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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잘 놀고 잘 먹고 잘 사는 법] 옛 선비들처럼…풍류를 즐겨라

▲ 문경 대야산 용추.

불과 몇 십 년 사이 사는 것이 너무도 달라졌다.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 일만하던 시대에서 잘 놀아야 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그런데 잘 노는 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풍류를 즐기며 살아야 하는데, 풍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풍류(風流)’란 바람 풍(風)자와 흐를 유(流)를 쓰는 것에서 보듯 말 그대로 자연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풍류를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또는 “운치가 있는 일”로 풀이하기도 하고,“아취가 있는 것” 혹은 “속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자연과 인생 그리고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미적 표현이라고도 부르는 풍류에는 자연적인 요소, 음악적인 요소,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적인 여러 가지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풍류에는 멋과 맛, 그리고 예술적인 모든 것들과 함께 남녀 간의 사랑도 일부 포함되기도 한다. 풍류는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분방함, 즐겁고 아름답게 노는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옛 선인들은 풍류를 통하여 사람을 사귀었고, 풍류를 통하여 심신을 단련하였다. 자연과 같이하는 삶과 사람과 사람 사이가 끈적끈적한 정으로 살았던 옛 사람들의 생활과 달리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회지에서 마치 섬에 갇혀 지내는 로빈손 크루소처럼 단절된 채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역사 속에서 옛 사람들은 어떻게 놀고,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살았을까?

▲ 간성의 청간정.

봄날이라고 치자. 매화꽃이지고 산수유가 만발할 때쯤이면 뒷동산에 하나둘 씩 진달래가 피어날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그리던 친구들이 찾아오고 그래 지금이 꽃 시절이다. 술과 찹쌀가루를 가지고 얼음이 풀려서 지저귀며 흐르는 강변에 세워진 날아갈 듯한 정자로 봄 꽃놀이를 가는 것이다. 가슴을 휘젓고 지나가는 진달래 화전에 몇 잎의 진달래를 술잔 위에 띄우면 두견주가 된다. 한잔하게 한잔 주게, 술이 한 순배 돌면 자네 시 한수 듣세, 아니 내가 함세, 금세 정자엔 시흥(詩興)이 돌고 부르는 노래 소리, 그렇듯 정이 깊어지면 흐르는 물소리도 솔바람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그 한잔 술에 취해서 술이 되고 세월이 될 것이다. 노래에 취하고 저물어 돌아오는 길 휘영청 밝은 달이 동무해주는 그런 풍경이 있던 시절을 ‘오래 된 미래’라고 한다면 쓸쓸한 이야기인가?

 

예나 지금이나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어떤 모임을 만들어 만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세상 풍경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나서 노는 방법은 세월 속에 많이도 변했다.

 

봄가을에 만나서 꽃구경을 가는 모임도 있고, 나라 곳곳의 찻집을 찾아다니며 차를 즐기는 모임도 있으며, 전국도 모자라 세계 곳곳의 골프장을 다니며 골프를 즐기는 모임에, 전국의 맛 집을 찾아 식도락을 즐기는 모임도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지리산이나 설악산만 좋아하여 다니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고, 사진 동우회 중에서도 세분화되어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나 낚시, 심지어 도박까지 수많은 모임들이 여러 형태로 그들만의 놀이를 즐기며 살아간다. 그런 모음과 다른 모임을 만들자는 생각에 만든 단체가 우리나라의 길과 산천을 걸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땅 걷기’ 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만들었던 죽란시사

 

장기와 강진의 유배지,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저작을 남긴 다산 정약용도 젊은 날에는 풍류를 즐겼다. 아래의 글은 《여유당전서》에 실린 것이다. 당시 정약용과 친교를 맺었던 이치훈, 이유수, 한치응 등 열네 명의 뜻 맞는 선비들이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풍류계를 맺고서 다음과 같은 규약을 정했다.

 

살구꽃이 피면 한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필 때와 한 여름 참외가 무르익을 때 모이고, 가을 서련지(西蓮池)에 연꽃이 만개하면 꽃구경하러 모이고, 국화꽃이 피어 있는데 첫눈이 내리면 이례적으로 모이고, 또 한 해가 저물 무렵 분에 매화가 피면 다시 한번 모이기로 했다.

 

서련지의 연못은 연꽃이 많기도 했지만 연꽃이 크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죽란시사로 맺은 선비들이 동이 트기 전 새벽에 모여서 배를 띄우고 연꽃 틈에 갔다 대고는 눈을 감고 숨을 죽인 채 무엇인가를 기다렸는데, 그것이 바로 연꽃이 필 때 내는 소리였다. 잎이 필 때 청랑한 미성을 내며, 꽃잎이 터지는 그 연꽃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마치 꽃이슬을 마음속에 떨어뜨리는 듯한 그 청량감, 즉 청개화성(聽開花聲)을 소중하게 여겼던 선비들의 그윽하고도 절절한 멋인 풍류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선비들이 연잎에 가득 술을 따라놓고 구멍이 연근처럼 뚫린 연대로 그윽한 연의 향기와 함께 술을 마시던 풍류 역시 사라진 지 오래이다.

