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한글공부, 눈물·감동속 배움의 행복 / 단순한 문자 해득 넘어 일상에 커다란 변화 / 교육 필요성 여전…후원·관심 줄어 아쉬움도
〈꽃을 보면〉
꽃을 보면 마음이 좋아요.
언제나 꽃을 보면 즐거워요.
꽃을 보면 내 마음도 향기로워져요.
꽃이 피고 지는 모습도 신기해요.
방긋 방긋
벙긋 벙긋
꽃이 피면
내 마음도 꽃같이 피어요.
지난해 전주시평생학습관에서 펴낸 성인 문해교육 자료집 ‘인생톡톡 어르신 위대한 스토리텔러’에 수록된 강○○ 어르신의 글이다. 이 자료집에는 15개 기관에서 한글을 배우신 어르신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다. 감동과 웃음도 가득차 있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인생이 들어있다.
새마을부녀회에 가서 봉사도 하고,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도 글을 몰라서 글씨를 쓸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는 어르신은 봉사하다가 알게 된 노인복지관에 61세가 되어 등록해서 글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쓰셨다.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서 배움의 ‘행복’이 느껴진다.
재미있는 글 중 하나가 전주 서원노인복지관 박○○ 어르신의 글인데, 제목이 ‘바락공부 -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 남동생에게 공부를 양보해야 했고, 서러워서 가출도 생각했지만 지금 복지관에 다니면서 한글 공부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늙은 친구들이 이제 배워서 뭐하려고 하냐고 하지만 죽는 날까지 공부하겠다며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딱’자를 어찌나 크게 강조해서 쓰셨던지 글자에 마음이 묻어나왔다.
글을 읽으면서 성인 문해교육은 ‘시인을 만드는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세상을 읽게 만드는 교육인 것이다.
‘문해’는 ‘문자해득’을 뜻하지만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어르신(77세)은 글자를 배우고 나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셨다. 그동안 출석부 체크에 이름 쓰는 것이 무서워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글을 익히신 후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뿐 아니라 처음엔 단순 일자리에서 일하시다 나중에는 어린이집 아이를 돌봐주는 돌보미로 활동하셨다.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성인 문해교육을 담당하는 최윤옥 강사(58·시인·성인 문해교육사)는 얼마 전 인천에서 배달 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한글을 배우고 있는 최○○ 어르신의 큰 딸이 보낸 편지에는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어머님을 향한 애틋한 심정과 글을 배우면서 변화되어 가시는 어머님을 향한 기쁨을 담고 있었다. 이제는 어머님께서 손주들에게 스마트폰으로 문자도 보내고 사진도 전송하며 행복해하신다고 편지로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14년째 어르신들에게 문해교육을 해 온 최윤옥 강사는 어르신들과 함께 변화를 체험하며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한다. 자녀들은 의사, 박사, 교수로 키워내고도 정작 자신은 글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글을 배우러 오실 때는 조심스럽고 위축되어 있던 어르신들이 글을 배우시면서 “나 공부하러 다녀!”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존감을 회복하신다는 것이다. 집안에, 내안에 갇혀있던 울타리를 벗어나 공부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문해교육은 메마른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세우고 봉오리를 맺어가는 과정과 같아서 굳어진 손과 약한 시력, 부실한 허리와 무릎을 가지고도 학습의 열매를 위해 정진하며 성장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자신이 더 배우고 있다고 한다.
한 어르신은 큰 딸이어서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에 학교를 못 다녔는데, 이제 한글을 배운다고 하니 동생들이 학용품을 사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 어르신은 글을 몰라서 자식들이 숙제를 가르쳐달라고 해도 바쁘다고 핑계대며 못 가르쳐줘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다시 손자들을 돌보게 되었다고 한다. 글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옆집 언니의 소개로 전주시평생학습관 문해교실을 알게 되어 2시간만 남편에게 손주들을 부탁하고 글을 배우고 있다. 자신 있게 이름과 주소와 주민번호를 쓰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며 기회만 되면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다.
하루도 결석하지 않는 김○○ 어르신(87세), 날마다 일기를 쓰시는 김○○ 어르신(76세), 자녀들을 모두 유학까지 보내시고 지금 공부하니 숙제도 즐겁다는 이○○ 어르신(70세) 등 모두 학구열이 대단하시다. 나중에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분도 계신다.
현재 전주시에는 21개 기관이 성인 문해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전주시와 전주시 평생학습관은 지난 4월부터 ‘찾아가는 성인 문해교육’을 5개 경로당에서 시범 운영했다.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좋아하셨고, 이 사업이 계속되기를 원하셨다.
흔히 우리 주변에 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주에서도 인구의 10% 정도의 비문해자가 존재한다. 글을 배운다는 것은 문자를 해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문서화된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주시는 올해 성인 문해교육 조례를 제정해 문해교육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문해교육에 대한 예산확보를 통해 체계적인 문해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문해교육사를 양성하고 재교육해야 하고, 찾아가는 문해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30년 동안 문해교육에 앞장서온 전주주부평생학교 박영수 교장(55)은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돼 배움에 한이 맺힌 사람들에게 자기계발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갈수록 후원자가 줄고 정부와 자치단체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이 걱정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조성해 학생들이 배움의 길에 정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주시평생학습관 성인 문해교육을 맡고 있는 오충렬 담당은 “문해교육은 인간이 자유를 찾아가는 지적모험이다”면서 “지금도 여전히 가난과 불평등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지적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인 문해교육이 필요한 분은 전주시 평생학습관(241-1123)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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