무엇인가를 정리한다. 여줄가리를 걸러내기도 하고, 좋지 않은 습관을 버릴 결심도 한다. 모두가 내 마디를 끊는 일이다. 간결하고 정제된 마음만 남기는 일이다. /김제 김영 시인
새들이 왔다. 막 동남아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가수의 쉰 목처럼 아이들을 불러들이며 저무는 어미의 목소리처럼 작년에 흘렸던 울음통 다시 지고 한쪽 어깨가 느슨해질 때마다 한 방울씩 떨어뜨려 간격을 조이며 공중에 긋는 한 줄의 밑줄 기러기 떼가 왔다. 나는 돌아오지 못한다, 떠난 적이 없으므로 무리 지을 줄 모르므로 저 밑줄 위에 울음을 적지 못하고 그 줄 끌어내려 저무는 이 들판 봉하는데 쓸 뿐 한 철 머물다 뜨질 못한다. ====================== 철새 마중하기 좋은 계절이다. 느슨해질 때마다 마음의 간격을 조이며 작년의 들판으로 돌아오는 철새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떠난 적이 없어 돌아올 줄도 모르는 사람은 기러기 떼 줄지어 날아가는 하늘에 또박또박 눌러쓸 울음이 없다. 괜찮다. 여름 내내 뭇 생명들을 키워내느라 진이 다 빠졌을 들판을 기러기 밑줄로 봉해준다. 들판도 나도 포근한 잠에 들겠다. /김제 김영 시인
혼자여서 혼자 먹는 혼 밥이 좋다 식사 시간 기다리지 않고 잔소리도 듣지 않고 간섭도 받지 않는 혼밥 동일한 메뉴의 밥상 쓸쓸해도 외로워도 혼밥이 좋다 자기만의 성을 쌓는 절대 자유 절대 고독 좋다 혼밥 =============================== 절대 자유는 절대고독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혼자만의 삶은 일정한 틀에 나를 가두지 않는다.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해졌거나 시스템을 빠져나온 혼자는 절대적인 자유를 보장받지만, 절대적인 고독을 안고 가야 한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어야 한다. 말 그대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쏘의 뿔처럼 혼자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삶을 인정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혼밥이 맛있다. /김제 김영 시인
음습한 곳에서 모기는 낮 동안 꿈쩍도 안 하다가 해 질 녘 피를 찾아 나선다 세끼를 먹기 위해 늦게까지 땀 흘리는 대신에 단 한 번의 약탈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황홀한 吸血 모기는 그 즐거움을 안다 道를 터득했다 지금 모기는 숲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빨대에 남은 피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우고 있다. ========================= 사람에게 하루 세끼를 마련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늦게까지 땀 흘려야 마련할 수 있다. 모기는 단 한 번의 약탈로 허기를 채운다. 흡혈이다. 은밀한 곳에서 빨대에 남은 피를 지우고 있는 모기는 사람에게 일갈한다. 세상의 모든 양태의 흡혈은 모기든 인간이든, 매번 목숨을 담보로 해야 그나마 공평한 것입니다. /김제김영 시인
어둠을 두려워하지 마라 땅속 깊이 내려갈수록 길은 밝다 향기를 더불어 얻고 쓴맛이 몸을 지킨다 휘어지고 갈라지고 잔다리밟아 새길을 연다 평생을 걸고 이 땅을 지키는 도라지더덕인삼당귀우엉연근잔대하수오... 이름 모를 오천만 개의 삶. ========================================= △ 뿌리 없는 식물이 어디 있으랴. 뿌리는 세상의 지혜를 가득 담고 새롭게 펼쳐질 생명을 설계한다. 뿌리의 힘으로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존재한다. 뿌리는 위대하다. 나무를 수백 년 지탱시키며 흙 속이든 바위틈이든 살기 위해서 원뿌리에서 잔뿌리로 뻗는다. 뿌리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겨울에도 땅속에서 이웃 뿌리와 교감하면서 공존의 삶을 누린다. 사람이 사는 세상도 뿌리처럼 남을 위한 생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봉사하는 이웃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소애 시인