 

연꽃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전주 덕진연못이나 나라 안 곳곳의 연지에서 여름 새벽에 청개화성을 체험한다면 얼마나 운치 있고 재미있을까?

 

중종 때의 문신인 문경공 신용개의 풍류도 재미있다. 그는 천품이 호탕하고 뛰어나 탁월한 큰 절개가 있었고, 성격이 술을 좋아하여 때로는 늙은 계집종을 불러 서로 큰 잔을 기울여 취하여 쓰러져야 그만두기도 하였다. 일찍이 국화 8분을 길렀는데, 한 가을에 활짝 피므로 대청 가운데 들여놓으니, 높이가 대들보에 닿았다. 공이 그 국화꽃 향기를 사랑하여 끊임없이 보고 또 보았다. 그런 어느 날 집안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손님이 여덟 분이 올 것이니 술과 안주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라.”

 

그 말을 들은 집안에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손님을 기다렸다. 해가 저물어도 기다리는 손님이 오지 않자 집안사람들이 언제 오시느냐고 물으며 “벌써 술상을 준비해 놓았습니다”라고 했다.

▲ 담양 명옥헌.

그러자 신용개는 “조금만 기다려라” 하였다. 그 뒤 둥근달이 떠 그 빛이 대청 안으로 들어와 꽃 빛이 달빛에 아름답고 환하게 비치자 신용개가 그제야 술을 내오라 하며 여덟 개의 국화 분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이 “이 국화꽃이 오늘 나의 손님들이다”하고는 각각 그 앞에 좋은 안주를 차려 놓고 말하였다.

 

“내가 은도배(銀桃盃)에 술을 따르겠네”하고 각각 두 잔씩을 따라 주고 그도 역시 마셨는데, 그렇게 술이 몇 순배가 돌자 신용개 역시 몹시 취하였다.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 조르바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돌멩이 하나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느껴서 순간순간 그들과 만나며 경외감을 표시한다. 자연을 섬기는 것이 인간 스스로를 섬기는 것임을 모르는데, 스스로 그러한 자연 속의 한 부분인 사람들이 주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설치다가 화를 당할 때가 많다. 그런데 신용개는 그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게 가꾼 국화가 눈부시게 만개하자 그 만개한 친구들과 한잔 술을 기울인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달 밝은 밤에 나누는 술 잔치여!

 

그와 비슷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중종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세상에 환멸을 느껴 낙향한 박공달과 박수량은 강릉에서 한 냇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술벗으로 살았다. 그들은 쌍한정(雙閒亭)에 모여 나이에 개의치 않고 술을 마셨다.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어서 서로 오고 가지를 못하면 양쪽 언덕에 서 마주보면서 서로 잔을 들어 권하며 한나절을 흥겹게 보냈다고 한다.

 

조광조와 함께 혁신정치를 펼치다 비운의 죽임을 당한 김정이 금강산을 유람하는 길에 강릉을 지나다 박수량의 집을 찾아갔다. 가난한 박수량은 머슴들 속에서 함께 새끼를 꼬고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 속에 있기 때문에 누가 주인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반갑게 김정을 맞이한 박수량은 마당에 자리를 깔고서 나물로 술안주를 삼아 이틀 동안을 놀다가 작별하였다. 그때 박수량은 철쭉 지팡이를 선사하면서 다음과 같은 헌시 한편을 지었다.

 

깊은 산골짜기 층층 바위 뒤 안에

 

늦가을에 눈서리 맞은 이 가지

 

이 가지를 가져다 군자에게 주노니

 

늘그막에 그처럼 살아보자는 걸세.

 

이 얼마나 운치 있는 놀이인가, ‘고상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와 같이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우리 옛 선인들의 술 풍류를 오늘에 되살린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옛 사람과 나누는 술 한잔

 

촉나라 때 사람인 범진(范鎭)이 허하(許下)에 살 때 집 근처에다 큰 집을 짓고 장소당이라 이름을 지었다. 앞에는 다미가가 있는데 그 높이가 손님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매년 늦봄 꽃이 만발할 때 그 아래에서 손님들에게 잔치를 베풀면서 악속하기를, “만일 꽃잎이 술잔 가운데 떨어진 사람은 대백(大白·술잔의 이름)으로 한 잔씩 마셔야합니다. 하였다.

