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여년전의 일이다.
이른 아침 사무실로 전화제보가 들어왔다.
내일 아침 임해공단 A기업체앞에서 농성이 있을 예정이니 취재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으니 제보자는 기업체가 내보내는 폐수로 인해 공단앞바다의 양식패류가 폐사해 이를 항의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다음날 취재를 위해 현장에 나가 보았다.
약 100명정도가 농성에 참가하고 있었으나 이중에는 폐류양식과 관련이 없는 주민들도 농성에 가담하고 있었다.
A기업체의 공장폐수로 패류가 폐사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제보자에 요구했더니 객관적인 근거는 없었고 단지 그럴것이라는 막연한 심증만을 가지고 그런다는 것이었다.
심층취재를 해보니 당시 농성주동자들은 이 기업 저 기업을 다니면서 이같은 농성을 벌이고 일부 언론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까지 보상을 요구하며 기업체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일부 언론은 객관적인 진실여부를 확인치 않고 농성상황을 크게 보도했고 패류폐사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음에도 시달릴 것을 우려한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과의 협의를 통해 적지 않은 보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이상한 풍조가 흐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위험수위에 와 있는 것같다.
지난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시절 6.29선언이후 민주화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하면서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민주시민들의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가진 자’에 억눌려 왔던 소위 ‘없는 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없는 자’들은 올바르고 정당한 것을 위해 서로 힘을 합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았고 언론도 객관적인 진실에 근거해 이들에 힘을 보탰었다.
이때 소수의 힘으로는 권리찾기가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뭉쳤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같은 행태는 변질돼 가고 있는 느낌이다.
무조건 목소리가 큰 사람이 대접을 받고 많은 사람이 뭉치면 그것이 ‘정의’가 되고 ‘진실’이 되다시피하고 있다.
왜 그럴까.
지난 1990년대들어 지방자치가 본격화되면서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은 물론 농·수·축협조합장까지 선거로 뽑다보니까 소위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했고 이를 알고 있는 군중들은 다수라는 표를 이용, 자신들의 이익찾기에 나섰다.
바른 정치인이라면 다수가 뿜어내는 목소리의 옳고 그름을 분명히 판단, 수용여부를 결정해야 함에도 개인의 영달만을 고려한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은 이를 고려치 않고 표만을 의식해 이들과 합류해 왔다.
일부 상업성에 치우친 언론마저 본분을 망각한채 다수의 목소리라면 진실여부에 관계없이 여과없이 보도를 함으로써 이들의 이익찾기에 가세해 왔다.
그러다보니 행정기관은 다수의 목소리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등 공권력이 맥을 못추고 있다.
다수의 시민정서에는 법도 의미를 상실해가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가치관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도 우리주변에서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다수가 뭉쳐 얼토당토않는 목소리를 내고 공권력은 힘을 못쓰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 상태가 지속돼서는 군산발전은 요원하다.
살기좋고 기업하기 좋은 군산을 만들기 위해 시민 모두 이같은 행태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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