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균선생 제자 25년지기…각종 대회 수상에 해외공연도
"치마 들고 하나 둘! 얼씨구! 좋고!"
팔을 크게 한 번 펼친 뒤 잠시 멈췄다. 가녀린 손짓이 나온다. 우리 춤에 녹아든 정중동(靜中動)의 묘미에 푹 빠진 이들. 지난 25년 간 금파 김조균 선생(전북무형문화재 제17호 한량춤 보유자)의 맥을 이어온 금파어머니무용단이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연습실에선 만난 회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오는 5월 우리나라와 러시아 수교 20주년 기념 공연에 초대된 것. 전주 춤의 뿌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가장 한국적인 춤을 선보일 수 있다는 기대가 실려 있었다.
아마추어 춤꾼이라 해도, 금파 선생의 춤만을 배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금파어머니무용단은 당시 금파 선생이 운영해온 무용학원과 전북도립국악원 주부 수강생들이 모태가 됐다. 일주일에 네 번, 두 시간씩 꽉꽉 채울 정도로 연습량이 적지 않았다. 40대에 시작한 춤사위는 70대까지 이어져오면서 검무, 화관무, 살풀이 등 다양한 장르의 전통 춤을 망라하고 있다. 금파 춤의 '백과 사전'인 셈.
금파어머니무용단 지도를 맡고 있는 김 숙씨는 "우리 어머니들은 국립무용단 수준"이라며 "금파 선생님의 춤 뿌리를 고스란히 간직해온 주역들"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금파 선생님은 춤을 참 맛있게 췄습니다. '숭(흉내)'도 못 내겠어요. 저희도 젊어서는 춤 잘 췄지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 순발력이 없어져서 그렇지."(송정자씨)
"어딜 가서도 함부로 춤 안 춰요. 회갑 잔치 같은 데서 춤 추면, 선생님한테 혼납니다. 우리 춤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거든요." (서흥원씨)
창단 초기에만 해도 전통춤 단체가 없었기에 전주에서 치러지는 행사엔 이들이 가장 먼저 초대됐다. 매해 전주 단오제 초청 공연, 금파무용단 찬조 출연을 비롯해 KBS의 '우리 춤, 우리 가락'에도 출연했을 만큼 유명세가 있다. 중국 정부의 감시가 삼엄했을 90년대에도 북경대에 초청받았을 정도로 이들의 춤은 국제적으로도 인정 받았다. 덕분에 각종 대회에 출전해서도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다.
"우리는 나가기만 하면, 상을 타요. 2008년에도 강강술래로 1등 먹었죠." (이학임씨)
회원들은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하나하나 느낌을 살려 춤을 출 수 있게 된다고 입모아 말했다. 우리의 한과 정서를 대변하는 춤이기에 추면 출수록 더욱 깊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25년을 함께 하다 보니, 이들은 이젠 또 다른 가족 같다. 20여 명 남짓했던 회원들은 어느새 10명 안팎으로 줄었다. 정성옥 회장은 "70세가 넘어가니, 건강했던 몸도 하나 둘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며 "춤을 추지 않으면 몸이 더 아프다"고 했다.
"춤이 내 인생에 젤 좋아. 이런 기쁨이 없어요." "춤처럼 좋은 게 어딨어. 몸 건강해지지, 활기 주지. 세월이 갈수록 멋있어요."
춤과 함께 해온 이들의 뒤안길은 그래서 충분히 아름답고,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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