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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의자에 앉아 빗소리 들었다 일흔의 이발사도 같이 듣는지 가위질 소리가 못내 예전만 못하였다 몸 낮춘 빗방울들이 일흔 살의 느린 선율 같아 때때로 사무쳤다 아무렴, 견줄 바 없도록 귀밑머리는 짧아지고 이발소 거울 속에서 한 생이 우기처럼 종일 흘러가고 있었다 턱선을 긋는 면도날이 무디어지매 까닭을 물으니 귀에 빗물 고이는 날이 잦다고 하였다 아, 한 마리 초식동물이어라 조만간 이 우기를 혁명처럼 건너가겠구나 나는 이발의 표정까지도 차곡차곡 숫제, 여러 날 간곡해져 버렸다 ============================ 일흔의 이발사 생이 시 한 편에서 고단함과 땀방울로 절절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감이 가는 「단골」 손님은 서로를 신뢰할 터. 무디어진 면도날과 느린 가위질 소리에도 몸 낮춘 빗방울처럼 숫제 이발사의 몸놀림에 사무치기까지 한다는 단골. 턱선을 긋는 면도날이 무디어지매는 깨소금 같은 시의 맛을 체험한다. 거울 속에서 화자의 얼굴이 보인다. 빗물 고인 귓속에서 화자의 애틋함이 느린 선율에 이입되어 온종일 시가 유혹한다. /이소애 시인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 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 평범한 부부의 가식 없는 실체를 본다.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남편이 짊어지고 갈 슬픔의 무게가 알만큼인지, 혼자 마신 술잔을 감당해내는 힘은 있는 건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힘은 까닭도 없이 밀려오는 내부에 파도치는 격랑이 아닐까. 갑자기 안식처를 잊고 바람처럼 방황하고 싶을 때가 있다. 꼼짝달싹 못 하게 갇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가 있다. 마음이 묶인 감옥에서 울어 본 사람은 안다. 감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감옥에서 산다. /이소애 시인
지난겨울의 추위는 차라리 슬픔이었다 누가 알았을까 저 땅속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폭설이 한참을 헤집고 있을 때에도 미세한 파동으로 꿈틀거리면서 신호를 보내왔던 것인데 지면의 압력과 대립하면서 두텁던 씨앗의 껍질을 깨고 흙과 함께 숨 쉴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여린 색깔로 여린 몸짓으로 여린 생명이 제 스스로 고개를 들고 세상에 나오던 날 땅속 물질과 땅 위 물질이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그렇게 봄이 시작되었다. ---------------------------------------------------- 봄도 산통을 한다. 씨앗의 껍질을 깨고 미세한 파동으로 꿈틀거리며 온다. 담장 아래 납작 엎드려 고개를 내민 봄꽃은 밟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스크를 쓰고 외면했을 뿐 그렇게 힘든 생명이 꿈틀거리는 몸짓에 관심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냥 지나쳤다. 가장 해맑고 신선한 그리고 찬란한 향기로 위로해줄 봄이 왔다. 누군가에게 함께 호흡하는 공간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보고 싶다고 전하고 싶은 봄날에. /이소애 시인
그리움을 쪼아 먹다가 덫에 걸린 어미 새 빈들에 머무는 생각 한 조각 젖고 추억은 한 줌 정을 두고 꺼억꺼억 웁니다. ===================== 어찌 정이 한 줌밖에 안 되겠습니까? 잊으려고,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애를 썼겠지요. 그리움이란 건 아무리 쪼아 먹어도 소화되지 않는 덫이라네요. 정을 나누고 살던 사람이 곁을 떠나자 들판은 텅 비어버렸지요. 홀로 남은 저 새 울다가 그리워하다가 가끔 날개를 조심스레 펴 보기도 하겠지요. 지난 일들을 기억하는 것만큼 잊는 것도 우리 삶에 힘이 되지요. /김제 김영 시인
무조건 넣어두면 오래 가리라 믿었다 언제 두었는지 모를 온갖 욕심들 곰팡이 꽃을 피워내고 마침내 시들어 가는 동안에도 완전하게 얼린다면 가장 온전하게 머물 것이라 믿었다 무엇이 담겼는지 기억조차 못 한 채 갖가지 욕망들 서로 뒤엉켜 잠들어버렸다 힘껏 문을 열고 살아있는 듯한 그 얼굴들 찬찬히 꺼내 보자 켜켜이 쌓여 굳어버린 상념들 ====================== 냉장고가 욕심의 창고구나. 무엇을 들여놓는지도 모르는 채, 얼마나 필요한지도 모르는 채, 일단 이것저것 잔뜩 들여놓았구나. 냉동실을 믿지 말아야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본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미 맛이 간 관계들, 최소한의 인연을 지어야 했다. 이미 맺은 인연을 더 잘 가꾸어야 했다. 무작정 맺은 습관적인 관계들로 내 속도 저 냉장고 같았던 것을 반성한다. /김제김영 시인