 

술잔을 들고 담소하는 사이에 미풍이 스치고 지나가면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잔에 빠짐없이 꽃잎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이 모임을 두고 비영회(飛英會)라고 불렀는데, 그 모임이 사방에 널리 전해져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패해〉

 

허균의 《한정록》제 6권 ‘아치’에 실린 글이다.

 

내가 사는 게 좀 상스러워서 그런지, 남들과 어울리지를 못해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제법 살았는데도 어디 변변한 모임하나가 없다. 남매 계나, 여행 계 또는 무슨 무슨 계를 어떤 사람들은 십여 개씩 든 사람도 많지만 어디 하나도 들지 않아서 어떤 때는 홀가분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다 딱 하나 여러 사람들과 의기소통해서 활동하는 모임이 매월 둘째 주 수요일마다 만나서 근처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먹고 보자’라는 모임이다. 얼마나 즐거운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음식도 먹고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밥값은 그 때 그때 나온 만큼만 제 각각 내고 헤어지는, 회장도 없고 구속력도 없는 모임, 그래서 대충 지은 이름이 ‘먹고 보자’라는 모임이다. 그러다 ‘먹고 보자’라는 이름이 조폭들의 모임이나 게걸스럽게 먹는 무슨 집단의 이름 같다고 해서 바꾼 게 ’이름의 앞 뒤 만 바꾼. ‘보고 먹자’로 바꾸었지만 다시 ‘먹고 보자’로 불리고 있다. 그날 만나서 음식을 먹는 모임도 괜찮다고 여겼는데, 꽃 잎 지는 봄날, 술잔에 꽃잎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 모임인 비영회(飛英會)를 생각하니, 아무래도 ‘먹고 보자’ 모임을 변화무쌍하게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이 안 떠오르니 이를 어쩐다.

 

지금은 한 겨울이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은 이 긴 겨울에는 어떤 풍류를 즐기며 놀았을까?

▲ 낙동강 가송리.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요, 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연산군 때의 풍류객 성현의 아들 성세창의 친구인 홍모(洪某)가 눈 내리는 밤에 성현의 집 동원별당에서 밤새워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홍모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자 한 노인이 눈과 달이 소복한 매화나무 밑에서 눈을 쓸고 앉아서 하얀 백발을 날리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누구인가?”하고 묻자 성세창은 아버지라고 하였다. 성세창의 친구 홍모는 그날 밤의 잊히지 않을 장면을 다음과 같은 글로 남겼다.

 

그때 달빛이 밝아 대낮 같고, 매화가 만개했는데, 백발을 바람에 날려 나부끼고 맑은 음향이 암향暗香에 타 흐르니 마치 신선이 내려온 듯, 문득 맑고 시원한 기운이 온 몸에 가득함을 느꼈다. 용재(성현의 아호)는 참으로 선골유골(仙骨遺骨)의 풍류객이라 할 만하다.

 

흰 눈이 내리는 밤에 거문고를 타거나 듣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그윽한 향이 감도는 커피나 차 한 잔이라도 가운데 놓고 담소를 나누는 겨울의 운치, 거기에 군고구마나 군밤이 곁들여 진다해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캔 맥주라도 한잔 씩 기울이며 겨울의 긴긴밤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겨울이 겨울다울까?

 

노는 방법을 모르다보니 갈비나 고기를 실컷 먹으면서 술 마시고 2차를 간 뒤 부른 배 꺼지라고 돈 받고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돈 주고 노래를 부르는 곳이 노래방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곡에서부터 가요 또는 팝송까지 그래도 몇 곡씩은 할 줄 알았는데 노래방 세대가 되다보니 노래가사가 화면에 뜨지 않으면 노래 한곡을 제대로 부르는 사람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악쓰고 춤추는 사이 바람처럼 지나가는 세월

 

옛 사람들은 시절에 따라 잘 놀았다. 정월 초하루. 정월 대보름. 삼월 삼짇날,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칠월 백중, 팔월 한가위. 구월 중양절. 십일월 동짓달. 달이면 달마다 그 달에 맞는 놀이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서로의 동질성과 대동정신을 함양했다. 특히 백중에서 중양절 무렵까지, 서로 가까운 곳을 정해 만나서 놀다가 헤어지는 반보기나 봄. 가을 냇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겼던 천렵놀이나 봄나물을 뜯으며 즐겼던 상춘놀이는 일반 대중들의 놀이였고, 정자나 누각에서 좋아하는 몇 사람이 만나서 시를 읊으며 세상을 논(論)하거나 산수 유람은 사대부들의 놀이였다.

 

옛 사대부들이 놀았던 것처럼 운치 있게 풍류를 즐기며 잘 노는 것을 생활 속에 뿌리 내리게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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