마음속 부러운 사람 하나 있다 인생의 밑바닥 후벼파 스스로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나무옹이 같은 그런 사람 아니라 들에 나가 김매다가 출출하면 도랑물에 휘휘 손 씻고 들어와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식은 보리밥 한 덩이 찬물에 뚝뚝 말아 된장에 풋고추 찍어 먹는 그런 사람 우스운 일 만나면 함께 너털웃음 웃고 슬픈 일 만나면 장본인보다 더 슬피 우는 어느 자락에도 맺힌 곳 없는 그런 사람 오늘도 나는 그와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도시 한 구석에 걸터앉아 각진 모서리를 깎고 있다 ========================================= △각진 모서리를 깎고 있는 화자의 모습에서 마음이 경건해진다. 맺힌 곳 없이 사는 그런 사람을 닮으려고 하는 화자가 오히려 그런 사람이 아닐까. 청정한 생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내가 가장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참회를 한다. 남이 나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은 자에게 용서를 청하는 뉘우침은 바로 내가 깨끗한 양심으로 산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외치는 소리는 소음으로 돌아온다.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며 남의 잘못을 너털웃음으로 이해해 주는 그런 사람이 좋다. /이소애 시인
꽃무늬 원피스가 공원 한복판을 콩콩 가로질러 가고 있었지 놀이터 저 혼자 시소를 가지고 놀고 있었지 분홍 양산 위로 매미 울음소리 한철 소낙비로 쏟아졌지 불시에 소낙비를 다 맞고 초록 구두는 어딜 가는 걸까? 정오 35분 한낮이었지 초록 구두가 느티나무에 이르자 소낙비는 뚝! 그쳤지 은행나무를 지나자 다시 쏴아! 하고 쏟아져 내렸지 소리가 소리를 업혀 키우는 소리비 폭포 공원이었지 이따금 누수된 소리를 받아내던 모과나무는 벌레 먹은 주먹 모과 하나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한바탕 우렛소리로 웃었지 토요일 정오 35분 한낮이었지 달뜬 마음 주체할 수 없는 초록 구두는 빨간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도레미파솔 건너고 있었지 ========================================= △한더위 매미 울음소리가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아니 소낙비가 매미 울음을 뚝 멈추게 하였다. 토요일 정오 35분이었을까. 꽃무늬 원피스가 한낮에 매미처럼 초록으로 나무에서 소리비를 쏴아하고 내리는 소리. 그 누수된 소리를 받아내는 모과나무처럼 땅바닥에 내던져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가 아닐까. 빨간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초록 구두에게 신호등에서는 멈추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소애 시인
스쳐 지나가는 바람 끝에 여린 잎새들이 파랗게 출렁인다 솜털처럼 피어 있는 나뭇잎 사이 소리쳐 파열하는 비가(悲歌) 아! 난파선의 조난자 같은 너무나도 푸르른 절규 ============================== △새삼 날카로운 가시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있어 절규를 사전에서 만났다. 애타게 부르짖음은 파랗게 출렁이는 여린 잎새들의 비가였다. 울부짖음은 허공에서 파열하고 만다. 너무나도 파랗게 흔들리면 아름다움이 절규로 다가오는 건지요. 매서운 칼바람도 숲에서는 고요해진다는데, 그 고요가 우울한 사람에게는 치유의 장이 된다는데, 조난자 같은 절규로 출렁임은 남몰래 스쳐 지나가는 그리움 때문이겠지요. /이소애 시인