당신은 내게 쉼표 같은 가시가 되고 나는 당신께 도돌이표 같은 버시가 된다면 당신과 나는 한뉘, 다솜 같은 삶이 되겠죠. ========================= △ 겨집과 남진이 가시버시를 이룬다. 가시버시는 가족을 구성하는 기초단위다. 세상일에 지치고 피곤할 때 쉼표 같은 아내는 예쁘다. 번번이 고비에 휘말려도 언제나 변함없이 제 자리로 돌아와 주는 도돌이표 같은 남편은 믿음직스럽다. 이들이 이루는 가정은 따뜻하다. 한평생 도타이 사랑하며 산다. /김제김영
하늘을 맞닿은 은행나무가 매서운 바람에 어지럽도록 흔들거린다. 겨울 여행 떠나는 가지 끝에 이파리들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럽게 울고 있다. 눈발 흩날리는 겨울인데도 ====================================== 방하착은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마음을 아래로 두라는 말이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다가 간신히 붙든 나뭇가지조차 놓으라는 말이다.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 붙잡은 나뭇가지조차 놓으라는 말이다. 놓는 순간 죽을 것 같지만, 그 나뭇가지를 놓아야 두려움과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말이다. 질끈 감은 두 눈을 뜨고 발아래를 바라보라는 말이다. 그러면 거기 푹신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는 말이다. 떨어지지 않으려고/서럽게 울던 은행나무 잎들이 나뭇가지를 놓아야 나무 아래 황금빛 달관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김제 김영 시인
가신 임의 사랑과 그리움이 뜨겁게 타오는 영혼의 불나비 빨간 정열이 터지는 가슴 참을 수 없는 넋두리 푸르렀던 지난날들 이제금 도사려 앉은 영원과 영원의 이야기 끝내 터트리지 못하는 불덩이 하나 임의 심장에 담고 싶다 ========================================= 푸르렀던 지난날도, 빨갛던 정열도 푹 익었다. 파란 가을 하늘로 날아가는 영혼의 불나비 한 마리는 터져 나오는 영원과 영원의 이야기이리라. 오래전, 끝내 터트리지 못한 불덩이 하나를 임의 심장에 담아놓고, 휘적휘적 돌아서던 그대의 매정한 발길도 푹 곰삭았으리라. 보고 싶다, 오랜 인연들이여. /김제김영 시인
외롭게 매달려 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목撞木을 힘껏 때려 소리를 낼 수 있게 하소서 기다리는 외로움보다 종소리 나는 고통 있게 하소서 ================= 내 몸을 때려야, 내 몸이 아파야, 몸속의 소리가 바깥세상으로 울려 퍼지는 삶. 허공을 붙잡고 바람의 모서리에서 시간을 걸어가는 종의 기도는 외로움보다 고통을 기원한다. 외롭게 매달려 있는 종은 세상의 아픔을 몸의 소리로 울려 퍼지게 하는 기도. 소리는 기도하는 자에겐 희망을 줄 것이며, 아픈 통증으로 몸부림치는 사람에겐 비명처럼 들릴 것이다. 종소리는 가장 버림받은 억울한 사람의 기도이기를 바란다. <종의 기도>처럼 나는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한 적이 있었던가. /이소애 시인
하룻밤 묵어가려고 풀잎의 등을 꼭 붙들고 있는 나비 한 마리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다 편히 쉬다 가게 나비를 꼬옥 보듬고 있는 풀잎 ================================= 이 시를 감상하는 동안 마음을 보듬어 주는 신의 손길을 느낀다. 혼란스럽고 두려운 어둠이 짙어질 무렵 누군가가 나의 등을 꼭 붙들고 있는 따뜻한 목소리가 들린다. 편히 쉬다 가게는 방황하는 외로움을 녹여주는 말이다. 분노를 녹이려고 숲속을 헤맨다거나 빈 의자에 앉아 보고 싶은 이름을 불러본다 해도, 그 소리는 콘크리트 건물에 산화되어 가는 현실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구름 의자면 어떠하리. /이소애 시인
어려울 때 만나 음정을 골랐는데 지금은 물러앉아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어라. 예전에는 교실 옮겨 다니며 소리 맞추어 부르던 동요 오빠 생각, 반달, 고향의 봄 추억의 노래 그때 꽃밭에 같이 있던 아이들 다 떠났다지만 주섬주섬 챙겨보는 얼굴 그리운 회억. =============================== 회억回憶.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화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풍금 소리가 꽃밭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오선지에 울려 퍼질 때 옛 시간을 되감아 볼 것이다. 봉선화, 채송화, 분꽃, 나팔꽃, 저만치서 옆눈질하는 뚱딴지꽃과 닭의장풀꽃. 또 꽃밭 한가운데서 얼굴 자랑하는 장미꽃과 모란꽃도 겨울엔 화자의 생각으로 피어 있다. 주섬주섬 챙겨보는 그리운 시간이 가물거리는 보고픔이 젖어있다. 나이 듦이다. 울긋불긋 풍금 소리가 꽃밭에 한가득. 현재의 순간도 오선지 위에 놓여있는 회억이 그리움에 찼다. /이소애 시인
