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작품…전주 강암서예관, 17년만에 공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은 인동초(忍冬草)와 같았다. 인동초는 겨울을 견디고 초여름에 꽃을 피운다. '행동하는 양심'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했던 그는 시대를 관통하는 숱한 어록을 남겼다. '촌철살인'의 어록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과 남북화합·민족애를 남다른 울림으로 전한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은 전주 강암서예관은 강암 송성용 선생이 그와 생전에 주고받은 붓글씨를 내놓았다.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한시'산중에서'와 정치적 소신이 담긴 '행동하는 양심'으로 17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
김 전 대통령은 14대 대권 도전에서 패배해 정계 은퇴를 선언, 영국으로 건너갔다. '산중에서'엔 '맑은 마음으로 바르게 보아주길 바란다'는 글귀를 먼저 적어 진솔한 마음을 내비쳤다. 이 작품은 김 전 대통령과 정치여정이 비슷했던 조선의 성리학자 이율곡의 한시를 인용한 것.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친필 '입현무방(入賢無方·인재를 등용하되 지역을 가리지 말라)'을 중앙인사위원장에게 전했고, 이율곡은 당쟁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김 전 대통령은 행서와 초서를 접목시킨 작품 '행동하는 양심'을 통해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지난 6월 6·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라"며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다.
송하철 강암서예학술재단 이사장은 "두 분이 어떠한 인연으로 작품이 건네졌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쌍낙인된 작품을 볼 때 서로의 글에서 풍겨지는 인품과 사상, 문기 등을 자연스레 교감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강암 선생은 김 전 대통령의 강인한 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높이 평가했으며, 김 전 대통령 역시 강암 선생의 글씨를 좋아해 자택 거실에 걸어두고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묵죽은 직선 필획으로 줄기와 잎에서 곧은 기상, 대나무 잎 가장자리를 짙게 하는 발묵법은 시원한 대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여서 김 전 대통령이 선호했던 것으로 전한다.
강암 선생은 1999년 눈을 감을 때까지 김 전 대통령 작품을 집안에 소중히 간직해왔으며, 김 전 대통령은 조화와 조문 전화를 통해 "존경하는 어른을 잃어 안타깝다. 장례를 잘 치루라"고 위로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 정치사와 서예사의 역동성을 대변하며 크나큰 업적을 남긴 자유로운 두 영혼의 교감의 자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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