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원 종신회원을 지낸 시인 오상순(1894~1963)은 호가 ‘공초’일 정도로 헤비스모커였다. 공초는 ‘내가 싫어하는 글자가 ‘금연’이라는 두 글자다. 이 두 글자를 볼 때는 무슨 송충이나 독사를 본 것 같이 소름이 끼친다’고 했을 정도다. 결혼식 주례를 보면서도 담뱃불을 끄지 않았고, 하루에 보통 180여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는 공초가 오늘을 산다면 흡연 과태료에 허리가 휘었을 것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공초 이야기 같지만, 흡연을 절대 악으로 여기게 된 것은 10여 년 남짓일 뿐이다. 대학 교수들이 강의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던 모습도 아주 먼 옛날의 풍경은 아니다. 흡연율 통계조사가 처음 실시됐던 1998년 19세 이상 남성의 흡연율은 66.3%에 달했다. 이런 흡연율이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39.1%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흡연율이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단다.
담배의 유해성은 이미 의학적으로 규명됐다. 오죽하면 담배가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발암물질이라고 할까. 지갑을 축 내며 몸을 병들게 하고, 사회적으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담배를 끊지 못하는 흡연가들만 바보다. 그 점에서 필자도 바보다. 그러나 억울한 측면도 있다. 금연전도사로 불리는 박재갑 전 국립암센터장은 담배가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로 끊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담뱃값을 적당히 올리는 것은 국가의 재정적 측면을 고려한 때문이지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보았다. 담배를 마약처럼 금지하지 않는 게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역설한다. 그 속에서 흡연자들만 선량(?)한 바보가 되고 있는 셈이다.
전주시가 한옥마을 전역을 금연구역으로 정해 지난 1일부터 단속에 들어갔다. 한옥마을이 전주 관광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굳이 한옥마을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묶어 다른 지역과 별나게 단속해야 하는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 유명 관광지에서 통째로 흡연을 막는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흡연자를 위한 최소한의 탈출구를 마련해주는 게 관광서비스다. 흡연자에게 최소한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담배 청정구역이라도 선포하려는 것인가. 아직도 흡연율이 39%라지 않는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적 실효를 위해 관광지인 한옥마을이 그 대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금연정책의 선봉에 서려면 한옥마을 관광객으로 흡연자를 받아들지 않는다는 수준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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