분명했네 분간할 수 없었던 티끌이 점점, 사람이었네 별만큼 보이다가 달이었네 달보드레한 눈빛 건넬 겨를 없이 차오르는 숨 불어줄 틈 없이 순간이었네 달이었던 사람 티끌로 멀어졌네 두근거리던 심장, 솜털 잠시 쏠렸던가 마주 오는 사람 아니라 이미 지나간 사람이었네 오늘 아침 아니라 벌써 어제 아침이었네 달이었다가 별이었다가 다시 티끌이 되어버린 찰나 같은 =============================== 순간, 마주 오는 사람이 차오르는 숨 불어줄 틈 없이 콩닥콩닥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미/지나간 사람이 온종일 눈에 아른거리는 사람. 달이었다가 별이었다가 다시 티끌이 되어버린 사람으로 오시어 화자에게 찰나 같은 그리움을 발동시키는 사람이 시를 엮었다. 그 뜨거움이 시가 되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이 되살아나서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지 겨울의 훈풍이다. 지나간 사람의 찰나는 바람 소리로도 보인다. /이소애 시인
모래내 시장을 향해 골목 하나가 내달리고 젊은 여자는 아들의 손목을 잡고 두 발이 천천히 희미해지며 길 위에서 웃는 얼굴들이 시장바닥에 가득해지고 빠르게 입들이 움직이고 붉은 휘장이 열리고 안에서 손들이 나오고 해가 지고, 이어달리기처럼 달이 올라오고 달빛은 또 다른 샛길을 만들고 길 위에 세상이 진설되며 쌓이며 흩어지고 여자가 시장에서 빠져나올 때쯤 희고 눈부신 골목 하나 선뜻 따라 나오고 두 손이 무거워 골목은 느리게 흐르고 아이는 여자의 옷자락에 붙어 한 마리 나비가 되었다가 새소리가 되었다가. =============================== 코로나19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떼어놓은 요즈음 사람 풍경이 그립다. 시장 모퉁이를 돌아서 눈부신 골목 두리번거리며 장바구니 가득 채우던 시장에 가고 싶다. 엄마 옷자락을 잡아당기면 호떡 가게에서 발을 멈추고, 찐빵 하얀 김이 모락모락 시장 사람들 사이사이 유혹할 때쯤, 자반고등어 흥정하는 여자가 눈에 보인다. 사람이 아른거리고 흥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봄나물 사러 모래내 시장 가야 할 텐데. /이소애 시인
당신은 입안의 얼음 조각 같아 무심한 듯 거칠고 부드럽고 시원하면서도 따스하고 나에게 젖어 들고 때로는 날카롭게 나를 찌르기도 하고 가슴이 뛰어 =============================== 얼음은 투명하다. 깊은 속마음까지 쉽게 내어줄 듯 투명하다. 그러나 단단하여 완력을 허락하지 않는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차갑지만 오래 함께 있으면 따뜻해진다. 그는 내게 순순히 스며들기도 하지만 날카롭게 나를 찌르기도 한다. 운명처럼 당신과 만났을 때 내 관자놀이는 뻐근해졌고, 그 후로 나는 통증과 함께 살아간다. 이것이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언어의 표현 한계선 밖에 있는 당신과 나의 만남은 언제나 가슴이 뛴다. /김제 김영 시인
창밖에 눈꽃이 피어 있다 이럴 때면 나는 하나씩 내 마디를 끊는다 작년에는 담배를 끊었고 금년에는 술을 끊었고 명년에는 무엇을 또 끊을 것이다 허세 같은 하얀 생명이 숙명처럼 피어 있을 때 나는 나의 소유를 잘라내며 과잉된 모습을 지우고 있다 ======================= 눈이 내려 세상이 순백의 옷을 입었다. 아무 꾸밈도 없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일체는 모두 말이 없다. 하얀 눈꽃이 피는 아침이면 우리는 모두 조용해진다. 무엇인가를 정리한다. 여줄가리를 걸러내기도 하고, 좋지 않은 습관을 버릴 결심도 한다. 모두가 내 마디를 끊는 일이다. 간결하고 정제된 마음만 남기는 일이다. /김제 김영 시인
새들이 왔다. 막 동남아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가수의 쉰 목처럼 아이들을 불러들이며 저무는 어미의 목소리처럼 작년에 흘렸던 울음통 다시 지고 한쪽 어깨가 느슨해질 때마다 한 방울씩 떨어뜨려 간격을 조이며 공중에 긋는 한 줄의 밑줄 기러기 떼가 왔다. 나는 돌아오지 못한다, 떠난 적이 없으므로 무리 지을 줄 모르므로 저 밑줄 위에 울음을 적지 못하고 그 줄 끌어내려 저무는 이 들판 봉하는데 쓸 뿐 한 철 머물다 뜨질 못한다. ====================== 철새 마중하기 좋은 계절이다. 느슨해질 때마다 마음의 간격을 조이며 작년의 들판으로 돌아오는 철새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떠난 적이 없어 돌아올 줄도 모르는 사람은 기러기 떼 줄지어 날아가는 하늘에 또박또박 눌러쓸 울음이 없다. 괜찮다. 여름 내내 뭇 생명들을 키워내느라 진이 다 빠졌을 들판을 기러기 밑줄로 봉해준다. 들판도 나도 포근한 잠에 들겠다. /김제 김영 시인
