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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슈즈

▲ 안홍엽

어느 여행 잡지에서 “니스를 보지 않고 나이스(nice)를 말하지 말라”는 글을 보았다. 글에서처럼 니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강렬한 태양, 검푸른 바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해안 도시 니스는 일 년 내내 관광객으로 붐비는 세계적 휴양지다. 니스와 붙여 부르는 깐느는 한 도시 같은 다른 도시다. 니스 깐느, 니스 카니발과 깐느 영화제는 역사로나 규모로나 세계적이다. 영국 왕실가족이 주로 찾는 니스 깐느는 그래서인가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곳이다.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길은 낭만과 여유가 넘친다. 그 길을 걷고 있는 백발의 노부부는 먼 옛날 신혼여행의 단 꿈에 젖어 있는 듯했다. 부인의 신은 레드 슈스, 레드 슈즈를 신고 해변을 걷는 노부부에게서 완숙한 행복을 읽을 수 있었다.

 

파리를 출발하여 스위스와 이탈리아 모나코를 거쳐 니스 깐느에 도착한 것은 1985년 2월 15일 쯤이었다. 손자 홍기가 막 돌을 지났을 때 딸 내외와 친구 김성균(교장)과 함께 즐긴 15일 간의 유럽 여행은 생애의 마지막이자 가장 의미 있는 행사였다. 김성균은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몹쓸 병에 걸려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여행에서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인상은 니스 해변에서 보았던 노 숙녀의 레드 슈즈다. 왜였을까? 아마도 빨강의 색채적 발산력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뜻이다. 노인과 빨강, 어찌 보면 아주 대칭적인 개념 같지만 그래서 오히려 인상 깊게 어울리는 개념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색의 배치와 사용이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젊었던 시절 백화점 쇼윈도우에 걸려 있는 레드 슈즈를 보면서 강렬한 연정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 대상은 없었다. 있다면 저 레드슈즈를 신은 어여쁜 발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여자는 손발이 얼굴보다 예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색의 호감도에서 나는 빨강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빨강과 레드슈즈와 연정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빨간색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에 움츠리고 있던 연정이 레드 슈즈를 통해 살아난 것으로 해석했다. 물론 레드 슈즈에 대한 망상은 허무로 이어졌다. 안델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한 영화 ‘분홍신“(The Red Shuse)은 그 주인공이 어느 장례식장에서 빨간 구두를 벗기며 죽는다는 황당한 스토리다. 이처럼 빨강이 꼭 좋은 징조의 색깔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긴 하다. 학창 시절 어느 모임에서 만난 여자 친구의 빨간 구두는 단번에 나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는 듯 진지하고 열렬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흔히 말하는 결별의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중희(전주 출신)씨가 작사한 남일해의 노래 ”빨간 구두 아가씨“ 솔 솔 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똑 똑 똑 구두 소리 어딜 가시나/한 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발 거름 하나 둘 혼자서 가네/솔 솔 솔 닥아 온 빨간 구두는 어느 날 소리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살아졌다. 비련이랄 수도 없는 해프닝쯤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나는 더 이상 빨강구두를 좋아할 수 없었다.

 

손연재를 비롯한 많은 리듬체조 선수들은 화장을 짙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손연재 뿐만 아니라 배구스타 김연경도 “많은 여자 선수가 예뻐 보이기보다는 자신감을 얻고 지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한다”는 인터뷰내용을 본 일이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도 “선수들의 화장은 예뻐 보이기 위한 것 외에 강해질 수 있다는 자기최면을 거는 것”이라며 김현경 선수의 말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 핵심적 화장품은 물론 빨간 립스틱이다. 가수 임주리가 불렀던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화장품 회사의 빨간 립스틱을 동나게 할만큼 선풍적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빨간 립스틱’과 ‘레드 슈즈’, 여인들의 도전적 애정 표시의 대표적 브랜드이고 정렬적 고백의 상징처럼 되었다.

 

오늘부터 한 달간 ‘코리아 쎄일 페스타’행사가 열려 백화점 쇼윈도우에도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 옛날 친구를 그리며 혹시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레드 슈즈를 보러 가보아야겠다.

 

△안홍엽 수필가는 남원에서 태어나 익산 남성고와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다. 전주 MBC 편성국장으로 재직 중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산문집 '사랑이 꽃비 되어'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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