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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공감] 정가 1번지 부안, 맥 잇는 '부풍율회'

잊혀져 가는 정가 대중화, 어느덧 68주년

▲ 전북 정가 진흥회 공연. 전북일보 자료사진

반가움 보다는 당황스럽게 다가온 첫 눈이 내렸던 11월 마지막주, 눈길을 달려 부안의 ‘부풍율회(扶風律會)’를 찾았다. 부풍율회는 1947년 10월 부안군 보안면에서 주민 10명이 계(契) 형식으로 창립해 사단법인으로 바뀌어 이어오는 단체다. ‘부풍율계’라는 이름으로 부풍율회 사람들이 모이는 집인 ‘부풍율각’ 마당의 기념비를 통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모임은 가사와 가곡, 시조 등의 고유하고 유일한 민족 음악의 맥을 계승·발전시켜온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체로, 율객(律客)들의 모임으로는 전국에서 최고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47년 결성…매주 모여 정가 익혀

 

김용구(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가사 이수자) 사무국장은 부풍율회는 400~500년 전에 뿌리가 있다고 말했다.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는 말처럼 풍요로왔던 부안은 풍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부안의 선비들이 부풍율회 전신에 해당하는 유사한 모임을 이끌어오다 일제강점기 이후 1947년 다시 결성해 부흥기와 쇠퇴기를 겪었다.

 

부풍율회에 대해서는 고증자료는 없다.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어르신들의 증언으로 역사가 전한다. 현재는 김봉기(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가사 보유자)선생을 모시고, 김기성(78)회장과 김용구(61)사무국장, 회원 18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례회 겸 시조, 가사 등의 수업은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지만, 거의 매일 모여 연습하고 가르친다.

 

회원들이 연로해지는데다 숫자까지 줄었지만 부풍율회 명성은 여전하다. 올해 전국규모 가곡·가사·시조대회에서 장원을 14개나 차지했다.

 

△예술성악의 진수…인류무형문화유산

▲ 김봉기 선생이 ‘선율보(민간에서 전승된 국악 악보)’를 보여주고 있다.

한 때 부안은 가곡·가사·시조의 고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국악의 인기가 시들해진 만큼이나 가곡 등에 대한 관심도 감소했다. 가곡은 풍류를 아는 선비들의 노래였지만 지금은 어렵고 듣기 불편한 음악으로 치부된다.

 

가곡·가사·시조는 정가로 분류 되는데, 판소리 범패와 함께 예술성악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2010년에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유네스코)에 등재되기도 했다. 당시 가곡은 다음과 같이 소개됐다. ‘소규모 국악 관현 반주에 맞춰 남성과 여성들이 부르던 한국 전통 성악(聲樂) 장르이다. 가곡은 시조 및 가사와 함께 정가(正歌)에 속한다. 예전에 가곡은 상류 계층이 즐기던 음악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악곡이 되었다. 가곡은 남성이 부르는 노래인 남창(男唱) 26곡과 여성이 부르는 노래인 여창(女唱) 15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암 정경태 시조 발전 이끌어

 

부안이 정가와 인연이 깊은 여러 이유 중에 부안출신의 석암 정경태(石菴 鄭坰兌,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1916∼2003년)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은 시·서·화 삼절의 대가로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했으며, 시조를 접하게 되면서 정가에 입문했다. 선생은 전국 각지를 돌며 다양한 시조를 접했다. 시조 또한 지방마다 부르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만의 소리제를 만들었는데 바로 ‘석암제’다. 또한 선생은 부르는 사람마다 제 각각인 시조창의 보표를 처음 만들어 ‘시조보’를 완성했다. 호남지역 시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완제시조’는 허창 - 전계문 - 정경태로 내려왔는데, 정경태의 시조는 김월하의 시조와 함께 현대 시조창의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석암제시조’는 현대에 와서 정경태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창법을 지니고 있다.

 

△부풍율회, 시조 전승에 힘써

▲ 김봉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가사보유자와 김용구 부풍율회 사무국장이 부풍율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35년 부안에서 태어난 김봉기 선생은 어린 시절 석암 정경태 선생과 한마을에 살면서 가사를 배웠으며, 이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고민순을 사사받아 현재까지 부풍율회를 지키고 있다. ‘김봉기 선생의 목은 청이 맑고 고요할 뿐 아니라 고음 처리에도 끊길 듯하면서도 끊기지 않고 구슬이 굴러가듯 유연하게 소리를 이어가는 느낌이 특징있다’ 라고 문화재청의 안내 글에 나와 있다.

 

부안에서는 매년 석암문화대상과 함께 전국 시조·가사·가곡경창대회를 개최한다. 정가부흥을 위한 것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부풍율회 회원들은 부안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 시조 한 자락 할 수 있는 자리를 달라고 하지만 성사되는 일은 드물다.

 

부풍율회 회원들의 새해 소망은 석암 정경태 선생의 독창적인 석암제가 한때 서울 중심의 ‘경제’와 우위를 다퉜던 영광을 다시 한 번 누리는 것이다. 2016년 석암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가사를 알릴 수 있는 작은 행사라도 개최하는 것과 부안을 400~500년을 이어온 율객들의 정신과 가곡·가사·시조의 1번지요, 진정한 예향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기를 바란다.

 

평생 가곡을 익히고 전승하는데 힘쓰면서 살아온 김봉기 선생과 김용구 사무국장은 힘이 닿는 한 전북, 그 중에 부안사람이라면 매창의 평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 정도는 즐길 수 있을 때 까지 전승과 보급을 할 계획이다. 또한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시조 한수 들려주고 싶어 한다.

▲ 김정준 도립국악원 공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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