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0 23:23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chevron_right 문화&공감
일반기사

[문화&공감] 고창 학교-마을 진로교육박람회

농부·바리스타·예술가·곤충연구가 등 무한변신 체험 / 지난해 첫 행사보다 기간 늘리고 부스도 25개서 50개로 / 태어난 지역에서 자리잡고 사는 건강한 연쇄작용 시작

▲ 고창 학교-마을 진로교육박람회에서 아이들이 진로 체험을 하고 있다.

‘온 마을사람이 아이 하나를 함께 키운다’ 고 한다. 아니, ‘했다’가 맞다. 마을의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마을에서 키울 아이들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 세태에,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아이를 키운다니, 요즘 세태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배움을 매개로 학교와 마을공동체가 하나로 어울리던 시절이 아스라하다. 마을 사람 모두가 하나로 뛰어놀던 학교 운동회의 왁자지껄한 풍경, 마을 행사였던 학교 입학식이며 졸업식 풍경. 이제는 모두 옛 이야기 속에 남았다.

 

△야단법석에서 세상을 배웠던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그림책으로도 동화책으로도 꽤 이름이 알려진 독일 옛 이야기이다. 어떤 마을에 쥐가 들끓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책을 찾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 마을에 찾아온 남루한 차림의 사나이, 피리부는 사나이가 제안한다. “금화 천냥!” 마을사람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이의 피리소리를 따라 쥐떼가 모두 사라진다. 간단히 문제가 해결되자 마을사람들은 약속을 뒷전으로 물리고 되레 사나이를 쫓아내고 만다. 그런데, 그이가 부는 피리소리를 따라 마을 아이들까지 모두 사라진다. 종적을 감춘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에게 하멜른의 피리소리는 수도권 집중, 경제적 불균형이 낳은 인문불평등, 교육불평등이다. 사라진 아이들, 점점 더 사라지는 아이들을 되찾아오는 길은 영영 없는 것일까.

 

△마을과 학교가 어울려 부르는 화음, 방과후마을학교부터

 

마을에서 학교에서 천천히 들려오는 피리소리. 다시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건강한 ‘야단법석’이 피어나고 있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그 방식이다. 전라북도교육청(교육감 김승환)에서 몇 해 전부터 진행하는 마을학교프로그램이, 대표적인 학교와 마을 협력사례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방과후마을학교’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학교의 정규 교과시간이 끝나면, 그 뒤 방과후 프로그램을 마을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책임지는 방식이다. 교사들은 교과 수업을 준비하거나 점검하는데 더 집중하고, 그 예산과 역할을 마을주체로 확장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일부를 마을이 나눠 갖는 방식, 그야말로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이 추세는 마을이 교육의 한 주체로 자리잡아가는 만큼 확산하는 추세다. 마을에 누가 있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 간단치 않은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건이 고창에서 벌어지고 있다. 고창교육지원청(교육장 김국재)과 고창공동체협의회가 함께 준비해, 지난 11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진행한 〈학교-마을진로교육박람회〉이다.

 

△마을과 학교, 지역의 기관이 함께 여는 마을-학교진로교육박람회

▲ 고창 학교-마을 진로교육박람회에서 기자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

군단위 작은 커뮤니티에서 교육박람회를 진행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진로와 연계한 교육박람회는 더욱 드물다. 중심이 되는 교육기관(지역교육지원청)만이 아니라 지역의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함께 준비하는 ‘진로교육박람회’는 더더욱 드물다. 학교 교육주체와 마을사람들이 함께 준비해, 지역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진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진로교육박람회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공간으로는 고창실내체육관이 군립체육관으로 대폭 넓어졌고, 기간도 하루가 더 늘어난 이틀이다. 참여 기관과 공동체가 차린 부스공간도 25개에서 50개로 배가 되었다.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다.

 

고창 학교-마을 진로교육박람회는 올 봄 기획을 시작했다. 기획의 시작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꿈이 실현되도록 돕는 학교 밖 학교 역할(교육장 김국재)’로 부터다. ‘학교 밖 학교’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의 2016년 버전이다.

 

△마을체험과 진로교육이 만나 무한 변신하는 현장

 

스물여덟 개 크고 작은 지역공동체는 마을과 문화, 마을과 음식, 마을과 산업, 마을과 예술로 나뉘어, 각자 공동체가 가진 이야기와 체험거리를 진로와 연계해 배치되었다. 진로와 맥이 닿는 지역의 학교(항공, 원예 등 특성화 고교)와 기관(고창경찰서, 고창소방서, 고창문화원, 35보병사단고창대대, 국제티클럽, 고창청소년복지센터 등)이 함께 자리했다.

 

지난 9월 27일 고창지역 초중고 교사들을 초대해 미니 박람회를 먼저 열었다. 40여학교 60여 교사들이 참여해 고창지역 생산, 가공, 유통, 문화, 예술, 교육 공동체들이 어떤 체험으로 진로와 만나는지 현장에 참여해 열띤 이야기꽃을 피웠다.

 

11월 11일과 12일은 사전신청자 600여명과 현장신청 400여명의 학생, 모두 1000여명의 학생들에 학부모, 교사들이 참여해 대규모 진로체험의 장이 되었다. 고창의 어린이·청소년들은 이 자리에서 색깔 있는 농부로, 유기농 우유로 만드는 치즈메이커로, 건강한 보리빵을 만드는 쉐프로, 흙과 물, 불의 감성을 배우는 도자기예술가로, 커피향 전하는 바리스타로, 식용부터 애완까지 다양한 빛깔 곤충연구가로,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천연 화장품을 만드는 아트메이커로, 지역의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기자로, 염색부터 목공까지 생활예술가로 무한 변신해보았다. 하멜른의 피리소리와 함께 사라질지도 모르는 1000명의 아이들이 그 무한변신을 체험하며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지역에서 자란 ‘아이’가 지역 일꾼이 되는 건강한 연쇄작용

 

‘자유학기제 진로체험이 차차 정착되어가고 있다’, ‘학교교육에서 체험교육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다’ 할 때 그 체험교육 공간은 지역이 아니라 대도시 직업체험센터가 전부였다. 지역에서 자라는 어린이·청소년들이, 우리에게는 ‘없고’ 대도시에는 ‘있는’ 것에 익숙해지는 첫 단추다. ‘결핍’을 먼저 배우는 것이다. 우리 곁에도 이렇게 좋은 삶의 현장이 엄연히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우치는 계기가, 마을사람들과 마을의 기관이 학교와 함께 마련한 ‘진로교육’ 공간으로부터다. 우리 어버이의 삶이 대한민국 전체를 고루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고리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자리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고 삶의 가치를 배운 ‘아이’가 제가 태어난 지역에서 튼실하게 자리잡고 살아가는 건강한 연쇄작용이 시작되는 자리다.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고? 아직은 아련한 추억 속 이야기다. 그 아스라한 안개가 천천히 걷히고 있다. 방과후마을학교, 어울림학교, 학교-마을진로교육박람회 같은 작은 힘들이 ‘절대로’ 깨지지 않을 철옹성을 조금씩 허물어뜨리고 있다. 저 가까이에서 하멜른의 피리소리가 다시 들리고, 운동회 왁자지껄 사람들 사이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번지는 듯.

▲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