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사제 서품식에서 행해지는 부복은, 비록 그 행위자가 다르기는 하지만, 불교의 접족례나 오체투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오체투지는 신체의 다섯 곳, 그러니까 양 무릎과 양 팔꿈치, 이마가 땅에 닿도록 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인데, 자신을 무한히 낮춰 삼보(불·법·승)에 존경을 표하는 행위다. 마음 속 교만을 떨쳐 내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것이다.
성경 마태복음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구절이 있다. 제 그릇의 크기는 7인데 무리하게 8이나 9, 10의 허세를 부리는 삶에 대한 경계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낮은 자세를 요구한다.
종교만 그런 건 아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강조한다. 물은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있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 그게 가장 좋은 삶이다.
천주교의 부복, 불교의 오체투지, 노자의 상선약수는 세상 사람들에게 오만과 교만을 떨쳐내라고 말한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대하라고 한다.
인간이 수천년에 걸쳐 ‘몸을 낮추라’는 강력한 요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인간성에 내재하는 거대한 탐욕 덩어리를 어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를 얻으면 열을 욕심내는 불치의 병을 유발하는 DNA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탓이다. 최근의 국정농단사건에서 드러난 사람들, 공과 사, 도전과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오체투지나 삼천배, 삼보일배를 권한다. 엎드리면 부끄럽고, 죽기라도 할까 겁나는가.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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