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을 통과해 흐르는 작은 운하와 회벽, 검은색 지붕의 주택과 창고거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도시의 큰 자산이 됐다. 일본정부는 이곳을 국가 중요전통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하고 구라시키미관지구(美觀地區)라 이름 붙였다.
해마다 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올 정도로 이름난 관광지가 된 구라시키미관지구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일본 최초의 사설미술관인 오하라미술관이다.
1930년에 문을 연 오하라미술관은 일본 최초의 서양식 근대미술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미술관의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로댕, 고갱, 엘 그레코, 마네와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피카소, 칸딘스키를 비롯해 세계미술사를 관통하는 작가들의 걸작이 이 작은 미술관에 모여 있다. 소장품만도 3500여점. 그 질적 수준은 물론이고 양적으로도 유럽의 이름난 대형미술관과 견줄 수 있을 정도다. 인구 47만 명의 크지 않은 도시, 이 작은 미술관이 일본 근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미술관으로 꼽히는 이유다.
오하라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구라시키에서 부를 축적한 기업가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다. 오하라에게는 화가인 친구가 있었다. 당대 재능을 인정받았던 고지마 토라지로(兒島虎次郞)다. 오하라 집안의 후원으로 공부했던 고지마는 오하라와 벗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교류했다. 오하라는 고지마를 통해 유럽의 숱한 걸작들을 수집하고 자신 또한 일본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근현대 작품을 수집했다. 두 사람의 우정과 서로에게 보내는 신뢰는 각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지마는 48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오하라미술관은 고지마가 세상을 떠난 바로 이듬해에 건립됐다. 오하라의 슬픔은 참으로 컸던 것 같다. 오하라 미술관 전시실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소녀’다. 이 그림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거장 그 누구의 작품도 아닌 친구 고지마 토라지오의 대표작이다. 미술관의 가장 상징적 공간에 고지마의 작품이 놓인 배경은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감동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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