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의 타고난 음악적 능력을 견지하며 수많은 소리꾼을 사귀었고 그들을 지원하는 일에 앞장섰다. 고창 관아의 호장을 지낸 그는 이미 나이 40에 1천석 이상을 거두어들일 정도로 재산가였다. 이 재산을 그는 소리꾼들을 비롯한 광대들을 위해 썼다. 당대에 활동했던 소리꾼 중 명창으로 대접받는 소리꾼은 물론이거니와 이런저런 소리꾼들이 인연을 맺어 그의 문하를 거쳤다. 진채선은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아꼈던 제자다.
무장의 아전 출신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머니가 세습당골이었던 진채선은 당골 내림을 배우러 다니는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어깨너머로 소리를 익혔다. 그러다가 소리꾼들을 길러낸다는 신재효의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살짝 얼굴이 얽었지만, 미모가 빼어나고 소리가 고왔던 진채선은 신재효의 사랑을 받아 그의 집에서 기거하며 판소리를 배웠다. 당대의 명창 김세종으로부터 소리를 배우게 한 신재효는 진채선을 최초의 여자 명창으로 키우고 싶었다. 당시 경복궁 중수에 맞춰 전국의 광대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채선을 한양으로 올려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신재효가 직접 지어준 단가를 부른 진채선은 대원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한양에서 지내게 됐다. 채선이 대원군의 사랑을 받는 동안 신재효는 제자를 향한 그리움이 깊어져 결국 병까지 얻게 됐다. 그 마음을 담아 채선에게 보낸 단가가 〈도리화가〉다.
스승의 제자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은 〈도리화가〉가 농악의 옷을 입었다. 고창농악보존회가 2016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 작품으로 제작한 무대다. 고창읍성 아름다운 내아 뜰에서 주말마다 공연되고 있는 〈도리화가 귀경 가세〉는 ‘버라이어티 감성 농악’이란 다소 낯선 이름을 달고 있다. 농악을 바탕으로 소리와 탈춤, 인형극까지 다양한 전통연희 요소를 조화시킨 무대는 신명 나면서도 슬프다. 농악으로 그리움을 만나는 경험은 새롭고 흥미로운 일이다. 〈도리화가〉와의 새로운 만남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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