바다엔 북극의 곰들이 유빙을 타고 난민처럼 밀려온다 산정엔 동면의 곰들이 선잠을 깨고 뛰쳐나온다 지구의 서느런 이마 겨울이 고열을 앓고 있다 ================================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다. 거듭 읽을수록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코로나19를 떠올리게 한다. 소름이 끼치도록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간 바이러스에게 이 시를 읊어주고 싶다. 틀림없이 고개를 끄덕일 코로나19. 난민들의 긴 행렬이 유빙을 타고 밀려오는 곰으로 환유시키다니요. 선잠을 깬 곰들이 뛰쳐나오는 산정의 풍경은 지구를 분노하게 만든 인간의 횡포이며 폭거가 아닐까요. 시인은 지구의 온난화를 겨울이 고열을 앓고 있다라는 멋진 시어로 세상 사람들에게 외친다. 어떤 힘 있는 짧은 경고 같은 시를 지구는 알고 있을까? /이소애 시인
이삿짐을 가득 실은 차는 떠나고 그 자리에 웬 화분 하나 덜렁 남겨졌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관상초가 시들어 축 늘어진 사기 화분 하나. 해는 기우는데 화분은 아직도 완강하게 버티고 서있다 버림받은 자의 분노의 침묵 같은. 어쩌면 내 한 생애에서 몇 번쯤은 닮아있었을 저 아픈 모습 밤이여, 고독한 자들의 고향이여 어둠이 분노를 어루만져 주리라 별 하나가 슬픔을 씻어 주리라. 지나가는 바람이 설레이게 하리라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은 희망을 이야기해 주리라 나는 밤새 꿈을 꾼다. 어느 따뜻한 손길이 있어 화분 하나 가슴에 안고 들어오는 꿈을 ================================ △사람에게 상처받고 삶에 치일 때마다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들이 있다. 까만 어둠과 별, 그리고 바람 등의 자연이다. 그러나 가장 따뜻한 위로는 사람에게서 받는 위로다. 세상이 나를 더는 필요치 않다고 밀어낼 때, 친한 사람에게서 상처받았을 때, 스스로 자기비하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나의 구세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고 동료고 이웃이다. 무언가가 되었을 때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을 때 삶은 가장 환하게 피어난다. /김제김영 시인
나를 내가 뛰어넘어야 보이는 길이다 주저앉지 마라 해찰하지 마라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다 내가 가는 길은 내 안에 있으므로 벽이 가로막아도 하늘이 내려앉아도 벼랑 끝이라 생각할 때마다 눈 크게 뜨고 실오라기 같은 빛을 키워 가슴에 모아들여야 보이는 길이다 비로소 내가 이루어 삶을 완성해야 하는 길 =============================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있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진 결정적 한 방이 무엇이었을까? 토끼는 주위를 의식하고 상대와 자기를 비교하면서 달렸다는 것이다. 거북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한 방은 무엇이었을까?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 쉬지 않고 정진했다는 것이다. 벽이 가로막아도 하늘이 내려앉아도 내가 가는 길은 내 안에 있다. 그러니 해찰하지 말고 나를 내가 뛰어넘어야 한다. /김제김영 시인
아무 잘못이 없다고 모두가 네 탓이라고 말하지 않겠네 살다보면 눈 빤히 뜨고 무릎 까지고 가슴 덜컥 내려앉는 날이 오늘뿐이던가 대포알을 쏘듯 해보라지 다시 속아주듯 넘어지고 아무 일 없는 듯 툭툭 털고 일어서면 그뿐 저들의 함성과 갈채 속에 굴러오는 바윗돌을 머리로 치받을까 가슴으로 맞받을까 넘어져도 넘어지는 것이 일어서도 일어서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을 영원히 눕힐 수는 없는 게지 ============================= △하수는 상대가 다 알게 속는 사람이다. 고수는 속는 줄 알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속아주는 사람이다. 상대가 열 번이고 천 번이고 나를 넘어뜨려도 내가 툭툭 털고 일어설 힘만 있으면 된다. 네 탓이라고 말하지 말자. 누군가가 나를 속여서 혹은 넘어뜨려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이 곁에 있거든 씨익 웃으면서 모르는 척 기꺼이 속아주자. 오늘 하루쯤은 이렇게 삶의 고수가 되는 날도 있어야 하늘에게 덜 미안하지 않겠는가? /김제김영 시인
