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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리즘 산실' MBC PD수첩, 방송 1000회

MBC PD수첩이 방송 1000회를 맞았다.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자처한 PD수첩은 1000회를 거치면서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PD수첩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대담한 기획과 굵직한 특종으로 우리 사회를 뒤흔든 PD수첩의 힘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PD수첩은 1990년 5월8일 다국적 기업의 한국 여성 근로자 무단 해고 사태를 그린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 등 4개 꼭지를 선보이며 첫 전파를 탔다.

 

이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심층적으로 고발하는 PD 저널리즘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PD수첩 제작진들은 거대권력이나 시대의 금기를 조준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위협을 받았고 순식간에 국민의 공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1999년 ‘이단 파문, 이재록 목사!-목자님 우리 목자님!’ 편은 만민중앙성결교회 신도들의 방송사 주조정실 점거로 방송 도중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2005년 황우석 보도는 PD수첩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PD수첩은 2005년 11월 방영된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을 시작으로 ‘단군 이래 최대의 쾌거’라고도 일컬어졌던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 연구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조명했다.

 

2008년 4월 방영된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는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이밖에 ‘미군 전차와 두 여중생’(2002), 삼성 일가를 다룬 연속 기획 보도 ‘검사와 스폰서’(2010), 민간인 불법사찰을 다룬 ‘이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2010년) 등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한편 PD수첩은 우리 사회가 갈수록 분열하는 상황에서 보도 내용의 객관성과 방향성 등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잦은 송사에도 휘말렸다. MBC 내부에서도 제작진 인사와 방송 사전 검열, 불방 등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경영진과의 갈등이 계속됐다.

 

2012년에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파업에 이어 작가 해고 논란이 불거지면서 11개월간 방송이 중단되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PD수첩의 간판 PD였던 최승호 PD는 해고됐다. 광우병을 보도한 제작진은 검찰에 체포되는가 하면 2011년에 이어 올해 다시 회사로부터 연거푸 징계를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PD수첩의 영향력은 예전보다 위축된 모습이고 시청률도 신통치 않다. PD수첩이 세태를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권력 감시라는 본디 역할에서도 좀더 분발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PD수첩’은 1000회 특집으로 1일부터 ‘돈으로 보는 대한민국’ 3부작을 방송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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