혼자여서 혼자 먹는 혼 밥이 좋다 식사 시간 기다리지 않고 잔소리도 듣지 않고 간섭도 받지 않는 혼밥 동일한 메뉴의 밥상 쓸쓸해도 외로워도 혼밥이 좋다 자기만의 성을 쌓는 절대 자유 절대 고독 좋다 혼밥 =============================== 절대 자유는 절대고독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혼자만의 삶은 일정한 틀에 나를 가두지 않는다.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해졌거나 시스템을 빠져나온 혼자는 절대적인 자유를 보장받지만, 절대적인 고독을 안고 가야 한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어야 한다. 말 그대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쏘의 뿔처럼 혼자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삶을 인정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혼밥이 맛있다. /김제 김영 시인
음습한 곳에서 모기는 낮 동안 꿈쩍도 안 하다가 해 질 녘 피를 찾아 나선다 세끼를 먹기 위해 늦게까지 땀 흘리는 대신에 단 한 번의 약탈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황홀한 吸血 모기는 그 즐거움을 안다 道를 터득했다 지금 모기는 숲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빨대에 남은 피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우고 있다. ========================= 사람에게 하루 세끼를 마련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늦게까지 땀 흘려야 마련할 수 있다. 모기는 단 한 번의 약탈로 허기를 채운다. 흡혈이다. 은밀한 곳에서 빨대에 남은 피를 지우고 있는 모기는 사람에게 일갈한다. 세상의 모든 양태의 흡혈은 모기든 인간이든, 매번 목숨을 담보로 해야 그나마 공평한 것입니다. /김제김영 시인
어둠을 두려워하지 마라 땅속 깊이 내려갈수록 길은 밝다 향기를 더불어 얻고 쓴맛이 몸을 지킨다 휘어지고 갈라지고 잔다리밟아 새길을 연다 평생을 걸고 이 땅을 지키는 도라지더덕인삼당귀우엉연근잔대하수오... 이름 모를 오천만 개의 삶. ========================================= △ 뿌리 없는 식물이 어디 있으랴. 뿌리는 세상의 지혜를 가득 담고 새롭게 펼쳐질 생명을 설계한다. 뿌리의 힘으로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존재한다. 뿌리는 위대하다. 나무를 수백 년 지탱시키며 흙 속이든 바위틈이든 살기 위해서 원뿌리에서 잔뿌리로 뻗는다. 뿌리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겨울에도 땅속에서 이웃 뿌리와 교감하면서 공존의 삶을 누린다. 사람이 사는 세상도 뿌리처럼 남을 위한 생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봉사하는 이웃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소애 시인
마음속 부러운 사람 하나 있다 인생의 밑바닥 후벼파 스스로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나무옹이 같은 그런 사람 아니라 들에 나가 김매다가 출출하면 도랑물에 휘휘 손 씻고 들어와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식은 보리밥 한 덩이 찬물에 뚝뚝 말아 된장에 풋고추 찍어 먹는 그런 사람 우스운 일 만나면 함께 너털웃음 웃고 슬픈 일 만나면 장본인보다 더 슬피 우는 어느 자락에도 맺힌 곳 없는 그런 사람 오늘도 나는 그와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도시 한 구석에 걸터앉아 각진 모서리를 깎고 있다 ========================================= △각진 모서리를 깎고 있는 화자의 모습에서 마음이 경건해진다. 맺힌 곳 없이 사는 그런 사람을 닮으려고 하는 화자가 오히려 그런 사람이 아닐까. 청정한 생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내가 가장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참회를 한다. 남이 나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은 자에게 용서를 청하는 뉘우침은 바로 내가 깨끗한 양심으로 산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외치는 소리는 소음으로 돌아온다.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며 남의 잘못을 너털웃음으로 이해해 주는 그런 사람이 좋다. /이소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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