온종일 닦고 닦는다 수건과 행주와 걸레로 깨끗함과 더러움 사이에서 오락가락 닳아지는 수건, 행주, 걸레 이적지 닳게 한 수건 행주 걸레로도 다 닦지 못한 먼지 물때 곤때 같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 △아무리 정성 들여 닦아 놓아도 살아 있는 한은 때가 낀다. 행주와 수건과 걸레의 용모는 다르지만, 용처는 같다. 닦아내는 것이다. 일상의 흔적은 때를 남긴다. 고운 때와 물때와 찌든 때까지 다양해서 닦아내는데도 여러 도구가 필요하다. 하물며 마음의 때야 말해서 무엇하랴, 해서 우리는 마음의 때를 벗기기 위해 묵상, 기도, 여행, 독서, 대화, 상담 등 많은 도구를 동원하는 것이다. 때는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찾아와 우리의 처음 상태를 어둡게 해 놓는다. 때가 끼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자. 신독하자. /김제김영 시인
지난 봄 수선화 지지 않았으면 가슴 속 수선화 피지 않았으리 가슴 속 수선화 피지 않았으면 올봄 수선화 지지 않았으리 ======================================== △수선화 한 송이 피고 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때가 되면 저 혼자 피고 지는 것 같지만, 햇볕 따스하면 제가 알아서 피고 지는 것 같지만, 따뜻한 가슴이 없었으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올봄 수선화는 이미 졌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활짝 피어나 추운 겨울을 건너리라. 수선화도 사람도 서로의 힘으로 어렵고 추운 시간을 견뎌 내리라. 그렇게 품은 수선화가 없다면 우리 가슴은 이미 밭았으리라. 그렇게 품어준 가슴이 없다면 내년 봄 우리는 수선화를 다시 볼 수 없으리라. /김제김영 시인
팔월, 야무진 햇살 상큼한 산들바람에 넉넉히 얹어 보내니 초록 융단 좌르르 펼친 들녘 빛바랜 허수아비 땀방울 한 알 두 알 여물어 가는달 팔월은 논두렁 밭두렁 긴 모서리에 무뎌진 옥수수 잎 쓱싹쓱싹 날 세우는 달 파란 하늘 뭉게구름 망사 날갯짓 고추잠자리 불 댕기는 팔월, 다가올 풍년가(歌) 잔치마당 최종 리허설에 땀방울 쏟는 팔월이다. ======================== △시간은 걸림돌이나 비탈이 존재하지 않은 빈틈없는 사물이다. 시간은 창고에 축적하거나 미리 당겨서 쓸 수도 없다. 그래서일까? 시계를 품고 사는 태양을 야무진 햇살이 상큼한 산들바람에 얹어 보낸다고 한다. 땀방울이 열매를 세상에 내놓는 팔월. 화자는 논두렁 밭두렁 모서리를 밟으며 쓱싹쓱싹 팔월을 끌고 간다. 최종 풍년가 잔치마당을 위한 리허설 때문에 바삐 영글어야 한다. 고추잠자리도 날 세운 옥수수도 팔월의 시간 속에서 지독하게 여름을 견디어 낼 것이다. /이소애 시인
네가 조금 늙어 보이는 건 너무 많이 웃기 때문이지 세상에 웃을 일이 참 많아, 그치? 헤픈 웃음으로 제 한 몸의 말뚝에 매여 사는 웃음밖에 남지 않은 네가 알약 같은 검은 똥을 누는 건 울음도 웃음으로 걸러내는 탓 구절양장九折羊腸 어디쯤 뿔이 돋고 제 풀에 뒷발질도 붙었지만 그걸 왜 달고 있니, 웃음으로 닳아빠진 꼬리도 그렇지만 밀면 동안童顔일 수염이 문제야 ========================= ◇ 코로나19로 생각마저 돌처럼 굳어버린 요즈음 모처럼 웃어본다. 하도 신기해서 웃는 얼굴이 그리워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분명 수염을 밀고 동안으로 웃어 보이는 염소가 아닌 사람, 나였다. 검은 알약이나 검은 똥을 누는 염소가 되고 싶어 살짝 뒷발질도, 헤픈 웃음도 거울 밖으로 그려보는 오후였다. 세상에 웃을 일이 참 많아라는, 어쩜 시인이 그렇게 사는 자화상 같다. 말뚝에 매여 사는 생에서 웃음으로 산다는 일은 거룩한 마음을 지닌 성스러운 사람일 것이다. /이소애 시인
