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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카스 빌리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에 피스카스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인구 600명의 크지 않은 이 마을이 예술인마을 ‘피스카스 빌리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 부터다. 피스카스는 17세기부터 구리와 철을 제련하던 지역이었다. 철강산업이 번성하게 되면서 자연히 관련 회사들이 문을 열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피스카스’였다.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기도 한 피스카스사가 우리에게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76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 가위 덕분이다. 쇠로 되어 있는 손잡이 가위의 불편함을 플라스틱으로 바꾸어낸 이 획기적인 오렌지색 손잡이 가위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팔려나가면서 마을은 더욱 번성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성과가 커지니 일자리가 생겨나고 이주해오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마을의 번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을 꿈꾸고 있던 ‘피스카스사’가 이곳을 떠났기 때문이다. 회사가 떠난 뒤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마을은 공동화되었다. 부담을 안게 된 피스카스사는 마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섰다. 지역성을 살리면서도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방법으로 피스카스사가 선택한 것은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과 건물을 예술인들에게 내주는 일은 ‘A living ironwok village ‘를 내세워 새로운 마을을 조성해가던 피스카스의 마을 살리기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

 

1993년 처음으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이주해오면서 피스카스 빌리지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철공소로 기능했던 공장은 갤러리가 되고 다양한 예술작품과 쓸모 있는 상품을 파는 갤러리와 가게로 변신했다. 이주해오는 예술가들이 늘어나면서 피스카스는 핀란드의 창의적인 디자인이 새롭게 선보이는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예술인 마을로 자리 잡았다. 600명 인구 중에 120명이 예술가인 마을. 30여년 역사의 ‘피스카스 빌리지’를 만들어낸 피스카스와 피스카스사의 절묘한 결합에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 것이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면서도 마을의 고유한 지역성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오래된 도시들이 근대 유산의 활용에 나서고 있다. 성공한 예도 있지만 일회성 이벤트로 수명을 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지역성을 외면하고 다른 도시들의 방식을 그대로 이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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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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