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출발, 부산으로 향하는 KTX 열차에 바이러스 감염 소녀가 올라타면서 시작되는 영화 부산행에서 승객들은 좀비들의 무차별적 공격에 혼비백산, 그저 앞다퉈 도망칠 뿐이다. 좀비 공격으로 인체 어디든 물렸다 하면 바이러스에 감염돼 곧바로 좀비가 되고, 일단 좀비가 되면 친구든, 가족이든 가리지 않고 마구 공격해 바이러스를 감염시킨다. 시속 300㎞를 넘나드는 초고속 열차의 폐쇄된 공간 안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과 승객들이 쫓고 쫓기며 벌이는 치열한 사투에 관객들은 몸서리친다.
영화에서 배우 공유와 마동석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료 승객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부산행이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좀비에 쫓기는 절체절명의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내면의 전쟁, 그리고 그 곳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인간성을 관객들이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글로벌 세상에는 수많은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독감, 사스, 메르스, AI 뿐만이 아니다. 부산행에 출현한 바이러스처럼 정체불명인 바이러스도 많다. 현대 의학으로 대처하기 힘든 바이러스도 있고, 항생제 내성이 커진 바이러스에 희생되는 사람도 많다. 70억을 돌파한 인간이 지구촌을 점령, 마치 생태계 절대 강자가 된 것 같지만 의학과 기술 등의 급격한 발전 속도에도 불구, 인간의 바이러스 전쟁 승산이 묘한 게 현실이다.
영화 부산행도 말했지만, 인간에게 진짜 무서운 바이러스는 누구나 알고 있는 미생물체 바이러스가 아니다. 인간 내면에 깊숙이 꽈리를 틀고 있다가 느닷없이 뛰쳐나와 인간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다. 미생물인 바이러스는 현미경에 보이지만, 인간의 그것은 보이지도 않는다.
겉보기엔 미남미녀, 선남선녀지만 누군가의 속에는 그 바이러스가 꿈틀거리고 있다. 옛 말에 산에서 마주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바이러스 때문이다. 옛 말 틀린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며 살아간다. 개인과 패거리의 극단적 이기주의, 음모, 영혼없는 충성은 내성을 더해간다. 겉은 멀쩡하지만 부산행 속 좀비보다 더 추악하고 공포스럽다.
·김재호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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