왜가리, 동진강, 너는 누구의 풍경이었는가 기억 너머 비릿한 바람이었던가 강둑에 서서 찍은 사진 속 유유한 목선들 둑길을 따라 온종일 걸어도 닿지 못할 바다처럼 뱃길은 지워지고 인화된 석양이 걷는다 굳게 닫힌 새만금 수문이 느리게 셔터를 누른다 잘리는 유속 이어지는 암전이 입을 벌리고 천천히 검은 입으로 사라지는 풍경, 풍경 ========================= △동진강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고 흐른다. 바다가 강물을 포용하는 것은 바다는 강물보다 낮기 때문이 아닐까. 내 고향 땅을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다. 흐르는 강물은 어린 시절의 내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외로움이 아프게 신음하고 있다는 거다. 산외면 풍방산에서 시작해 황해로 흐른다. 동진강 강둑을 거닐면 비릿한 바람을 타고 기억 속으로 왜가리의 우아한 새를 만난다. 어쩌다 낡은 배가 힘없이 출렁이는 풍경은 곧 나의 모습 같아서 유속이 잘린다. 동진강은 누구의 풍경일까. 그래서 시인은 시를 쓴다. /이소애 시인
사방 개 짖는 소리 요란하다 사는 일이 쉬운 적 있었던가 한 고개를 넘어서면 다시 버티고 서있는 산, 수시로 바윗덩이 굴러 내려와 나를 주저앉혔네 늘상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들은 등 뒤를 치거나 목에 박힌 가시처럼 따끔거렸네 삶이 주는 최고의 상은 가치 없는 일에 맹목이 되는 것 성성한 가시는 온몸에 꽃처럼 푸르게 돋아나고 빛은 내가 모르는 지름길로 빠르게 지나갔네 가장 두껍고 단단한 어둠이 깃발 들고 나를 점령하고서야 비로소 광막하고 경이로운 나를 알아차렸네 귓속에 별빛 터지는 소리, 오래 욱신거렸네 =================================== △ 광막하고 경이로운 나를 알아차렸네라고 귓속에 별빛 터지는 소리가 통증으로 들려올 때 시인은 하늘의 뜻을 안다. 화자의 온몸에 가시가 꽃처럼 돋아난다면 비로소 지천명의 주름살 계곡에서 어둠의 깃발이 보이는 슬픔에 젖는다. 가시와 산과 바윗덩이가 보일 나이는 생의 황금 시기가 아닐는지요. 미수나 백수의 내가 되면 별빛 터지는 소리, 등 뒤를 치고 달아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화려한 나이, 지천명의 화자는 꽃처럼 피어나는 가시가 생의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시와 동행하는 시인이기를 바란다. /이소애 시인
싸리울 아래 호박씨 한 알 묻어놓고 그 넌출 오르다가 아래윗집 아무 쪽이나 제 맘 드는 울타리에 열려주면 이쪽 건 내 것이고 그편은 네 것이던 게 몹쓸 놈의 유월전쟁 휩쓸고 간 뒤 너는 넘이 되고 나는 남이 되었다 ======================================= ◇ 유월 전쟁 이후 북과 남은 서로 넘이 되고 남이 되었다 이때쯤 싸리울 아래 아버지는 삽을 들고 구덩이 속에 호박씨를 심었었다. 어쩌다 이웃집으로 넘어간 탐스러운 호박이 있으면 내 것이 아닌 이웃집 호박으로 양보했었다. 폭격기가 무서워 깊게 파놓은 굴속에 숨어서 꽁보리 주먹밥으로 배고픔을 달랬던 그해 여름이 슬프게 떠오른다. 이쪽저쪽 가릴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은 깊은 산으로 숨었다. 공포에 벌벌 떨었던 6월의 태양은 기억하고 있을 거다. /이소애 시인
눈 감으면 수평선 너머 눈물샘 파도가 먼먼 섬 하나 밀고 쳐들어온다. 목선 한 척 떠돌다가 내 가슴 갑문을 열고 들어와 한가득 싣고 온 안부와 못다 핀 사랑을 와르르 쏟아붓는다. 이방의 길 접고, 접고 나서야 심장 박동이 다시 뛰는 섬 하나. ================================ △화자의 몸속에 울음주머니가 있다. 울다가 눈물샘 넘치면 파도가 섬 하나 밀고 쳐들어온다. 그 섬은 화자의 심장 박동이 다시 뛰게하는 마술을 부린다. 섬은 이방인이 못다 핀 사랑을 꽃피우는 목선이 떠돌아다닌다. 섬은 화자의 가슴을 맘대로 열고 드나드는 생과 사의 신호등이 있다. 파도의 눈치를 보며 숨을 쉬는 화자의 울음보를 건드리지 말자. 혹여 파도에 업혀 우리에게 다가온 詩가 떠날지 모르니까. /이소애 시인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태풍의 눈 ‘통합 전주시장’
남원 모노레일 500억 참사, 시민은 분노한다
완주‧전주 통합, 특례시 지정으로 완성해야
지방선거 앞 공무원 정치적 중립 원칙 지켜야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공직 후보자, 아는 만큼 참모습이 보인다
김온 : 다섯 줄
대선 패배의 반성과 교훈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