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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도굴

우리 문화재의 수난은 대부분 일제에 의해 저질러졌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인 골동상과 호리꾼(‘호리’는 ‘도굴’의 일본말) 패거리들이 들어 와 닥치는대로 고분을 파헤친 것이다.

 

그들은 초기에 주로 개성과 강화도 일대의 왕릉을 포함한 고분에서 각종 고려자기와 부장품을 노다지로 약탈해 갔다. 이들 고려자기들은 일단 서울로 모아졌다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당시 서울의 골동상에는 이러한 도자기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대개 개성인삼과 함께 일본으로 보내는 선물감으로 쓰였다. 그들은 고려자기를 최고로 쳤고, 한국인을 하수인으로 이용했다. 한때 이같은 도굴과 수집으로 생활하는 자가 수천 명에 이를 정도였다니, 폐해가 어떠했겠는가.

 

이렇게 유출시킨 고려자기 경매전시가 1909년 가을 도쿄에서 열렸는데 그때 카탈로그 서문에는 이런 귀절이 보인다. “이 고려자기는 옛날에 외국으로 건너간 것을 제외하면 한국 안에서는 단 1점도 지상에서 볼 수 없었고 모두 고분에서 파내고 있다.”

 

이어 이런 대목도 나온다. “고려시대 무덤들은 모두 오랜 세월의 풍우속에 꺼져 버려 우리들 눈에는 분별할 수 없으나 한국인은 막대기(쇠꼬챙이)로 그것을 찔러보고 그 속의 음향으로 감정을 하고 파내는 것이다.”

 

이런 도굴의 역사는 기원전 기록에도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들의 시신이 있는 피라미드에 교묘히 미로(迷路)를 만들어도 도굴꾼들이 알아내 부장품을 도굴해 갔다. 역대 파라오들은 도굴의 방지에 부심해 BC 16세기 투트메스 1세는 눈에 띄지 않는 산골짜기 암굴에 은밀하게 왕의 시신을 매장했으나 이마저 용케 찾아내 부장품을 도굴해 갔던 것이다.

 

며칠전 전국을 돌며 도굴을 일삼아 온 일당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임실 운암과 익산 웅포, 경기도 여주, 경북 상주 등의 야산 묏자리에서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등 고려와 조선시대 진품 도자기 10여 점을 도굴했다 경찰에 검거된 것이다. 20여 년전부터 배운 풍수지리를 활용해 명당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쇠막대(탐침봉)로 1m-1m 30㎝ 가량 찔러 본후 주변을 파헤쳤다는 것이다. 요즘 도굴꾼들은 내시경 카메라까지 이용한다니 갈수록 수법이 정교해지는 모양이다. 이집트가 유명해진 것은 도굴 덕분이라는 말이 있긴 하나 도굴은 결국 범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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