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퇴근 무렵 한 40대 후반의 여인이 기자를 찾아왔다.
초췌함이 가득한 이 여인은 심신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뭔가 하고 싶은 중요한 얘기가 있을 것 같아 경청했다.
그 여인의 하소연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믿음에 대한 배신을 한탄하는 원망으로 가득했다.무척이나 안타깝고 딱했다.
은행 지점장이라는 직책 하나만을 믿고 7억원이라는 재산을 졸지에 사기당한 이 여인은 49세 김행단씨(익산시 신동).
독일 남편과 살고 있는 김여인은 사기 피해 후유증으로 현재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17년전 독일에 건너가 온갖 고생을 다한 그는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온 고향 익산에서 전 재산을 사기당해 절망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오랜 외국 생활 때문에 한국 실정이 어두울 수 밖에 없었던 김여인은 이처럼 절망과 위기의 수렁으로 내 몬 장본인으로 외환은행 익산의 한 지점장(49)과 그의 부인을 지목했다.
부동산 사기로 수십억원을 챙겨 이미 외국으로 달아난 사기꾼들을 소개하고 부동산 거래를 주선한 장본인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다. 한국 실정을 모르는 자신을 철저히 악용했다고 생각했다.
벽지 땅을 정부가 투자하는 대규모 랜드사업인 것처럼 위장시켜 독일어로 설명된 사업 프로젝트 카달로그까지 만들어 설명했다. 은행 본점에서 이미 1백억원을 투자하고 자신의 은행 지점장들마다 앞다투어 투자하는 요지의 땅으로 둔갑시켰다. 2∼3만원도 채 안되는 땅을 무려 24만원에 사도록 꼬드긴 사실을 볼 때 김여인은 아예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 아래 접근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25년 가까운 경력의 외환은행 지점장이 자신의 지점장실에서 고객의 재산 증식을 앞세워 그런 말을 할 때 믿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누구나 속아 넘어갈 수 있는 정황이었을 것이다.
은행지점장을 탓해야 할지 지점장만 믿고 전 재산을 날린 김여인의 어리숙함을 탓해야 할지 혼랍스럽다.
은행에 대한 믿음이 이처럼 자신을 무참히 짓밟을지 몰랐다는 김여인은 은행안에서 자살해 은행을 너무 믿었던 자신을 원망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기나긴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덜고자 고향 안식처를 찾았던 한 여인의 꿈을 사기꾼들이 순식간에 앗아가 버린 사례다.
부귀와 영화를 인생의 큰 목표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재산을 모으다가도 육신이 쇠잔해진 어느날 죽음을 맞게 된다.
사기 친 사람이나 사기 당한 사람이나 모두 빈손으로 죽게 된다. 그게 인생이다.
두어시간 넘게 자신의 억울함과 분통을 털어놓은 그 여인은 사무실을 나가면서 기자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상담료는 얼마를 내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자신의 억울한 하소연을 들려주고 나쁜 사람을 세상에 고발하고 싶어 막다른 골목에 기자를 찾아와 상담료가 얼마냐고 물을 정도로 세상 물정이 어두웠다. 이 순박한 여인을 그렇게 철저하게 사기를 쳐 하루 아침에 전 재산을 잃게 한 사기꾼들에게 울분이 치밀었다. 남의 것을 탐 내 자기 욕심만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요즘 세상이 너무 야속하다.
김여인 사건은 수사가 마무리되면 그 전모가 드러날테지만 가장 신뢰받아야 할 은행이 불신의 한 복판에 내몰려 있다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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