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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지도 않은 불청객

▲ 백봉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가. 밤새 사무실에는 또 두 장의 팩스가 들어와 있다. 노트북을 홍보하는 전단지와 4금융권에서 날아온 대출안내서다. 점심때가 되자 또 한 장의 팩스가 들어온다. 직장인을 상대로 연 5.5%의 저리로 1억5천만 원까지 대출해주겠다는 것이다. 은행에 찾아오지 않아도 연락만 주면 직접 방문하여 상담하겠다고 한다. 이렇듯 반갑지 않은 판촉물들이 하루에도 몇 장씩 방문한다. 담당자에게 팩스 받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겠다고 했지만 잠시뿐, 잊을만하면 또다시 날아든다. 이번에는 계속해서 보내려면 종이값이라도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막무가내. 전화로 큰 소리 한번 쳐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런 곳에 전화하는 것만으로도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어 성큼 전화하기도 망설여진다. 그냥 못 본체하고 버리면 될 일이지만 팩스용지가 아깝다. 팩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화공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름도 낯선 잡지사와 리서치단체에서 설문조사에 응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이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정도로 수준급의 프로들이다. 잠깐이면 된다고 하지만 거의 10여분을 물고 늘어진다. 어제는 폴더형 내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주겠다는 전화가 오더니, 암보험을 들었던 회사에서 치매와 뇌졸중을 들먹이며 선심을 쓰듯 노인병보험을 들으라고 졸라댄다. 화가 치밀어 ‘한번만 더 전화하면 암보험까지 해약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되레 ‘손님만 손해’라며 으름장을 피운다.

 

귀찮은 전화는 또 있다.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전화다. 이 사람들은 거의 상습적이고 근성이 강해 한번 물고 늘어지면 놓지 않는 하이에나와 같다. 한번은 “돈이 없다, 아직은 건강하다. 회의 중이다.”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회피했지만 결국 끈질긴 들이대기에 손을 들었다. 일단 시음용 제품을 먹어본 다음에 맘에 들면 구입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며칠 뒤 도착한 것은 시음용 제품이 아니라 견본제품이 들어있는 건강식품 한 박스였다. 되돌려 보내려고 전화했더니 ‘뜯어본 것은 반납할 수 없다.’며 오히려 지로용지를 보내왔다. 다행히 소비자고발센터를 통해 반납했지만 상도덕을 무시한 이들의 영업 전략에 울며 겨자 먹듯 피해 보는 사람들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지금 사무실 한쪽에는 뜯지도 않은 불청객, 박스 하나가 방치돼 있다. 서울에 주소를 둔 한국장애우공동체라는 곳에서 보내온 수제비누다. 지난해 사정사정하는 전화가 걸려와 어쩔 수없이 구입해 줬더니 올해는 묻지도 않고 또 보내왔다. 참으로 얄밉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어떤 사업이든 홍보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마구잡이로 팩스를 보내는 광고행위는 상도덕이 아니다. 남의 휴지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나 다름없다. 또한 남의 입장은 무시한 채 끈질기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 역시 못마땅한 사람들이다. 더구나 반강제로 제품을 보내고 뜯어본 제품은 반납할 수 없다는 판매전술은 참으로 비겁하고 치졸하기까지 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최고의 판촉행위가 아닐는지.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 팩스홍보나 전화판촉을 규제하는 규정은 없는지 알아볼 일이다.

 

△수필가 백봉기 씨는 2010년 〈한국산문〉으로 등단.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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